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셔고양2님의 ‘홍석천 같은 친구가 있다면’이라는 페이퍼를 읽다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썼던 글이 기억났다. 경우가 다르긴 해도 내게도 친구 한 명이 있었다. 그리고 마이클 커닝햄의 <세상 끝의 사랑>을 읽었을 때 그 친구가 떠올라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기록이란 차원에서 여기 부기해둔다.
그건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못 되었다. 아니 오히려 짐작했던 바라고나 할까. 그와 처음 만난 것도 벌써 8년 전의 일이었고 그 사실을 짐작하지 못할 만큼 우둔했더라면 그의 세심함은 지레 나를 거부할 것이었기에. 그렇다 그의 세심함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때로는 병약하다 느낄 정도로 투명한 흰 빛을 띤 그의 피부와,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배워왔다는 그의 길고 여린 손가락은 그 세심함을 어떠한 집착이나 강박으로까지 느끼게 할 정도였기에. 화가 날 때면 햇빛을 여과하는 유리창 같은, 그의 투명한 우윳빛 피부는 스포이트로 빨간 물감을 떨어뜨린 것처럼 발갛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가 어떤 말을 할 적이면 그 다채로운 제스츄어 - 경탄의 양팔 벌림, 분노의 분끈 쥔 주먹, 의아함의 내보인 손바닥 등 - 속에서 그의 (어쩌면 앙상하다라고까지 할) 손가락은 말보다 더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도 그 세심함은 언제나 위태로워 보였다. 그의 자유로운 언동은 일반의 편견과 관습과 버성기어 몸 어딘가에 꽤나 치명적인 상처를 내고 있는 듯하였고 그것은 주변의 몇몇에게 우려와 근심을 끼칠 만한 것이었다. 마치 두 손안 쥔 작은 새의 날개짓하려는 의지가 담방거리는 심장 고동소리에서 느껴질 때의 그 안쓰러움처럼 말이다.
그와 처음 만난 건 8년 전, 갓 입학한 고등학교의 포악스러운 분위기 - 선생님이나 선배나 다 가릴 바 없이 하나만을 강요하고 그에 따르도록 하는 도구로써 욕설과 매질이 동반되는 - 에 당황하여 가뜩이나 상처 입기 쉬운 17살의 나이를 절감하고 있던 때였다(포악스러운 문화에 대한 당황의 경험은 대학에 들어와 다시 부딪치나, 이미 그 때는 '경멸'과 '냉소‘라는 허무적인 도구를 몸에 지닌 뒤였다). 그를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은 소위 말하는 범생이, 그 자체였다. 왜 안 그렇겠는가. 까만 뿔테 안경에 크다고 할 수는 중키에 몸무게는 내 반 정도밖에 안 될 성싶게 너무 말라 보이는 그의 인상이었기에. 게다가 그의 신경질적인 눈매에서 나의 심증은 더욱 굳어갔다. 물론 그가 나를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은 호의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니, 호의라니. 감히 바랄 처지가 아니다. 쥐 뜯어먹은 듯한 더벅머리에 여드름 자욱이 얼굴을 덮고 있는데다가 그 인상마저 타인게 거북스럽기 이를 데 없는 그때의 내가 말이다(그렇다면 지금은? 이라고 묻지 말아다오, 제발). 어쨌든 서로간의 그닥 나을 바 없는 첫인상에도 그와 나는 한 써클 안에서 활동을 해야 했기에 거짓 미소로 그러한 불편을 감추며 지냈다. 그러며 일 년이 지난 뒤 어쩔 수 없이 그와 나는 행동의 반경을 서로 근접시켜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 써클에서 서로 회장과 총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그는 범생이라고 본 나의 첫인상을 확인시켜주듯 전교에서 일, 이등을 다투고 있었고 나는 올라갈 이유가 없는 성적 때문에 집안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고 있는 신세였다. 내 멋대로 이름 붙이자면 똘똘이 스머프와 천덕꾸러기와의 콤비라고나 할까. 그러나 주변의 우려는 물론 우리 스스로도 영 어색하기 짝이 없는 묶음일 거라 생각했음에도 의외로 쉽게 가까워졌다. 어찌하여? 라는 질문을 해온다면 난감할 따름이다. 말한 바대로 자기들 스스로도 맞지 않을 거라 예상했던 이들이 그러한 질문에 맞는 대답을 준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지. 게다가 기껏 18살일 뿐인 고등학생의 정신 상태란, 당신이 이미 겪었다시피 언어로 설명될 만한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그때의 우리를 까닭 모르게 마냥 절망하게 했고, 또한 그렇기에 그 불확실한 미래는 우리의 상상 속에서 멋대로 만들어지고 윤색되었기에 마냥 희망에 부풀게 하였던, 18살이라는 나이. 그 미묘한 시점이 만들어낸 마법과도 같은 무언가가 우리를 묶게 했으리라.
그는 어쩌면 차갑게도 보이는 외견 속에 다감한 세심함을 감추고 있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하숙하는 그의 집엔 의외로 많은 이들이 마실 줄도 모르는 소주를 들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그러한 데서 연유한 게 아니었을까. 내가. "나 눈물 많고 동정식 듬뿍한 사람이야"라고 아무리 광고를 해대도 카운셀링을 청하는 경험을 거의 갖지 못한 처량한 상황의 우스꽝스러움과 견주어 더욱 그랬다. 나의 수다가 냉소를 머금은 황량한 것이었다면 그의 말의 풍성함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라 할 '배려'라는 것이 있었다. 이를테면 그와 내가 속해 있던 써클에서 누군가에게 지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있어 나는 가차없이 내뱉어 꼭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식이었다면 그는 여린 목소리로 별 상관없이 보이는 자신의 얘기를 하는, 은연중에 상대방에게 인식하게끔 하는 세련된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방식은 때론 가슴 시리게 나를 돌아보게 하는 뼈아픈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 그는 나에게 있어 하나의 명징한 거울과도 같은 존재였다. 내 어설픈 의견에 반갑게 동의를 표하며 그가 꺼내드는 말들은 내 빈약한 논리를 노골적이지 않게 부숴 내리며 내 머리를 차갑게 했다. 나의 촌스러운 분노 속에 감춰진 비겁함과 다르게 그가 아주 가끔씩 내비치는 분노는 그의 행동 속에서 충일하게 지켜나가며 나를 비춰주었다. 그러한 그의 자신에 대한 엄격함들은 나의 말과 행동을 추스르게 했고 그와 함께 있는 순간순간에 기분 좋은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그와 함께 들었던 음악들을 기억한다. 독서실에서 나란히 앉아 공부하다가도 좋은 음악이 나오면 서로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 들려주었고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라이브 앨범을 통해 알게 된 누나의 레코드 가게에 함께 가 테이프 하나를 사기 위해 두세 시간을 넘기는 것은 예사였다. 그렇게 어렵사리 고른 테이프를 독서실을 향해 걸어가는 중 겉비닐을 벗겨 속지에 있는 해설지를 읽어가며 미리 상상해보며 서로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당신도 기억하는지. 특히나 전영혁 특유의 사자성어로 점철된 감상적 음반 해설들을. "이들의 숭고한 음악 정신은 독야청청하리라"라든가, "내 고등학교 시절을 지배한 감동의 곡들이었다"식의. 지금 꺼내보면 미소보다는 폭소를 떠뜨리게 되지만). 그 음악들 중 언제나의 베스트는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이었다. 'Another brick in the wall'에서의 로저 워터스의 울부짖는 보컬은 우리의 척박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했고 'Mothe'의 속삭이는 슬픔은 괜한 감상에 빠져들게 했다. 어디 그것들뿐이었겠는가. 어렵게 구해 본 영화 <The Wall>을 보며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했던 음악의 가사들을 실제로 확인하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고 손에 배인 땀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 때의 충격과 감동은 그와 나를 포함하여 몇몇이 함께 올렸던 연극의 극본에 깊이 배어 있고 그 극본 속의 몇몇 문구들은 <The Wall>을 명백하게 표절하여 나름의 오마쥬(?)를 표했다.
길을 함께 걸을 때의 그에겐 묘한 습관이 있었다. 주절주절 수다를 떠는 와중, 어느 순간인가 그가 내 팔 한편에 기대든가, 팔짱을 끼어 왔다. 어쩌면 징그러울 수도 있을 그러한 스킨십이 이상하게도 그가 해오면 아주 자연스러웠다. 어쩌다가 얼큰하게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함께 길을 걷던 중 내가 나서서 그에게 기대 팔을 끼고 유쾌하게 웃으며 걸어간 적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함께 음악을 듣고 가끔씩은 무거운 대화도 나누고 못 마시는 술을 마시며 93년의 겨울은 지나갔다.
대학에 들어와 그와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서로의 자취방이 50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 있었고 텔레비전이 없는 내가 <느낌>의 우희진을 보기 위해서도 일주일에 두 번씩은 그의 집에 찾아갔다. 여전히 그는 세상과 위태로운 버성김 속에서 자신을 지켜나가는 듯했고 그런 그의 모습에게 나에게 묘한 위안과 함께, 여전한 불안감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그해 말 그가 이사를 가게 되면서부터 예전처럼 빈번한 만남은 지속되지 못했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더 뜸하게 몇 개월에 한 번 만나게 되더라도 그는 여전해 보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긴 공백에도 서로의 관심사는 비슷한 곳에 걸쳐 있었고, 그렇기에 오랜만의 만남에도 묘한 흥분과 긴장감, 그리고 유쾌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인터벌은 조금씩 길어져갔고, 연년에 한 번 정도를 가까스로 유지하다가 결국, 어느 해부터인가 그의 소식은 다른 누군가에게 어떠다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짐작하고 있었기에.
<세상 끝의 사랑>의 작가, 마이클 커닝햄은 미국 내에서도 커밍아웃하고 소설을 쓰는 몇 안 되는 작가라고 한다. 동성애자에게 커밍아웃이란 게 얼마만큼의 용기를 필요로 하고 어느 정도의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인지, 감히 짐작 못하겠다. 아니 짐작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이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리라 짐작하는 나로서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별로 믿지 않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바라보는 그들 - 이반이라고 불리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휴머니즘이란 단어가 떠오르고 그러한 잣대로 그들에게 다가서게 됨을 감추기 힘들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의 소수자로서, 약자로서, 아웃사이더로서 살아가는 이혼녀와 장애인과 전라도인과 외국인 노동자와 고졸자와 그들을 동류항으로 놓는 그 어설픈 휴머니즘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한 사람의 소수자라는 자조적인 인식이 그러한 사고를 지탱한다. 사실 이 소설은 그러한 배경지식을 버리고 봐도 충분히 아름답고, 적당히 기이하며, 묘한 슬픔을 준다 성(性)에는 관심이 없는 바비와 그 어릴 적부터의 친구인 동성애자 조나단, 그리고 양성애자인 클레어가 만들어가는 기이한 가족 구성에 이르기까지 읽는 즐거움은 만만치 않다. 게다가 그 주변을 이루는 이들의 삶마저 작가의 따뜻한 시선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고 등장인물 하나 하나에 자신을 투과시켜 보게 만든다. 읽는 속도는 알레그레토(조금 빠르게) 정도가 좋을 듯싶다. 그 '빠르게'는 내러티브의 진행에 맞추면 어련히 따라게 돼 있고 '조금/'의 정도는 감동의 여진에 따라가시길.
* 위에서 주절거린 그에 관한 묘사에는 조금의 윤색과 과장이 섞여 있다. 감히 그에 대한 배려라고는 하진 못한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어느 작가가 그의 단편 중에서 "진실이란 조금 비틀어진 상황에서 강렬히 설득적이다"라고 했던 걸, 감히 기억해본다(그러나 그가 이 글을 읽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게 내 솔직한 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