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워너비 메이크업북 - 따라하기 너무 쉬운 화장법
변혜옥 지음 / 조선일보생활미디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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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삼십 평생을 스킨, 로션 하나 제대로 갖춰 바르지 않았다.  이것 저것 굴러다니는 쌤플만으로 충분했다.  특별한 날에는 맨 얼굴에 파우더만 두드리고 반짝한 립글로즈로 끝나는게 화장의 전부였다.  눈썹은 언제나 내츄럴했고 외출 후에는 폼 클렌징도 없이 비누거품 만으로 세안을 했다.  심지어 뜨거운 여름 자외선에도 맨 피부로 맞짱을 떴다.  정말 나이를 서른이나 먹은 여자가 이렇게 원시인같이 살 수 있냐고??  있다 -_-;;  내가 이리도 뷰티에 무관심 했던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관심이 없었다.  둘째, 귀찮다.  셋째, 피부에 자신 있었다(과거형에 주목 바람).  워워~  돌은 던지지 말게.  아마 세번째 이유때문에 그러는 것 같은데 진정하시길. 

  첫째는 정말 관심이 없었다.  요즘은 고등학생들도 가볍게 화장을 한다는데 나는 정말 마알간 얼굴로만 다녔고 대학교에 가서도 딱히 그런 것을 할 시간도 없었거니와 나는 메이크업에 정말 관심이 없었다.  둘째는 귀찮았다.  세안 후 스킨, 로션 두 가지를 꼬박꼬박 다 바르는 것도 도통 귀찮은게 아니었다.  간혹 친구들과 여행이라도 가면 잠들기 전 그녀들은 뭔가를 아주 많이 발랐다.  스킨, 로션, 에센스, 영양크림, 수분크림....  다 기억하기도 힘들만큼을 바르고 잠이 들었다.  나는 물론 아무 것도 바르지 않았다.  여기서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피부가 좋았다.  (역시 피부는 타고나는 것일까?  하하)  정말 피부가 좋았다.  잡티 하나 없이 매끈했고 마치 아기 피부 같다고들 했다.  정말이다.  믿어주기를.  아마 최근 나를 알게 된 사람들은 '거짓말도 아주 자연스럽게 하네' 하며 나를 몰아세울지 모르지만 사실 그랬다.(과거라는 사실 결코 잊지 말아주시길;;) 

  그런데 나에게도 불혹의 서른이 찾아왔다.  멀건 얼굴로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채 뒹굴거리는 내게 모든 이들은 같은 말로 저주했다.  "피부는 순간이다.  좋을 때 잘 가꿔라.  아마 서른 넘어서면.... 쯕쯧즛."  나는 그럴때마다 '피부는 타고 나는거라 절대 그럴 리 없을껄?' 하며 속으로 비웃어 줬다.  그런데 그들의 저주 아니 예언은 적중했다. 

  눈 밑이 어두워진 것 같아, 주근깨가 진해지네?  찬 바람 쐬면 빨개져, 이건 각질인가?  얼굴이 거칠어졌어.  몇 해 전부터 나는 이런 고민에 빠졌다.  몇 일 전까지도 계속 그런 고민을 했다.  사람들은 늘 내게 말한다.  "넌 정말 그대로야.  변하지 않았어"  그래, 그런 말을 하는 그녀들은 몰라보게 이뻐져 있었다.  늘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한결같아서 좋다고?? 켁), 헤어스타일도 달리 해보고 새로운 옷을 입어봐도 거울 속 얼굴은 여전히 변치 않는 나.  어제의 나와 똑같았던 내가 있었다.  나는 달라지고 싶었다.  그리고 달라져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이 밤이 나의 메이크업 역사가 쓰여지게 된 날 밤이다.  여느 날같이 늦게까지 책을 읽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자 인터넷 접속.  딱히 할 것도 없다.  '음~  오늘의 톡 한 번 볼까?' 자극적인 가십거리를 찾아 클릭 또 클릭.  그러다 발견한 눈 사진!!  펄 펄 흰 눈 말고 반짝 또렷 눈 말이다.  '우와~ 정말 예쁘다.  화사해, 화사해!!'  마치 뭔가에 빠진 듯 사진과 함께 공개된 메이크업 스킬을 계속 훝어갔다.  그러다 도달한 곳.  내게 오아시스가 된 곳!  htttp://blog.daum.net/japaneselady  일본아줌마의 블로그였다.  와와, 이건 또 다른 세계.  어쩜 이럴 수가.  고 작은 얼굴을 옷 갈아 입듯 어찌나 잘 바꾸는지.  나는 한 참을 들여다 보다 그녀가 <마이 워너비 메이크업북> 이라는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밤, 나는 그 책을 바로 주문했다.  왜냐면 나에게는 변화가 필요했고 내게는 예뻐지고 싶은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책을 주문하고 나는 몇 가지를 함께 주문했다.  아이라이너, 아이브로우.  얼마 뒤 책이 도착했고 나의 무기들도 도착했다.  책에서 소개된대로 눈썹정리부터.  그럼 이제 눈화장을 해볼까?  뭐?  기초손질 후 메이크업 베이스를 펴 바르라고?  없다.  건너 뜀.  파우더.  톡톡.  그리고 아이섀도우를 눈두덩이에 펴바르라고?  예전 언니가 쓰다 버린거 주워둔게 번뜩 생각났다.  그걸 꺼나 손가락으로 쓱쓱~  그리고 아이라이너.  커피를 많이 마신 탓인지 수전증이 생긴 것인지 부들부들.  몇 번 떨고 나니 쓰윽그려졌다.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눈 밑 애교살 브라이트.  흰 칠을 적당히 해주고 마스카라!  그리고 외출을 했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모두들 내게 "오늘 왜 이리 예뻐요?  딴 사람 같아요.  무슨 일 있어요?"  흐흐~  정말인가?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들 나의 변화를 알아챈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한참 거울을 들여다보니 좀 예뻐진 것 같기도 하고 좀 어색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분명한 건, 재밌었다는 것.  이상했다.  메이크업이 재미있었다.  나는 이 짓을 계속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급한 것부터 주문을 했다.  스킨, 로션부터.  그리고 또 없어서 생략했던 메이크업 베이스까지.  남편도 덩달아 신이 났다.  "왠 일이야.  좋은 걸로 팍, 팍 사"   

  이렇게 나는 메이크업을 시작했고 오늘로 일 주일이 지났다.  이 책은 아주 따라하기 쉽게 되어있다.  보기만 해도 뭔가 답을 알고 시작하는 메이크업 마냥.  일본아줌마의 입담은 정말.  너무 너무 재밌다.  메이크업 만큼이나.  그리고 이 책은 아주 간단한 한 듯 안 한듯 화장부터 화보를 찍을 법한 스모키까지.  오~  동전 크기만한 눈 두개를 이렇게 휘황찬란하게 할 수도 있구나.  그리고 그녀는 '메이크업에는 명품 화장품보다 명품 스킬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줬다.  몇 가지는 가진 걸로 만들어 쓰기도 하고 한 가지를 여러가지처럼 쓰기도 한다.    

  이 책은 메이크업 책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 때문에 그동안 방치해뒀던 피부관리의 기초까지 바로잡게 되었다.  "스킨, 로션, 에센스는 꼭 바르자!"를 규칙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나빠지지만 않아도 그걸로 만족해(야만 해).  원판불변의 법칙이라는 우울한 말이 있긴 하지만 나는 내가 뭔가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저 즐거운 뿐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나는 스모키 화장에도 도전할테다.  봄이여, 예뻐지고 싶은 여성들이여.  거울 앞에 앉아보라.  그리고 시작해라.  늦지 않았다.  나같은 철통무관심의 여성들이 분명 또 있을거라고 본다.  그리고 나는 먼 훗날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때 그 어느때보다 예쁜 얼굴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천십년 봄, 나는 예뻐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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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부록] - BEFORE or AFTER
 

 

 

 

 

 

 

 

 

※ 흔히들 하는 Before, After를 나도 해본다.  
    절대 중요한 것은 보기에 따라서 After가 더 안이쁠수도 있다;;;  
    물론 둘 다 안 이쁠수도 있다. 음...  그러나 달라진건 확실하다.  
    그리고 After는 내 평생 첫 메이크업이라는 것을 이해해주기를.  
    이런 책도 읽고 서평을 쓰나? 할지도 모르는데....  난 만화책 보고도 서평쓰는 여자다;;
    아, 끝으로 원판은 그러려니 해주길 바란다 -_-;;;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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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아 2010-12-20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쁘시네요``꾸준히 예뻐지시길,,,
 
안녕, 웨슬리
스테이시 오브라이언 지음, 김정희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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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책장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의외로 안읽었거나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헷갈리는 책들이 있다.(눈과 손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의 과도한 지르기 현상이 낳은 결과다;;)  이 책이 그런 책이었다.  '어머? 내가 안 읽었었나?'  그렇게 집어 읽게 된 책. 

  순해 보이는 한 마리의 올빼미 삽화.  이 책에 대한 첫 느낌은 '아동용 도서같다는 느낌'  물론 표지만 보았을 때다.  책을 펼치고 그 안에 가면올빼미를 비롯한 여러 동물에 대한 사전 이상의 정보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으니 말이다.   

  이 책은 가면무엉이와 인간과의 19년간의 사랑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솔직히, 이런 류의 책들은 뻔하다.  저자의 각별한 동물사랑 그리고 종을 뛰어넘는 우정의 이야기.  그러다가 동물은 죽게 되는.  이 책 역시 그랬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느 책들과는 달랐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과 교감하고 공감되는 정서를 가졌다고 알려진 개나 고양이같은 일반적인 포유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면 올빼미.  이 동물이 저자와 사랑과 우정을 나눈 동물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항상 동물이 끊이질 않았다.  온 가족들이 모두 동물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특히나 내 남동생은 거리의 버려진 온갖 동물들을 구조해 오기도 했다.  상가 셔터문에 끼인 채 울고 있던 아기 고양이를 데려와 우유를 먹여 키우기도 했었고 주인에게 버려지기 직전의 개 한 마리가 안타까워 데려왔다가 심장사상충에 걸려 어마어마한 돈을 병원비로 투자하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그 밖에 다양한 동물들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실제로 제 발로 들어와 가족처럼 먹여 살린 동물들도 여럿이다. 

  항간에는 '동물에게 지각이 있는가?'  논의가 일고 있지만 동물을 반 나절만이라도 들여다본 사람들은 대다수 그들도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고 아픔과 두려움, 슬픔을 안다는 것을 인정한다.  방금 본 인터넷 기사에서도 로드킬로 사망한 동료 고양이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자신의 턱을 얹고 눈을 감은 고양이를 보았다.  이런 이야기는 그리 힘들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매일 주말 아침에 방영하는 동물 다큐쇼만 몇 번 챙겨보아도 나눌 수 있는 이야기 들이다.  

  믿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어린 시절 길렀던 고양이 두 마리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고양이 둘은 한 날 한시에 우리 집을 찾아왔다.  담벼락을 넘어 들어와 버젓이 자신들의 보금자리인 마냥 생활하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 역시 그들의 무단 침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마침내 그들은 우리 고양이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사를 가야했고 새로 이사가는 곳의 주인네는 동물들을 절대로 들일 수 없다고 하여 눈물을 머금고 모든 동물들을 분양했다.  그러나 그 두 마리의 고양이는 어느 누구도 데려다가 기르려 하지 않았다.  이삿날은 임박했고 우리는 별 수 없이 밥을 듬뿍 퍼주고는 고양이를 그 집에 남겨두고 떠나왔다.  어린 우리는 "고양이를 데려가면 안되요?  주인도 고양이를 보면 귀여워 할텐데..." 하며 부모님을 설득해 보았지만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고양이를 잊어갈 즈음, 새벽녁 문 앞에서 고양이 울음 소리가 났다.  '아직도 내가 고양이를 그리워 하는가봐' 하고 잠이 들려는데 그 소리는 너무나 명확했다.  엄마를 깨우고 문을 열었다.  세상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고양이는 예전 집에 두고 왔던 그 고양들이었다.  그것도 두 마리 모두 우리 집 현관 앞에 앉아 있었다.  누가 나의 고양이들을 말 못하고 아무 생각도 없는 그저 움직이는 생물일 뿐이라고 할텐가.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마침내 우리 집을 찾았던 고양이의 반짝이던 두 눈을.  이뿐 아니라 동물들과 나눈 따스한 추억이 내겐 너무나도 많다. 

  이렇듯 이 책은 나에게 지난 날 함께했던 동물들과의 추억과 애정을 일깨워 주었다.  그랬기에 저자가 가면 올빼미에게 느꼈던 사랑의 감정은 모두 생생하게 나의 것이 되었다.  어떻게 올빼미가 인간과 사랑과 우정을 나눌 수 있는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었다.  올빼미의 날개가 어깨를 감싸주며 잠드는 밤이란, 마치 한 편의 포근한 동화 같았다.  역시 어떤 종이냐를 떠나서 진실된 사랑을 주고 하나의 개체로 존중해주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일까?   

  동물을 내 맛대로 기르기는 쉽다.  옷을 입혀주고 향기가 좋은 샴푸로 씻겨주고 고급사료에 외출때는 신발까지 신겨주고.  그것들을 과연 동물들이 원한 것일까?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간이 원한 것일까를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답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동물이 원하는대로 기르기는 정말 힘들다.  만약 당신의 반려동물의 주식이 '쥐'라면.  다른 어떤 것도 먹지 못하고 오로지 '쥐'만이 영양공급원이 된다면.  이런 동물을 키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끔찍한 쥐를 잘근잘근 씹은 입에 입맞춤하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책 스테이시 오브라이언은 자신의 가면 올빼미 웨슬리를 위해 그렇게 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하기가 힘들지만 이 부분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오~ 맙소사.  나는 올빼미는 절대 기를 수 없겠어' 했으니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스테이시 오브라이언은 생물학자다.  그가 보여준 생물학자들의 이야기 또한 아주 흥미진진했다.  음....  그 중에서도 피부 밑에 기생하는 벌레를 연구하기 위해 자신의 피부에 직접 기생충을 기르는 생물학자의 이야기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무지한 동물애호가들은 도리어 동물들을 위기에 처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혀 야생에서 살 수 없는 동물들을 보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맹금류나 야생동물들을 건물 안에 들여놓고 기른다는 사실에 그 곳을 찾아 난동을 피우고 모든 동물들을 쫓았다는 이야기였다.  몰랐다면 나 역시 그들처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얼마지 않아 많은 동물들이 야생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은 채로 발견이 되었단다.  무작정 동물을 사랑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사랑인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지 못했음이 부른 화였다. 

  그리고 웨슬리의 마지막을 함께 해 준 동물병원의 수의사에게도 참으로 감사했다.  예전 나의 어린 거북이는 이유없이 아팠고 야간 진료를 받기 위해 한 달음에 달려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 의사의 첫마디는 '거북이는 고치지 않아요'  고칠 수 없어요도 아니고 분명 고치지 않아요였다.  왜, 왜죠?  당신이 돌보는 개들과 같이 생명이 있는 동물인데 왜 고쳐주지 않나요?  돌아오는 길 얼마나 울었던지.  지금 돌아보면 그는 고치지 않는 것도 고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고칠 줄을 모를 뿐.  나는 아주 작고 연약한 동물들을 치료해 줄 수 있는 동물병원들을 보다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수의학이라는 것이 과연 개, 고양이에게만 국한된 것인지.  수입을 창출하지 못할 극소수의 동물들은 수의학에서 배제되고만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병원 진료 종료 시간을 신경쓰지 말고 기다릴테니 오라'던 책 속 의사의 따스한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인지는 마지막을 쫓는 동물을 곁에서 지켜본 자만이 안다.  그들의 그런 수의학 정신과 의료서비스를 동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웨슬리와의 즐거운 추억과 사랑의 이야기들.  그들이 나누었던 19년간의 우정의 이야기는 밤새 나를 울렸다.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얼마만인지.  내가 책을 보고 운 일.  이 모든 이야기는 단지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창작된 동화가 아니라 사실을 담은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작은 책은 나에게 너무나 큰 것들을 일깨워 주었다.  생명의 귀함.  그 가치로움.  그것이 비록 어떠한 우리 말도 할 수 없는 동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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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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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는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그런데 그의 <한 밤중의 행진>과 <오! 수다>를 먼저 읽게 되었고 그 책들은 솔직히 <공중그네> 마져 보고 싶게 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남편 책장(결혼과 동시에 우리 책장도 결혼을...)에 꽂힌 여러 권의 경제/경영 서적 중 유난히 눈에 띈 <공중그네>  덜컥 집었다! 

  유쾌했다!!  달리 어떤 말로 이 책을 표현할 수 있을까?  사실 코메디, 개그 이런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건 정말 재밌었다.  웃겼어 정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이 자신감이 생기더니 급기야 미소꼬리를 물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이 소설은 진실하고 참 따뜻했다.  날카로운 것을 두려워 하는 야쿠자, 더 이상 공중그네를 탈 수 없게 된 서커스단원, 엉뚱한 장난을 하고 싶은 충동에 못견디는 의사, 제구력이 사라진 투수, 글쓰기가 힘들어진 작가.  그리고 완전 엉뚱 이라부 선생과 호피무늬 팬츠에 입에는 담배를 문 간호사 마유미.  그들은 모두 어딘가 하나씩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그들 각자의 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핵심적인 것들이라면.  다섯 가지의 이야기 중 '공중그네'는 참 마음이 아프기까지 했다.  그리고 뭐랄까?  주인공의 인간관계는 있음직한 이야기였기에 더욱 현실적이었고 괜시리 내가 다 속상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또 그들이 각자의 숙제를 푸는 모습은 숙연해지기 까지 했다. 

  그들은 모두 마음이 아픈 사람들, 모두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세상에 보여지는 '나'라는 모습 때문에 한 순간도 나를 편안하게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데 이들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엉뚱한 의사 이라부 선생.  어쩜 그의 대사 하나 하나가 이렇게 생동감있게 우스울 수 있는지.  이 '우습다'라는게 나사 하나 더 빠지게 되면 유치해지는 법.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캐릭터의 일관된 성격 묘사로 페이스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들.  그 중에서도 특히 이라부 선생.  정말 의학박사 맞을까?  그는 내담자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엉뚱한 방법으로 치료하는 듯 하지만 완벽하게 성공하는 탁월한 전문의다.  누가 그를 비웃을텐가?  이렇게 위트있고 몸을 아끼지 않는 의사가 어디 있을까?  아 단 한 명이라도 이런 유쾌한 의사를 만날 수만 있다면 병원 가는 일이 두렵지 않겠어.  

  아하하, 오월이다.  왠지 나른해지는 이 봄.  나도 이라부 선생에게 비타민 주사 한 대 맞고 싶어라.  그리고 마유미가 내오는 요쿠르트도 원샷하고.  따뜻한 이야기, 유쾌한 웃음.  그 안에 숨어있는 감동들.  <공중그네>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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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뉴엘 베른하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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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현력이 뛰어난 작가에게 주는 '메디치 상'을 수상작인 <금요일 저녁>  어떻게 하다보니 정말 '금요일 저녁' 에 읽게 되었다.  그것도 미용실에서.   

  두껍지 않은 책이다.  엠마뉴엘 베른하임은 '100페이지 작가'라고도 한다는데 그녀의 모든 소설이 단 100페이지 정도로만 쓰여졌단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구태여 이야기가 길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녀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보다 뛰어난 표현력을 담는 글을 쓰고 싶어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내일이면 남자친구의 집에서 함께 살기로 한 여자의 이야기다.  그녀는 정리해야 할 책이 담긴 상자와 역시 처리해야 할 옷가지를 실은 채 길은 나선다.  그러나 금요일 저녁 친구 집에서의 저녁식사는 취소가 되고 지독한 교통체증에 한 남자를 태운다.  그녀는 그를 위해 버릴 옷들을 담아둔 상자에서 구겨진 붉은 색 미니스커트마져 꺼내 입는다.  그녀는 그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날이 밝고 그녀는 그 곳에서 나온다.  이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이야기는 그녀의 금요일 저녁만을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은 기분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하다.  훗날 이 스토리를 접하게 된다면 '언젠가 내가 보았던 영화였지' 하고 기억하게 될 것만 같은.  필시 이 작가는 여성팬들이 많을 것이다.  여자만이 이해할 것만 같은 섬세함이 담겨있다.  감정을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다.   

  미용실에서 이 책을 읽던 중 내 뒤에서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그'가 조금 신경쓰였다.  책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정사로 정신이 없었고 그는 나의 머리카락을 만지는데 정신이 없었다.  '혹 내가 읽고 이 부분을 슬쩍 읽지는 않겠지?' 그러나 나는 안다.  누군가가 보고 있는 책을 내용까지 훑어 볼만큼 대범한 자는 없으리라는 것을.  아니 그토록 관심을 갖기조차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금요일 저녁.  내일은 토요일이기에 오늘은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는 금요일 저녁.  나는 이런 류의 쾌락을 절대 경멸한다.  어떻게 단 번의 만남에서 서로의 몸을 탐닉할지 있다는 것인지.  그러나 그녀의 하룻밤 탈선을 꾸짖고 싶지는 않다.  단지 그녀를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렴풋이 사랑이 시작되던 때의 느낌이 되살아 나는 듯 했다.  설레임.  누구나의 사랑에 시작이었던 설레임.  그러나 삶은 우리를 이것에 무뎌지게 하고 결국은 '편안함'이 사랑의 자리 전부를 차지하고 있게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녀가 그를 보고 느끼는 호감, 아주 짧은 찰나에서 번뜩이던 질투심도.  그 모든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몰랐는데 이 여자의 이야기에는 모두 향기를 섬세하고 다루고 있단다.  이 책에서도 그랬다.  담배 냄새가 밴 가죽냄새.  내가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 향기(?)지만 그녀는 이 냄새에 그에게 빠져들게 된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라는 것을 마치 실제 그 냄새를 맡고 있는 듯 묘사하기에 그녀의 표현력을 높이 평가하는게 아닐지 생각해 본다.  

  어느새 나의 머리도 끝이 났고 그녀가 호텔문을 나설때처럼 나도 미용실 문 밖으로 나왔다.  어색하다.  그렇지만 내일이면 다시 익숙해질 토요일이 있기에.  그녀와 나 역시 우리의 어색함을 잊을 수 있는 토요일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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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후 - 10년간 1,300명의 죽음체험자를 연구한 최초의 死後生 보고서
제프리 롱 지음, 한상석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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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탄생과 죽음은 인간의 영원한 화두이다.  나는 평소에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 왔었다.   '사람이 죽고나면 어떻게 되지?' '죽음이라는 것은 존재의 완전한 소멸일까?', '죽고나서의 어떤 생이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환생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그렇다면 영생은?', '생명이란 어디서 오고 죽음은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죽을 때는 많이 아플까?'   그러나 이제까지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죽음 뒤의 세계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 죽음을 체험한 자들을 연구한 보고서가 있다.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 책은 종교에 심취한 자가 아닌 과학적인 눈에 보이는 결과치를 믿고 어떤 상태에 누구보다 민감한 의학박사의 것이다.  의학박사가 사후생에 대해 연구하여 그것을 인정하는 완성된 보고서를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대다수의 과학자와 의학자들은 사후생이나 임사체험에 대해 결론을 보류하거나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이다.  (많은 수의 과학자들이 창조설을 믿지 않는 것처럼)  그런데 의학박사인 제프리 롱과 폴 페리는 이 책을 통해 죽음을 보여주었다.  나에게 이처럼 죽음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한 책은 처음이었다.  

  이 책은 임사체험을 한 자들에 대한 연구를 오랜기간 해왔고 그 자료들을 수집하여 일반화하고 종합한 결과 죽음의 순간과 죽음 이 후의 모습들을 그려 두었다.  그리고 이 책은 '사후생은 분명 존재한다' 라는 저자의 논증을 잘 뒷받침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저자는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자들의 반론도 막거나 해소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죽음을 해석하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느끼기엔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그러나 이런 연구가 많지는 않았소' 정도가 아닐까.        

  죽음의 순간 유체이탈을 경험하고 빛을 보게 되고 평온함과 안락함을 느끼고 가족이나 친지등 죽은 자들을 만나게 되고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경험을 하게 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마치 우주의 비밀을 알게 된 듯한 깨닳음이 생긴다.  이것이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더 믿지 못할 일은 선천적인 시각 장애인까지 이 같은 것을 그대로 본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선천적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나 죽음의 순간 유체이탈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처음 본 체험자의 경험도 있었다.  그리고 먼저 죽어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조상의 얼굴을 본 경험도 있다(차후 사진으로 보고 죽음의 순간 본 자의 인상착의임을 알게 됨)   

  나는 이전에도 죽음 뒤에 어떤 삶이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믿어왔다.  어쩌면 내가 이리 생각하는 것에도 배경이 있을 것 같다.  나는 모태신앙이고 학창시절 교회에서 임원까지 할 정도의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아왔'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죽음 이후의 생은 반드시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어떤가?  사후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삶과 죽음 그리고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면 종교도 같이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기독교는 영생이 있다고 하고 불교는 환생이 있다고 한다.  어떤 것이 진리인지를 떠나서 이것은 이 생에서의 삶이 마지막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인간의 염원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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