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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 동백꽃 (양장) ㅣ 클래식 보물창고 6
김유정 지음 / 보물창고 / 2010년 8월
평점 :
김유정 작가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다. 현대문학 시간에 작품의 일부분을 통해 작가를 알게 된 것 같다. 우리나라 교육의 한계가 그렇듯 그 시절 어떤 작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보다는 시험에 나올만한 것을 외우는데 급급했다. 김유정하면 해학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고 그래도 그 시절 읽었던 몇몇 작품인 봄봄, 노다지, 동백꽃 등이 떠올랐다.
기회가 되어 보물창고에서 나온 <봄봄, 동백꽃>을 읽게 되었다. 표지 그림에서 수탉 두 마리가 눈에 들어오자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가물가물 떠오른다. 예전엔 그저 재미로 읽었던 이야기들이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금 읽어보니 그 의미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작품들 속의 배경은 김유정이 살았던 1900년대 초반의 농촌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힘없는 서민들의 생활상이 간혹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참으로 눈물겹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지주와 마름, 그리고 소작 농민들의 관계가 사실적으로 들어나 있다. 토지를 소유한 지주는 농민에게 땅을 빌려주고, 심복인 마름을 시켜서 소작농을 감독하게 하고, 소작료를 징수한다. 그런 과정에서 소작을 붙여먹는 농민들은 당연히 마름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고, 소작료 이외에도 마름에게 이런 저런 것을 가져다 바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눈에 그려진다.
‘본디 마름이란 욕 잘하고 사람 잘 치고 그리고 생김 생기길 호박개 같아야 쓰는 거지만 장인님은 외양이 똑 됐다. 장인님이 닭 마리나 좀 보내지 않는다든가 애벌논때 품을 좀 안 준다든가 하면 그해 가을에는 영낙없이 땅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미리부터 돈도 먹이고 술도 먹이고 안달재신으로 돌아치던 놈이 그 땅을 슬쩍 돌라안는다. 이 바람에 장인님 집 빈 외양간에는 눈깔 커다란 황소 한 놈이 절로 엉금엉금 기어들고 동리 사람은 그 욕을 다 먹어 가면서도 굽신굽신하는 게 아닌가.‘ <봄봄> 중에서
<동백꽃>을 보아도 주인공 나는 점순이가 얄미워도 마름집인지라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길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무방>에선 더 적나라하게 보여지는데 응칠이는 농사를 열심히 지었지만 남는 것은 겨우 남의 빚뿐이었고 야반도주를 했지만 그나마 빌어먹기도 어려워 아내와 아이와 헤어진다. 동생 응오 역시 농사를 지어 수확을 했으나 이것 저것 제외하고 보니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어 빈지게만 덜렁거리며 집에 온다. 그러다 올해 또 수확철이 되자 자신의 논에서 도둑임네 벼를 훔치는 장면은 처절하다.
또 한 가지 작품 속의 시대는 장가들기도 힘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연애든 중매든 서로 좋으면 결혼을 할 수 있지만(표면적으로 보여지는 현상은) 1900년대는 결혼하려면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도 해야되고, 그것마저도 힘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땡볕>을 읽으면서 가난해서 담배도 맘껏 필 수 없는 남편이 아내가 일주일 후면 죽는다지만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으니(구체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다시 업고 와야 하는 장면에선 참으로 안타까웠다. 사실 이런 일은 작품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다지>와 <금 따는 콩밭>에선 그 시대상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이때는 일제의 폭압과 수탈이 심해지는 시기로 당시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들, 그 가운데서도 수작농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일제의 주요한 수탈 대상이었다. 가난에 찌들어가는 농민들은 일확천금의 기회가 될 수 있는 금을 찾겠다고 열심히 지어 놓은 콩 농사를 스스로 포기하고 유혹에 빠져버리는 모습과 금에 눈이 멀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위험에 처해있는데도 외면하는 모습이 당시의 고통과 질곡의 삶을 보여주는 듯 하다. 오늘날 가진 자들은 계속 더 큰 부를 획득하고 가난한 자들은 더욱 깊은 가난 속으로 곤두박질하는 모습과 닮아 있는 듯 하다.
책을 읽고 나서 이 작품이 언제 발표되었는지와 시대상황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작품 속에 숨겨진 상징이나 은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든다. 말도 시대에 따라서 생성, 소멸의 과정을 겪듯이 지금은 잊혀진 말투나 단어들이 무척 새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열심히 주석을 찾아서 살펴보아야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