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히라노 코우타 선생의 근황



http://overdread.egloos.com/

 





히라노 아야

1987년생

14살에 데뷔, 별로 인기 없는 아이돌그룹과 각종 애니에서의 엑스트라 및 조연역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아이돌 어둠의 세계의 정도를 걷는 듯 하더니 스즈미야 하루히역으로 단번에 메이저로 치고 올라와버린 업계의 신데렐라. 평소 목소리는 지독한 비음인데 연기할 때나 노래를 부를 때는 멀쩡한 목소리로 되는 웬지 순서가 뒤집힌 듯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이후로 스케줄이 웬만한 연예인 뺨치게 잡히는 바람에 건강상의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있으며 가수와 성우 중 한쪽은 포기하게 될 것이라는 루머로 성우팬들을 노심초사하게 만들고 있는 중.

 

 

 

 

내 근황

 

 

히라노 아야의 모든 노래가 나오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중요한 건 여기가 애니하곤 눈꼽 만치도 상관 없는 공무원 업무 관련 단기 알바하는 데라는 거. 그외에 가끔씩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 주제가도 나온다.

 

아는 여자랑 누가 더 덕후스러운지 논쟁을 벌였는데 그 다음부터 연락이 안된다. 아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LAYLA 2006-12-14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근무하시는지 궁금하네요 ^^

hallonin 2006-12-14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청에서 일주일 정도 하는 단기 노가다 알바입니다.... 이번 현상의 교훈은 어디에나 그들은 있다.

sudan 2006-12-14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시간에 알바가 컴 써도 돼요? ^^

hallonin 2006-12-15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은 철야로 점심은 근성....
 

이것저것 소년만화의 법칙을 따라 신경 써서 구축한 흔적이 역력. 히로인이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중구난방이고 액션씬이 서투를 때가 있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무난. 너무 무난하기에 이런 만화가 갈 길은 [강철의 연금술사]가 되느냐 조루연재가 되느냐 둘중의 하나인 케이스가 많다.

 

결말을 봐도 덤덤해진지 오래인 만화지만 그림만은 초전작살. 아니, 오바타 다케시의 화력이란 거의 만개한 게 아닐까 싶은 정도. 

 

생각해보니 유현만화를 처음 봤던 게 챔프신인상에 들어왔었던 여고에 전학온 여장 미소년 이야기였는데.... 이 작품 또한 적당히 트랜스 캐릭터의 매력에 기대면서도 구미호라는 친숙한 소재를 통해 요마물적인 요소를 가미. 라온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괜찮은 편이고 컨셉도 좋은데.... 웬지 부족한 느낌은 라온 주위의 인물들이 다소 비실하다는 점 때문인가. 그래도 술렁술렁 잘 읽힘.

디자인면에서 [러브리스]와의 혐의점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도 딜레마일 듯.

 

와인도 찾고 떡도 치고 잇세 너 이새끼....

그런데 떡씬이 너무 개판으로 그려져서 심하게 안타까웠음. 거의 대본소 도장만화에서 나오는 떡씬 수준(농담아니고).

 

 

전권까지 너무 힘을 줬던 탓인가. 억지 유머에 지능적 꽃뱀이자 양다리 여왕님인 히로미의 정신세계를 재점검하(라기 보단 그냥 발로 차버리)고 싶어진다는 의미에서 힘빠진 타이어 같았던 8권.

엥? 끝이야?

 

프랑수아 플라스의 동화는 이걸로 처음 접했는데 단번에 전작을 훑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제국주의와 인간의 어리석음, 그로 인한 멸종되어가는 생물에 대한 보편화된 우화보다도 나를 사로잡았던 건 파노라마적 시야 속에서도 세밀하고 조심스러운 묘사를 통해 탁월한 동화적 리얼리즘을 성취해내고 있는 그의 그림.

 

라이브 실황인데.... 왜 이렇게 답답하게 느껴지는지 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amX 2006-12-13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드래곤 랄Ω그라드 는 원서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삭제가 될 지. ;;;

hallonin 2006-12-13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정서도 비슷한 바스타드 정도의 삭제가 이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아이즈가 무삭제판으로 다시 나오는 현재 상황에 비춰보면 무삭제가 기대도 되고. 사실상 노출이 많다고는 해도 근본적으로는 지극히 소년만화적인 정서라.
정말 제대로 출간이 가능할지 걱정되는 건 언더 더 로즈 4권. 들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굉장하다는군요. 한층 더 파탄난 등장인물들의 정신세계에서부터 표현상으론 헤어노출까지 나온다고....

없음 2006-12-2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아 -> 프랑수아. <붉은강나라에서 현기증도시까지> 보유중!

hallonin 2006-12-27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한창 엠마뉴엘 시리즈 전편을 보던 중에 페이퍼를 올린 탓에 그만 실비아라고 오타를-_- <붉은강나라에서 현기증도시까지>를 소장중이시라니 부럽군요....
 
창천항로 무삭제 완역판 36 - 완결
이학인 글, 왕흔태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창천항로]는 1권에서 손가락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작된다. 권력자들의 손가락에 대한 설명을 통해 권력이란 것의 속성을 되짚고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을 미뤄두겠다고 미리 말해두는 이 긴 이야기는 시작에서부터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넘어선 권력, 그 자체에 대한 거친 이야기가 될 것임을 천명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어떻게보면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히 범아시아적 텍스트인 [삼국지]의 파괴와 재생을 10여년 동안 추구할 만화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 소년의 얼굴을 본다. 그는 아만, 후에 조조 맹덕이라 불릴 인간이다.

이제는 모르는 이가 없을 터이지만 [창천항로]는 온전하게 조조의 것이다. 조조라는 인물, 그의 공과, 그리고 복권이라는 선을 끝까지 잡으면서 너무나 노골적으로 영웅설화의 모양새를 구축해내고 있는 [창천항로]는 유가의 재래이자 촉과 유비의 영웅상을 체현하느라 정신없었던 [삼국지연의]의 이미지들과 싸운다. 마치 조조처럼, [창천항로]는 조조와 후한 삼국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에 대한 나관중의 소설에서부터 비롯된 거의 모든 해석들을 거부하면서 독창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다른 사건과 다른 인물들로 재창조해내는데 거침이 없다. 그리고 조조의 어린시절에서부터 시작된 이 36권의 대장정은 조조가 죽는 시점에서 앞뒤 보지 않고 그 엔진을 바로 멈춰버린다. 조조는 조조 이후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설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바, 마치 조조처럼, [창천항로]는 오직 땅에서 존재했고 땅의 시대를 지배했으며 결국 땅으로 돌아간 조조를 추구했다.

[창천항로]는 파격이란 자신의 컨셉을 추구함에 있어서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그 방법론은 [삼국지] 팬덤을 지적으로 자극하는 결과로도 드러났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창천항로에서의 고증의 문제는 지적유희로의 활용은 가능하나 지극히 전략적이란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본의를 찾을 수 있다. [창천항로]는 나관중의 반대말에서부터 시작되지만 당연하게도 정사가 아니며 작가적 창작으로 가득한 세계다. 그 안에 적절하게 배치된 실제와 허구의 작가적 노림수는 철저하게 기존의 통념을 깨뜨리기 위한 방향으로 튀어다닌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구축한 허구를 부숴뜨리는 무기로 실제를 갖다 쓰면서도 완벽한 고증이 불가능한 부분에선 마음껏 상상력을 부리는 작가의 솜씨는 실제와 허구의 뒤섞임이었던 기존 [삼국지]들의 전통을 따른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며 진수도, 나관중도 아닌, 그러나 동시에 [삼국지]라는 한 역사를 다뤄내려 했다는 점에서 그들과 같은 이야기꾼이 만들어낸 또다른 [삼국지]의 면모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하게 조조라는 한 인물의 시선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의도된 장치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창천항로]가 놓치지 않은 것은 그 모든 것들이 향하고 있는 재미다. 보장하건데 [창천항로]가 주는 만화적 즐거움은 최고 수준의 것이다. 역사적 견해에 따라선 불쾌감마저 동원할 수 있는 [창천항로]는 파격의 방법론으로 해석의 색다름을 보장하고 무수한 인물들의 신념과 의지, 지략과 무용담을 통해 지능적으로 독자의 마초적 쾌감을 노린다. 우리는 여기서 조조만 보는 것이 아니다. [창천항로]는 궁극적으로는 모든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다. 마왕 동탁의 거침없는 학살과 홀로 용이 되고자 했던 여포의 무. 관도대전에서 보여주는 원소의 허장성세, 오로지 오를 위한 충의로 살다 죽는 주유의 죽음과 장판교의 장비. 변방에서 끝없는 전란을 꿈꾸는 한수와 오로지 조조만을 쫓아 돌진하는 마초, 책략에 책략을 쌓아 마초를 사냥하는 가후와 나라가 가져야 하는 모든 짐과 허물을 끌어안고자 했던 손권. 모사 순욱을 비롯한 위나라 군사들의 활약과 죽음. 길을 잃고 헤매다가 얼떨결에 성 하나를 함락해버리는 하후돈과 대지를 진동시키는 장료의 이름. 그리고 시대의 끝에서 마침내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유비. [삼국지]의 수많은 인물들이 가지고 있던 고전적인 매력 만큼이나 [창천항로]가 굽어보고 그 역할을 올려주는 인물들의 면면도 다양하고 방대하며 참신하다. 동시에 그 수많은 걸물들의 피고짐을 묘사함에 있어서 만화적 탁월함을 극한까지 선보인다. [창천항로]의 시작과 끝을 맺는 이는 조조이지만 조조외의 인물들을 다루는 [창천항로]는 인재에의 집착으로 죽을 때까지 사람을 잊지 못했던 조조의 시선처럼 더없이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완전한 악인도 선인도 없이 후한말기라는 굳혀진 역사속 시간에서의 그들의 '역할'만을 관철하는 작품의 시선은 인물들의 '역할'을 흥미롭게 훑고다녔던 조조의 눈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조조란 무엇인가. 난세의 간웅, 배덕자와 같은 별명들을 달고 다니는 조조 맹덕은 [창천항로]에 와선 철두철미한 현실주의자이자 난세라는 현실을 끊임없이 견지하고자 하는 합리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죽은 후의 세계 따윈 믿지 않으며 허례허식은 배격하고 끝을 모르는 욕구불만으로 가득한 자신의 오감을 취하게 만드는 것에 쉬지 않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것은 진실인가? [창천항로]가 보여주는 조조에 대한 지독한 매혹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여기서 그려지는 그의 모든 행태와 의식들을 확고한 진실이라고 보장할 수 있는 순도 100% 짜리 근거는 없다. 그러나 [창천항로]는 무엇이 진실인가를 논하는 것이 별 소용이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왜곡된 조조의 복권조차도, 결국은 조조라는 하나의 프리즘을 타고 보고자 하는 권력과 현실에 대한 우회한 시선이기 때문이다. [창천항로]는 조조가 난을 난으로 없애려고 한 사람이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죽음을 만들어낸 이라는 걸 잊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합리성과 철두철미한 제도의 정비, 국가의 안정과 새로운 문물의 탄생을 불러온 그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조조의 반대말로서 천하 속에서 피어나는 유비라는 존재의 합당함을 예리하게 꿰뚫는다.

의미심장하게도 [창천항로]의 마지막인 36권은 영원을 탐색하는 이야기다. 도가의 유령 제갈량을 땅으로 떨어뜨리고 유교의 폐습을 하나씩 부숴버리며 각기 다른 이상을 추구하던 수많은 적들을 무덤으로 보낸 조조는 마침내 무신이 된 관우와 맞닥뜨리게 된다. [창천항로]의 막바지에 이르러 조조가 관우를 생각할 때마다 평정을 잃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조조는 끝까지 땅을 살았던 이였던 반면 관우는 끊임없이 하늘을, 그것도 권력의 욕망과 허세로 채워진 하늘이 아닌 의협이라는 이름의 지극히 보편적이고 소박하기까지 하며 그래서 더욱 자극적인, 민초들의 하늘을 쫓고 있었던 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대의 민중에게 있어 정치와 권력이 그저 허망하게 피어오를 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던 것처럼 조조로선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세계였다. 그리하여 관우는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불멸이 된다. 조조는 인간의 마음에 자신의 근거를 뒀던 유비가 한나라라는 이름을 잇는 전설이 되고, 하늘을 품으려했던 관우는 중화의 역사 속을 관통하는 관제라는 이름의 신이 되리란 걸 직감한다. 그리고 땅을 쫓았던 자신은 백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아무도 기억 못하게 되리라고 중얼거린다. 그러나 이 부분은 그의 혜안을 빗나간 것, 당대의 틀을 깨뜨리고 살아있는 인간 그 자체에 충실하여 종내는 법가의 괴물이라고도 불리웠던 이 남자의 이야기는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아직 땅을 밟고 사는 이상,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흡사 그가 살았던 시대에 받았던 상반된 평가들 그대로가 변하지 않고 천년을 뛰어넘어온 것처럼,

지속중인 그의 존재에 대한 논란은 인간의 역사란, 시대와 사회란 그토록 변한 게 없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조조는 훌쩍 와서 평생을 한 세대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인간이라는 생물이 감각으로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추구하고선 왔을 때처럼 훌쩍 떠나버렸다. 남은 것은 이름과 전설과 논란, 곧 우리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의 몫. [창천항로]는 그 해야할 몫에 더없이 충실했다. 이 얼마나 조조다운 것이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구루이 1
야마구치 타카유키 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저 기호와도 같은 제목 [시구루이]의 뜻은 다음과 같다.

'제목의 [시구루이]는 무사도를 체현했다고 얘기되는 서적 [하가쿠레]의 1절,

武士道は死狂ひなり。一人の殺害を数十人して仕かぬるもの。(무사도란 죽음에 미쳐있음이라. 한사람을 죽이는데 수십명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것.)

에서 유래한다.'

저 문장에서 [시구루이]의 제목이 된 부분이 死狂ひ. 그대로 발음하면 시구루히이지만 시구루이라 읽고, '죽음에 미친'이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에도 칸에이 6년에 스루가성에서 있었던 진검 어전시합은 후에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명령에 의해 시합을 주관했던 스루가성 성주이자 바로 쇼군의 동생이었던 도쿠나가 타다나가의 목이 잘리는 파국을 가져왔던 사건이었다. 타다나가는 광인으로 알려졌으며 전해지는 민담이나 야사에선 그의 잔혹한 행동들이 심심찮게 언급되곤 했다. 그러나 정사에는 단 한 줄로만 짤막하게 기재된 스루가성의 어전시합과 성주에게 내려진 할복이라는 기록 속에서 작가 난조 노리오는 상상의 힘을 더해 태평성대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잔혹극을 재창조했다. 그리고 30여 페이지 남짓한 그 이야기는 또다른 작가 야마구치 다카유키에 의해 더 구체화되어 노골적인 폭력의 순간들을 구현해낸다.

이야기의 시작은 스루가성의 어전시합장. 한 광인이 열어제낀 광기서린 축제는 전국시대가 끝나고 열린 평화 속에서 그들이 숨겨왔던 야수성과 그에 충실히 따르는 거침없는 폭력을 통해 악마적인 삶을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시합에 참여하는 무사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목도가 아닌 진검. 그리고 그 첫시합에서 우리는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발달된 등근육을 가진 외팔이 검객과 귀기 어린 맹인 검객의 대치를 보게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길게, 그 둘의 과거를 향해 되돌아간다. 그것은 시대가 서있던 자리 아래에 무엇이 깔려있는지를 되묻는 것과도 같다. 기이한 운명과 곡해, 그리고 광인들로 이뤄진 그 무사들의 길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영광된 무사도의 길이란 없다. 수십명을 감당해내는 무사도의 정신을 통해 봉건주의적 환상을 뒷받침하는 저 [하가쿠레]의 1절에서 [시구루이]가 충실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죽음에 미쳐있음'이다. 봉건주의의 기반을 받치는 무사란 아주 간단하게 정의된다. '소수의 사디스트 아래에 선 마조히스트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찢기고 부서지며 서로를 죽인다. 상하관계에 의한 명령에 의해서, 억압된 욕망이 피어나고 증오가 샘솟게된다. 그 견고한 틀을 헝클어뜨리려는 이는 철저하게 망가지고 배제된다. 그리고 또다른 곳에 욕망과 증오가 독버섯처럼 자리잡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건 군신간의 충절이라는 허울을 지탱시켜주는 지극히 사적인 욕망과 폭력의 쾌감이다. 애초에 어전시합 자체가 주군의 광기에 의해 치러지는 것이며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상대를 향한 집착에서 비롯된 묵은 복수심의 교차뿐. 그렇기 때문에 더없이 지독한 [시구루이]의 표현과 오락성에의 충실함은 결과적으로는 무사도의 환상에 대한 비웃음과 고어적 쾌감에 대한 작가적 집착이라는 두가지 포지션을 가지게 된다.

독자는 1권의 컬러페이지 첫 장을 본 순간, 여기서는 무엇이든 다 보여질 수 있다는 걸 깨닫을 수 있을 것이다. 남자의 특징을 잔혹에서 찾는다는 원작자의 말을 충실히 따르는 [시구루이]는 말그대로 지독하게 마초적이며 지독하게 잔혹하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기운 속에서 칼이 허공에 휘둘러지고 공포, 긴장, 불안에 휩싸인 인물들의 표정과 먼저 베기 위해서든 피하기 위해서든 잔뜩 힘이 들어간 근육의 클로즈업은 사지절단의 결과를 기다리기 직전에 미리 겪어야 하는 스펙터클들이다.

[시구루이]가 그 모든 잔혹들에 대한 노골적인 매혹임을 부정하긴 힘들다. 작가의 집요한 연출 속에 배치된 인간의 욕망과 폭력성을 드러내는 그 모든 상황들 속에서, 휘둘러지는 칼과 베이는 순간, 그리고 뒤이어 튀어나오는 피와 뼈, 장기의 세례를 비추는 과정에는 어떠한 거리낌도 없다. 그러면서도 [시구루이]는 복수극이라는 원초적인 플롯의 힘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이 핏물 고인 이야기는 그 선정성과 거침없음으로 인해 이 장르의 독자들을 완벽하게 흥분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시구루이]가 오락물로서 최고의 쾌감을 전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비위 약한 독자의 속을 뒤집어놓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 모쪼록 주의하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사실 동화의 세계란 본디 어른들의 세계와 밀접하게 닿아있다. 아니, 실은 현재 읽히고 있는 대부분의 동화들이 처음엔 동화라는 이름이 붙은 이야기가 아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나 [신데렐라]의 원형이 피어나던 시기의 세계에서 아이들의 자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저 달콤한 이야기들의 원류는 대부분 폭력과 욕망으로 뒤덮힌 어른들의 잔혹한 우화였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거쳐 비로소 동화의 체계가 잡히고 시장이 생기기 시작한 때가 아이들의 노동착취가 극심하게 이뤄졌던 19세기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판의 미로]는 오필리아의 환상 속에서 펼쳐지는 동화와 스페인 내전이라는 현실의 대비를 통해 그러한 동화의 원류와 진화 상태를 해부해보이면서 동화의 외피 속에 감춰져 있던 추한 뼈까지 통째로 드러낸다.

 

2.  얼핏 영화는 성장을 거부하는 아이의 전통적인 환타지를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이 영화가 마치 오필리아의 의식 속처럼 동화적 사고관을 따른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볼 때도 해당된다. 마치 동화 속에서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선(게릴라)과 악(정부군)으로 분명하게 단면화되어 있다. 환상의 세계를 꿈꾸는 오필리아는 나무를 죽이는 독두꺼비나 아이들을 잡아먹는 식인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들과 상대해야 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보는 내내 오필리아가 현실 속에서 게릴라에게 가거나, 임무를 완수하여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해도 그녀가 행복해질 것 같진 않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스페인 내전의 결과를 알고 있으며 그 결과에서 비롯된 감독의 시선은 게릴라들을 지치고 무력하게만 보이게 만든다. 판은 어떤가. 요정은 곤충으로 형상화되서 돌아다니고(기예르모 델 토로가 [미믹]을 통해 바퀴벌레가 얼마나 무시무시할 수 있는지 알려줬던 감독이란 걸 상기해보자), 미로를 지키는 판은 온전히 오필리아의 편이라고 여기기엔 거부감이 돋을 정도로 기괴하다. 따라서 여기서의 환타지는 그리 아름답고 즐거운 일이 아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환상과 현실의 빈번한 교차편집을 통해 구분되어 있는 듯한 두 세계가 궁극적으로는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실상 오필리아가 겪어야 하는 환상 속 모험은 전쟁 속에서 언제 강간당하거나 죽을지 모르는(영화의 분위기로 봐선 농담이 아니다) 현실의 지옥과 별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불안불안하다. 두꺼비와 벌레들은 그녀를 더럽히고, 식인귀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게 만든다. [판의 미로]에서 환타지와 현실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4. 그러나 그녀는 현실에서와는 달리 환상 속에서는 어떻게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자 한다. 어째서?

 

5. 현실은 이미 그녀에게 가망이 없다. 아버지는 죽었고 그녀는 시골 외딴 곳에서 파시스트적 폭력을 휘두르는 새아버지와 함께 지내야한다. 그녀의 어머니조차,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새아버지와 결혼했으며 애까지 밴 상태다. 처음부터 그녀는 철저하게 외토리다. 그런 그녀에게 '진짜' 아버지와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지하왕국이라는 목적은 절박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서든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현실과 그래도 노력하면 뭔가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환상. 이 지독한 양자택일 속에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환상의 세계에 매달리게 된다. 오필리아는 현실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에 관심이 없다. 그녀는 거의 마지막까지 오직 달아나고파 한다. 그래서 두번째 모험에서 나오는 아이들을 잡아먹는 식인귀가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다. 절제를 못하는 오필리아의 '인간적' 욕망을 확인함으로써 몸을 움직이고 눈을 뜨게 되는 식인귀는 전장에서 아이들을 덮치는 무고한 죽음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다.

 

6. 그러나 그녀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 환상의 달콤한 제의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환상을 통해 현실을 넘어서려던 그녀가 마침내 얻어낸 의지의 승리, 진정한 천국으로의 발걸음이다.

 

7.

에피소드 자체가 메르헨의 패러디였던 [베르세르크] 16권 단죄편의 마지막화를 불러오는 것이 어떤 대답이 될 수도 있겠다. 자신을 괴롭히는 현실에서 달아나려고 하는 질에게 현실과 다를 바 없는, 그보다 더 독한 지옥을 보여준 다음 가츠는 말한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8.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는 오필리아의 얼굴에서 시작하여 지하왕국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레이션은 영화의 마지막을 통해 영화 전체를 고착된 시간대의 윤회하는 구조로 묶어버리고 환상과 현실의 구분에 대한 호접몽적인 비전을 음울하게 보여주며 영화를 맺는다. 반복과 윤회, 영원히 공주를 기다리는 왕의 이야기, 부서진 시계. 마치 오래된 동화, 혹은 원형의 미로처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가본드 2006-12-08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못봤는데 대부분의 평론이 단지 '어른들의 동화'라고만 언급하고 말아버리는데 역시 찾아온 보람이 있네요. 예고편으로만 본 '판'의 모습이 '미믹'감독의 연출이라니.. 꼭 보고싶네요 ㅋ

hallonin 2006-12-08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파티드보다 잔인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디파티드는 의외로 피가 별로 안 나왔던 듯.

배가본드 2006-12-10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아직 보지는 않았습니다(핑계거리인 기말시험이라)..끝나면 볼 참인데, 묘하게.. 제브라맨이 생각나는..ㅎ

hallonin 2006-12-1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제브라맨이?-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