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는 이상하다. 그 모든 넘쳐나는 이미지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동선은 굳어있고 몽타주를 이끌어내기 위한 촬영법은 같은 시퀀스에서의 약간씩 달라진 연기와 동세를 찍는 미묘한 반복을 계속하며 이야기는 결정적으로 공허하다.
어떤 매체에선 이것이 천박한 중화주의의 절정이라고 말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장이모우는 이 비싸게 만든 영화가 헐리웃 블럭버스터에 맞서는 중국적 블럭버스터 기능성의 일례임을 인터뷰 때마다 일깨워줬다. 원제가 '황금갑'인 의미와 더불어 어떤 이들은 이 영화의 결론이 민중의 실패를 상징한다고 지적한다. 이건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영화 안에서 쓰이는 국화가 저항의 상징인 것도 그렇거니와 '황금갑'이 민중봉기를 소재로 한 시의 한구절이란 것, 그리고 황후의 반란이 그런 요소들에 대응된다고 밝힌 감독의 말을 감안해보자면 이 영화의 결말은 분명 민중봉기의 실패를 향하고 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영화에서 우리가 얻는 심적 요소는 결국 근친상간으로 이뤄진 욕망관계와 권력다툼이 최고조로 달했을 때 드러나는 왕실의 추악함과 그로 인해 느끼게 되는 불쾌감이다. 그 모든 양식적인 화려함과 쏟아부은 돈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공허함은 영화외적으로 [황후화]에 대한 지지를 끊임없이 유보하게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중국공산당이 돈을 퍼부었지만 대내외 선전물이기가 힘든 이 영화에 대해 불쾌해하는 이유이며 '관객을 조롱하는 허무맹랑한 상업영화가 아니고 형식만을 강조한 중국식 블록버스터의 극단으로 치닫지도 않았지만 웬지 관객들과의 욕망의 접합에서 실패하고 있다' 는 마이데일리의 지적에 부합되는 부분이다.
어째서 이 눈요깃거리가 확실한 영화는 양쪽에서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걸까. 그것은 이 장대한 공상극과도 같은 영화가 장이모우 자신의 지극히 현실적이고도 개인적인 영화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중요한 걸 꼽자면 주윤발이 연기한 황제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주윤발을 황제로 정해놓고 썼다. 그가 맡은 황제는 양면성을 지닌 인물이다. 권력과 권위를 한손에 쥐었지만, 한 가정의 아버지와 남편으로서는 실패한 인물이다. 그 때문에 가장 고독한 인물이다. 영화 후반부를 보면 실패자로서의 그의 모습이 뻔히 드러나는데도 그는 마치 혼자서만 자기가 뭔가 성공한 것처럼 가장한다.'
-화려함으로 비극의 의미가 더 커지지 않을까, <황후花> 감독 장이모
[씨네21 2007-01-31 08:00]
여기서 들려주는 실패한 아버지로서의 황제의 모습은 그가 전작 [천리주단기]를 찍은 후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자신에 대해 술회한 발언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즉, [황후화]에서의 황제는 장이모우 자신의 아우라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환상극이었던 [천리주단기]를 찍은 후에 다시 맡게 된, 그의 표현에 따르면 '전략적 선택의 노선'인 블럭버스터에서 그는 실패한 아버지인 자신을 비춘다. 그리고 실패한 아버지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 영화의 그런 태도가 정치적으로는, 역시나 폭군으로서 경멸 받는 입장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를 위해 살아서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영웅]의 전체주의적 성격으로 승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모든 찬란한 이미지들과 건축적인 화려함만을 중독적으로 추구한 결과로 [황후화]는 궁극적인 불쾌감과 허무를 던져준다. 이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기능성'에 대해서 쉬이 판단내리기 어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