경주에서 실시하는 마라톤에 참가하기로는 세 번째였다. 2007년 10월에 경주마라톤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십킬로미터 코스였다. 기록은 1시간 1분인가 그랬다. 그 다음해 가을에도 참가했다. 이때는 하프코스를 뛰었다. 기록은 2시간 22분 22초였다. 이번에도 하프코스에 출전했는데 기록은 2시간 간 14 분 46 초였다. 인터넷으로 기록을 보니 하프코스를 달린 남자 1803 명중 1540 위를 했단다. 저조한 기록이다. 그래도 내 딴에는 8분 정도를 단축하기 위해서 무진장 애를 쓰면 달렸다.  

생각해보니 내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 마흔 살이 되고부터였다. 삶의 답을 못 찾아 괴로울 때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인생이 마라톤과 같다는 말에서 힌트를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희한하게도 마흔 살이 될 무렵에 오른쪽 어깨 인대가 파열되어서 여섯 달 정도를 고생했다. 몸고생도 심했지만 마음고생이 더 심했다. 쑤시고 아파서 밤잠을 못 자던 시절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나니 겨우 몸이 진정이 되었다. 그 전에 신청했던 십킬로미터 코스에도 나갈 수 있을 지 자신이 안 서서 취소할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일단 한번 해보자 싶어서 대회에 나갔고, 나름대로는 열심히 달렸다. 통행제한 시간인 한시간 반을 못 넘기고 인도로 올라와야 되는 것은 아닌지 하고 걱정했는데, 뜻밖에도 팔다리는 잘 움직여주었다. 처음 완주 메달을 받고 혼자서 찍은 휴대폰 사진 속의 내 모습은 환히 웃고 있었다.  

가을에 하는 경주마라톤은 경주시와 동아일보가 함께 주최하는 국제마라톤이다. 출발지와 도착지도 경주시내의 황성공원 옆 종합운동장이다. 경주시내를 일주하는 평탄한 코스다. 봄에 하는 경주마라톤은 제목이 ‘벚꽃마라톤’인데, 출발지와 도착지는 경주문화엑스포장이다. 달리는 코스는 보문단지 일대다. 대회날짜는 4월 4일이었다. 벚꽃이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달리는 길가는 온통 벚꽃 나무였다. 
 

우리 집에서 6시 반에 출발했는데, 행사장에 도착한 시간은 7시 반이었다. 그 날은 쉬는 토요일이 아니라서 학교에 연가를 내고 혼자서 경주로 갔다. 행사장에 가니 사람들, 차들, 장사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면장갑 하나와 파워겔-아미노산 보충제-를 샀다. 모자는 사려다가 말았다. 나는 머리가 큰 편이라서 모자에 대한 콤플렉스가 강한 편이다. 어지간하지 않으면 모자를 잘 안 산다. 그 날도 모자를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놓아두었다. 대신에 지난번에 대회선물로 받았던 헤어밴드를 머리에 두르기로 했다. 이어서 옷을 벗어서 물건보관대에 두었다. 여기도 줄 서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여기까지 하고 나니 벌써 8시였다. 8시면 풀코스 주자들이 달리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하프코스는 8시 10분이면 출발이다.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꼭 했으면 하는 일이 있었다. 장딴지와 무릎에 테이핑을 하는 것이었다. 테이핑을 하면 근육의 통증과 피로감이 덜하다고 한다. 나로서는 심리적인 불안감을 해소하는 정도의 차원인지도 모르겠다. 테이핑을 받으려고 했더니 다 안 해주고 한쪽 다리에만 해준다. 할 수 없이 그 정도로 하고 출발점에 가보니 벌써 하프코스는 출발했고, 십킬로미터 코스가 달리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거기에 끼어들어서 나도 달릴 준비를 했다. 
 

팡파레와 폭죽 소리가 터지면서 십킬로미터주자들도 달리기를 시작했다. 내가 출발한 시각은 8시 17분이었다. 요즘 마라톤 기록은 개인별로 부착한 마이크로 칩에 의해서 되기 때문에 출발시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좀 꾸물럭거린 셈이다. 그러데 막상 달리려고 해보니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문득 같이 달릴 동료들이 멀리 가버렸다는 것을 실감했다.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마라톤에서는 페이스가 가장 중요하다. 자기 페이스를 잃어버리면 달리기 과정이 너무 힘들다. 내가 그랬다.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했다. 나보다 7분 먼저 출발한 사람들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마음에 초반에 좀 빨리 달렸다. 
 

지난해까지는 ‘워크런(walk-run)’주법을 썼다. 9분 달리고 1분 걷는 식으로, 힘을 배분하는 식으로 달리는 방식이다. 그랬더니 힘은 덜 드는데, 기록은 잘 나오진 않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30분 달리고 3분 걷는 식으로 했다. 그랬더니 초반 기록은 잘 나오는 것 같았다. 앞에 가던 사람들을 제낄 때는 기분도 좋았다. 오킬로미터를 접어들 때에 힘이 뚝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초반에 힘을 많이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집에 와서 황영조의 <마라톤 스쿨>을 보았더니, 오버페이스가 마라톤에서는 치명적이라고 했다. 페이스를 잃게 되면 나중에 일킬로미터가 십킬로미터처럼 느껴질 거라고 했다. 달릴 때는 그것을 잘 몰랐다. 초반에 잘 나가니까 그냥 막 달렸던 것이다. 후회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끝까지 갈 수 밖에 없으니까, 힘을 조절하면서 좀 천천히 달렸다. 
 

중간에 있는 음수대와 바나나, 초코파이가 얼마나 기다려지던지. 아마 그렇게 맛있는 바나나는 없을 것이다. 초코파이도 마찬가지다. 몸에 들어가면 꿀처럼 느껴진다. 중간에 바나나를 두 개나 먹었더니, 그게 탈이 났다. 신물이 넘어왔다. 그렇게 중간에 고생을 좀 하고. 파워겔은 아미노산덩어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마치 그걸 먹으면 수퍼맨처럼 힘이 막 날 것 같은 환상이 있었는데, 나중에 그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십오킬로미터 지나서 먹었는데, 그게 소화가 잘 안 되었다. 그것도 꼭꼭 씹어서 침과 함께 넘겨야 하는가 보다. 급하게 먹었더니-사실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이 많이 난다-그것도 신물이 넘어왔다. 마음 속에 들어있는 환상, 달콤한 것에 대한 무의식적 이끌림을 깨달았다. 이 나이에도 그렇다.
 

제일 힘든 지점은 역시 마지막 십오킬로미터에서 이십일킬로키터 사이였다. 힘이 부치다보니 마지막 부분에서 힘껏 달릴 수가 없었다. 막연하게 이번에는 기록을 두 시간 안에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달렸는데, 힘이 있어야 말이지. 거기다가 올라가는 언덕은 왜 그렇게 많던지. 언덕에서는 좀처럼 달리기가 힘들었다. 연습량이 많고 잘 뛰는 사람들이야 그곳도 가뿐하게 올라가더라만 겨우 걸어서 올라갔다. 평소 연습할 때는 쉬지 않고 60분 정도 달리는 수준으로 했는데, 대회는 두시간 넘게 달리게 되니까 힘이 떨어지는 뒷부분에서는 적응이 잘 안 되었다. 연습시간에 충실히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연습 조금 한 것을 가지고 과도한 기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도 알 것 같았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서 결승선을 밟고 들어온 시각이 2시간 14분 46초였다. 지난번보다 기록이 8분쯤 잘 나왔다. 이번 코스는 언덕이 많아서 가을에 하는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20분쯤 단축한 것과 같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다 뛰고 난 뒤에는 완주메달 받고, 빵과 음료수도 받고, 마사지도 받았다. 스포츠관련학과 대학생들이 자원봉사나온 것인데, 마사지 받는 순간은 5분 정도에 불과하다. 기다리는 시간은 30분쯤 된다.  

마사지를 기다리면서 앞 뒤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울산에서 온 사람이었다. 풀코스를 뛰었다고 했다. 기록은 3시간 30분. 지난번 기록보다 못 나왔단다. 나이는 50살. 현대중공업에 다닌다고 한다. 모자를 쓰고 있는데, 모자 밖으로 땀이 뭉쳐서 된 소금이 누렇게 묻어있다. 코에도 소금, 이마에도 소금이다. 자기 아들도 하프코스를 뛰었는데, 기록이 2시간 10분 나왔단다. 보통 일주일에 얼마 정도 훈련하냐고 물었더니, 풀코스 뛰려면 한 주일에 합산해서 30킬로미터는 뛰어야 한단다. 울산에는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마라톤을 많이 한다고 한다. 경주에서 실시하는 대회의 우승자도 그들이 많단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사람은 만명이 넘는다. 마라톤 코스는 풀코스, 하프코스, 십킬로미터코스가 있고, 오킬로미터 코스도 있다. 보통 오킬로미터는 마라톤으로 쳐주지 않고, 건강 달리기로 간주한다. 가을 대회에는 없는데, 봄 대회에는 오킬로미터코스가 있다. 아마도 일본에서 참가하는 사람들을 배려한 차원이 아닐까 싶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사와 경주시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온 사람들도 좀 된다. 어떤 일본 사람은 맨발에다가 일본전통의 옷을 입고 커다란 깃발을 들고 달리기도 했다. 일본기자들이 대회에 참가한 일본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는 장면도 보았다. 
 

개인으로 참가한 사람도 많지만 회사나 동호회 차원에서 참가한 사람들도 많다. 곳곳에 마라톤 동호회 텐트를 쳐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함께 버스를 빌려서 참가하기도 한다. 음식도 준비해서 함께 먹고 마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결승선에는 같은 동호회 출신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응원을 해주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풀코스 달리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맥주 캔을 들이대면서 수고했다고 마시라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게 좀 이해가 안 되었다. 참 이건 한국적인 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라톤 관련 책을 보아도 결승선에 들어와서부터 몸을 식히는-쿨링다운 cooling down-단계를 잘해야 몸이 잘 보존된다고 하는데, 맥주를 갖다 대는 사람을 보면서 좀 놀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라톤도 ‘이까이꺼’하면서 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해서 평생을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올 가을에 풀코스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대회 날짜는 아마 10월 25일쯤 될 것 같다. 마라톤 대회에 나와보면 집회를 방불케 하는 흥분을 맛볼 수 있다. 또한 그 흥분이 사라지고, 곧 지극히 개인적인 투쟁이 시작되는 경험도 하게 된다. 그래서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번에 내가 느낀 것도 이것이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단계별로 느끼고 생각할 점들이 많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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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달렸다. 퇴근하고 나서 사우나에 딸린 헬스센터에 갔다. 날씨가 추운 탓에 얼어버린 몸을 덥히기 위해서 온탕에 들어가 5분쯤 땀을 냈다. 그 상태에서 헬스클럽으로 올라갔다. 스트레칭을 10분 했다. 오랫동안 안 했더니 스트레칭하는 차례도 기억이 안났다. 이어서 걷기 5분 하고 난 뒤에 달리기를 30분 했다. 30분 하는 동안은 9분 달리고 1분 걷는 식으로 했다. 달리기 마치고 나서는 5분 동안 걷기를 했다. 이어서 스트레칭 10분으로 마무리. 땀이 좀 흥건하게 젖었다. 달리고 난 뒤에는 기분이 상쾌했다. 사우나에 가서 냉온욕으로 10분쯤하고 나서 바로 집으로 왔다. 이 정도 하는데도 1시간 반이나 걸렸다. 집에 가니 7시 반이더라.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묻더라. 나중에 9시가 넘으니 몸이 피로한 걸 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10시 반쯤 잤다.

다음날(11.20)  퇴근하는 길에 정형외과에 들렀다. 다리와 어깨 쪽 상태를 물어보았다. 어깨는 거진 다 나았는데 아직 어느 부위는 근육이나 인대가 정상으로 회복되지 못했다. 힘이 덜 들어간다. 왼쪽 발바닥이 걸을 때마다 아픈 데가 있어서 물었더니 엑스레이를 찍자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인대는 이상이 없다. 엄지와 둘째 발가락 밑 부분에 인대가 두개 굵은 것이 있는데 거기가 많이 걷다보면 아플 수도 있다고 한다. 신발이나 걷는 방법을 바꾸던지, 달리기하는 것을 좀 쉬어주라고 한다. 약도 일주일치를 받아왔는데 먹기가 싫어서 서랍에 넣어두고만 있다. 달리기를 계속 할지 망설이는 중이다. 차라리 수영으로 바꾸어볼까 하고 궁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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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일요일 저녁9시에 하는 <색,계>를 보았다. 마치고 나니 11시 40분이더라. 엉덩이도 아프고, 허리도 쑤시고 해서 괴로웠다. 더구나 내 오른쪽에는 젊은 처자 둘이 앉아 있어서 마음대로 행동하기가 좀 곤란했다. 영화가 영화이니만치. 콜라를 오른쪽 팔걸이 있는 음료수 받이에 넣었는데, 어두운데서 목이 말라 콜라를 마시고 나서 다시 두기가 어려웠다. 평소같으면 그냥 좀 더듬다가 두었을 텐데 영화가 좀 성격이 그래서 한참 조심스러웠다.

영화의 포스터나 소개글에서 받은 인상과 영화의 본 내용은 느낌이 좀 다르게 왔다. 연기는 정말 출중했다. 특히 여주인공역을 맡은 여자배우는 연기의 힘이 대단했다. 20대 초반의 신인여우라는데 그 정도의 연기가 나온다니 정말 앞으로 기대할 만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무대장 역의 양조위의 연기도 볼만했다. 그렇지만 여주인공에게 받은 인상만큼은 아니었다. 워낙 여주인공의 연기가 뛰어났다.

내가 꼽은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1. 홍콩의 대학에서 연극을 하면서 "중국을 구하자"는 구호로 마무리되면서 전 공연장에서 일어나는 감동의 물결. 그 장면이 어쩐지 나는 감동스러웠다.
2. 여주인공이 좋아하는 열혈 대학생의 고향선배라는 특무대 대원이 그들의 아지트에 찾아왔을 때 그를 죽이는 장면. 영화에서 사람죽이는 장면을 그렇게 사실적으로 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보고있는 나에게 그들의 흥분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 그 장면만 본다면 무슨 공포영화라고 보아도 될 것 같았다.
3. 보석가게에서 여주인공이 특무대장에게 " 도망쳐요"하고 말하자마자 양조위가 바람처럼 도망가는 장면. 백미터 달리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정말 날래게 달렸다. 피아가 분명한 전장에서 목숨을 건지려면 그 정도는 빨라야겠지. 그런의미에서 보면 특무대장이 마지막까지 죽지 않고 오히려 암살단들을 잡아다 죽이는 마지막 장면은 사실적이다. 거사에 실패해 모두 잡혀 총살형을 당하는 마지막 장면은 해피엔딩이나 거사의 성공을 바라는 관객들에게는 실망스러웠지만 현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지. 감정이 흔들리거나 결단에 느린 자들은 투쟁에서 상대의 밥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인 것. 처음에 여주인공은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정말로 차분하게 막부인 역할을 잘 해낸다.그 때문에 양조위는 그녀에게 넘어갔던 것. 감정이 흔들린 거지. 그러나 양조위에게 성적으로 포섭당하는 순간부터 그녀는 흔들린다. 초반에 차분하던 눈빛의 그녀는 후반에 가면 눈빛이 흔들리게 된다. 암살단의 모임에서 하는 그녀의 진술은 그 항복을 묘사한다.
  "그 사람은 독사처럼 나에게 덤벼들어 내 심장까지 도달해요.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요."
보통의 남녀사이라면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남자와 여자가 모두 상대에게 매혹되어 감정이 출렁이는 상태. 그렇지만 둘은 서로 사랑할 사이가 아니었다. 온통 적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들은 상대를 죽일 수 밖 에 없는 처지였다. 결국 살아남은 이는 남자다. 이런 면에서 보면 여자는 약하다. 양조위도 그녀처럼 그 여자를 죽이지 않고 살릴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인데, 냉정하게 같이 총살시키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나중에 그녀가 남기고 간 짐이 있는 방에 가서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의 정체는? 그 방에 찾아와서 놀라고 있는 자기 아내에게 던지는 마지막 대사가 재미있다.
"당신은 올라가서 그전처럼 계속 놀아." 

제목의 의미는 잘 모르겠다. 단지 색을 너무 보여주는 바람에 영화 전체의 문법을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색만 보이고 계는 안보인다는 평도 본 것 같다. 영화평론가 김소영은 '이 영화는 이안의 베스트가 아니다'라고 하는데 나는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이안의 영화는 몇 개 본 것이 없으므로. 아니다. 방금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내가 본 이안 감독의 영화는 <음식남녀><센스앤 센스빌리티><와호장룡><헐크>다. 제일 기억에 남는 영화는 이안이 대만에서 만들었다는 <음식남녀>다. 와호장룡이나 헐크는 어쩐지 심심했다. 서양사람들은 와호장룡에 열광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글쎄였다. <브로크백마운틴>은 비디오를 빌려서 보다가 중간에 잤다. 그래서 못 봤다. 이번 토요일에 한번 빌려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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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낮에 일터에서 달리기를 했다. 러닝머신에서 달렸다. 오후 3시에 시작했다. 우선 스트레칭을 했다. 오랫동안 안 했더니 스트레칭 하는 순서도 모르겠다. 5분 정도 했다. 이어서 러닝머신에 올라서 걷기를 했다. 걷는 속도는 시속 5km이다. 그렇게 5분을 걸었다. 이어서 달리기를 했다. 달리다 걷는 식으로 했다. 9분 달리고 1분 쉬고 하기를 되풀이했다. 속도는 시속 7km였다. 그렇게 20분했더니 괜히 자신감이 붙었다. 이번에는 시속 8km로 달렸다. 속도가 확실히 빨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기로 그냥 달렸다. 6분 정도 지나니 무릎, 발목에서 힘들다는 신호가 왔다. 할 수 없이 속도를 7km로 늦추고 나서 2분 정도 더 달렸다. 이어서 2분 동안 걸었다. 나머지는 역시 시속 7km 달리기를 9분하고 1분은 걷는 식으로 했다. 그렇게 하고 나머지 5분은 걸었다. 걷고 달리고 한 시간이 모두 더해서 50분이다. 긴 체육복을 입고 달렸더니 이마에 땀이 흥건하다. 러닝머신에서 내려 잠시 쉬다가 10분간 스트레칭을 했다. 오랫만에 달렸더니 기분이 상쾌했다.

저녁에 집에 와서 보니 발가락이나 발목, 무릎이 좀 시큰거린다. 좀 무리한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다. 애초에 생각한 것보다 좀 무리했다 싶다. 결국 괜한 욕심이 발동해서 이런 무리를 했다. 이런 작은 욕심과 실수들이 겹쳐서 부상을 부른다. 마음 속에서 '그만!'하는 신호가 올 때 그만해야 하는데. 이렇게 중도에 만족하고 그만두는 것이 참 어렵다. 달리기는 중독성이 있는 운동이다. 30분 이상 달리면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나면서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충동이 생긴다.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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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리던 경주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기다림에 비해서 운동량은 많이 모자란다는 점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난 때가 5시였다. 밤새 긴장한 탓에 잠이 깨자마자 바로 일어났다. 어제 밤에는 11시 반에 잤었다. 잠이 좀 모자란 듯했지만 그대로 일어나서 움직였더니 몸이 정상으로 돌아간다. 녹차를 300ml 정도 마시고 나갔다. 아침밥은 안 먹었다. 공복에 달리기로 했다. 5시 55분에 집에서 나섰다. 동쪽 하늘에 샛별이 떠 있었다. 감동스러웠다. 날씨는 쌀쌀했다. 차를 열심히 몰았다. 신호등 무시하고 한참을 밟아서 그렇게 경주로 갔더라.

경주 황성공원에 도착한 시간이 6시 50분이었다. 미리 답사를 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마음에 긴장이 되었다. 초조하기도 했다. 나는 시립도서관 근처에 차를 대고 나서 길을 물어보니 시민운동장이 바로 지척이었다.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어묵이나 뜨거운 차를 마시는 모습들이 보였다. 옷이나 가방, 신발을 눈여겨 살펴보게 된다. 대부분 운동복 외투를 입고 오거나 가방도 근사한 것들이 많았다. 나는 차 안에 가져온 아디다스 가방을 그대로 두고 어깨에 매는 작은 가방을 가지고 갔다. 나중에 차라리 큰 가방을 그대로 가져올 것을 하는 후회를 나중에 하기도 했다. 시민운동장으로 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바쁘게들 가고 있었다. 운동장에 도착한 시간이 7시 10분쯤이었다. 나는 지난번에 본 대회요강에 나온대로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선수등록을 해야 하는 줄 알고 마음이 바빴다.

운동장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운동장을 한번 둘러보고나서 운동장 한가운데 있는 '안내소'로 갔다. 거기 가서 선수등록을 어디서 하는지 물었더니 거기 있는 아가씨가 "선수등록요? 그런 거 안하는데. 등록번호 있으시면 나중에 그냥 뛰면 됩니다."하고 말했다. 순간 멍청했다. 7시 전에 등록하라는 대회요강은 뭐야? 따질 것 까지는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돌아서 나왔는데 우선 내가 안내책자를 제대로 못 읽어서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장 한 가운데서 30분 정도를 서성거렸다. 따뜻한 차도 얻어마시고, 화장실에도 다녀왔다. 운동장 밖에 있는 간이화장실은 어찌나 덜렁거리던지. 문밖에서 계단을 짚고 있으면 화장실이 똑바로 서는 그런 이상한 화장실이었다.

7시 40분에 여자엘리트 선수들이 먼저 출발했다. 이어서 8시에 엘리트 선수들이 출발했다. 8시 10분 마스터스 부분 풀코스 선수들 출발. 8시 15분 하프코스 출발. 8시 25분 10km코스 출발. 그 전에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겼다. 우유빛 비닐가방에 짐을 넣어서 주었더니 짐번호를 선수번호표에 붙인다. 시스템이 잘 짜여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스트레칭을 10여분 했다. 그 동안 운동장은 전국에서 모여든 선수들로 꽉 찼다. 10,000명은 넘어보였다. 각종 달리기 동호회들이 모여드었다. 카톨릭 달리기 동호회가 나는 인상깊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했다는 말씀을 옷에 새긴 선수들이 많았다. 

풀코스, 하프코스, 10km코스로 출발을 나눠서 했는데, 출발선으로 한꺼번에 천천히 밀려갈 때의 그 느낌이 좋았다. 가슴이 흥분으로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날 사회는 이창명과 후배 개그맨(이름은 모르겠다. 목소리가 힘있고 좋았다.)이 맡아서 했다. 대회 내빈은 동아일보사 김학준 사장, 아식스 사장, 육상협회장, 경북도지사, 경주시장, 국회의원 들이 있었다. 이들이 출발선 쪽에서 출발버튼을 누르면서 우리를 환송해주었는데, 나는 김학준이라는 사람을 주목해보았다. 대학1학년 때 김학준의 <러시아혁명사>를 탐독했던 기억이 있어서 나는 김학준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거리였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손을 흔드는데 김학준은 손을 잘 안 흔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민운동장을 나서서 거의 1km를 달리기까지는 천천히 걷듯이 했다. 앞 쪽에 보니 산소통을 메고 달리는 119소방대원들도 있었다. 나는 책자에서 본 대로 '걷다가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9분 달리고 1분 걷기로 했다. 처음에는 걱정했던 대로 정강이 근육이 모이는 증상이 있었는데, 2km를 넘어서니 풀리는 것을 느꼈다. 5km 정도 달리니 기분도 상쾌하고 달리는 느낌도 좋았다. 그야말로 순풍에 돛 단 듯이 그렇게 잘 달렸다. 슬슬 처지는 사람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가는 재미도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숨이 가빴다. 9분 달리고 1분 걷기를 되풀이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어느새 8km였다. 남은 거리는 2km. 1분 걷기할 구간이었지만 그대로 달리기로 했다. 마지막은 정말 힘을 주어서 달렸다. 처음에는 기록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는데, 불현듯 시계를 보니 잘하면 1시간 안에도 들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 열심히 달렸다. 결승점에 들어올 때 손목시계를 보니 1시간 2분 정도 되었다. 나중에 주최측에서 문자메시지로 보내온 기록은 1시간 09초였다. 거의 한시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번호표 뒤에 달려있는 컴퓨터 칩이 기록을 자동으로 측정하는 것이라서 오차가 거의 없다고 한다.

달리고 나서는 운동장을 5분 정도 걸어다녔다. 그리고 나서 잔디밭에 앉아서 스트레칭을 10분 동안 했다. 이어서 칩을 반납했다. 10km 완주 메달과 간식을 받았다. 빵과 바바나, 초코파이, 보리음료가 들어있었다. 얼마나 반가운 음식이던지. 아침 굶고 달린 뒤라 정말 몸이 노곤했다. 음식을 맛있게 먹고나서 잔디밭에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메달을 들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첫화면에 등록을 했다. 지금도 그 사진이 내 휴대폰에 등록되어 있는데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그냥 가려는데 재활마사지를 하고 있는 곳을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가만히 보니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나도 거기 줄을 섰다. 6명 정도 지나서 나도 마사지를 받았다. 30분쯤 기다렸나. 5분 정도 다리와 골반, 등을 중심으로 마사지를 했는데  몸이 훨씬 나았다. 내 앞에 서 있던 아저씨는 나이가 50살 근접했다고 하는데, 몸이 안 좋아 보였다. 화장실에 간다고 일어서는데 다리를 펴지 못해서 내가 손을 잡아서 일으켰다. 근육이 모인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원래는 풀코스에 출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연습을 거의 못해서 아주 힘들었단다. 달리는 도중에 하프코스로 바꿔 달렸다고 한다. 완주도 여러번 했다는데, 젊어서 달리던 실력만 믿고 무리해서 풀코스를 달렸다가 낭패를 본 경우였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나도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한 편이 아니다. 9월 한달은 한 주에 서너번 연습을 충실히 했다. 그런데 추석연휴 뒤부터는 거의 한 주일에 한번 달릴 정도의 연습 밖에 못했다. 나중에는 조금만 달리면 정강이 근육이 모이고 하길래 과연 10km를 달릴 수 있을지 자신이 안 섰다. 그런데 뜻밖에 10km를 쉽게 뛰고 기록도 예상보다 잘 나온 편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 평소에 걷기를 많이 한 덕분이라고. 나는 출퇴근을 버스로 한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15분 정도 걸린다. 1km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아침에는 매일 30분씩 산행을 한다. 이것도 거리가 2km는 될 것이다. 하루에 4km는 기본으로 걷는 셈이다. 나는 이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이번에 우승한 케냐 선수나 얼마전에 세계기록을 낸 선수도 학교가는 길이 10km여서 늘 걷거나 뛰었다고 한다. 하루에 20km정도는 저절로 운동이 된 셈이지. 이렇게 일상적인 생활에서 쌓는 운동이 주는 의미는 커다. 10분 정도 거리면 걷기, 엘리베이터 안 타고 계단 걸어서 올라가기 같은 것들이 내가 습관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발을 씻다보면 발바닥에 굳은 살이 박힌 부분이 만져진다. 예전에 늘 차타고 다닐 때는 없던 것이다. 손이나 발에 굳은 살이 박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손으로 운동이나 노동을 많이 하고 늘 걸어다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깨가 아파서 거의 1년 동안 무거운 것을 드는 일을 못했더니 손바닥은 여자손처럼 말랑해졌다. 이제 좀 움직일 만한 데 여유가 되면 헬스장에라도 가보아야겠다. 한 주일에 세번 헬스하고 네번 달리기하는 리듬을 당분간 유지해보려고 한다. 4월 초에 있는 경주벚꽃마라톤에는 하프코스에 도전해보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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