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절대 정식으로 들어올 수 없는 영화-만화' 하는 딱지가 무슨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이 나라의 검열제도에 대한 비웃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난 이걸 봤는데 너희들은 못봤지롱~ 용용~'하는 듯한 또하나의 특권계급적 차별의 느낌이 강했던 그 리스트들의 대부분은 이 나라의 고매한 검열위원들끼리만 신나게 돌려 보고선 과도한 섹스와 폭력이 보여진다고 판단해버린 것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런데 뭐, 세월은 흘렀고 인터넷 케이블이 세계에서 가장 다닥다닥 깔린 나라가 되고 그럭저럭 의식적으로도 개방도 되고 하니 그 리스트에 올라있었던 물건들은 하나씩 정식으로 수입되거나 그도 못하면 공유 프로그램을 통해 안방에서 부드러운 차 한 잔과 함께 [네크로맨틱]을 감상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웬만한 건 거진 정식수입이 되는 이 시점에서 아직껏 '글쎄..... 이거 제대로 볼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라고 얘기할 수 있는 작품은 까탈스러운 제작조건을 가진(따라서 당연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시로 마사무네의 코믹스나 [사탄탱고] 같은 매니아적 인기마저 없는 수면제 영화들이나 잘만킹이 90년대에 제작에만 참여했던 그 수많은 안 팔린 에로영화들 같은, 한마디로 돈이 안될 것 같은 작품들 아니면 [기니어 피그]나 [쇼군의 사디즘]처럼 갈데까지 갔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작품들의 두가지 종류로 국한되게 되었다. [고로시야 이치]는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선 미이케 다카시의 [이치 더 킬러]로 먼저 알려진 야마모토 히데오의 [고로시야 이치]는 첫장면부터 끝까지 온통 하드고어적 이미지로 넘치고 있다. 파열, 분쇄, 관통, 절단 등 신체에 가하는 폭력적 이미지들이 쉴새 없이 펼쳐지는 이 작품은 그 가학적 취향 탓에 자연스러운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로맨스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SM적 방법론을 빌어 죽음과 바로 맞닿은 상태에서 펼쳐지는 그 밥맛 떨어지는 애절함 덕분이다.

제정신을 갖춘 이는 한 명도 안 나오는 이 작품의 메인인 이치는 사춘기 시절에 겪었던 왕따와 가학행위 덕에 무의식 속에서 SM적 인식을 극대화시킨 살인을 매개로 하여 상대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치도 없이 자기정당화를 통한 철저한 이기심으로 자신의 욕구만을 충족시키는 일종의 극단적인 돔이다. 그는 이 모든 사건의 주모자인 정체불명의 노인에게 정신적으로 구속된 상태에서 의뢰받은 살인을 저지르는 일종의 은둔고수기도 하다. 그런 반면 그를 쫓는 카기하라는 조직의 리더이면서 뼛속까지 마조히스트인 동시에 자신에 대한 자학적 자극을 충족 못시키는 이에겐 더없이 잔인한 인물이다. 이치에게 살해당한 두목의 흔적을 찾아 이치 일당을 쫓던 카기하라는 이치가 벌인 살인현장에서 자신이 바라던 극한의 가학적 의식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절단되고 부숴져 죽기를 소망하면서 강박적으로 그를 뒤쫓는다. 이 순간부터 쫓는 자와 쫓기는 자, 힘있는 자와 없는 자의 관계는 역전되고(마치 SM플레이에서처럼) 마침내 순정남 카기하라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깨달음, 혹은 극한의 사랑(...)을 맛보게 된다. 이치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와 야쿠자 맨션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음모, 그리고 카기하라의 맛이 간 순정과 그 못잖은 나머지 패거리들의 지랄맞은 행동거지가 묘사되는 네 축으로 진행되는 이 SM무협만화는 끝으로 갈 때까지 쉴 생각을 안 한다.


...아름다운가?-_-

SM이라는 의식 세계에 대한 충실한 고찰을 무협만화적 양식에 붙여서 만들어낸 [고로시야 이치]는 분명 불쾌하지만 그 지경이 되가면서까지 폭력과 쾌락에 중독되는 이들에 대한 지독한 묘사로 결국에는 밥맛없는 로맨스의 거룩한 완성을 이룩한다.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그 처절함만은 인정할 수밖에.

 

 

 

 

야마모토 히데오의 신작 [호문쿨루스]. 아직 연재중이며 당연하지만 [고로시야 이치]보다는 수위가 훨씬 낮다. 발매되면 주간 판매량 탑텐에서 왔다갔다 하는 걸 보면 이젠 메이저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전력을 보아선 썩 안심할 수만도 없는 작품-_- 점점 뭔가 벌어지려 하는 느낌. 역시나 살짝 불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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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8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5-05-19 0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건 워낙 확 갈긴 것이었기 때문에.... 뭐 언젠가는 나오겠죠.
 


이런 것도 나왔다.....


이젠 알 사람은 다 알만한 그 물건. 이미 일본에선 저런 동인지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축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지금은 인기 블로그인 루리코님의 네이버 블로그에서 소개됐을 때부터다.

http://blog.naver.com/pangsuni.do

기존의 야오이물이 보여주는 맹목적인 왕자병 지향의 캐릭터들은 치우고 근육스럽고 남성미 넘치는 진골 게이 사내들의 개념이 상실된 환상성을 동반한 낯뜨거운 농탕질을 그대로 그려내어 신선한 충격을 가져왔던 작품.... 다음은 관련 네트웍 및 문제의 그 물건 '쿠소미소 테크닉'의 원본 스캔이 제공되는 웹페이지.

 

주의 : 법적으로 미성년자 및 동성애 혐오자에게는 아래 해당 사이트의 링크에 대한 클릭행위에 대해 정치적으로 반대를 뜻하는 바이며 향후 벌어질 피해사항에 대해선 당사자 본인의 의지가 담긴 손가락에 그 책임이 있다는 걸 인정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gaty.hp.infoseek.co.jp/kusomiso.html

뭐, 그런 것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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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5-05-15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그런 거였군요. (흑흑)

hallonin 2005-05-18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런것입니다....-_-
 

할 수 있는 한 최소한의 스탭만을 동원하여 제작하기로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은 그 특유의 작업방식에 따르는 묘한 아마추어리즘의 이미지를 거두기가 힘들다. 그런데다 그가 다루는 영원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불러일으키는 시대착오적 아우라는 순수함이라는 키워드로 작업과정이 가지는 아마추어리즘과 공명한다.

그러나 그 모든 매너리티한 인상들을 잠재워버리는 것은 압도적인 이미지의 힘이다. 실제사진에 그래픽 작업을 거친 결과물을 베이스로 하여 만들어내는 풍경들은 그 정적인 이미지 자체로 충분히 매혹적이고 드라마틱하다. 그래서 다소 어설프게 만들어진 인간 캐릭터들의 연기보다 보는 이의 머릿속을 휘감아버리는 것은 그 풍경들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저녁노을의 아련함과 막 날이 개인 아침의 상쾌함, 오후의 나른함과 들판의 평온함, 지하철 안의 고독한 단면과 도시 뒤쪽 오래된 시공 아파트의 황량한 기억들을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답게 꺼내보인다. 그리고 그 풍경들은 고독과 외로움에 지친 그의 인물들이 운명적으로 가지는 아우라를 증폭시킨다. 그의 이야기가 가지는 환상성만큼이나 그가 가공해낸 세계는 초현실적으로 아름답다. 다만 다음엔 이것만이 미덕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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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1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5-05-11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정리를 모르는 사나이-_-

+소카냥+ 2005-07-16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잘 쓰셨잖아요. >_< 내 리뷰..[OTL] 어쩐지 별의목소리보다는 전해지는 느낌이 흐릿흐릿. 정말 재미있게 봤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조금 실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ㅅ'(뚱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우연하게 보게된 이 표지 하나로 정말 오랜만에 일러스트집을 사고싶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알고보니 [정령사]와 [연]의 작가. 저 [정령사]는 하기와라 카즈시의 영향이 물씬 풍기는 정 안가는 작화로 흐지부지한 이야기를 몇년 동안 질질 끌다가 결말인 4권에서 갑작스럽게 엄청난 작화력을 선보여 기억에 남는 물건이고.... 클램프의 오오카와 나나세와 함께 작업한 [연]은, 대체적으로 좋은 얘기들만 있고 흘끔 본 스타일도 [정령사]와는 상당히 달라서 기대는 가지만 [도쿄바빌론]을 제외하곤 클램프 작품에서 재미를 느껴본 적이 없어서 신용이 안 가거니와 이젠 구해보기도 힘든 물건이 되버렸으니.... 기억해보면 [정령사]의 일러스트나 그가 참여했던 플스판 [봉신연의]의 일러스트는 상당히 맘에 들었던 듯 싶다. 역시 일러스트레이터와 만화가로서의 능력은 차이가 있어....

어디선가 이 작가의 일러스트집으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다고 하는 물건. 암튼 구매목록 상위권에 안착.... 언제일런지는 모른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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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usic.bugs.co.kr/Info/album.asp?cat=Base&menu=m&Album=3638

90년대 말은 소위 엽기라는 키워드가 그 트렌드를 드러내던 시절로, 시대의 흐름에 치열하게 뒤쳐지는 본능을 가진 나로선 비스티 보이스의 뮤직비디오나 홍대 인디씬의 실험적인 시도들에 '엽기'라는 딱지가 붙어서 사람들에게 즐겁게 회자되던 것을 당최 납득할 수가 없었다. 나는 '엽기적이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조차 싫어할 정도였는데 고백하자면 그런 일련의 현상들에 대한 놀람, 혹은 유희적 태도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그 모든 현상들은 즐거운 것이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내 눈엔 그런 것들이 전혀 새롭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 금욕적 태도에 내적인 정당함을 부여해줬다. 그런 류의 세상의 호들갑은 나름대론 진지했던 실험들을 개그콘서트의 한자락으로 실추시키기 일쑤였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들이 엠티비의 방법론으로 흡수된 것처럼 빠르게 주류의 한자락으로 흡수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지겨워서라도 엽기적이란 표현을 안 쓴다.

마키하라 노리유키를 처음 접하게 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는데 이 앨범에 실린 'hungry spider'의 뮤직비디오가 비록 소수의 인구지만 적극적으로 회자될 정도로 대중적 '엽기'의 기준에서 걸출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을 엠티비에서 먼저 접할 수 있었는데 뮤직비디오도 뮤직비디오지만 노래 자체가 가지는 흡입력에 반해버렸다. 생긴 건 고릴라처럼 생겼지만 상당한 미성의 소유자라는 점이 그가 가진 소위 '엽기성'에 가속을 달아준 것이겠지만 그는 스마푸의 '괴물꽃'과 같은 노래들을 만들어낼 정도로 대중적 감각이 탁월한 음악가다. 이 앨범 또한 사탕발림이란 것이 무엇이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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