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63502

매너리스트님 서재에서 본 페이퍼에, 2년 전 즈음에 표지만 휙 하고 지나갔던 책이 올라와 있었다. 고도화되는 시스템 속에서 고착되어가는 계층에 대한 대강의 내용은 매너리스트님 페이퍼에서 확인할 수 있거니와, 내가 생각해오던 것과도 일치하는 바라 기회가 되면 한 번 잡아둬야겠다는 생각이다.
뭐 지표 들먹일 것까지도 없이 간단하게, 얼마 전까지 매달 기록갱신을 했던 수출실적과 반비례하여 바닥을 치는 내수경기는 점점 많은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도록 깔끔하게 고착되어가는 사회를 상징하는 것 같다(대학생 알바비는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잉여인간들은 뭘 해야 하는 걸까.
기술의 발달은 그런 잉여인간들에게도 삶이 꽤 살만하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준다. 텔레비전, 핸드폰, DVD, MP3, 인터넷, 게임 등등. 전자파세대들에게 있어서 복지사회의 달콤한 면모가 기술적 발달에 힘입어 모습을 드러낸 21세기는 절망마저 쉽게 느낄 수 없게 만든다. 심지어 그것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존재의 지속까지 연장시킬 수 있다. 나조차도 내일 당장 굶어죽을진 모르겠지만 쉼표 하나라도 찍힌 페이퍼를 올림으로써 가상의 내 존재를 지속시킬 수 있다. 채팅방을 열어놓은채 죽은지 2주 만에 발견된 남자의 이야기도 기억해보자. 이렇듯 관성화된 경험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추구하는 건가? 하루하루 똥만 만드는 기계? 어쩌면 그보단 실용적일 수도 있다. 그 쓸모있는 삶을 다룬 영화가 이미 나와있다.

아무리 쓸모없는 인간이라도 전지로 쓰이는 세계라면 말이다. [매트릭스 리로디드]는 시리즈에서 가장 큰 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즉슨, 네오가 똥빠지게 구하려고 애썼던 시온이란 공간이 실은 지금까지 수차례나 멸망과 재생을 부활한 공간이라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프로그램에 예정된 바였다는 것. 그 저항들마저 시스템의 과부하를 적절하게 조절하기 위한 미리 짜여진 장치였다는 설정은 완벽하게 자리가 잡힌 시스템사회의 출중한 면모를 보여준다. 뭐 그게 싫으면 그냥 1999년에서 머무르는 것도 한 방법으로 제시가 됐었고. 복잡한 프로세스들의 수라장을 거쳐서 막상 판단하게 될 때가 되면 대개 우리 손에 쥐어지는 것은 빨간약, 아니면 파란약뿐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매트릭스 레볼루션]의 결과는 겨우겨우 살아가는 인간들의 타협점이다. 저항이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거였고 인간은 시스템의 오류를 치료해주는 댓가로 가까스로 생존권만을 부여받게 된다. 이건 해방도 뭣도 아니다. 여전히 수퍼컴퓨터는 현실과 가상 양쪽을 지배하는 지배자이며 법칙의 창조자다. 이 양반을 좀 잔혹하지만 그런데로 먹고 살 환경도 마련해주신 잔혹자비스러운 신으로 돌려버리면 좋겠건만, [매트릭스] 속 인물들은 종교색 가득한 이름들에도 불구하고 대개 무신론자 아니면 불가지론자인 듯 하다.
그렇다면 그 모든 무기력증과 더불어 지독한 절망감에 다다렀을 때, 눈에 보이게 된 모든 것을 빨아먹는 시스템에 맞서는 방법은 무엇인가? 일단 자살이 있다. 썩 간편하진 않을테고 때때로 더럽게 아플지도 모르겠으며 어느 종파의 말대로 그 뒤엔 지옥불 속에서 자살한 영혼만 따로 모아둬선 삼지창으로 꾹꾹 찔러대며 즐거워하는 새디스트들의 형벌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건전지 하나는 확실하게 부숴버릴 수 있다.
두번째는 적극적인 니트가 되는 거다. 세상에 할 것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으며 염증만 나는데 죽기는 싫다면 자연스럽게 니트족이 될 수 있다. 고도화되는 사회에서 스스로 버림받음으로써 니트족은 저항의 상징이 된다. 철저하게 낭비만 하면서 사는 건 고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스템 입장에선 눈엣가시일 터. 어떤 사회종속적인 시도도 에너지로 흡수해버리는 괴수 앞에서 절망감을 느낀 이들이 선택할 이 길은 의외로 고난의 가시밭일 수 있다(가족들의 짜증, 자학증세, 금전적 위기 등등). 그러나 자신이 택한 길이 인간 해방을 추구하는 일이란 걸 자각한다면 조금은 그 길에 대한 위로가 될 것이다. 물론 불가항력인 이들도 많겠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과부하 방지 차원에서의 적정한 수순이라면? 수수께끼인 레밍스의 떼자살에 대한 수많은 관측들처럼.
이렇듯 미친 과학자가 찔러대는 통 속의 뇌가 된 이라면, 영원히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