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겼다. [생활의 발견]을 보면서 늘어지게 잤던 것을 기억하자면 홍상수 영화가 이렇게 웃기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이리도 즐겁게 즐기고 나왔다는 건 신기할 지경이다.
아예 작정을 하고 코미디영화를 만들려고 한 것처럼 보이는 [극장전]은 자신을 먹이로 삼아 지어낸 관객에 대한 두텁게 잘 짜인 조롱극이자 영화적 아이러니에 대한 유희다. 상영시간의 거진 반을 채우며 보여주는 1부는 명백히 홍상수 자신의 영화들에 대한 과장된 패러디를 보여준다. 대체 언제 죽을 거냐고 외치고 싶게 만드는 전개에서부터 과도하게 커서 종종 우스꽝스러워지는 이기우의 키까지. 그 짧지 않은 시간동안 단편영화라고 주장하는 1부의 호흡과 같이 해야했던 관객은 2부에서 감독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오버랩되는 이미지들과 마주치면서 1부와 2부를 연결하려는 자신의 무의식과 지속적인 사투를 벌여야한다. 여기서 1부는 적어도 관객의 입장에선 그 지나버린 시간, 영화가 '있었다'라는 개념상으론 진실을 보장한다고 믿게만드는 영화가 된다. 하지만 홍상수는 자신의 영화이자 현실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2부를 통해 1부로 인해 생겨난 영화 자체에 대한 진실성, 혹은 통념들을 끊임없이 무너뜨리는 작업을 전개한다. 그래서 이 영화 안에서 영화와 현실은 단순히 액자형식이라고 부르기엔 힘든, 여러층의 텍스트들로 뒤엉키게 된다.
내내 우물쭈물거리며 스스로 거짓을 만들고 소문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김상경이 어리숙하게 사랑타령을 하면서 엄지원에게 접근할 때 영화는 그가 쳐놓은 진실과 거짓 사이의 투박한 그물을 보여주면서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현현하는 욕망을 잡아낸다. 엄지원이 김상경의 가슴을 아프도록 잡고 김상경이 엄지원의 몸에 상처가 없다는 걸 알고 놀라는 장면들은 영화로 영화를 부숴버리는 기능축으로서의 역할을 하지만 그자체론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엄지원이 '영화 잘못 봤네요'라고 외치는 하이라이트는 이 영화가 드러내는 미묘한 긴장에 의해 간격에 끼어 오락가락하고 있던 모든 이에게 외치는 대사다.
분명 이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1부라는 진실 같은 거짓이 전제된 상황에서 2부의 존재가치에 대한 물음을 지속하게 만드는 조롱이지만 그 긴장을 즐기지 못할 정도로 가혹하진 않다.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 영화속 인물들의 태도는 언제나 애매함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판단을 유보하게 만들어 진실과 거짓에 대한 의심을 가속화한다. 그런 태도들은 이따금씩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해내며 마치 후루야 미노루의 만화처럼 그 씬에서의 태도들은 자극적일 정도로 과장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못견디게 만든다. 1부와 2부에서 그런 효과들은 조금씩 차이점을 가지는데 1부가 한껏 과장된 양상들을 보여준다면 2부는 홍상수의 전작들처럼 보다 싸늘하다. 그러나 결국 1부와 2부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바, 그 흐름의 일체성은 일맥상통이다. 어쩌면 이 영화가 가지는 영화적 통념의 부숴짐의 순간은 이 부분에서 찾아야할지도 모른다. 영화는 조롱하면서 연결하고 연결시키면서도 조롱하고 있다.
죽음이란 키워드는 영화와 현실 사이의 또하나의 가교를 마련해준다. 1부에서 죽음은 이르지 못할 목적으로 개그의 수단이 되지만 2부에서 죽음은 현실 그자체로 드러난다. 그래서 죽음을 유희로 만들었던 감독은 현실에선 죽음이라는 공포 바로 앞에서 죽고싶지 않다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역할을 맡게된다. 이 부분에 이르러서 2부는 보다 확실하게 현실성이라는 장치를 얻게된다.
그래서 김상경은 엄지원에게 한방 먹고 결국 영화를 제대로 보게 되는가? 여전히 모호하지만 적어도 현실적인 죽음 앞에서 폭발하는 김상경은 미약하지만 긍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에 약간의 단초를 제공해준다. 생각 좀 하면서 살자는 그의 마지막 다짐이 되려 신용도를 떨어뜨리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