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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ㅣ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뉴엘 베른하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199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표현력이 뛰어난 작가에게 주는 '메디치 상'을 수상작인 <금요일 저녁> 어떻게 하다보니 정말 '금요일 저녁' 에 읽게 되었다. 그것도 미용실에서.
두껍지 않은 책이다. 엠마뉴엘 베른하임은 '100페이지 작가'라고도 한다는데 그녀의 모든 소설이 단 100페이지 정도로만 쓰여졌단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구태여 이야기가 길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녀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보다 뛰어난 표현력을 담는 글을 쓰고 싶어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내일이면 남자친구의 집에서 함께 살기로 한 여자의 이야기다. 그녀는 정리해야 할 책이 담긴 상자와 역시 처리해야 할 옷가지를 실은 채 길은 나선다. 그러나 금요일 저녁 친구 집에서의 저녁식사는 취소가 되고 지독한 교통체증에 한 남자를 태운다. 그녀는 그를 위해 버릴 옷들을 담아둔 상자에서 구겨진 붉은 색 미니스커트마져 꺼내 입는다. 그녀는 그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날이 밝고 그녀는 그 곳에서 나온다. 이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이야기는 그녀의 금요일 저녁만을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은 기분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하다. 훗날 이 스토리를 접하게 된다면 '언젠가 내가 보았던 영화였지' 하고 기억하게 될 것만 같은. 필시 이 작가는 여성팬들이 많을 것이다. 여자만이 이해할 것만 같은 섬세함이 담겨있다. 감정을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다.
미용실에서 이 책을 읽던 중 내 뒤에서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그'가 조금 신경쓰였다. 책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정사로 정신이 없었고 그는 나의 머리카락을 만지는데 정신이 없었다. '혹 내가 읽고 이 부분을 슬쩍 읽지는 않겠지?' 그러나 나는 안다. 누군가가 보고 있는 책을 내용까지 훑어 볼만큼 대범한 자는 없으리라는 것을. 아니 그토록 관심을 갖기조차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금요일 저녁. 내일은 토요일이기에 오늘은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는 금요일 저녁. 나는 이런 류의 쾌락을 절대 경멸한다. 어떻게 단 번의 만남에서 서로의 몸을 탐닉할지 있다는 것인지. 그러나 그녀의 하룻밤 탈선을 꾸짖고 싶지는 않다. 단지 그녀를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렴풋이 사랑이 시작되던 때의 느낌이 되살아 나는 듯 했다. 설레임. 누구나의 사랑에 시작이었던 설레임. 그러나 삶은 우리를 이것에 무뎌지게 하고 결국은 '편안함'이 사랑의 자리 전부를 차지하고 있게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녀가 그를 보고 느끼는 호감, 아주 짧은 찰나에서 번뜩이던 질투심도. 그 모든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몰랐는데 이 여자의 이야기에는 모두 향기를 섬세하고 다루고 있단다. 이 책에서도 그랬다. 담배 냄새가 밴 가죽냄새. 내가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 향기(?)지만 그녀는 이 냄새에 그에게 빠져들게 된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라는 것을 마치 실제 그 냄새를 맡고 있는 듯 묘사하기에 그녀의 표현력을 높이 평가하는게 아닐지 생각해 본다.
어느새 나의 머리도 끝이 났고 그녀가 호텔문을 나설때처럼 나도 미용실 문 밖으로 나왔다. 어색하다. 그렇지만 내일이면 다시 익숙해질 토요일이 있기에. 그녀와 나 역시 우리의 어색함을 잊을 수 있는 토요일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