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탤지어와 현실을 대차대조하는 작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드라마투르기적 도구가 된다. 그러니, 어떻게보면 이미 결정난 결말을 두고 달려가는 일에서 보여주는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정교하게 가공되어 있는가, 얼마나 매끈하게 끝을 맺는가를 눈여겨 보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인어공주]는 그 경주에서 상당 부분 소득을 올리고 있다. 뻔한 매력이 세심한 손끝으로 드러난 만족할만 한 케이스.

작품이 가지는 노골적인 신파에도 불구하고, 그냥 전도연이 맘에 들어서 썩 울지도 않고 끝까지 본 영화. 그 모든 상황설정에도 불구하고 그리 절절하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감수성의 메마른 지점을 파악한 건지, 영화의 도식성에 지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전도연은 그 급수에, 그정도 연기에 노골적으로 강간씬을 동원함에 있어서도 흔들리지 않는 지위와 가치를 가진 흔치 않은 배우라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황정민의 탁월한 찌질이 연기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재현해내긴 하는데.... 개인적으론 [달콤한 인생]쪽에 손을 들고 싶다.

솔직히 [빌리 엘리어트]도, 그 쏟아지는 영화에 대한 상찬에도 불구하고 기술적인 측면외의 감동을 그리 받지 못한 터라.... 썩 기대는 안하고 봤는데. 결국 초반 정도까지 보다가 포기. 분명 정석대로인 흐름인데 어째서 계속 영화가 번잡하다고만 느껴질까. 차라리 책을 읽든지 해야지.... 그래도 그 짧은 시간이나마 니콜 키드먼은 확실하게 멋졌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마치 이미지가 서사를 부숴버리려고 덤벼드는 듯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었다. 그에 비해서 [형사]는 보다 넉넉해진 마음씨로 이미지화 된 이야기로서의 영화를 끌어간다. 분명히 하지원은 박중훈의 붕어빵이고(특히 표정) 강동원은 주름살이 제거된만큼 무게감도 사라진 안성기다. 그가 만들어내는 동선이 이명세 감독을 만족시킬 정도의 모양을 만들어줬는진 모르겠지만, 나로선 별 감흥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분명 이미지로써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영화가 가진 함의와 화두는 적절하고, 그 문제제기 자체는 흥미로웠다고 본다. 그러나 그 답인 영화는 나를 전혀 만족시키지 못한데다 방법론적으로 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여기서 쓰인 이명세 감독의 영화적 근원인 채플린적 방향성은 고루하다. 그것은 지금 시대에 와선 이미 오래된 부대가 아닌가. 차라리 뮤직비디오를 보겠다고 한 일각의 평가는 그런 의미에서 정확하다고 본다. 지루한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형사]는 예술가적 장인정신이 시대와의 균열을 일으킨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발상은 훌륭하고 묘사엔 재치가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설정이 수리술 등장하며 해피엔딩이기까지 하다. 좋다, 그런데 왜 이 모든 센스들이 가끔씩 심하게 어설퍼보이곤 하는 걸까-_-

나온지 제법 시간이 흐른 앞의 두 권도 아직까지 세일즈포인트가 1000을 넘기고 있다는 점에서 골수팬의 위력이란 게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월희] 코믹스판 3권. 그림을 맡은 사사키 쇼넨의 작화는 원작 캐릭터 디자인을 충분히 존중하고 망치지 않는 선에서 코믹스판 자체의 자리를 찾아낸 것 같아 흡족하고 타입문에서 직접 맡은 스토리는 부실재개발 상태였던 애니와는 달리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만화 자체의 오리지날리티를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3권에 와서 보여지는 장광설들이 극의 흐름을 다소 루즈하게 만들고 있고, 아직은 미숙하다고 생각되는 작화의 연출력도 그에 슬며시 힘을 더하고 있다. 나쁘진 않다, 그러나 좋지도 않다. 뭐 팬서비스용이라고만 생각하면 상당한 결과이고, 궁극적으론 애니메이션판보단 훨씬 낫지만-_-

북박스에서 재출간하기 시작, 어느새 8권까지 팍팍 와버린 [사토라레].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부터 작화는 눈에 띄게 비틀거리고 스토리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이야기로선 모인물의 죽음으로 인해 극의 굵직한 지점 하나를 넘어온 상태. 그런데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기보단 극의 줄을 좀 더 당겨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무엇보다도 갑자기 왜 작화가 그렇게 거칠고, 삐뚤빼뚤하며 성의가 없다는 인상이 들게끔 되버린 건지. 아마도 월간연재에서 격주간 연재로 들어간 시점을 기점으로 그렇게 된 걸로 추정이 되지만.... 다시 월간연재로 복귀한 걸로 아는데 작화는 나아지지 않으니-_-

이것이야말로 두려울 정도의 동인혼. 스탠다드로 잘 흘러가다가 단박에 그 인상을 날려버리는 무서울 정도의 대담하고도 과격한 한 방. 만감이 교차하는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