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일요일 저녁9시에 하는 <색,계>를 보았다. 마치고 나니 11시 40분이더라. 엉덩이도 아프고, 허리도 쑤시고 해서 괴로웠다. 더구나 내 오른쪽에는 젊은 처자 둘이 앉아 있어서 마음대로 행동하기가 좀 곤란했다. 영화가 영화이니만치. 콜라를 오른쪽 팔걸이 있는 음료수 받이에 넣었는데, 어두운데서 목이 말라 콜라를 마시고 나서 다시 두기가 어려웠다. 평소같으면 그냥 좀 더듬다가 두었을 텐데 영화가 좀 성격이 그래서 한참 조심스러웠다.

영화의 포스터나 소개글에서 받은 인상과 영화의 본 내용은 느낌이 좀 다르게 왔다. 연기는 정말 출중했다. 특히 여주인공역을 맡은 여자배우는 연기의 힘이 대단했다. 20대 초반의 신인여우라는데 그 정도의 연기가 나온다니 정말 앞으로 기대할 만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무대장 역의 양조위의 연기도 볼만했다. 그렇지만 여주인공에게 받은 인상만큼은 아니었다. 워낙 여주인공의 연기가 뛰어났다.

내가 꼽은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1. 홍콩의 대학에서 연극을 하면서 "중국을 구하자"는 구호로 마무리되면서 전 공연장에서 일어나는 감동의 물결. 그 장면이 어쩐지 나는 감동스러웠다.
2. 여주인공이 좋아하는 열혈 대학생의 고향선배라는 특무대 대원이 그들의 아지트에 찾아왔을 때 그를 죽이는 장면. 영화에서 사람죽이는 장면을 그렇게 사실적으로 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보고있는 나에게 그들의 흥분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 그 장면만 본다면 무슨 공포영화라고 보아도 될 것 같았다.
3. 보석가게에서 여주인공이 특무대장에게 " 도망쳐요"하고 말하자마자 양조위가 바람처럼 도망가는 장면. 백미터 달리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정말 날래게 달렸다. 피아가 분명한 전장에서 목숨을 건지려면 그 정도는 빨라야겠지. 그런의미에서 보면 특무대장이 마지막까지 죽지 않고 오히려 암살단들을 잡아다 죽이는 마지막 장면은 사실적이다. 거사에 실패해 모두 잡혀 총살형을 당하는 마지막 장면은 해피엔딩이나 거사의 성공을 바라는 관객들에게는 실망스러웠지만 현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지. 감정이 흔들리거나 결단에 느린 자들은 투쟁에서 상대의 밥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인 것. 처음에 여주인공은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정말로 차분하게 막부인 역할을 잘 해낸다.그 때문에 양조위는 그녀에게 넘어갔던 것. 감정이 흔들린 거지. 그러나 양조위에게 성적으로 포섭당하는 순간부터 그녀는 흔들린다. 초반에 차분하던 눈빛의 그녀는 후반에 가면 눈빛이 흔들리게 된다. 암살단의 모임에서 하는 그녀의 진술은 그 항복을 묘사한다.
  "그 사람은 독사처럼 나에게 덤벼들어 내 심장까지 도달해요.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요."
보통의 남녀사이라면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남자와 여자가 모두 상대에게 매혹되어 감정이 출렁이는 상태. 그렇지만 둘은 서로 사랑할 사이가 아니었다. 온통 적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들은 상대를 죽일 수 밖 에 없는 처지였다. 결국 살아남은 이는 남자다. 이런 면에서 보면 여자는 약하다. 양조위도 그녀처럼 그 여자를 죽이지 않고 살릴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인데, 냉정하게 같이 총살시키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나중에 그녀가 남기고 간 짐이 있는 방에 가서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의 정체는? 그 방에 찾아와서 놀라고 있는 자기 아내에게 던지는 마지막 대사가 재미있다.
"당신은 올라가서 그전처럼 계속 놀아." 

제목의 의미는 잘 모르겠다. 단지 색을 너무 보여주는 바람에 영화 전체의 문법을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색만 보이고 계는 안보인다는 평도 본 것 같다. 영화평론가 김소영은 '이 영화는 이안의 베스트가 아니다'라고 하는데 나는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이안의 영화는 몇 개 본 것이 없으므로. 아니다. 방금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내가 본 이안 감독의 영화는 <음식남녀><센스앤 센스빌리티><와호장룡><헐크>다. 제일 기억에 남는 영화는 이안이 대만에서 만들었다는 <음식남녀>다. 와호장룡이나 헐크는 어쩐지 심심했다. 서양사람들은 와호장룡에 열광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글쎄였다. <브로크백마운틴>은 비디오를 빌려서 보다가 중간에 잤다. 그래서 못 봤다. 이번 토요일에 한번 빌려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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