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수하게 귀로 들리는 것만 따져서, 90년대 중반은 좋은 시절이었다.
역시 그의 죽음에서부터 얘기를 할 수밖에 없겠다. 있지도 않았지만 모두에게 강박관념을 갖게 했던 '얼터너티브'는 그의 죽음을 통해서야 비로소 형용사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정신을 차린 것처럼, 장르 안에서 다양한 색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세기말이었다. 헤비메탈의 끝없는 몰락과 함께 음악의 고전주의자들이 명멸해가는 시점이었다. 이제 곧 보이밴드와 브릿니 스피어스와 힙합의 긴 연대기가 펼쳐질 예정이었다. 빈 자리를 일렉트로니카 DJ들이 차지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일렉트로니카는 이전에서부터 그랬듯이 그저 꾸준히 어둠에 위치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다른 역사다.
물론 뭐가 죽었고 뭐가 박살났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분명히 편견이다. 그것은 건방진 소리이며 죽은 자가 가장 경멸할 법한 정의내림일 것이리라. 인정하던 안 하던 모든 스위치들은 제 나름의 역할을 다하며 그 후태를 남겨두고, 여전히 전진후진을 반복하며 공간을 넓히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옛자극의 '한순간'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표출되는 것 또한 같은 때 같은 것을 경험했던 이로써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one hot minute]은 분명하게, 그 지점의 한가운데를 관통했던 뜨거운 총탄이었다. 그 음악이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신선하게 들려오고, 오히려 시의적절하게까지 느껴진다는 것은 그들이 차지한 자리가 영원을 보장하는 그 한자락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