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날카롭게, 일종의 생태주의자이자 조용한 자연운동가였던 미야자와 겐지의 오래된 작품들을 리믹스한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이 자잘한 단편들을 읽기에 앞서 미야자와 겐지라는 "원본"을 읽지 않았다고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된다.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보여주려 하는 세계는 미야자와 겐지라는 핑계를 배경에 두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몰아부친 과격한 현대판 데카메론이다. 따라서, 해석의 풍요로움에 있어선 다소 떨어질 망정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견지하는 시의성과 소설로서의 기능은 '현재'의 우리에게 별 무리없이 강력하게 다가온다. 

파괴된 시대의 파괴된 인간이었으며 동시에 그 부서진 조각들을 무기로 자신의 영역을 성공적으로 확점한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만든 24개의 미니멀한 과격극들은 일견 겐지의 단편들이 지향했던 바를 단순하고 안이한 방법론으로 뒤집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작가 특유의 키치적 악의를 바탕으로 쉽고 간결한 언어들로 쓰여진 동화적 인상들과 그 기이한 부조화가 현대인들, 특히 일본이라는 '무너진 왕국'이 현재시점에서 겪어야 하는 복잡다단한 악몽들을 쉬지 않고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어떤 종류의 계몽주의적 노정을 걸어간다. 그 흐름을 관철하는 상상력의 견지 또한 결코 뻔한 것이 아닌 것이라, 이 모든 잡탕과 난장에 가까운 뒤섞임이 또한 모종의 조화로운 불협화음을 구성하는 것은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차용한 겐지라는 이름, 그리고 겐이치로가 가진 작가적 능력에서 근거하는 바인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꽤 쓸만하고 정서적으로도 유익한 동화책 하나를 얻게 됐다.

국내에 소개된 어느 작품들이나 극단적인 파편화 필터를 통과한 유희덩어리로서의 소설로써 보여졌던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보다 친절하게 다가온다는 점에서의 메리트도 있어서, 역시 즐거웠던 읽기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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