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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과 윤리
노영상 엮음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 1991년 7월
평점 :
절판
영성과 윤리라는 주제로 영성신학과 기독교윤리, 목회윤리의 현장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영성에 있어서, 예전에 사고했던 것처럼 이 세상과의 적당한 거리감과 분리가 아니라 통전적 영성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주기도문을 분석하면서 통전적 영성을 전개한 것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데, 보프 신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주기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 하늘과 땅, 종교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올바른 관계를 실천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이 모든 것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예수의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관심은 인간의 관심사와 유리되지 않으며, 인간의 관심사가 그분의 관심사에 낯설지 않다.”
기독교 윤리에 있어 기독교 윤리의 바탕이 명령법적 윤리라기 보다는 인간의 존재의 변화를 먼저 전제하는 직설법적 윤리라는 거스탑슨의 정의는 특히 한국의 현실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 땅에서 기독교 신앙을 압축적으로 요약하라 한다면, ‘예수천당, 불신지옥’과 ‘주일성수, 십일조’이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구호가 기독교의 진리를 압축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속에는 이 세상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나 신앙이 전혀 자리잡고 있지 않다. 명령법적이든 직설법적이든 논의할만한 자리가 없는 구호이다. 후자에 있어서는 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을 요약하는데, 여기에서는 신앙에 있어 규범의 냄새만을 느낄 수 있다. 기독교의 신앙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할 때, 작금의 신앙은 최소한 당위에만 머물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의 신앙이 직설법적인 윤리, 존재를 강조하는 윤리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구약 시대 제사의 문제에 있어 이것을 심리학적인 자아의 죄책감, 양심의 가책으로만 보는 것은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구약에서 제사가 양심의 가책을 해소하는 것이라면, 구약의 제사의 최종적 완성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 역시 심리적인 문제로 해석될 여지가 있게 된다. 제사는 양심의 가책을 해소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을 확인하는 절차로 해석되어야 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언약들, 규범들을 침해했던 것을 다시 원상 복귀시키는 것이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은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제사의 중심은 인간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라고 여겨진다. 인간이 심리적 치료를 목적으로 제사를 고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9장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도 양심이 깨끗함을 입은 것과 양심의 가책이 해소된 것이 같은 것인지에 대해 한번 더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WCC의 주제들을 통해서 성령만이 오늘의 전 창조물의 위기를 구원할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성령님의 역사가 단지 교회나 신앙의 영역으로만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인간을 구원하며 사회를 해방하고 변혁하는 일에 있어 영성의 중요성을 부각시켰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대단히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WCC의 노력들이 과연 한국교회 현장에서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펼쳐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총회에서 하는 일은 고작 사회적 이슈에 대해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대부분의 교회는 그런 것들은 다 무시한 채 교회와 신앙에만 고립되어 있는 상태이다. 예배가 사회적 참여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예배의 생명력이 힘을 잃은 결과이다. 참된 신앙인이라면 이웃 사랑에 무관심할 수 없다는 주장이 우리 현실에서는 전혀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통전적 영성, 혹은 관상과 행동의 일치라고 여겨진다.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곧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 만물과 무관심하지 않으며, 진실로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우리 교회의 현실 속에서 더욱 심각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