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탤지어와 현실을 대차대조하는 작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드라마투르기적 도구가 된다. 그러니, 어떻게보면 이미 결정난 결말을 두고 달려가는 일에서 보여주는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정교하게 가공되어 있는가, 얼마나 매끈하게 끝을 맺는가를 눈여겨 보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인어공주]는 그 경주에서 상당 부분 소득을 올리고 있다. 뻔한 매력이 세심한 손끝으로 드러난 만족할만 한 케이스.

작품이 가지는 노골적인 신파에도 불구하고, 그냥 전도연이 맘에 들어서 썩 울지도 않고 끝까지 본 영화. 그 모든 상황설정에도 불구하고 그리 절절하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감수성의 메마른 지점을 파악한 건지, 영화의 도식성에 지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전도연은 그 급수에, 그정도 연기에 노골적으로 강간씬을 동원함에 있어서도 흔들리지 않는 지위와 가치를 가진 흔치 않은 배우라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황정민의 탁월한 찌질이 연기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재현해내긴 하는데.... 개인적으론 [달콤한 인생]쪽에 손을 들고 싶다.

솔직히 [빌리 엘리어트]도, 그 쏟아지는 영화에 대한 상찬에도 불구하고 기술적인 측면외의 감동을 그리 받지 못한 터라.... 썩 기대는 안하고 봤는데. 결국 초반 정도까지 보다가 포기. 분명 정석대로인 흐름인데 어째서 계속 영화가 번잡하다고만 느껴질까. 차라리 책을 읽든지 해야지.... 그래도 그 짧은 시간이나마 니콜 키드먼은 확실하게 멋졌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마치 이미지가 서사를 부숴버리려고 덤벼드는 듯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었다. 그에 비해서 [형사]는 보다 넉넉해진 마음씨로 이미지화 된 이야기로서의 영화를 끌어간다. 분명히 하지원은 박중훈의 붕어빵이고(특히 표정) 강동원은 주름살이 제거된만큼 무게감도 사라진 안성기다. 그가 만들어내는 동선이 이명세 감독을 만족시킬 정도의 모양을 만들어줬는진 모르겠지만, 나로선 별 감흥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분명 이미지로써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영화가 가진 함의와 화두는 적절하고, 그 문제제기 자체는 흥미로웠다고 본다. 그러나 그 답인 영화는 나를 전혀 만족시키지 못한데다 방법론적으로 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여기서 쓰인 이명세 감독의 영화적 근원인 채플린적 방향성은 고루하다. 그것은 지금 시대에 와선 이미 오래된 부대가 아닌가. 차라리 뮤직비디오를 보겠다고 한 일각의 평가는 그런 의미에서 정확하다고 본다. 지루한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형사]는 예술가적 장인정신이 시대와의 균열을 일으킨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발상은 훌륭하고 묘사엔 재치가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설정이 수리술 등장하며 해피엔딩이기까지 하다. 좋다, 그런데 왜 이 모든 센스들이 가끔씩 심하게 어설퍼보이곤 하는 걸까-_-

나온지 제법 시간이 흐른 앞의 두 권도 아직까지 세일즈포인트가 1000을 넘기고 있다는 점에서 골수팬의 위력이란 게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월희] 코믹스판 3권. 그림을 맡은 사사키 쇼넨의 작화는 원작 캐릭터 디자인을 충분히 존중하고 망치지 않는 선에서 코믹스판 자체의 자리를 찾아낸 것 같아 흡족하고 타입문에서 직접 맡은 스토리는 부실재개발 상태였던 애니와는 달리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만화 자체의 오리지날리티를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3권에 와서 보여지는 장광설들이 극의 흐름을 다소 루즈하게 만들고 있고, 아직은 미숙하다고 생각되는 작화의 연출력도 그에 슬며시 힘을 더하고 있다. 나쁘진 않다, 그러나 좋지도 않다. 뭐 팬서비스용이라고만 생각하면 상당한 결과이고, 궁극적으론 애니메이션판보단 훨씬 낫지만-_-

북박스에서 재출간하기 시작, 어느새 8권까지 팍팍 와버린 [사토라레].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부터 작화는 눈에 띄게 비틀거리고 스토리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이야기로선 모인물의 죽음으로 인해 극의 굵직한 지점 하나를 넘어온 상태. 그런데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기보단 극의 줄을 좀 더 당겨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무엇보다도 갑자기 왜 작화가 그렇게 거칠고, 삐뚤빼뚤하며 성의가 없다는 인상이 들게끔 되버린 건지. 아마도 월간연재에서 격주간 연재로 들어간 시점을 기점으로 그렇게 된 걸로 추정이 되지만.... 다시 월간연재로 복귀한 걸로 아는데 작화는 나아지지 않으니-_-

이것이야말로 두려울 정도의 동인혼. 스탠다드로 잘 흘러가다가 단박에 그 인상을 날려버리는 무서울 정도의 대담하고도 과격한 한 방. 만감이 교차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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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끝을 봤습니다. 눈은 충혈됐고 위장엔 빵구가 날 것 같으며 머리는 떡져있고 우리집 늙은 강아지께선 제 이불 속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합니다. 아무튼 끝냈습니다-_- 소개 및 감상 및 스포일러 들어가겠습니다.

 

[fate/stay night]는 총 3개의 루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Fate, Unlimited Blade Works(이하 UBW), Heavens Feel(이하 HF)의 세 루트로 각각의 루트에는 에피소드를 대변하는 히로인이 하나씩 내정되어 있습니다. 자랑스럽게도 에로 게임이란 걸 잊어주지 않는 제작사의 배려가 아름답습니다.... 라고도 볼 수 있겠고. 그보단 좀 더 근본적인 문제로서 기능하는 일종의 구분법이기도 합니다. 개개의 에피소드는 각각 같은 시공간의 다른 이야기들이라는 패러렐월드의 법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dream heart사이트의 인드라지트님이 지적한대로 저 세 루트는 순차적으로 소년-청년-성인의 이야기를 은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게임의 구조가 무조건적으로 fate루트의 클리어를 가장 먼저 강제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겠죠. 아래 포스트에도 올렸듯이 아서왕의 환생이신 이 아가씨, 세이버가 히로인인 fate루트는 많은 이들이 이 게임이 소년만화의 극적구조를 가져왔다고 오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소년만화적 구조가 적극적으로 도입된 건 사실입니다만, 그것은 적어도 이 fate루트에만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아무래도 첫 도입이기도 하니까 비중면에서도 인상이 깊었던 덕도 있겠지요.

 



세이버의 디자인적 원형은 아틀라스+세가의 합작품으로 괜찮은 반응 및 골수팬을 만들어냈던 이 횡스크롤 게임, [프린세스 크라운]이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1997년작으로 상당히 매니악한 인기가 있었죠. 전례를 하나 더 꼽자면 [사무라이 스피리츠]의 샤를르트도 있군요.

괄괄한 칼잡이인 이 금발 미소녀의 이야기는 무투의 과정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동료애와 존나 짱쎈 적과의 혈투를 겪으며 차곡차곡 나아간다는 점에서, 대개 에로계에서 비장의 무기로 보여주는 경향이 있는 3P 플레이가 첫 에피소드인 주제에 버젓이 등장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아주 제대로 소년만화틱하게 나아가는 셈이죠. 그리고 자빠링을 통한 정기의 주입이라는 설정은 아주 완전 와룡강 에로무협지입니다만 이건 뭐, 에로게임 제작자들의 기호와 업계의 현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경우라고 해야겠지만요. 하지만 그런 소소한 부분을 제외하면 이 에피소드는 말하자면 fate의 세계에 대한 입문으로 아주 적절했던, 달콤한 조미료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뭐 아래 포스트에도 밝혔듯 오랜 인고의 시간 끝 마지막에 깊은 안식이자 달콤한 꿈을 꾸기 위해 잠드는 세이버 얼굴을 보면 아무 생각 안 들게 됩니다-_-

 



앞서 밝힌 것처럼 두번째 루트인 UBW는 청년을 은유합니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는 청춘, 신념의 지속, 혹은 폐기, 미래에의 고민과 미래와의 갈등이라는 청년의 고민을 다룬다 할 때 정석을 달리는 소재들이 중심에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팬덤에서 가장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것이 이 UBW루트임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하기도 하거니와 동시에 이 게임의 주요 유저층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기도 하죠-_- 자빠링의 형태에 있어선, 첫번째 에피소드에선 일방적인 에너지 주입이 목적이었던 것이 여기선 상호간의 조율의 목적으로 쓰인다는 점도 흥미로운 점이고. 모두가 그 충격적이라던 반전이 어떻게 된 게 저는 게임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그냥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을 했었기 때문에 전혀 충격적이지가 않았습니다-_- 생각해보니 완벽에 가까운 해피엔딩 결말이나 그에 준하는 해피엔딩만이 준비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한 라이트 유저들의 호응이 있었을 듯도 싶습니다. 저로서는 도리어 가장 와닿지 않는 에피소드기도 했습니다만.... 수도꼭지를 비유로 쓸 정도로 현대문명에 해박함을 보이는 아서왕께서 현대 일본의 여러 부분에선 엉뚱한 문맹 노릇을 하는 모순 또한 거슬리는 나스 키노코의 에러였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마지막 HF루트입니다. 실제로 [fate/stay night]에서 가장 중요한 의문사항들이 밝혀지는 에피소드임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fate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에피소드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자빠링은 현저하게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_- 그것은 이 에피소드가 앞서 플레이해야 했던 두개의 루트에 비해서 이질적일 정도로 어둡고 폭력적이며 가학적인 인상까지 주기 때문입니다. 아예 극구조 자체가 다른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겠군요. 앞의 두 개가 상승과 전진이라고 한다면 이 이야기는 하강과 침식으로 그 인상을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UBW루트에 비해 음울하고 희망이 안 보이는 HF루트가 받는 푸대접은 유저계층적인 측면에서 봐도 납득이 가는 바입니다. 이 루트가 성인 유저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은 확연한데, 그 증거로 여기서 드러나는 섹스가 더이상 앞서의 에피소드들이 보여줬던 목표달성으로서의 섹스가 아니라 폭력적인 일상의 연장을 보여주는 도구로써 쓰이고 있다는 걸 들 수 있겠습니다. 히로인인 사쿠라의 육체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십수년간 가학적으로 다뤄진 몸이고 그로 인해 혼란스러운 자아를 가지게 된 그녀는 에피소드 내내 서서히 붕괴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무투씬은 얼마 나오지도 않는데다 그나마 허무하기까지 하고 불리한 위치만 가지는 주인공팀에겐 당최 희망이란 게 느껴지질 않죠. 그 속에서 주인공은 비극적인 결말이 확실시되는 미래와 더이상 자신의 신념이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없는 과거에 메여 방황합니다. 노멀엔딩조차도 타인의 희생을 통해 겨우 살아난 저 아낙이 결국 구원 받지 못하고 인생을 보내버린다는 결말일 정도니.... 저로서는 아주 간만에 오래 전 하드보일드 요마물들, [하원기가의 일족]에서부터 [키즈아토], [문]까지 생각나게 만들어버릴 정도의 정통파-_- 다크물 파트였다고나 할까요. 나름대론 반갑기도 했습니다-_-

 

아아, 아무튼 아주 오랜만에 해 본 에로게임이었습니다-_- 신선한 것 반, 뻔한 것 반이라고 표현하는 게 제 감상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HF루트에서의 대체 끝이 언제 날지 모르겠던 나스 키노코 특유의 장광설은 심히 인상적이었습니다-_- 이제 팬서비스용 후일담 및 외전인 [fate/hollow ataraxia]가 남았긴 한데.... 아무래도 안 돌아갈 것 같군요-_-

 

이런 류를 즐기는 이들이 흔히 하는 얘기처럼 어찌 보면 에로 게임이라고 표현하는 게 부당할 정도의 게임이었습니다만, 예전에 그와 관련해서 [현시연]에서 이쪽류의 게임에 대한 번역이 '에로게임'으로 번역된 것에 대해서 조금 거부감이 들어 번역하시던 편집자분께 다소 어폐가 있지 않느냐고 이의를 제기하자 원본에도 그렇게 써있고 일반적으로도 그렇게 쓰여서 그렇게 쓰기로 했다고 설명해주시던 게 기억나는군요. 다소 뭉뚱그리는 듯한 천박함이 느껴지긴 하지만 대체할 말이 없다고-_- '18금 게임'이라고 붙이는 건 긴데다 어감에도 안 좋고. '미연시'라는 표현은 그쪽 장르의 종사자들부터가 거부한다는군요. 하긴, 조금만 생각해봐도 '미연시'라고 붙이는 건 장르 자체를 너무 협소화시키는 것일테니까요.

 



이 작품도 코믹스 버전이 월간 전격대왕에 연재중인 [월희]처럼 월간 소년 에이스에 연재중이긴 한데.... 보이는 것처럼 영 황입니다-_-

 

아서왕이니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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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0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서왕 관련 책이라도 그렇지, 페이트 소개글을 가져다 붙이면 어쩌자는겁니까-_- 저도 페이트 매우 좋아합니다만, 이건 좀-_-

hallonin 2006-01-1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래서 리뷰가 아니라 페이퍼인 건데요-_- 페이트를 재밌게 한 사람이 아발론연대기를 알고 재밌게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좋은 일인 거죠. 그리고 아발론연대기를 읽은 사람이 페이트를 좋아하게 되리란 보장은 좀 희박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런 게임이 있고, 아서왕신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지식 하나는 알게 되겠죠. 그러니까 이건 접하는 순서의 문제인 겁니다. 설마 '감히' 아발론연대기에 페이트가 붙어있다고 거부감을 느끼시는 건 아니시겠죠?

Algenon 2006-01-1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세이버는 아서 왕의 환생체가 아닙니다. 죽고 나서 영령이 된 게 아니라, 죽기 직전 영령이 되어 다른 시공간에 속한 존재에게 소환된 케이스입니다. 즉, 아서 왕의 생령이자 영령이지요.
2. 세이버는 굶겼을 때 한정으로 괄괄해집니다. 원래 괄괄한 캐릭터는 아녜요. (…)

Algenon 2006-01-12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 맨 윗분이 저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페이트의 아서 왕과 아발론 연대기의 아서 왕은 서로 전혀 다르고 관계도 없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발론 연대기는 아더 왕 신화의 재해석적인 측면을 갖고 있지만, 페이트는 재해석이 아니라 스토리 상의 필요에 따라 아더 왕 신화를 비틀고 왜곡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세이버는 시나리오 라이터인 나스 키노코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게임 속의 캐릭터일 뿐이에요. 일단 페이트에서 소녀의 속성을 간직하고 있는 고귀한 여기사로 다시 태어난 아더 왕에게 불타오르던 플레이어가 아발론 연대기의 아더 왕에게 호감을 가지리란 보장도 없고 말이죠. 토마스 불핀치의 원탁의 기사를 읽은 독자나 반대로 아발론 연대기를 읽은 사람이 페이트에서 '여자'로 나온 아서 왕을 본다면 반대로 환상이 엄청나게 깨지겠죠. 글 쓰신 분의 의도는 알겠지만, '세이버=아더왕'이지 '아더왕=세이버'가 아닙니다.

Algenon 2006-01-12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분이 말씀하시고 싶었던 것은, 페이트를 알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무 관계 없는 작품과 연결시켜서 소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겠지요.

hallonin 2006-01-12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의외로 인기포스트가 되겠군요. 자, 간단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페이트가 아서왕 전설을 비틀고 왜곡했다고 본다면, 오히려 그 전설의 원형이 어떤 건지 사람들이 더 알고 싶어지는 것 아닐까요? '비틀고 왜곡했다'고 그 원형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원형이 있으니 이야기의 비틈 또한 가능했던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원전이 된 이야기에 흥미가 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왜곡되고 비틀렸다는 페이트가 아서왕 이야기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 보구라든지 세이버가 성배에 집착하는 이유라든지 페이트루트 엔딩부의 잠들다, 가 전설에서의 이야기와 곁들여져 불러 일으키는 화학효과라든지를 보면, 분명히 아서왕 전설과의 연계를 '노리고' 짜여진 부분들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hallonin 2006-01-12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이 포스트는 앞서도 밝혔지만 리뷰가 아니라 페이퍼입니다. 즉, 아발론연대기가 주가 되는 게 아니라 페이트의 부속정보로서의 아발론연대기를 꼽아놓은 거라 이거죠. 그런데도 이렇게 반발이 있는 건, 아무래도 글쓴 날짜가 가까운데로 리뷰와 페이퍼를 가리지 않고 가장 위에 올라오게 되어있어서 유난히 눈에 띄게 만들어놓은 알라딘의 시스템과 화학효과를 일으키는 게임과 서적의 권위의 불일치라는 견해 덕인 것 같습니다.
알라딘은 세일즈사이트입니다. 그런 점에서 알라딘에서 물질적 혜택을 받고, 블로그라는 공간을 활용하게 된 저로선 적극적인 정보의 연결을 통한 정보의 교환과 독서욕구의 자극이 제가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역할이라고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미 페이트와 아발론연대기와의 연계는 타입문넷과 네이버 블로그 등에서 긍정적으로 이뤄진 사례가 있기도 하구요.
 

만화가의 세계를 다룬 만화는 예전부터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거기에 열혈이라는 게 붙여진 것으로 대표적으론 [호에로펜]이 있었고, [코믹마스터J]는 그런 구도에 수퍼히어로적 성격을 덧붙인 만화입니다. 까놓고 밝히자면 데즈카 오사무의 [블랙잭]에 대한 오마주죠. 곧잘 실제하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을 모티브로 해서 이야기를 꾸려나가는데, 그런 류에선 소위 말하는 불타오른다는 느낌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만화에 꼽힐만 했습니다. 그런 느낌이 강할 수밖에 없는 게 이 만화의 사고방식은 가차없기 때문이었죠. [코믹마스터J]는 만화는 재밌어야 한다는 명제에 도달하지 못하는 만화는 가차없이 뎅강, 이런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이건 한마디로 소년점프 시스템, 바로 그 자체인 겁니다.


아마 이런 부분 때문에 이 만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팔리지 않는 만환 소용없는 만화냐. 그렇게 되물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가끔씩 소위 소수가 알아주지만 상업적으론 실패한 만화들의 이야기가 에피소드가 되서 나오긴 하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코믹마스터J의 시선은 좀 미묘하지만 결국은 법가적 결론으로 도달합니다. 아무리 만화가 좋아도 인기가 없으면 죽는 거야, 라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웃기는 게 이 [코믹마스터J]란 만화도 그리 짜임새가 좋은 만화는 아니라는 거였죠-_- 세계를 조종하는 조직 클럽에 대한 얘기와 J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그냥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오거든요. 그런데다 초반에 보면 그의 스승도 언급되는데 얼마 안 가서 아예 사라져버리고.... 그 스승이라는 양반, 작품의 두 축인 J와 디엔드를 잇는 가교였는데 나중엔 제대로 언급도 안되더라구요. 설정 대충대충 큰 전개도 대충대충. 이 만화의 큰줄기는 되는대로라서 도대체 파악 불가능입니다. 그리고 10권인가 즈음에 가면 [아쿠메츠]와의 동시연재 때문에 믿었던 작화 퀄리티도 하락. 아니, 이래놓고도 만화에 대해 얘기한다고?


그게 참 어불성성이고 코웃음 나오는 얘기긴 한데.... 큰줄기는 아예 떼버리고 그냥 단편적인 에피소드들만 보면 가슴을 치는 것들이 제법 있어서, 그리고 가끔씩 놀라울 정도로 빛나는 에피소드들이 있어서 그냥 내버리기엔 또 힘든 만화입니다. G펜의 거친 선이 만들어내는 박력도 상당하고. 해서, 가끔씩 나오는 오버액션과 엉망인 설정을 참아낼 수 있고.... 일본만화계에 대해서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일단 시공사에서 10권까지 나왔지만 모두 알다시피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어디선가 다음권을 출판할지는 2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불투명. 뒤로 가면서 만화계와 관련된 사회비판물 성격이 강해져서 그전과는 다른 재미가 기대됐었는데.... 특히 11권에선 출판업자들과 총판, 도매상들을 씹을 예정이었다 하죠. 그런 점에서 보면 국내판 출간이 멈춘 시기가 꽤 절묘합니다 이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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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라는 네임밸류에도 불구하고 배용준이 아닌 욘사마에 대한 거부감과 다소 부적절했던 마케팅 포인트가 흥행과 대중적인 차원에서의 비평에 썩 재미를 못 보게 만든 원인이었나 싶었지만, 보고 나니 영화 자체로도 썩 재미를 못 보게 만든 원인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도덕적 부담. 이 영화의 인물들은 허진호의 전작들에서처럼 '신선한' 인물들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인해 삶을 잡아가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인물들이나 미혼남이 이혼녀에게 휘둘려 부서지는 순수에의 파괴를 보여주는 [봄날은 간다]와는 달리 그들의 등 뒤엔 전작의 인물들에겐 볼 수 없었던 도덕적 책무가 올라타 있고 그 속성이 가진 숙명적인 흐름이 영화의 배우들에의 집중을 약화시킵니다. 여기에 이어지는 것이 두번째인데, 배용준과 손예진은 허진호의 전작들이 보여줬던 캐릭터들과는 대내외적으로 확연히 다르기에 그 자장을 보장할 수가 없는 배우들이었습니다. 허진호 영화의 여느 때처럼, 이 영화의 중심인물은 인수라는 남성이며 서영이라는 여성은 더 보여줌으로써 점점 복잡화되어가는, 동시에 구체화되가는 인수에 비해 그저 중매로 결혼하여 평온하게 살아오던 가정주부였다는 정도로 그 묘사가 멈춰버리죠. 단순해서 되려 복잡해지는 그녀의 동선은 영화 속을 부유하는 유령과도 같으며 그것은 배용준이 인수의 캐릭터를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처럼 손예진이라는 배우가 서영과 충돌하여 만들어낸 아우라가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수는 영화의 스위치이지만 주체적이지 않고 서영은 감독의 배우를 바라보는 철저한 객체로서의 시선에 의해 영화를 건조하게 만드는 키가 됩니다. 이 어긋남은 [외출]을 일종의 정서적 진공상태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출]은 그 모든 요소들이 실패의 정도를 걷는 지겨움으로 드러난다기보다는 흥미롭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외출]에서 허진호 감독은 자신의 오래된 세계가 도약하려고 꿈틀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동시에 불러온 것처럼 보입니다. 이 부드럽게 무미건조한 영화는 아마도 2005년에 가장 오해 받은 영화 중 하나일 것이며 숙명론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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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게 귀로 들리는 것만 따져서, 90년대 중반은 좋은 시절이었다.

역시 그의 죽음에서부터 얘기를 할 수밖에 없겠다. 있지도 않았지만 모두에게 강박관념을 갖게 했던 '얼터너티브'는 그의 죽음을 통해서야 비로소 형용사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정신을 차린 것처럼, 장르 안에서 다양한 색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세기말이었다. 헤비메탈의 끝없는 몰락과 함께 음악의 고전주의자들이 명멸해가는 시점이었다. 이제 곧 보이밴드와 브릿니 스피어스와 힙합의 긴 연대기가 펼쳐질 예정이었다. 빈 자리를 일렉트로니카 DJ들이 차지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일렉트로니카는 이전에서부터 그랬듯이 그저 꾸준히 어둠에 위치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다른 역사다.

물론 뭐가 죽었고 뭐가 박살났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분명히 편견이다. 그것은 건방진 소리이며 죽은 자가 가장 경멸할 법한 정의내림일 것이리라. 인정하던 안 하던 모든 스위치들은 제 나름의 역할을 다하며 그 후태를 남겨두고, 여전히 전진후진을 반복하며 공간을 넓히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옛자극의 '한순간'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표출되는 것 또한 같은 때 같은 것을 경험했던 이로써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one hot minute]은 분명하게, 그 지점의 한가운데를 관통했던 뜨거운 총탄이었다. 그 음악이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신선하게 들려오고, 오히려 시의적절하게까지 느껴진다는 것은 그들이 차지한 자리가 영원을 보장하는 그 한자락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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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01-04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dafuck 님이 소개해주시는 노래 찾아 들어보는 것도 오랫만이네요.
요즘은 저녁 맛있는 거 드시고 다니시려나?

hallonin 2006-01-05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하루에 두끼만 먹으며 삽니다-_- 한끼는 선물 받은 라면....

배가본드 2006-01-06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d Hot Chili Peppers...by the way를 듣고 본격적으로 빠져들라하니까 Greatest Hits 음반을 내버리시네요.. 에미넴마냥 그만두시려나... 그분들 연세도 그러하니 힝

hallonin 2006-01-07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낙 텀이 긴 양반들이라-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