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특별한 건 없었고, 예상했던 대로였다. 샐러리맨의 감각으로 영화를 만드는 그가 영화에 매혹된 것은, 엄청난 사업의 크기와 규모에서 압도되었던 탓이었다. 캐롤코 필름에 50억을 투자해서 16편을 한꺼번에 구입하고 200억의 수익을 남겼다는 건, 월급을 150만원을 받는 30대 초반의 샐러리맨이 받아야 할 문화적 충격 치고는 꽤 큰 것이었으리라. 그의 두 번에 걸친 실패는 그 시점에서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그의 영화에 컬러가 없다는 건 맞는 말이지만 그나마 공통되는 것을 찾아내자면 신인감독을 등용하길 즐겨 했다는 점인데, 이것은 프러듀서로서 각본에까지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제작자인 그가 보다 다루기 쉬운 감독을 찾아낸 결과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인 측면에서조차 그의 영화에 일정한 색깔을 부여하기 힘든 건 역시 그 모든 도정이 샐러리맨의 감각으로, 돈을 좇아서 이뤄졌다는 점에서일 것이다. 감독의 캐스팅에 있어서 그는 감독의 작가적 역할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눈치였다. 그의 영화에서 감독은 기능직 샐러리맨과 비슷한 위치다. 사전준비와 시나리오 작업, 연출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에 그자신이 관여하는 부분은 상당히 컸다. 그렇기에 그가 제작한 영화들의 색이 상대적으로 옅어보였던 것이리라. 그 영화들에선 생산자 주체적 정체성보다는 소비자 중심적인 산업적 계산의 결과가 더 두드러지게 보였기 때문이다. [홀리데이]에서 양윤호 감독이 채택된 것도 같은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유리]로 데뷔한 이 감독은 정말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제대로 된 방점을 찍지 못하고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것은 무난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연출가로서의 뛰어남은 제쳐두고,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그럭저럭 소화할 수 있는 능력. 그 무난함은 헐리웃의 스티븐 홉킨스와 비견될 만 하다.

베니스와 칸, 베를린에서의 성과에 대해선, 그 영화들이 독특한 섹슈얼리티의 코드로 승부한 결과라는 의견을 보여줬다. 이것은 순전히 결과주의적 측면에서 칸과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의 성격은 전혀 고려치 않은 발언이었던 동시에 영화광적인 매니악한 세계와 영화제작의 샐러리맨의 세계의 간극이 드러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상업적 견지에서 볼 때도 [올드보이]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거둔 적지 않은 상업적 성과를 무시한 견해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저 애버트가 일전에 한 말, 사도마조히즘이 등장하지 않는 한국영화는 본 적이 없다고 한 말을 고려하자면 이순열 대표의 의견이 어느 정도 현상적인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것은 보급과 홍보, 그리고 이해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홀리데이]는 일단 들어본 바로는 너무 [실미도]스러워서 정이 안 가는 영화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겨버렸다. 시나리오는 [실미도] 시나리오 작가, 연출은 무난한 양윤호 감독, 결말에서 보여주는 국가에의 억울함을 가졌으나 의연한 자살. 처음에 지강헌역에 설경구가 거론됐었다는 것도 무리가 아니거니와 달리 생각하면 그것은 너무 안이한 선택이기도 했고, 설경구로선 캐스팅을 거절한 게 당연한 수순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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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5-10-2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홉킨스. 검색해보니 본 영화가 없네요. 그러고 보니 양윤호의 영화도 마찬가지. 제대로 본 게 단 한 개도 없다니. 아니다. 24 시즌1 감독이구나. 24 시즌1은 괜찮지 않았나요?--;;

hallonin 2005-10-27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4, 전 안 봤지만 괜찮다고 하더군요. 텔레비전으로 가서 빛을 본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