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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시대의 재구성 -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시대의 내밀한 이야기
존 켈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소소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공룡이라는 거대한 존재들이 지구에서 살고 있었고 이제는 그 존재가 싸그리 사라져버렸다는 역사적 발견은 성서적 세계관에서 자신의 존재증명을 찾아내던 이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한편으론 지구의 지배자가 인간뿐이 아니었다는 점에선 성서의 세계관을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그 첫번째 충격이 자리하고 있었고 두번째는 역설적으로 생물체의 완전한 말살의 증거로 인해 요한묵시록의 장엄한 죽음의 세례가 땅 위에서 실제적으로 실현된 적이 있다는 걸 증명한다는 점에서 충격으로 다가왔으리라. 실상 종말론은 중동 사막신의 전기에서보다 더 깊은 태고적 신화의 세계들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상상과 표현의 능력을 가진 포유류의 유전자에 각인된 트라우마와도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겪은 오래 전 기억인 그 모든 과거 종말들의 표식이자 장차 인류에게 공평무사하게 내려올 동시다발적인 죽음 - 혜성충돌, 폭풍, 지진, 화산폭발, 역병, 대해일과 전쟁 등의 직접적 요인들은 신화 속에서 신들의 전쟁이라는 고상한 포장으로 덧씌워져 표현되곤 했었다.
합리적(?) 종말론자들을 계속 매혹시켰던 그 모든 현상들 중 전염병의 이야기는 유독 돋보이는 것이었다. 전염병은 흡사 죽음의 실체화와도 같다. 전염병의 풍경은 무감각한 떼죽음의 경지를 보여주는 기상변화나 개인적-국가적-민족적 이익을 걸고 '숭고한 가치'를 기치로 '숭고한 죽음'을 추구하는 전쟁의 풍광과는 다르다. 그것은 그 모든 종말의 풍경과 같이 무분별하지만 동시에 완전하게 무가치하다. 또한 전염병은 감염자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긴 죽음의 시간을 선사해준다. 가족이나 친구가 역병에 사로잡혀 서서히 피를 토하며 죽음에 침식되어가는 광경을 떠올려보라. 육체에 가해지는 긴 고통에 대한 인간의 공포는 국지적으로는 깔끔하게, 단번에 끝나는 죽음의 미덕에 대한 찬양을 읊게 만들었다. 실제로 죽음은 예술을 통해 실체화되어 아이콘이 됐다. 바로 저 중세 때, 죽음의 춤이란 주제로 만들어진 수많은 그림들을 떠올려보라. 인간의 세시기라고 이름 붙여진 무상함에 대한 고전적 주제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브뢰겔의 '죽음의 승리'는 공포와 매혹에 대한 압도적인 풍경화로 볼 수 있다.
[흑사병시대의 재구성]은 그 '죽음'을 사방에서 춤추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어두운 미학으로써 그를 기억하게 만들었으며 중세를 암흑의 시간이라 부르게 만든 흑사병이란 현상에 대한 총괄적인 재구성이다. 실로 책은 저 제목이 지칭하는 바를 워낙 충실하게 따라간다. 우리는 저자의 손에 끌려 펼쳐진 지도와 문서들, 당대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죽음의 길이 차례로 전개되는 과정을 실감나게 목도한다. 긴밀하게 겹쳐진 사료들의 실제적 의미들과 구멍난 부분을 메우는 작가적 상상력은 우리가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흑사병이란 실체를 몸뚱아리 그대로 끌어내보이는데 성공하고 있다. 즐겁게도 그 과정은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유럽사를 전공한 작가의 미시적인 시선은 병의 근원이자 통로였던 몽골의 사막에서부터 당대의 유럽까지 독자들을 종횡무진 끌고다니며 때로는 죽음이 도래하기 직전의 부산하지만 평온했던 광경들 안에, 때로는 그 죽음이 모든 것을 쓸고 간 지극히 조용하고 처연하며 너저분한 풍경들 한가운데에 서게 만든다.
저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 역병의 불평등한 부분을 지적해낸다. 그것은 인간의 바퀴벌레와 맞먹는 생명력과 그와 비슷한 정도의 편견, 그리고 그리 평등하지 않았던 죽음이, 그러니까 모든 인류를 말살시킬 정도로 완벽하게 압도적이진 못했던 죽음이 불러일으킨 결과다. 그것은 또한 원초적인 공황 안에 자리했을 때 이성의 동물인 인간이 불러일으킬 야만에 대한 많은 우화들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그것은 보다 잔인하고 억울하며 반복되어온 죽음, 바로 인종차별-유태인사냥에 대한 것이다. 병의 전래가 인간 스스로의 손으로 인해, 인간의 오만과 실수로 인해 시작되고 진행되었음에도 그 죄를 타인을 찾아 돌리는 이 오래된 이야기는 언제든 똑같이 우울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여기에 거의 언제나 역사 속의 피해자였던 이 유명한 유목민족이 지금은 가해자가 되어 똑같은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늘은 노을과 겹쳐져 검붉은 빛을 커다란 먹구름 사이로 뿜어내고 있었다. 마을을 바라보자 아직 채 치우지도 못한 시체들이 들어가는 길목 곳곳에 방치되어 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있고, 수북하게 쌓인 시체들과 내팽개쳐진 삽들, 주인 잃은 수레가 보인다. 그 뒤로 마치 시체들을 보호하는 수호령처럼 축 늘어진 덩어리-랍비모자가 모욕적으로 입에 쑤셔박힌 사람 몇이 목이 매달려서는 까마귀한테 살을 뜯기고 있는 중이다. 저녁 때이지만 불이 들어와 있는 집이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은 몇 채 보이지도 않는다. 저 멀리 반대편에 마을 바깥으로 난 길에선 반은 중얼거림이고 반은 괴성에 가까운 기이한 기도문을 외우면서 탁발수도자들이 마을로 들어서고 있다. 이윽고 축축하게 시린 비가 한 두 방울 땅바닥을 적시기 시작한다. 그 아래론 지하의 왕이 비를 피해 분주하게 죽음을 배달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풍경, 정적과 공허만이 지배하고 있던 세계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