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창비시선 248
이기인 지음 / 창비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에 대해서 리뷰를 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꽤 곤혹스러운 얘기다. 대체 시라는 것을, 주절주절 길게 얘기할 필요가 있긴 있는 건가? 시라는 것은 아주 너무 대단히 진부한 설명이지만 (쌍팔년도 삘로)결국 삘링 아닌가... 라는 어줍잖은 의식 덕분에 언제나 시집 뒤에 붙는 설명들은 언어영역 시험문제의 문제풀이 답안지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시에 대한 진정한 비평은 뭐, 조선시대 한량들이 누렸던 풍류에 대한 소망도 있거니와, 그에 바치는, 혹은 그에 대항하는 시로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왔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지금 이런 설명을 주루루 쓰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말은 그렇게해도 아직 그럴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 헐.

이기인이 낸 이 시집, [알쏭달쏭 소녀 백과사전]이란 제목은 대단히 팝적이다. 그 제목에선 의미적 해독을 치뤄낸다 하더라도, 혹은 그런 의미적 해독까지 포함해서라도 시부야케 프렌치팝 계열의 노래 제목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 그것은 달콤함이며 색다름이고 몽환적 발랄함과 함께 적절한 우울함을 갖춘 양산형 보사노바의 리듬과도 같다. 그 발랄일탈스러울지도 모를 감각에 대한 기대감이 이 이 시집을 골라 보게 된 이유였다.

고백하지만, 난 시집을 거의 안 본다. 시 자체를 잘 안 읽는 편이다. 뻔한 독자다. 그 뻔한 독자가 읽은 이기인의 첫시집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앞서 말했듯 제목이 전해주는 자장, 뻔한 표현으로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적이라 할 수 있는 감각은 역설적으로 작품들 안에선 말끔히 거세되어 있다. 작가는 인용이나 패러디, 문자 놀음엔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유희심을 잊어먹은 건 아니지만 화려하지도, 건조하지 않으면서도 단단하게 짜여진 문장들로 구성된 이 매력적인 시어들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결국 현실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가혹하고 폭력적인 현실. 이 노래들엔 프렌치팝이 들려주는 달콤함 따윈 없다. 그러니까 제목은 속임수, 혹은 일종의 아우라다. 잔인한 현실에 대한 독한 반추로서의 꿀과도 같다.

공장의 소녀들과 죄수,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화자들의 독백들. 이 시들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흐름은 끊임없이 뭉쳐지지 않는 심상의 분해를 추구하며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과 성적인 도발이 느슨하고 평온한 풍경과 달콤한 시어들과 함께 공존한다. 시 속에서 소녀는 쇳가루를 씹어야 하고 제비는 흰 농약과 같은 문장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시어들은 제목이 당당하게 천명하고 있는 솜사탕 간판과는 정반대로 쉼없이 달아나는 것처럼 잡힐 듯 하면서도 잡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해설자가 말한 것처럼 죄의식으로서의 부끄러움 때문일까 아니면 작가가 밝힌 것처럼 전략적인 모색의 결과인 것일까. 불안하고 완성되지 않는, 그러나 그래서 매혹적인.

그러니 별이 네 개인 것은 순전히 나의 머뭇거림의 결과인 것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