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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평점 :
<하악하악> 표제 참 독특하네. 지은이가 뉘신지.... 어랏? 이외수?? '어, 그럼 읽어봐야겠네.' 표제어로 사용된 '하악하악'은 네티즌들의 수많은 신생어 중 하나다. 음.... 하악하악이라니. 허허, 거참. 음.... 솔직히 말해볼까? 나는 이 책을 이외수가 지은 책이 아니라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좀 더, 좀 더 솔직히 말해보자. 그래, 이 책을 읽고나서도 역시 이외수가 아닌 다른 이가 지은 책이라면 '이 작가 왜 이러나? 대략난감(?)한 작가일세. 작가라는 사람이 이 딴 단어를 사용해? (버럭)'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이외수라 모든게 용서(?)되었고,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이 신선하기까지 했다면 형평성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겠지? 그런데 정말 그랬다.
이외수. 그의 이름 석자는 참 많이도 들어보았지만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작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글짓기 공중부양>이라는 책을 읽고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그 책에서 생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정말이지 그 책에서 그가 예문으로 사용한 문장들은 참 인상적이었다. 또 그 문장의 위트와 재기발랄함에 깜짝 놀랐다. 왜냐면 그는 어쩐지 토속적으로 생겼다. 스테이크보다는 된장냄새가, 양복보다는 한복이 어울리게 생겼다고나 해야할까? 후훗. 게다가 인터넷, 핸드폰 뭐 이런 것에는 관심도 없을 듯하고 전혀 다룰 줄도 몰라보인다. 그런 그 책이 담고 있는 문장들은 한 늙은 작가에게서 나온 문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기발랄했고 유머러스함은 꼭 이십대 청년과 같이 싱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하악하악> 역시. 그 때의 신선함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고 분홍 띠지에 새겨진 표지에 이외수의 익살스런 표정만큼이나 그 글들 또한 얼마나 장난기가 넘치던지. 그러나 장난기만 머금은 글이 아니라 때로는 훈훈함을, 때론 따끔한 충고도 하는 글이었다. 역시 글에는 느낌과 늬앙스를 전하는 단어를 채택하여 사용하고 그런 분위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문체로 서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에서의 외롭지 시리즈는 ' ~하지 말입니다.' 라고 하는, 소위 말해 군바리 어투로 쓰여있다. 또 하나. 작가란 죄다 고상(한 척)해야하며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우수에 찬 표정만을 짓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 역시 장난스럽기도 하고 심각하기도 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 앞에서는 자연스러운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사실도.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국문과 교수가 인터넷 신생어에 관한 국문과 학생들의 의식조사 결과, 대개 학생들의 반응은 인터넷 용어들은 절대 기피하고 절대 경멸해야 할 단어로 치부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유는, 그것들이 대개 저질스럽고 의미가 불명확하고 그저 유희로, 입장난으로 하는 말이거나 변태적인 쌍받침의 조합이 저속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사전에 등록된 바른 말만 써야합죠~ 그랬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 해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그것들을 옳거니 받아들이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나의 사고가 너무 경직되었던 것은 아닌지. 때로는 사전에 등록된 단어로보다 현재의 기분과 상황을 더 적절히 표현하는 창의적인 단어들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표제로 사용된 '하악하악' 역시 그러하다. 태초에 우리 하는 모든 말이 사전에 등재되었던 것은 아닐 것이며 통송적으로 대중들에게 유포, 보급, 사용되면서 첨가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글을 다루면서 이러한 단어들을 영원 무궁토록 경멸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인터넷 신생어들을 반드시 사용하자'는 아니더라도 '사용하지는 않을지언정 그저 알고는 있자'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책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이 책은 펼치자마자 책을 물에 담궈줘야하지는 않을까 싶었다. 얼마나 많은 민물고기들이 참 아름답게도 그려져 있던지. 어라? 향기도 난다. 어딘가 했더니 예쁜 향기가 나는 책갈피가 꽂혀있다. 이것들 덕에 이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이외수의 글이 담고 있는 위트, 재치, 해학, 풍자, 감동, 충고, 꾸짖음에 시종일관 다양한 감정들도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어떤 글은 메모지에 옮겨놓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고 어떤 글은 당장 곁에 앉은 이에게 들려주고 싶을만큼 재미있었다.
나 어쩌면 좋아요. 이외수 아저씨, 아저씨가 점점 좋아져요. 점잖은 작가양반들처럼 거드름을 피우지 않아서 좋구요. 그 나이에 야동을 본다고 고백해주시니 마치 내동생같아서 좋네요. 그러면서 글이라는 녀석을 손 안에 넣고 주무르는 실력 또한 배울만하니 감히 '저질스럽고 가벼운 놈'으로 대할 수가 없네요. 그래서 아저씨는요. 제게 꽤 매력적이라구욧! 자, 이젠 저도 아저씨처럼 맛나게 글 한 번 써보고 싶네요. 하악하악. 열심히. 또 열심히. 하악하악. 우리 같이 하악하악 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