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의 몽타주]을 읽다보면 전쟁의 공포로 인해 쓰여진 글이 하나 들어가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 글의 덧붙임에서 그는 미국으로 달아나서 전쟁의 공포를 겪지 않아도 되는 유승준이 부러웠다고 고백할 정도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죠. [공동경비구역 JSA]도 결국 그와 같은 긴장감이 악마적으로 뒤에서 작용하고 있는 결과물이란 걸 생각해보자면, 그리고 그가 [최종병기 그녀] 영화판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전쟁이라는 가혹한 상황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감정과 태도는 그의 영화들 속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알레고리화된 가학적인 상황 설정에 대한 답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종의 매혹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실사판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쫄딱 망해서 그냥 박찬욱에게 감독을 맡기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최종병기그녀] 속에서의 상황설정은 일본의 전통적인 방어기제적 자학성에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알 수 없는 적에 의해 끊임없이 침공 당하는 일본에서, 사랑이라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두 연인의 순애보라는 극단적 대비와 그 연인이 병기라는 설정은 이 작품의 묘한 페이소스를 생성해내죠. 물론 그것이 작품의 악취미적 면모를 담보한다고 믿는 이들에겐 역겹다 라는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말이죠. 애교를 아는 사람들은 이 두 연인을 가리켜 '궁상'이라고 표현하길 주저하지 않기도 합니다만.
일본의 방어기제적 집단무의식은 미국을 향한 자괴감과 스스로 묻어온 과거에 대한 두려움에서부터 90년대 말 이후부터 폭격에의 공포, 실재하는 적-북한에 대한 구체적인 공포로 바뀐 듯 합니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때와 일치하는 이런 변화는 대중적인 측면에선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다룬 수많은 상업-동인지에서의 관심과 정치적으론 부쩍 늘어난 대북정책기조들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탈아시아적 지향인 섬나라라는 지형적 특징이 러시아-중국이라는 전통적인 적대관계인 국가들과의 영토적-외교적 마찰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종병기그녀]에서 가상의 적국은 흡사 미국과 러시아를 합쳐놓은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죠.

근자에 들어 전쟁의 공포란 걸 가장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보여줬던 영화는 [우주전쟁]이었습니다. 엄청난 물량을 바탕으로 폭격의 공포를 완벽하게 살려낸 이 영화는 스필버그와 야누스 카민스키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목적했던 테마파크적 체험쇼의 재판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리얼한 공포를 선사합니다. 다만 다른 것은 여기서 주인공은 그저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지극히 무력한 개인, 영웅이 될 수 없으며 조금만 실수해도 사망자 명부의 숫자로만 표시될 운명의 인간이라는 것이었죠. 철저하게 무력한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전쟁생존기라고나 할까요. 사실 '동시에 두 곳에서의 전쟁수행이 가능한 전비태세를 항상 갖추고 있을 것을 명문화한' 미국으로 하여금 그정도의 대규모 폭력에 노출시키게 만들 국가라는 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있기에 반이라크전쟁파인 스필버그는 도의적 측면에서의 가상의 악몽을 만들어내야 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만. 사실 북한의 대포동 시리즈가 캘리포니아까지 날아간다고 해도 미국사람들 중 신경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뭐 콩고가 미국을 침공하기 위해 쳐들어온다는 설정이 있었던 [LA탈출] 같은 영화도 일찍이 있었습니다만 그건 존 카펜터였기에 가능한 농담이었구요.
고폭탄의 파열범위는 반경 약 50미터. 전쟁이 발발하면 휴전선 즈음에는 가로 세로 1평방미터의 공간에 고폭탄이 평균 수로 세개씩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흔한 표현으로 '풀 한포기 안 남습니다.' 이번이 대체 몇번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국땅에서 사는 우리야말로 확실히 늘상 직접적인 공포 속에서 사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