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실시하는 마라톤에 참가하기로는 세 번째였다. 2007년 10월에 경주마라톤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십킬로미터 코스였다. 기록은 1시간 1분인가 그랬다. 그 다음해 가을에도 참가했다. 이때는 하프코스를 뛰었다. 기록은 2시간 22분 22초였다. 이번에도 하프코스에 출전했는데 기록은 2시간 간 14 분 46 초였다. 인터넷으로 기록을 보니 하프코스를 달린 남자 1803 명중 1540 위를 했단다. 저조한 기록이다. 그래도 내 딴에는 8분 정도를 단축하기 위해서 무진장 애를 쓰면 달렸다.  

생각해보니 내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 마흔 살이 되고부터였다. 삶의 답을 못 찾아 괴로울 때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인생이 마라톤과 같다는 말에서 힌트를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희한하게도 마흔 살이 될 무렵에 오른쪽 어깨 인대가 파열되어서 여섯 달 정도를 고생했다. 몸고생도 심했지만 마음고생이 더 심했다. 쑤시고 아파서 밤잠을 못 자던 시절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나니 겨우 몸이 진정이 되었다. 그 전에 신청했던 십킬로미터 코스에도 나갈 수 있을 지 자신이 안 서서 취소할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일단 한번 해보자 싶어서 대회에 나갔고, 나름대로는 열심히 달렸다. 통행제한 시간인 한시간 반을 못 넘기고 인도로 올라와야 되는 것은 아닌지 하고 걱정했는데, 뜻밖에도 팔다리는 잘 움직여주었다. 처음 완주 메달을 받고 혼자서 찍은 휴대폰 사진 속의 내 모습은 환히 웃고 있었다.  

가을에 하는 경주마라톤은 경주시와 동아일보가 함께 주최하는 국제마라톤이다. 출발지와 도착지도 경주시내의 황성공원 옆 종합운동장이다. 경주시내를 일주하는 평탄한 코스다. 봄에 하는 경주마라톤은 제목이 ‘벚꽃마라톤’인데, 출발지와 도착지는 경주문화엑스포장이다. 달리는 코스는 보문단지 일대다. 대회날짜는 4월 4일이었다. 벚꽃이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달리는 길가는 온통 벚꽃 나무였다. 
 

우리 집에서 6시 반에 출발했는데, 행사장에 도착한 시간은 7시 반이었다. 그 날은 쉬는 토요일이 아니라서 학교에 연가를 내고 혼자서 경주로 갔다. 행사장에 가니 사람들, 차들, 장사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면장갑 하나와 파워겔-아미노산 보충제-를 샀다. 모자는 사려다가 말았다. 나는 머리가 큰 편이라서 모자에 대한 콤플렉스가 강한 편이다. 어지간하지 않으면 모자를 잘 안 산다. 그 날도 모자를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놓아두었다. 대신에 지난번에 대회선물로 받았던 헤어밴드를 머리에 두르기로 했다. 이어서 옷을 벗어서 물건보관대에 두었다. 여기도 줄 서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여기까지 하고 나니 벌써 8시였다. 8시면 풀코스 주자들이 달리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하프코스는 8시 10분이면 출발이다.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꼭 했으면 하는 일이 있었다. 장딴지와 무릎에 테이핑을 하는 것이었다. 테이핑을 하면 근육의 통증과 피로감이 덜하다고 한다. 나로서는 심리적인 불안감을 해소하는 정도의 차원인지도 모르겠다. 테이핑을 받으려고 했더니 다 안 해주고 한쪽 다리에만 해준다. 할 수 없이 그 정도로 하고 출발점에 가보니 벌써 하프코스는 출발했고, 십킬로미터 코스가 달리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거기에 끼어들어서 나도 달릴 준비를 했다. 
 

팡파레와 폭죽 소리가 터지면서 십킬로미터주자들도 달리기를 시작했다. 내가 출발한 시각은 8시 17분이었다. 요즘 마라톤 기록은 개인별로 부착한 마이크로 칩에 의해서 되기 때문에 출발시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좀 꾸물럭거린 셈이다. 그러데 막상 달리려고 해보니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문득 같이 달릴 동료들이 멀리 가버렸다는 것을 실감했다.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마라톤에서는 페이스가 가장 중요하다. 자기 페이스를 잃어버리면 달리기 과정이 너무 힘들다. 내가 그랬다.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했다. 나보다 7분 먼저 출발한 사람들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마음에 초반에 좀 빨리 달렸다. 
 

지난해까지는 ‘워크런(walk-run)’주법을 썼다. 9분 달리고 1분 걷는 식으로, 힘을 배분하는 식으로 달리는 방식이다. 그랬더니 힘은 덜 드는데, 기록은 잘 나오진 않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30분 달리고 3분 걷는 식으로 했다. 그랬더니 초반 기록은 잘 나오는 것 같았다. 앞에 가던 사람들을 제낄 때는 기분도 좋았다. 오킬로미터를 접어들 때에 힘이 뚝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초반에 힘을 많이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집에 와서 황영조의 <마라톤 스쿨>을 보았더니, 오버페이스가 마라톤에서는 치명적이라고 했다. 페이스를 잃게 되면 나중에 일킬로미터가 십킬로미터처럼 느껴질 거라고 했다. 달릴 때는 그것을 잘 몰랐다. 초반에 잘 나가니까 그냥 막 달렸던 것이다. 후회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끝까지 갈 수 밖에 없으니까, 힘을 조절하면서 좀 천천히 달렸다. 
 

중간에 있는 음수대와 바나나, 초코파이가 얼마나 기다려지던지. 아마 그렇게 맛있는 바나나는 없을 것이다. 초코파이도 마찬가지다. 몸에 들어가면 꿀처럼 느껴진다. 중간에 바나나를 두 개나 먹었더니, 그게 탈이 났다. 신물이 넘어왔다. 그렇게 중간에 고생을 좀 하고. 파워겔은 아미노산덩어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마치 그걸 먹으면 수퍼맨처럼 힘이 막 날 것 같은 환상이 있었는데, 나중에 그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십오킬로미터 지나서 먹었는데, 그게 소화가 잘 안 되었다. 그것도 꼭꼭 씹어서 침과 함께 넘겨야 하는가 보다. 급하게 먹었더니-사실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이 많이 난다-그것도 신물이 넘어왔다. 마음 속에 들어있는 환상, 달콤한 것에 대한 무의식적 이끌림을 깨달았다. 이 나이에도 그렇다.
 

제일 힘든 지점은 역시 마지막 십오킬로미터에서 이십일킬로키터 사이였다. 힘이 부치다보니 마지막 부분에서 힘껏 달릴 수가 없었다. 막연하게 이번에는 기록을 두 시간 안에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달렸는데, 힘이 있어야 말이지. 거기다가 올라가는 언덕은 왜 그렇게 많던지. 언덕에서는 좀처럼 달리기가 힘들었다. 연습량이 많고 잘 뛰는 사람들이야 그곳도 가뿐하게 올라가더라만 겨우 걸어서 올라갔다. 평소 연습할 때는 쉬지 않고 60분 정도 달리는 수준으로 했는데, 대회는 두시간 넘게 달리게 되니까 힘이 떨어지는 뒷부분에서는 적응이 잘 안 되었다. 연습시간에 충실히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연습 조금 한 것을 가지고 과도한 기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도 알 것 같았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서 결승선을 밟고 들어온 시각이 2시간 14분 46초였다. 지난번보다 기록이 8분쯤 잘 나왔다. 이번 코스는 언덕이 많아서 가을에 하는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20분쯤 단축한 것과 같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다 뛰고 난 뒤에는 완주메달 받고, 빵과 음료수도 받고, 마사지도 받았다. 스포츠관련학과 대학생들이 자원봉사나온 것인데, 마사지 받는 순간은 5분 정도에 불과하다. 기다리는 시간은 30분쯤 된다.  

마사지를 기다리면서 앞 뒤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울산에서 온 사람이었다. 풀코스를 뛰었다고 했다. 기록은 3시간 30분. 지난번 기록보다 못 나왔단다. 나이는 50살. 현대중공업에 다닌다고 한다. 모자를 쓰고 있는데, 모자 밖으로 땀이 뭉쳐서 된 소금이 누렇게 묻어있다. 코에도 소금, 이마에도 소금이다. 자기 아들도 하프코스를 뛰었는데, 기록이 2시간 10분 나왔단다. 보통 일주일에 얼마 정도 훈련하냐고 물었더니, 풀코스 뛰려면 한 주일에 합산해서 30킬로미터는 뛰어야 한단다. 울산에는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마라톤을 많이 한다고 한다. 경주에서 실시하는 대회의 우승자도 그들이 많단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사람은 만명이 넘는다. 마라톤 코스는 풀코스, 하프코스, 십킬로미터코스가 있고, 오킬로미터 코스도 있다. 보통 오킬로미터는 마라톤으로 쳐주지 않고, 건강 달리기로 간주한다. 가을 대회에는 없는데, 봄 대회에는 오킬로미터코스가 있다. 아마도 일본에서 참가하는 사람들을 배려한 차원이 아닐까 싶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사와 경주시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온 사람들도 좀 된다. 어떤 일본 사람은 맨발에다가 일본전통의 옷을 입고 커다란 깃발을 들고 달리기도 했다. 일본기자들이 대회에 참가한 일본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는 장면도 보았다. 
 

개인으로 참가한 사람도 많지만 회사나 동호회 차원에서 참가한 사람들도 많다. 곳곳에 마라톤 동호회 텐트를 쳐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함께 버스를 빌려서 참가하기도 한다. 음식도 준비해서 함께 먹고 마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결승선에는 같은 동호회 출신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응원을 해주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풀코스 달리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맥주 캔을 들이대면서 수고했다고 마시라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게 좀 이해가 안 되었다. 참 이건 한국적인 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라톤 관련 책을 보아도 결승선에 들어와서부터 몸을 식히는-쿨링다운 cooling down-단계를 잘해야 몸이 잘 보존된다고 하는데, 맥주를 갖다 대는 사람을 보면서 좀 놀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라톤도 ‘이까이꺼’하면서 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해서 평생을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올 가을에 풀코스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대회 날짜는 아마 10월 25일쯤 될 것 같다. 마라톤 대회에 나와보면 집회를 방불케 하는 흥분을 맛볼 수 있다. 또한 그 흥분이 사라지고, 곧 지극히 개인적인 투쟁이 시작되는 경험도 하게 된다. 그래서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번에 내가 느낀 것도 이것이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단계별로 느끼고 생각할 점들이 많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