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비교적' 정직하다. 달리면, 꾸준히 오래 달리면 허파와 폐가 강해진다. 그 발전상이 즐겁다.

 

올림픽공원은 조깅하기에 좋다. 그곳엔 많은 웰빙족과 한강변보단 적은 수의 양아치 미소녀들과 푹신한 조깅전용코스와 많은 나무들이 있다. 밤이 되면 시원한 공기가 몸전체를 물들여준다.

 

오늘은 GMF의 첫날이었다. 내가 달려서 울림의 주변부에 도착했을 때, 멀찍이 보호선 너머 공연장에선 델리스파이스가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차우차우"였다.

 

기이한 드라마. 의미의 우연이 만들어낸 현장. 일렉기타의 소리가 울려퍼지는 동안, 난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핸드폰 안에선 제한시간 1분 5초가 끝날 때까지 신호음만 갈 뿐이었다.

이윽고 환청에 대한 강박적인 매혹을 감상적으로 표현한 델리스파이스의 저 유명한 곡이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쏟아지고 있었다. 앵콜은 이미 치러진 것이었던가? 조명이 거둬지는 무대 위의 나른함, 몰려서 움직이는 군중의 여운. 공연의 끝.

 

나는 다시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현실은 좀체로 드라마처럼 굴러가지 않는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가 2007-10-07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노래를 들었으면 날 떠올렸어야 하는거 아닌가..라지만 수신인 필경 나와 성별이 다른 인류였겠지? 델리 공연 안하나.. 피앙세랑 보러 가야 되는데;;

hallonin 2007-10-07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 이젠 결혼을 코앞에 두고 아주 배가 부른 놈이.... GMF 오늘도 하니까 거기나 놀러가지 그래. 라인업 괜찮다.
 

소박하지만 날카롭게, 일종의 생태주의자이자 조용한 자연운동가였던 미야자와 겐지의 오래된 작품들을 리믹스한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이 자잘한 단편들을 읽기에 앞서 미야자와 겐지라는 "원본"을 읽지 않았다고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된다.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보여주려 하는 세계는 미야자와 겐지라는 핑계를 배경에 두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몰아부친 과격한 현대판 데카메론이다. 따라서, 해석의 풍요로움에 있어선 다소 떨어질 망정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견지하는 시의성과 소설로서의 기능은 '현재'의 우리에게 별 무리없이 강력하게 다가온다. 

파괴된 시대의 파괴된 인간이었으며 동시에 그 부서진 조각들을 무기로 자신의 영역을 성공적으로 확점한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만든 24개의 미니멀한 과격극들은 일견 겐지의 단편들이 지향했던 바를 단순하고 안이한 방법론으로 뒤집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작가 특유의 키치적 악의를 바탕으로 쉽고 간결한 언어들로 쓰여진 동화적 인상들과 그 기이한 부조화가 현대인들, 특히 일본이라는 '무너진 왕국'이 현재시점에서 겪어야 하는 복잡다단한 악몽들을 쉬지 않고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어떤 종류의 계몽주의적 노정을 걸어간다. 그 흐름을 관철하는 상상력의 견지 또한 결코 뻔한 것이 아닌 것이라, 이 모든 잡탕과 난장에 가까운 뒤섞임이 또한 모종의 조화로운 불협화음을 구성하는 것은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차용한 겐지라는 이름, 그리고 겐이치로가 가진 작가적 능력에서 근거하는 바인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꽤 쓸만하고 정서적으로도 유익한 동화책 하나를 얻게 됐다.

국내에 소개된 어느 작품들이나 극단적인 파편화 필터를 통과한 유희덩어리로서의 소설로써 보여졌던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보다 친절하게 다가온다는 점에서의 메리트도 있어서, 역시 즐거웠던 읽기의 경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두개가 최고였음. 슈베르트의 저 유명한 가곡집은 마치 음이 하나하나 살아서 튕겨오르는 느낌. 정명훈이 해석한 쇼스타코비치는 가차없는 폭풍 그 자체였다. 물론 오천만원이 넘어가는 아센도의 시스템M 스피커와 천만원 넘어가는 ASR 앰프의 위력 또한 빌린 바였겠지만.

 

그리고....

 

 

거덜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림스키 2008-09-0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올리신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cd 소장중이신가요?

저 음반이 한스젠더가 편곡한 곡으로 이루어진 cd맞나요? 아니면 1번트랙만 한스젠더 편곡 버전인가요??
겨울나그네를 한스젠더가 편곡한버전 cd찾고 있거든요..

hallonin 2008-09-06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장중입니다. 찾으시는 앨범이 저게 맞는 거 같습니다.
 

2001년, 베르디의 <아이다> 지휘 도중 3막째에 심장마비로 타계한 주세페 시노폴리가 필하모니아오케스트라와 함께 1983년에 녹음한, 슈베르트의 '미완성'의 걸작품들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이 앨범이 오늘 아침 집밖을 나서는데 우체국 택배편으로 볼프람 후쉬케, MD.45와 함께 성급하게 날아왔다. 그러니 가방 속에 덜렁덜렁 들어가있는 상태. 그러나....

 

앉아있는 곳은 소리를 다루는 자린데 아무 것도 틀어놓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곳은 우연히 찾아냈다.

언제나처럼.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곳은 또한 우리 동네의 어느 부분이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집에서 걸어서 고작 20분 거리인, 내가 몰랐던 장소.

 

중국음식을 파는 가겔 들어가면 묘한 냄새가 난다. 향신료와 차잎내음, 밀가루냄새가 섞여서 만들어진 것 같은, 중국음식을 파는 가게 특유의 무엇.

좋아 보자. 좁디좁다. 땅콩과 고춧가루와 뭔가 알아볼 수 없는 것을 마구 섞어놓은 비닐 포장 안주(추정), 냉동 만두, 차잎, 향신료 더미, 월병, 냉동 양고기, 알 수 없는 밀가루 음식들, 중국맥주. 고량주, 맥주, 맥주. 오 좋아. 가게 안의 물건들은 대개 건류 아니면 냉장류였다. 예상했던 것처럼.

 

내가 도착하기 전 와 있던 요란스러운, 어눌한 한국어로 증명되는 조선족인 듯한 이들의 소란스러움이 들려온다. 그들은 그들이 구입한 물품을 끊임없는 수다 속에서 놓았다 뺐다 더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주인 아줌마는 약간의 피로를 동반한, 상황에 아주 익숙한 얼굴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구입한 물건은 두둑했거든. 술 몇 병과 월병, 그리고 선물용 종이봉투를 잔뜩 채운 것들.

 

어렸을 적 어머니의 손을 따라 명동을 다닐 때, 어머니는 나를 곧잘 중국 과자와 음식을 파는 가게로 데려가곤 했다. 월병들, 튀김과자들, 그리고 냄새. 그 냄새만큼은, 어딜 가서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수 년 전에 갔던 인천 차이나타운의 가게에서도 맡았던 그 냄새.

 

맥주. 칭따오 맥주는 캔이 1500원 610밀리리터 병이 2000원. 비싼 가격이 아녔다. 이마트에서의 가격과 비교하면 양적으로 볼 때 싼 편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하얼빈 맥주. 그리고 3000원 짜리 월병.

월병은 튀김밀가루 안에 땅콩과 잣과 해바라기씨, 건포도, 젤리와 그외에 달콤한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하얼빈 맥주는 그지같은 칭따오 맥주보다 훨씬 좋았다. 더없이 깔끔하고, 뒤에 부담없이 살짝 남는 맥아의 텁텁함.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 글은 그 맥주를 마시며 적고 있는 중이다.

 

위안을 구하라. 뇌 속에 담겨있는 신에게. 복부에 차오른 포만감과 머릿 속을 아리는 기이한 행복. 찌릿지릿하게 뒤통수가 울려온다. 붉게 달아오른 배때지와 늘어진 성기와 쳐진 눈, 기억과 있을지 없을지 모를 염병할 미래를 위하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