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교정자가 초교를 보고 가져와서 흝어보는데 이 양반이 번역자가 "씨팔"이라고 해놓은 것을
"제기랄"로 바꿔놓았다. "씨팔"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서적 혐오에서 기인했는지,
윤리적 기준에서 판별했는지, 맞춤법에 준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씨팔이 제기랄이 되서는 그 맛이랄까 뉘앙스가 안 살아난다.
씨팔은 씨팔이다.
원문에서는 구솟타레(糞ったれ), 치쿠쇼(畜生) 등에 해당하는데
해석하자면 똥싸개나, 짐승새끼 정도겠지만 그래도 그 맥락과 캐릭터 상에서 역시 씨팔이다.
물론 지역에 따라, 개인에 따라 씨팔이 아니라 씨발, 씹할, 씹헐, 쓰벌, 시부랄 등등으로
변용은 가능하겠다. 그 가름은 번역자의 몫이고 선택은 편집자의 몫.
판정은 독자가 하면 되겠다.
개인적으로 욕을 별로 안 쓴다. 잘 쓰지도 않거니와 제대로 쓸 줄도 모른다.
네, 생긴 것과 다르게 말입니다.-_-
물론 비아냥, 쪼개기, 투정, 이간질 등은 곧잘 합니다만,
여튼 욕 그닥 안 쓰는 편이다. 물론 상대적인 의미다.
일반적인 남성들이 욕을 구가하는 정도에 비해서 안 쓴다는 거지
욕을 전혀 안 쓰는 여성이 보기엔 내가 걸레 빤 물로 양치질하나 싶게
입이 걸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남자들만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상습적으로 튀어나오는 욕들을 보면
그들은 일 보고 물 안 내린 변기물로 가글링했나 싶다.
그러니까 내가 그들의 욕을 들으면서 느끼는 순간적인 감정은 웃기게도 환멸이다.
당최, 내가 무슨 주제로 그들의 욕에 환멸을 느껴야 하는 걸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욕과 관련한 어떤 기억 때문이리라.
3년간의 일본생활을 마치고 초등학교 1학년 겨울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한국말을 거의 못했다.
즉, 당시 동네형들이 나를 부르던 별명대로 반쪽바리였다.
(자주 듣지는 않았지만 살인배구 같은 것을 할 때 나에게 공을 후려치며 부르던 다른 별명이 있었다.
매국노 새끼. 매/국/노 아마 처음 국어사전을 찾아본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하)
물론 내가 일본에 갔을 때 몇 개월만에 한국어를 버리고 일본어를 익혀갔듯이
그때로 그리 많은 기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금세 일본어는 잊어가고 한국어에 익숙해졌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오후반(학생수에 비해 학급수가 적어서 점심을 먹고 등교하는 반)이었고
흔치 않던 일본오락기가 있어 동네 애들이 쉬 꼬여들었고, 그러면서 말을 익혀갔을게다.
그러던 어느날, 모 시골중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서
저녁을 차리는데 나랑 동생이랑 티격태격하다가 내가 어떤 욕을 했던 모양이다.
엄마가 그걸 들었고, 그날 파리채로 무지하게 맞았다.
그러면서 엄마가 했던 말이 띄엄띄엄 생각난다.
니 아빠가 엄마에게 그런 더러운 말을 쓰는 걸 보고도 니가 그런 말을 쓰냐.
너도 똑같이 그런 더러운 말을 쓰면서 사람에게 폭력을 가할 거냐고.
그후로 아마도 욕을 회피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욕을 능숙히, 또는 습관적으로 쓰는 사람에게 뭔지 모를 저어함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인간이 내뿜을 수 있는 독이란 걸 생각하면 욕이란 겨우 걸레물이거나 변기물일 수도 있다.
품위 있는 말에 독을 담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이가 무수한데
기껏 욕 가지고 환멸을 운운한다는 건 참으로 촌스러운 짓일지도.
그래, 나란 인간은 타고나기를 참 촌스럽게 타고났구나. 씨팔 이렇게 살다 죽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