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명절 날, 할머니집을 가야하는 날이면 영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거기 가면 어른들의 입에서 자행될 자화자찬의 상찬들 때문이었다. 썩 좋은 성적이 아녔던 내 덕에 우리 부모님은 친척들 간에 경쟁적으로 펼쳐지는 자식 자랑대회에 끼어들 계제가 못됐고. 나는 이것저것 친척들 간의 알력이 겹쳐진 덕에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아이였다. [성적을 올려주는 초콜릿 가게]는 그런 아이가 겪어야 하는 고민과 그에 대한 극복을 근간의 생활동화풍의 환타지로 채색하여 정석적으로 들려주고 있다. 다만 아이들의 일상 부분이 보여주는 리얼함에 비해서 환타지 부분은 좀 빈약하단 느낌이랄까.

그 후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자면, 나는 내가 상당히 행복한 놈이고 친척 아이들은 의외로 불행한 친구들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뭐 그 시간은 그리 무리없게 흘러가 버렸다.

유영철 사건과 더불어 싸이코패스, 프로파일링, 로버트 K. 레슬러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솟아오른 가운데 아마도 저 유명한 레슬러의 저서를 벤치마킹했다고 할 수 있는 물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문장은 재미없고 서술은 평이하며 새로운 뭔가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도 전근대적이란 평가를 받는 우리네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딜레마가 책으로까지 옮겨 온 결과인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공동저자를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책.

간단하고 담담한 어체로 신변잡기와 소개할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화해내고 마지막에 이르러서 살짝 터지는 감수성, 혹은 소박한 깨달음을 적어낸다. 전형적인 연재식 에세이의 양상이자 문학초보자들을 위한 입문서.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가 쓴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편집자들이 주문한 '읽고나면 책을 구하기 위해 서점으로 가게 만들' 공손함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주 꾸준하게 일관성을 지킨다.

읽기는 꽤 오래 전에 읽었지만 그 때가 수험 때가 아니었던 것이.... 그리 아쉽지만은 않군-_- [꼴찌 동경대 가다]보다 전문적인 측면이나 세밀함이 현저히 떨어지는 데다 다소 중구난방적인 측면이 없잖아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당시로선 무척이나 참신하고, 그리고 제대로 웃기기도 했던 만화. 여기 나와있는 수험법대로 공부했다가는 어떤 피해를 볼지 모른다. 나날이 바뀌는 수험방식에 비추어 이 만화의 출판 연대가 1990년대 후반이란 점에서, 이미 유통기한은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엄하게 호화로운 종이질에 두께에 가격이 당최 이해가 안 가는 만화. 사실 출판된 이유도 잘 모르겠다.

의룡 9권은 작가가 장기연재의 태세를 갖추었음을 천명한 포인트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흥미진진.

[지어스]는 나를 환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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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5-10-1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 카테고리의 제목은 무슨 의미에요?

hallonin 2005-10-11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대조의 미가 있는 듯 해서. 그냥 별 의미는 없고 제목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헐.
 



http://www.blood.tv/

오시이 마모루가 자신의 오리지날 프로젝트였던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에 대하여 애착이 꽤 강했던 모양이다. 당시 플레이 스테이션2 발표와 더불어 코믹스-극장판 애니-소설-게임으로까지 이어졌던 다매체 동시공략이 그리 효과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TV판 애니메이션으로, 그것도 무려 4쿨 52화라는 무지막지한 물량전을 감행한다. 당연히 프러덕션 IG의 제작이고 어제가 그 1화의 방영일.

뭐, 일러스트만 보면 알겠지만 극장판 애니에서 테라다 카츠야의 선굵고 입술 두꺼웠던 디자인이 보여줬던 사야는 어따 팔아치웠는지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에나 나올 법한 여자애 하나가 일본도를 들고 서 있고.... 그 뒤엔 첼로 켜는 고슈인가?-_- 암튼 웨이브 진 장발을 펄럭거리며 첼로나 켜고 앉아있는 게 오버센스의 매너리즘이란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양반이 한 명 보인다. 그외에도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에 나올 법한 캐릭터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그리고 동시에 세개 만화잡지에서 [블러드 플러스] 본편 및 외전 코믹판이 연재될 예정.

일단 1화를 본 이들의 소감은 그럭저럭~ 이라는 평들. 초반에 기대치에 비해 너무 뻔한 흐름이란 지적들이 있었고, 이후에 립된 버전이 퍼진 다음부턴 지지파가 약간 늘어난 수준,  과연.... 이라면서 말문을 열고 싶었으나 역시, 전작의 다크하고 묵직한 분위기를 원했던 사람은 일단 접고 들어가야 할 듯. 개인적으론 일본 애니메이션의 고질적 병폐인 '다녀왔어'-'어서와' 패턴을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게 1차 바램이다.

그런데... 음악프러듀스에... 한스짐머가 있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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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에 대해서 간단하게 얘기해보자면 그 영화는 관계에 대한 일종의 환타지였다. 생판 모르는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서로의 기억과 경험을 더듬으면서 차이와 공감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게 된다. 단 하룻밤 동안, 해가 뜨기 전까지. 개인적으로 고백하건데 나는 이 낯선 이와의 관계에 관하여 긍정적인 일탈을 자극하는 영화가, 비록 영화 자체는 보는 둥 마는 둥 설렁설렁 보냈지만 그 컨셉만큼은 더없이 맘에 들었다. 현실은 별로 그렇지 못했지만. 아무튼 낯선 이에 대한 두근거림과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로맨스가 더해진 이 이야기는 당대의 젊은이들의 의식세계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인 동시에 환타지적 낭만성을 담보하는 수다스러운 순애보였다. 더군다나 의도적으로 고안된 결말의 흐릿함은 그 모든 낭만적 가능성의 장치들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그리고 9년이 지났다. 에단 호크는 우마 서먼과 이혼한 이후 비쩍 말라버린 몸과 얼굴이 됐고 줄리 델피 또한 그에 못지 않게 해골바가지가 되서 만나게 됐다. 속편과 후일담을 위하여. [비포선셋]에서 그들은 다시금 수다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좀 다르다. 여기서 낭만은 이미 증발해버린 옛이야기가 되버렸고 그들은 그 남겨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끊임없이 머뭇거린다. 9년 전에는 그들의 만남과 같은 모양의 헤어짐을 동원함으로써 자신들을 맺게 만든 운명에 대한 무모한 실험을 보여줬던 이들은 이번엔 현실의 벽 앞에서 허우적거린다. 환타지는 이미 깨져버린지 오래다. 그래서 제시는 그날의 기억을 재생한 결과물로 먹고 살고, 현실과 다른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셀린느는 아예 그 시간 자체를 경멸하게 됐다.

갑자기 여기서 [로스트 하이웨이]가 떠올랐다. 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춤을 추는 셀린느를 바라보는 제시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 마지막에서, 배경음악이 조빔의 'INSENSATEZ'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영원히 멈춰진 사건, 순환하는 시간, 날아가버린 환상을 먹고 그것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이들. 다시금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미래에 대한 유혹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9년 후에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다시 비포... 어쩌구를 만든다 해도 이것은 일종의 함정이다. 셀린느와 제시는 언제나 그 직전에 멈춰선 이들이었다.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비포 선라이즈] 때보다도 알 수가 없다. 이미 우리는 부숴진 낭만의 파편을 끌어안고 사는 두 주인공이 얼마나 피폐해져버렸는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이 오랜만에 나온 속편이 보여준 결과처럼 그것은 이미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직전에 멈춰서 있기에 이 영화는 스스로가 박제가 되는 길을 피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것은 상당히 잔인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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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8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5-10-09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왕년의 날렸던 때가 생각나신 듯.

2005-10-09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5-10-10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셔라-_-
 

장소는 선릉역 근처의 고깃집이었고 시간은 7시 15분이었다. 나는 그때 리서치 알바를 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저녁 시간대에 있는 이런 종류의 알바는 대개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법이라 본격적인 알바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내 몫을 때울려고 정해진 시간보다 15분 정도 먼저 도착했다.

그런데 가게 안 2층에는 이미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로 차 있었다. 모두 어색해 하는 모습, 그 자리에 있으면 안된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인물들뿐이었다. 그중에서 앞에 놓인 음식에 젓가락을 대는 뻔뻔스러운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세명밖에 없었다. 예상을 벗어난 것은 일번적인 생고기구이 정식을 먹을 때 처럼 우리들 자리 앞엔 정식 반찬들이 놓여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주최측에서 실험용으로 쓰일 술들을 가져와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주최측의 설명이 이어졌다. 술을 마시는 방법과 설문지를 작성하는 방법. 바깥 홀에선 다른 모임에서 온 단체손님들이 욕설을 하느라 시끄럽다. 설문지는 내가 받아본 것중에 가장 간단한 양식이었다. 이윽고 식사 겸 설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리는 생고기와 양파, 마늘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두종류의 술을 각각 두잔씩 마셔야했다. 그 이후엔 몇잔을 마시든 자유였다.

술은 소주였고 하나는 기존의 것, 다른 하나는 신제품인 듯 했다. 그리고 아마도 신제품으로 추정되는 소주는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다소 걸리는 느낌이 드는 기존의 소주완 달리 그 소주는 살짝 달콤한 맛을 내면서 목뒤로 넘어가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곳곳에서 웃는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술이란 재밌는 음식이다. 그리고 그런 현장에 같이 앉아있는 것도 나름대로 재밌는 상황이었다. 그 자리엔 다양한 사람들이 와있었다. 학생, 회사원, 부동산 컨설팅, 구멍가게 사장, 공무원, 회계사 등등의 사람들이 술이 한잔 돌기 시작하자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소개팅을 시작한다. 덕담과 농담들, 직업의 애로사항과 미래에 대한 고민.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들은 재빨리 사라져가고 있었고 그 사이로 오가는 리서치 회사 직원들과 식당 종업원들의 분주함과 함께 취기 어린 사람들의 이야기 경쟁이 시작된다. 재밌는 일이다.

그러다 문득, 어제 길거리에서 본 사건이 생각났다. 팔뚝의 굵기가 어지간히 부실한 내 팔보다는 두배 정도 두껍고 키는 머리통 하나 반쯤이 더 크고 문희준과 비슷한(고백하건데 이 친구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헤어스타일을 한 남자가 차옆에 앉아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바로 앞엔 빼빼 마른 할머니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체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막 119차가 도착하고 있었다. 119에 신고한 아줌마의 말에 따르면 그 남자가,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손자가 길을 가다가 갑자기 할머니의 뒤를 잡고는 마구 흔들어서 넘어뜨리더라는 것이었다. 곧 도착한 경찰은 손자의 얼굴을 보더니 혀를 차면서 왜 자꾸 할머니를 괴롭히느냐고 되물었다. 상습적이었던 것이다. 손자가 앉아있는 자리는 반지하방인 그 가족의 집 앞이었고 부모는 일을 하러 나가서 집에 없었다. 할머니는 심한 관절염으로 인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있었다. 생활고, 스트레스, 친족간의 폭력.

내 앞에 있는 남자는 팔을 다쳤는지 기브스를 하고 와서 제대로 고기도 못 먹고 있었다. 나와 그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 할 얘기도 없었다. 한시간 정도 진행되자 사례금이 담긴 봉투가 각자에게 돌아갔고 그걸 받은 사람은 돌아가도 좋다는 소릴 들었다. 그러나 된장찌개와 밥과 고기가 새로 나오고 있었고 얼굴에서 얼큰하게 홍기가 도는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는 게 아쉬운 듯 명함을 교환하고 얘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가장 먼저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표창원이 쓴 [한국의 연쇄살인]을 읽었다. 거기엔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을 골라서 죽이고 강간하고 분해한 연쇄살인자와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가족들을 차례로 죽인 여자의 이야기가 쓰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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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0-07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재밌는 리서치를 하셨군요..^^ 먹으면서 돈도 받다니... 이런게 젤 부러웠어요..!

hallonin 2005-10-08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네이버 알바에서 리서치나 좌담회 키워드로 검색하면 나올겁니다.
 



http://www.dominomovie.com/

http://www.apple.com/trailers/newline/domino/trailer_2/domino_large.html

정신없게 흘러가는 예고편만 봐도 토니 스콧이 [시티 오브 갓]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맨 온 파이어]에서 맛들린 정신 없는 편집과 촬영을 여기선 아예 갈데까지 보여주리란 기대감에 휩싸이게 만든다. 배우 로렌스 하비의 딸, 수퍼모델, 마약중독자, 현상금 사냥꾼이었던 여자 도미노 하비의 20대 시절을 그린 영화로 키라 나이틀리, 미키 루크, 크리스토퍼 워큰, 루시 리우 등등의 하드보일드한 면상들이 보인다. 실제 본인은 35살의 나이로 올해 6월 27일에 자기 집 욕조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 미국에선 10월 14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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