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진호라는 네임밸류에도 불구하고 배용준이 아닌 욘사마에 대한 거부감과 다소 부적절했던 마케팅 포인트가 흥행과 대중적인 차원에서의 비평에 썩 재미를 못 보게 만든 원인이었나 싶었지만, 보고 나니 영화 자체로도 썩 재미를 못 보게 만든 원인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도덕적 부담. 이 영화의 인물들은 허진호의 전작들에서처럼 '신선한' 인물들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인해 삶을 잡아가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인물들이나 미혼남이 이혼녀에게 휘둘려 부서지는 순수에의 파괴를 보여주는 [봄날은 간다]와는 달리 그들의 등 뒤엔 전작의 인물들에겐 볼 수 없었던 도덕적 책무가 올라타 있고 그 속성이 가진 숙명적인 흐름이 영화의 배우들에의 집중을 약화시킵니다. 여기에 이어지는 것이 두번째인데, 배용준과 손예진은 허진호의 전작들이 보여줬던 캐릭터들과는 대내외적으로 확연히 다르기에 그 자장을 보장할 수가 없는 배우들이었습니다. 허진호 영화의 여느 때처럼, 이 영화의 중심인물은 인수라는 남성이며 서영이라는 여성은 더 보여줌으로써 점점 복잡화되어가는, 동시에 구체화되가는 인수에 비해 그저 중매로 결혼하여 평온하게 살아오던 가정주부였다는 정도로 그 묘사가 멈춰버리죠. 단순해서 되려 복잡해지는 그녀의 동선은 영화 속을 부유하는 유령과도 같으며 그것은 배용준이 인수의 캐릭터를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처럼 손예진이라는 배우가 서영과 충돌하여 만들어낸 아우라가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수는 영화의 스위치이지만 주체적이지 않고 서영은 감독의 배우를 바라보는 철저한 객체로서의 시선에 의해 영화를 건조하게 만드는 키가 됩니다. 이 어긋남은 [외출]을 일종의 정서적 진공상태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출]은 그 모든 요소들이 실패의 정도를 걷는 지겨움으로 드러난다기보다는 흥미롭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외출]에서 허진호 감독은 자신의 오래된 세계가 도약하려고 꿈틀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동시에 불러온 것처럼 보입니다. 이 부드럽게 무미건조한 영화는 아마도 2005년에 가장 오해 받은 영화 중 하나일 것이며 숙명론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