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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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악하악>  표제 참 독특하네.  지은이가 뉘신지....  어랏?  이외수??  '어, 그럼 읽어봐야겠네.'  표제어로 사용된 '하악하악'은 네티즌들의 수많은 신생어 중 하나다.  음....  하악하악이라니.  허허, 거참.  음....  솔직히 말해볼까?  나는 이 책을 이외수가 지은 책이 아니라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좀 더, 좀 더 솔직히 말해보자.  그래, 이 책을 읽고나서도 역시 이외수가 아닌 다른 이가 지은 책이라면 '이 작가 왜 이러나?  대략난감(?)한 작가일세.  작가라는 사람이 이 딴 단어를 사용해?  (버럭)'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이외수라 모든게 용서(?)되었고,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이 신선하기까지 했다면 형평성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겠지?  그런데 정말 그랬다.  

  이외수.  그의 이름 석자는 참 많이도 들어보았지만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작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글짓기 공중부양>이라는 책을 읽고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그 책에서 생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정말이지 그 책에서 그가 예문으로 사용한 문장들은 참 인상적이었다.  또 그 문장의 위트와 재기발랄함에 깜짝 놀랐다.  왜냐면 그는 어쩐지 토속적으로 생겼다.  스테이크보다는 된장냄새가, 양복보다는 한복이 어울리게 생겼다고나 해야할까?  후훗.  게다가 인터넷, 핸드폰 뭐 이런 것에는 관심도 없을 듯하고 전혀 다룰 줄도 몰라보인다.  그런 그 책이 담고 있는 문장들은 한 늙은 작가에게서 나온 문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기발랄했고 유머러스함은 꼭 이십대 청년과 같이 싱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하악하악> 역시.  그 때의 신선함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고 분홍 띠지에 새겨진 표지에 이외수의 익살스런 표정만큼이나 그 글들 또한 얼마나 장난기가 넘치던지.  그러나 장난기만 머금은 글이 아니라 때로는 훈훈함을, 때론 따끔한 충고도 하는 글이었다.  역시 글에는 느낌과 늬앙스를 전하는 단어를 채택하여 사용하고 그런 분위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문체로 서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에서의 외롭지 시리즈는 ' ~하지 말입니다.' 라고 하는, 소위 말해 군바리 어투로 쓰여있다.  또 하나.  작가란 죄다 고상(한 척)해야하며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우수에 찬 표정만을 짓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 역시 장난스럽기도 하고 심각하기도 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 앞에서는 자연스러운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사실도.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국문과 교수가 인터넷 신생어에 관한 국문과 학생들의 의식조사 결과, 대개 학생들의 반응은 인터넷 용어들은 절대 기피하고 절대 경멸해야 할 단어로 치부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유는, 그것들이 대개 저질스럽고 의미가 불명확하고 그저 유희로, 입장난으로 하는 말이거나 변태적인 쌍받침의 조합이 저속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사전에 등록된 바른 말만 써야합죠~  그랬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 해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그것들을 옳거니 받아들이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나의 사고가 너무 경직되었던 것은 아닌지.  때로는 사전에 등록된 단어로보다 현재의 기분과 상황을 더 적절히 표현하는 창의적인 단어들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표제로 사용된 '하악하악' 역시 그러하다.  태초에 우리 하는 모든 말이 사전에 등재되었던 것은 아닐 것이며 통송적으로 대중들에게 유포, 보급, 사용되면서 첨가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글을 다루면서 이러한 단어들을 영원 무궁토록 경멸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인터넷 신생어들을 반드시 사용하자'는 아니더라도 '사용하지는 않을지언정 그저 알고는 있자'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책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이 책은 펼치자마자 책을 물에 담궈줘야하지는 않을까 싶었다.  얼마나 많은 민물고기들이 참 아름답게도 그려져 있던지.  어라?  향기도 난다.  어딘가 했더니 예쁜 향기가 나는 책갈피가 꽂혀있다.  이것들 덕에 이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이외수의 글이 담고 있는 위트, 재치, 해학, 풍자, 감동, 충고, 꾸짖음에 시종일관 다양한 감정들도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어떤 글은 메모지에 옮겨놓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고 어떤 글은 당장 곁에 앉은 이에게 들려주고 싶을만큼 재미있었다. 

  나 어쩌면 좋아요.  이외수 아저씨, 아저씨가 점점 좋아져요.  점잖은 작가양반들처럼 거드름을 피우지 않아서 좋구요.  그 나이에 야동을 본다고 고백해주시니 마치 내동생같아서 좋네요.  그러면서 글이라는 녀석을 손 안에 넣고 주무르는 실력 또한 배울만하니 감히 '저질스럽고 가벼운 놈'으로 대할 수가 없네요.  그래서 아저씨는요.  제게 꽤 매력적이라구욧!  자, 이젠 저도 아저씨처럼 맛나게 글 한 번 써보고 싶네요.  하악하악.  열심히.  또 열심히.  하악하악.  우리 같이 하악하악 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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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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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별이 졌다.  작년에는 고 피천득 선생님의 별세 소식에 가슴 한 켠이 시리더니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 통의 비보가 날아 들었다.  바로 박경리 선생님이 고인이 되셨다는 소식이다.  마치 부모를 모두 잃은 듯하다.  실제로 이들은 우리 문학의 아버지였고, 어머니였다.  

  박경리.  내가 고인을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즈음으로 기억된다.  예나 지금이나 필독서로 꼽히는 <토지> 그리고 <김약국의 딸들>을 통해서였다.  특히나 내게 <김약국의 딸들>은 그 시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통영이라는 곳을 무작정 그립게 만들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곳에서 출생했다는 사실이 왠 일인지 내게는 굉장히 인상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러다 훗날 우연히 그 곳을 갈 일이 있었는데 소설가 박경리의 고향땅을 밟는다는 생각에 괜시리 설레었던 기억이 있다.  그녀, 박경리는 어딘지모를 든든함으로 나와 함께해왔다.

  그런데 이제, 우리 앞에는 '유고시집' 이라 이름 붙여진 얇은 시집 한 권이 놓였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이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내게는 하나의 장례식 같은 것이었다.  그녀를 완전히 저 곳으로 보내기 전에 반드시 치뤄야만 할 것 같은 일이었달까?  가버린 그녀를 다시 한 번 불러 추억하고 싶어서였달까?  시종일관 그리움으로 읽어나간 활자들이었다.  이 시집은 비록 '시집' 이라고 이름붙여지긴 하였지만 한 편의 전기요, 수필이자 소설이다.  나는 이 책에서 내 어머니를 만나고 내 할머니를 만났다.  억척스레 한 인생을 살아내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래서였을까?  읽는 내내 나의 어머니의 모습이 몇 번이고 떠올랐다.

  또 이 책은 그녀의 생전 사진들이 담겨있는데 그 사진 하나 하나가 어찌나 정직한지.  뻘건 고추를 늘어놓고 말리는 그녀의 방, 마당에 소복히 둘러앉은 옹기들, 밀집모자를 쓰고 밭일을 하는 그녀의 분주한 손길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그리고 마지막 장, 그녀의 천진난만하기까지한 미소를 담은 사진은 퍽이나 내게 가까웠던 사람같이 여겨졌다.  솔직히 나는 이 사진들이 이 글들만큼이나 좋았다.  이제는 그 어떤 것으로도 그녀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애석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글이라는 것이, 시대를 초월해 영존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퇴색되지 않고 변질되지 않아서가 아닐까?  글이라는 그것들 속에 그녀의 정신이 깃들어있고 한 자 한 자 새겨진 활자 위에 그녀의 숨이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  이런 생각을 하면, 글의 숭고함과 고귀함에 절로 숙연해진다.  유고작이라 불리우는 많은 작품들을 접하다보면 나는 그들이 그 작품을 통해 이 생과 저 생을 넘나드는게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때아니게 조급해지곤 한다.  이 세상을 살다가는 자로서 나 역시 무엇 하나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나를 담아 둘, 내 영혼이 숨 쉴 그 무엇인가를 기필코 두고 가야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분명, 한 점 먼지로 부유하고 말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한 존재였던 존재가 여전히 살고있는 한 존재에게 울리는 교훈과 같은 것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그녀를 보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녀를 완전히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글 속에, 저 책장안에서 여전히 살아있다 말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언제고 책꽂이에서 그녀를 빼어들고 책장을 넘기면 다가올 만큼 가까이 있어주기로 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완전히 멸하지 않는, 아니 그 누구도 멸할 수 없는 문학이라는 호흡안에 그녀가 누워 쉬고 있음이 참 다행스럽다.  참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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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클래식 50
나카가와 유스케 지음, 박시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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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알고보면 클래식 음악이 그리 멀리 있지는 않다.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은 귀익은 곡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렇지만 대개 '전 클래식은 잘 접하지 않아서 몰라요' 라고 하곤 한다.  왜 그럴까?  내가 생각기에는 작곡가나 곡명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지 다른 장르의 음악에 비해 음악가와 곡명이 낯설다.  그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중음악처럼 매스컴을 통해 보고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연주회장을 찾아가거나 클래식 음악 방송에 주파수를 맞추거나 그도 아니면 음반을 사 듣는 것이 고작인 장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지.  그러니 상대적으로 대중음악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접하는 정보가 적고, 그러다보니 친숙해질 기회를 찾지 못하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상식으로 알아야 할 클래식 50' 이라는 표제 때문이었다.  적어도 상식조차 없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서랄까?  후훗~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즐겁게 읽었던 책이다.  상식으로라도 알아야 할 곡들이라면 명곡중의 명곡이겠지.  역시 그랬다.  모두 이름난 곡들이었고 대다수 한 번 이상 들어 본 곡들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유익했던 이유는 명쾌하게 들어보아야 할 음반을 콕콕 집어주고 있어서였던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서두에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적 입장에서 쓴 책이라고 분명히 밝혔지만 내가 보았을 때 그는 프로다.  진정 매니아다.  어떤 곡을 어떤 레이블의 음반을 들어야 하는지까지 간파하고 있다면 흐르는 음악의 곡명과 작곡가를 줄줄 읊는 사람 이상으로 음악을 아는 사람이다.

  역시 클래식 음악 역사상 고전과 현대를 발빠르게 통역해 준 사람, 카랴안이 아닐까 싶다.  카라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올해는 더욱 뜨겁게 그의 음반들이 재출시 되었던 한 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저자가 카라얀을 그다지 곱지 않게 보는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 나름의 이유를 기술해주고 있어서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다.  다짜고짜 '싫어' 라고 하지 않았기에 그런 그의 관점이 오히려 은밀하게 하는 귀엣말처럼 믿음이 갔다고나 할까?

  그리고 곡에 대한 정보 뿐 아니라 음악가의 일생이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에 대해서도 덧붙인 것이 흥미로왔다.  정말 베토벤은 들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작곡가들에게 일종의 징크스와 같은 교향곡 '제 9번' 이라는 제목은 죽음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또 파가니니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지만 그가 악마로 칭해진 일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인간이 해내지 못할 정도의 연주를 했다니.  과연 어떠했기로서는 악마로까지 불리었는지 궁금해진다.  

  역시 음악이라는 것은 신동들의 놀이터일까?  10세 이전에 작곡을 하고 음악회를 연 사람은 왜 이리 많은 것인지.  여담으로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도 불과 11살 때 라 팔로마를 불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런 신동들의 출현이 음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도 같다.  미술에서 보자면 빈센트 반 고흐도 들 수 있겠다.  그가 아주 어릴 때 했다는 굉장한 실력의 드로잉을 본 일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유난히 예술가들 중에 신동이 많다고 던언해도 되지 않을까?  '될 성부를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고.  음...  그에 반해 별스럽잖은 어린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그저 부럽기만 하다.  또 그들의 부모 혹은 스승이 뛰어 노는 것이 전부일만치 어린 아이에게 그런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원해주었다는 점도 놀랍다.  역시 사람은 민감하고 예리한 후원자 밑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바와 같이 속해 있는 집단과 그 측근의 영향으로, 음악가 부모의 유전적 영향으로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자들만 명곡을 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위안이 되었다랄까?  적잖은 음악가들이 그 명성이 공짜가 아니었구나 생각될 만큼 부던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대에는 명곡으로 쳐주지도 않는 곡만을 외롭게 그려갔던 음악가들의 비운의 일대기는 안스럽기도 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가 현재 인정하고 있는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후대에는 또 어찌 받아들여질지 모르는 일이기에 섣불리 명작이요, 졸작이요 판가름 하려 해서는 안되는게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은 이렇듯, 작곡가와 음악에 관한 정보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생을 되짚어 보며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반드시 이 책이 들려준 50곡의 명곡을 저자가 추천하는 음반으로 들어보고 말겠다는 투지가 생겼다.  이쯤이면 내가 먼저 '클래식아, 친하게 지내자' 하고 손 내밀게 된 게 아닐지.  또한 그런 내게 클래식 역시 '그래, 친하게 지내' 하며 손내밀어 줄 부담없는 친구가 되어주리라는 확신이 든다.  자자, 이제 슬슬 다가서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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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과 포용 - 불세출의 리더는 어떤 마인드를 품는가
하워드 가드너 지음, 송기동 옮김 / 북스넛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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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 가드너.  낯익은 이름이다.  7가지 다중지능이론때문에 대학시절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던 바로 그 분이시다.  이 책을 읽은 이유 역시 하워드 가드너라는 그의 이름때문이었다.  사실 리더쉽 같은 것을 다룬 자기계발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리더쉽 기르기' 가 아니라 리더쉽의 개념을 이해하고 그들의 특성에 대해 밝히는 책이다.  말하자면, 학술서적에 가깝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학자의 이론을 주창하는 학술서적이라면....  반드시(?) 어렵다.  아니, 아주 드물게 쉬 읽히는 책을 찾게 된다.  이 책을 처음 들고 가슴을 무겁게 하는 두께의 압박이란....  감히 하워드 가드너의 이름만으로 책을 선택했던 그 배포는 어디 갔는지 슬금슬금 겁이 났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이야말로 학술서적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바로 그 책이었다.  모든 글들을 접하며 늘 곱씹는 생각이지만, 가독성이 높은 글이야말로 진정 설득력 있는 글인 듯 싶다.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한 치도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서적은 그의 이론이나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무언가 어마어마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데서 오는 이질감을 번번히 느끼기 십상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말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기술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그가 주창하는 이론만큼이나 중요한게 아닐까 싶다.  제 아무리 뛰어난 학설이고 이론이라한들 그것을 대중에게 설파하지 못하면 혼잣말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완벽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리고 하워드 가드너라는 인물이 왜 사람들을 움직이는 매력적인 학자인지 알 것 같다.  그럼, 칭찬은 이만 각설하고.

  하워드 가드너는 리더쉽에 대한 통념에서 깨어나길 원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 리더라는 자는 어떤 무리를 이끄는자, 행동을 유도해내는 자 정도로 생각해 왔다.  말하자면 정치가, 장군, 혁명가.... 정도로?  그런데 이 책은 리더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준 책이다.  하워드 가드너는 직접적인 리더와 간접적인 리더로 구분하여 보았다.  예술가와 같이 조용히 대중들을 이끄는 자들 또한 리더들이며 이들을 간접적인 리더로 말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내 생각에는 하워드 가드너 역시 간접적인 리더가 아닐까 싶다.  역시 시각이 달라지면 판단도, 규명도, 정의도 달라지는 것 같다.  가드너는 리더쉽이라는 것을 (통상적으로 우리가 이해하고 있듯) 행위의 측면에서만 볼 것이냐, 내면의 움직임에서까지 찾아볼 것이냐에 의문을 제기하고 왜 그러한지 말해주고 있다.  11명의 유명한 리더들의 예를 통해.

  리더는 그의 개인적인 자질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 시대가 바라는 인물이나 가치를 흡족시킬 시 제대로 평가 받게 되는 것 같다.  아무리 깨어있는 사고를 가진 자라 할지라도 대중과 무리를 설득시키지 못하면 그저 '고집스러운 사람' 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역시 설득이다.  설득력 있는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그로 더불어 행동까지 움직이게 한다는 사실.  너무나도 뻔하지만 한 편으로는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다룬 11명의 일상사들, 그들의 리더로서의 특성에 대해 기술한 것들은 참 호기심이 일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업적등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가 어떤 일을 한 사람이며 당대에 어떤 인물로 평가되고 주목받아 왔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리더쉽의 개념 정립도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겠지만 이 책에서 다룬 11명의 인물을 파헤칠 수 있다는 점 또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나는 명쾌하고 정확하게 의견을 피력하되 글을 쉽게 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어쩌면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이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게 된다는 그의 언변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과 같은 학자의 이미지를 깨뜨리고 대중 속으로 스미는 글을 쓰는 듯 하다.  내친김에 그의 다른 저서까지 읽어보고 싶다.  하워드 가드너, 쌩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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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의 기술
카네스 로드 지음, 이수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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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내 눈길을 잡아 끈 것은 이 책의 표지였다.  워싱턴 DC에 있다는 링컨 대통령 동상 때문이었다.  표지때문에 책을 선택하는 일은 참 드문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이 그 드문 경우의 하나였다.  사실 나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르고 그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정치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간혹 내가 모르는 분야나 등한시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알고싶어 일부러 그에 관한 책을 읽곤 할 때가 있다.  이 책이 꼭 그러했다.  과연 통치자는, 리더라는 자들은 어떠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역시 단순히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는 것은 무리였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도 읽어보지 못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읽기에는 많이 버거웠던 책이다.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이라곤 책 표지에 앉아 있는 사람이 링컨이라는 것과 그의 업적에 대한 일부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언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이 책에서 적절히 인용하고 있는 구절들은 상당히 쉽고 정갈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이 책은 오래전 마키아벨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할 성 싶을 정도로 그 이론들이 현시대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으며 맞아들어가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책의 서론이었는데 가장 이해하기 쉬웠던 것 역시 서론이었다.  이 책의 기술의도를 명백하게 밝히고 있었고 미대통령들의 전례와 과업들을 돌아보며 리더의 자질이나 형태를 조명하려 했다는 시도 자체가 신선했다.  그러나 역시 미정권(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정치제도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서론에서 명명백백하게 밝힌 취지와 의도를 얻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애시당초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단지 이 분야에 대해 정치나 리더의 통치술에 대해 접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했던 책이니 말이다.  

  역시 바른 리더는 쉽지 않다.  소신.  소위 말하는 줏대도 있어야 하고 군중의 목소리를 들을 줄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위한 추진력도 필요하다.  먼저 비전과 목표를 확실히 설립하고 현시하고 국민과 정치권자들 또 엘리트들(이 책에서 말하는 권력을 가진 지적 그룹)을 설득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적시적소에서 발휘되어야하고 정확히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의 신념과 확신 하나만 부여잡은 채 밀어붙이다보면 어느새 그것은 독재가 되어 있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군중의 목소리와 국민이 원하는 바를 대행하는 일만 하다보면 어느새 군중의 손에 움직이는 마리오네뜨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국가의 존망 역시 이 리더들의 손에 달려 있다니 얼마나 힘든 보직인지는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새대통령이 당선되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다시 말해 새로운 대통령이 세워짐과 동시에 국민은 새로운 기대를 한다.  전과는 달라주길, 제대로 일해주길....  가만히 한 번 생각해보면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칭찬 받은 대통령은 없었던 것 같다.  흔히들 '앞장서는 자는 잘해봐야 본전이다', '리더는 잘하든 못하든 욕 먹는다' 라고 하곤 한다.  그러나 통치자와 국민 사이의 갭을 좁히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또 현정계에 팽배한 국민들의 불신도 한 몫하고 있는 듯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리더들의 약속 불이행, 부정부패, 권력남용으로 인해 신뢰는 바닥에 떨어지고 있다.  오히려 정치는 무궁화 뺏지를 단 사람들의 소관이 아닌가 하며 방관하는 국민들만 늘어날 뿐이다.  그렇다면 먼저 리더는 신임할 수 있는 자여야 할 것이고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자여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감언이설로 꼬득여서는 안 될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과 리더들에게 말하고 싶다.  (앞서 말한 리더라는 범주 안에서는 직장을 위해 일하는 주임급 직원 역시 포함 될 것이다.) 명예와 권위를 가지려 리더가 되었는지 진정으로 앞장서서 이끌기 위해 리더가 된 것인지를 자문해 보라고 말이다.  자신의 소임과 목표와 비젼을 분명히 하고 신임할 수 있는 자라면 리더로서의 의무도 충실히 이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치제도나 군주의 자세에 대해서는 물론 리더쉽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주었던 것 같다.  또 기회가 된다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어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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