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브라맨 5
야마다 레이지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세상은 바꿀 수 있다. 좀 바꿔보자 새퀴들아!'

야마다 레이지는 언제나 저렇게 외친다. 하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경파'라는 작가에 대한 일각의 코멘트처럼 그 외침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왔다. 그것은 작가적 측면에서의 실패로도 귀결됐다. 연재는 안 이뤄지고 스스로는 지독한 슬럼프의 나날을 보내게 됐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세상일까 나일까. 그 시점에서, 쿠도 칸쿠로우가 쓴 각본 [제브라맨]이 들어오게 된다. 주제는 확실히 야마다 취향이니까, 라던 편집장의 코멘트. 그러나 야마다 레이지는 쿠도 칸쿠로우의 각본이 가진 트렌디함과 희망만 있으면 결말은 다 된다 라는 원본의 주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을 내 만화로 만들어보이겠다, 이것이 야마다 레이지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5권 완결. 과연 야마다 레이지는 자신의 목적을 이뤄냈는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렇다.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 해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마법이나 초능력이 없어도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영웅이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제브라맨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뻔한 얘기라고? 물론 뻔한 얘기다. 뻔한 주제다. 그러나 [제브라맨]은 그 뻔한 이야기를 커다란 공명으로 퍼지게 만드는 만화다. 그것은 작가의 삶과 맞닿은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자장이기도 하고 또한 [제브라맨]의 시대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가 받는 경험과도 공명하는 이야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많은 동서고금의 선현들이 만들어낸 잠언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잊고 지낸다. 가끔씩 생각나면 이렇게 얘기한다. '뭐야, 그런 뻔한 얘기. 뻔하잖아.' 심지어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 라는 법칙은 법으로나 DNA적으로나 새겨져 있는 금언이지만 우리는 때로는 사람을 죽인다. 무엇이 그 단순명료한 진리를 거부하게 만들었는가. [제브라맨]은 그 구조의 틈을 자극하는 만화다. 평범한 사람이 영웅일 수 있는 것처럼, 세상을 잿빛으로 만드는 것은 악당이나 괴물이 아니다. 그레이라 불리우는 그 회빛 또한 우리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안이하고, 소소한 욕구를 가진 우리들이. 무의식적인 불특정 다수가 만들어내는 잿빛 세상. 그렇다고 [제브라맨]은 우리에게 이상적인 도덕주의자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관용의 시선, 용서하고 더 나은 현실을 만들 수 있는 의지를 가져달라고 하는 말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 마음을 제발 한 명이라도 더 가져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5권 뒷쪽엔 본편인 [제브라맨]의 변주인 단편 [제브라퀸]과 [펭귄사냥]이 실려있으며 작가의 또다른 작품인 [절망에 효과적인 약]에 실린 쿠도 칸쿠로우편이 수록되어 있다. [제브라퀸]은 상당히 매력적인 단편이며 쿠도 칸쿠로우를 다룬 단편은 현재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극작가인 쿠도칸에 대한 쓸만한 정보들을 제공해준다. 참고.

관련 포스트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698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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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2005-11-07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납니다..ㅋㅋ 리뷰만으로도 감동먹었습니다.. 제브라맨 엄청 좋아합니다
제가 만화를 좋아하는데 평론의 수준과 책에대한 지식의 범위나.. 나이차가 좀 나는듯 하군유..(20살입니다) 바빠서 횡설수설.. 감동에 글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ㅋ
다른글도 감사하게 읽겠습니다 ^^

hallonin 2005-11-07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까지.... 뭔가 얻어가셨으면 잘 된 거죠.
 


저 코가... 저 코가 움직인다!

블러드 뿌라수가 2화까지의 황스런 전개로 별반 관심을 못 끌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 새롭게 방영이 개시된 신작중 가장 이색적인 작품이라면 바로 이 [투패전설 아카기]. [도박묵시록 카이지]라고 쓰고 젊은이들의 바이블이라고 불리우는 작품을 만든 후쿠모토 노부유키가 근대마작에 연재했던 원작을 애니화한 작품이다. 마작이라는 인기없는 소재를 채택한 덕에 우리나라에는 아직 안 나온 상태.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연한 것처럼 원작을 그대로 옮겨놓고 말았다. 더군다나 위화감도 없다.


이건 뭐 거의 100% 옮겨놓은 것 같다.

오프닝에서부터 아주 땀내나는 아저씨들의 애환을 절절하게 느끼게 만드는 주제가로 시작해서 마작에 목숨을 건 사나이들의 세계를 착착 그려나가고 있는 이 작품은 원작에서 보여주는 노부유키 특유의 연출을 애니메이션으로 어떻게 옮길까에 상당히 고민했던 듯 싶다. 그 결과로 마작판은 3D로, 나머지는 2D로 그림으로써 마작판이라는 비좁은 공간에서의 박력 넘치는 연출을 아주 매끈하게 잘 뽑아내고 있다. 또한 작가 특유의 느낌표 팍팍 들어가는 인물 나레이션이라든지 저 해결 불가능한 표정이라든지. 그리고 중요한 건 그 박력! 홍콩 가기 직전인 인물들의 심리를 극대화시키는 원작 특유의 박력도 그대로 살려놓고 있어서 노부유키의 팬들이라면 그냥 넘길 수가 없다. 더군다나 출판 가능성도 별로 없다-_-


악역과 선역의 구분이 없는, 오직 적자생존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하드보일드한 세계. 개인적으론 노부유키 원작의 여자들을 봐서라도 여자 캐릭터는 나오지 않았음 하는 바램이다....-_-

 

 

 



GBC용 [데지코의 마작파티]. 한글화도 되어 있어서 마작 배우기에 딱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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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0-28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너무 보고 싶어요!

hallonin 2005-10-28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작에 대한 지식이 없다 해도 즐길 수는 있겠으나.... 역시 마작을 알아야 재밌을 듯.
 

끝을 보길 미루고 미루던 [써전 아이즈]를 결국 완결 40권까지 읽고야 말았다.... 음.

아이큐점프의 [드래곤볼]이 대박을 치면서부터 후속주자로 나온 소년챔프에서 그에 대한 대항마로 적극적인 홍보를 펼쳐가며 지면에 연재를 깔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이 [써전 아이즈]였다. 요마물이라는, 당시 우리나라 환경에서 더없이 낯설었던 장르와 인도신화를 바탕으로 깐 흡입력 있는 설정들, 간간이 엿보이는 [우로츠키 동자]와의 이미지적 일치점,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귀여웠던 히로인 파이 덕에 상당한 매니아층을 만들어내는 덴 성공하지만 만화의 단계를 넘어선 만화였던 [드래곤볼]에는 역부족이었던지라 결국 대원에선 2부 정도까지 연재를 하고는 후속 판권계약 및 연재에 있어서 지지부진한 입장을 보이고 있었고 그 도중에 퀄리티가 제법이었던 '무삭제' 해적판이 한 차례 나왔으며 그로 인해 인기를 다시 얻게 되자 서울문화사에서 판권을 인수하여 재출간했다.

소년챔프 별책으로 출간 연재되었던 [써전 아이즈]의 2부는 무지막지한 가위질 및 화이트질의 생생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 중후반 즈음이 되면 파이가 속옷 차림으로 내내 왔다갔다 하게 되는데 그걸 일일히 화이트칠과 엉터리 사인펜질을 통해 억지로 슈즈를 입힌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아주 개판이었는데, 그 무지막지한 가위질을 본 다카다 유조가 밥맛이 떨어져서 더이상의 출판계약을 허락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써전 아이즈]는 요마물의 능숙한 변용이었다. 기쿠치 히데유키의 소설이나 마에다 토시오의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지는 요마물의 성적인 표현들을 청년지 수준으로 줄이는 동시에 초반에 보여줬던 소소한 퇴마 에피소드에 이어서 힌두신화에서의 적극적인 차용을 통한 큰 줄기로의 전개로 이어지는 서사구조에서의 단단한 설정과 장치들,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펼치는 로맨틱한 이야기는 잘 빠진 만화의 완성을 기대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전 아이즈]는 마지막으로 가면서 길을 잃었다. 15년이란 긴 연재기간 탓이었을려나. 사건을 벌리다 보니 수습이 안되는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 작품은 초기에 보여줬던 신선함은 거세되고 [드래곤볼] 풍 이미지들과 과도하게 난무하는 매력없는 액션씬, 큰 사건의 강조만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루즈한 전개로 작품을 사랑하던 많은 팬들에게 실망을 준 것도 사실이다.

고백하건데 [써전 아이즈]는 어린 시절의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매주마다 소년챔프를 모조리 사기도 했었고 애니메이션이라든지 관련 정보의 수집에 있어서 이 작품만한 애정을 바친 만화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정열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써전 아이즈]는, 적어도 내가 그렇게 하던 시절엔 그리 할만 한 가치가 충분한 만화로 나아가고 있었다. 영원을 살  수밖에 없게 된 소년과 원죄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소녀. 그리고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보여지는 둘의 만남이란 주제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직도 소년챔프에 연재됐던 1부의 마지막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스스로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소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되는  남자가 오직 그녀를 찾아내기 위하여 끝없이 방랑하게 되는 마지막 씬. [써전 아이즈]는 어쩌면 좀 더 일찍 끝났어야 하거나, 후반부의 길과는 다른 길을 선택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1부의 마지막을 그대로 가져온 40권의 마지막만큼은,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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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적긁적 2005-10-28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지막지한 부록을 노리고 소년챔프 1권을 샀었던 기억이 난다. 마법사의 아들 코리도 연재되었던 기억이 나누만. 언젠가 투니버스에서 본 써전아이즈 OVA 백사편(?)인가에 나오는 BGM의 멜로디가 구슬프게 아름다웠다.

hallonin 2005-10-29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브히나가 연재되던 찬스도 안 사던 너가 살 정도의 부록이란 대체 무엇이었더냐...

배가본드 2006-07-02 0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째 보는 글이지만 눈에 띄길래.. ㅋ
중딩때 해적판을 접한이후 고딩때 완결을 찍었는데 그래도 그 대단원이 막을 내렸단 사실만으로도 기쁨이 몰려오던 만화 ㅎㅎ
 

그리 특별한 건 없었고, 예상했던 대로였다. 샐러리맨의 감각으로 영화를 만드는 그가 영화에 매혹된 것은, 엄청난 사업의 크기와 규모에서 압도되었던 탓이었다. 캐롤코 필름에 50억을 투자해서 16편을 한꺼번에 구입하고 200억의 수익을 남겼다는 건, 월급을 150만원을 받는 30대 초반의 샐러리맨이 받아야 할 문화적 충격 치고는 꽤 큰 것이었으리라. 그의 두 번에 걸친 실패는 그 시점에서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그의 영화에 컬러가 없다는 건 맞는 말이지만 그나마 공통되는 것을 찾아내자면 신인감독을 등용하길 즐겨 했다는 점인데, 이것은 프러듀서로서 각본에까지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제작자인 그가 보다 다루기 쉬운 감독을 찾아낸 결과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인 측면에서조차 그의 영화에 일정한 색깔을 부여하기 힘든 건 역시 그 모든 도정이 샐러리맨의 감각으로, 돈을 좇아서 이뤄졌다는 점에서일 것이다. 감독의 캐스팅에 있어서 그는 감독의 작가적 역할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눈치였다. 그의 영화에서 감독은 기능직 샐러리맨과 비슷한 위치다. 사전준비와 시나리오 작업, 연출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에 그자신이 관여하는 부분은 상당히 컸다. 그렇기에 그가 제작한 영화들의 색이 상대적으로 옅어보였던 것이리라. 그 영화들에선 생산자 주체적 정체성보다는 소비자 중심적인 산업적 계산의 결과가 더 두드러지게 보였기 때문이다. [홀리데이]에서 양윤호 감독이 채택된 것도 같은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유리]로 데뷔한 이 감독은 정말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제대로 된 방점을 찍지 못하고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것은 무난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연출가로서의 뛰어남은 제쳐두고,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그럭저럭 소화할 수 있는 능력. 그 무난함은 헐리웃의 스티븐 홉킨스와 비견될 만 하다.

베니스와 칸, 베를린에서의 성과에 대해선, 그 영화들이 독특한 섹슈얼리티의 코드로 승부한 결과라는 의견을 보여줬다. 이것은 순전히 결과주의적 측면에서 칸과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의 성격은 전혀 고려치 않은 발언이었던 동시에 영화광적인 매니악한 세계와 영화제작의 샐러리맨의 세계의 간극이 드러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상업적 견지에서 볼 때도 [올드보이]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거둔 적지 않은 상업적 성과를 무시한 견해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저 애버트가 일전에 한 말, 사도마조히즘이 등장하지 않는 한국영화는 본 적이 없다고 한 말을 고려하자면 이순열 대표의 의견이 어느 정도 현상적인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것은 보급과 홍보, 그리고 이해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홀리데이]는 일단 들어본 바로는 너무 [실미도]스러워서 정이 안 가는 영화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겨버렸다. 시나리오는 [실미도] 시나리오 작가, 연출은 무난한 양윤호 감독, 결말에서 보여주는 국가에의 억울함을 가졌으나 의연한 자살. 처음에 지강헌역에 설경구가 거론됐었다는 것도 무리가 아니거니와 달리 생각하면 그것은 너무 안이한 선택이기도 했고, 설경구로선 캐스팅을 거절한 게 당연한 수순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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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5-10-2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홉킨스. 검색해보니 본 영화가 없네요. 그러고 보니 양윤호의 영화도 마찬가지. 제대로 본 게 단 한 개도 없다니. 아니다. 24 시즌1 감독이구나. 24 시즌1은 괜찮지 않았나요?--;;

hallonin 2005-10-27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4, 전 안 봤지만 괜찮다고 하더군요. 텔레비전으로 가서 빛을 본 사례....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창비시선 248
이기인 지음 / 창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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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해서 리뷰를 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꽤 곤혹스러운 얘기다. 대체 시라는 것을, 주절주절 길게 얘기할 필요가 있긴 있는 건가? 시라는 것은 아주 너무 대단히 진부한 설명이지만 (쌍팔년도 삘로)결국 삘링 아닌가... 라는 어줍잖은 의식 덕분에 언제나 시집 뒤에 붙는 설명들은 언어영역 시험문제의 문제풀이 답안지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시에 대한 진정한 비평은 뭐, 조선시대 한량들이 누렸던 풍류에 대한 소망도 있거니와, 그에 바치는, 혹은 그에 대항하는 시로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왔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지금 이런 설명을 주루루 쓰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말은 그렇게해도 아직 그럴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 헐.

이기인이 낸 이 시집, [알쏭달쏭 소녀 백과사전]이란 제목은 대단히 팝적이다. 그 제목에선 의미적 해독을 치뤄낸다 하더라도, 혹은 그런 의미적 해독까지 포함해서라도 시부야케 프렌치팝 계열의 노래 제목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 그것은 달콤함이며 색다름이고 몽환적 발랄함과 함께 적절한 우울함을 갖춘 양산형 보사노바의 리듬과도 같다. 그 발랄일탈스러울지도 모를 감각에 대한 기대감이 이 이 시집을 골라 보게 된 이유였다.

고백하지만, 난 시집을 거의 안 본다. 시 자체를 잘 안 읽는 편이다. 뻔한 독자다. 그 뻔한 독자가 읽은 이기인의 첫시집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앞서 말했듯 제목이 전해주는 자장, 뻔한 표현으로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적이라 할 수 있는 감각은 역설적으로 작품들 안에선 말끔히 거세되어 있다. 작가는 인용이나 패러디, 문자 놀음엔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유희심을 잊어먹은 건 아니지만 화려하지도, 건조하지 않으면서도 단단하게 짜여진 문장들로 구성된 이 매력적인 시어들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결국 현실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가혹하고 폭력적인 현실. 이 노래들엔 프렌치팝이 들려주는 달콤함 따윈 없다. 그러니까 제목은 속임수, 혹은 일종의 아우라다. 잔인한 현실에 대한 독한 반추로서의 꿀과도 같다.

공장의 소녀들과 죄수,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화자들의 독백들. 이 시들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흐름은 끊임없이 뭉쳐지지 않는 심상의 분해를 추구하며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과 성적인 도발이 느슨하고 평온한 풍경과 달콤한 시어들과 함께 공존한다. 시 속에서 소녀는 쇳가루를 씹어야 하고 제비는 흰 농약과 같은 문장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시어들은 제목이 당당하게 천명하고 있는 솜사탕 간판과는 정반대로 쉼없이 달아나는 것처럼 잡힐 듯 하면서도 잡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해설자가 말한 것처럼 죄의식으로서의 부끄러움 때문일까 아니면 작가가 밝힌 것처럼 전략적인 모색의 결과인 것일까. 불안하고 완성되지 않는, 그러나 그래서 매혹적인.

그러니 별이 네 개인 것은 순전히 나의 머뭇거림의 결과인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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