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마음>을 리뷰해주세요.
느림보 마음 - 시인 문태준 첫 산문집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도시살이에 몸이 익숙해졌지 싶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더운 날씨 탓도 있을 게다. 조금만 허둥대도, 마음이 조급해도 쉬이 지쳐 떨어진다. 만사가 귀찮은 늘어진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두리번거리고 나서야 내 주위에는 뭐 하나 느린 게 없다는 걸 알아챘다. 

끓은 물만 부으면 되는 사발면이 박스 채 보이고, 몸집이 날렵한 노트북은 엉뚱하게 책 사에 깔려 있다. 무게가 가볍다고 해서 샀다가, 느린 처리 속도에 열불이 나서 대충 치워버린 애물단지다. 하지만 이도 어디에 있든지 쉬지 않고 빨리 빨리 뭔가를 하겠다고 부러 가벼운 걸 고른 것이다. 

폭염 속에서 옥수수대가 근엄한 장수처럼 굵어지고 있습니다. 폭염 속에서 풀들이 허공의 계단을 한 뼘씩 올라서고 있습니다. 나 스스로에게 의지해서 마음이 퇴전하지 아니하고, 어지러워지지 아니하고, 깨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여름 햇살이 우리에게 소원하는 삶의 내용입니다. 그것이 풍성한 가을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이 여름을 멋지게 지내는 최고의 피서법입니다.  <느림보 마음> ‘여름의 근면’(31쪽) 중에서 

나는 문태준 시인의 당부와는 정 반대로 여름을 나는 중이다. 그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더참을성이 없이 빠르고 간편한 편의점식 도시생활에 길이 들 때로 든 탓이다. 참을성이 없다보니 가을 결실을 준비하는 자연의 이치를 견디지 못하고 에어컨 바람을 쫓아 건물 안에 틀어박혀 산다. 덜컥 이렇게만 살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그나마 책에 재미를 붙이면서 달뜬 마음을 가라앉힌다지만 것도 한참 멀었다. 쉽게 쉽게 읽히지 않으면 금세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문태준 시인의 첫 산문집 <느림보 마음>은 빨리 읽을 수가 없었다. 짧은 글 한바닥 읽을 시간이 딱 사발면 한 끓일 정도면 족하지 싶었는데, 어림없다. 두어 페이지 남짓한 곳곳에 시인이 길러 올린 빛나는 문장이 눈길을 불러다가는 붙잡고 놓질 않는다. 

‘박무(엷은 안개)는 빗으로 공중을 한 번 빗겨주는 정도입니다.’, ‘나는 매병의 구멍에다 입김을 불어넣기도 했습니다. 한 줌의 안개 같은 소리가 매병 속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의 추위로 연못은 살얼음이 얼었습니다. 살짝 얼어서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 같습니다.’ 누가 시인 아니랄까봐, 시어로 적당한 구절들이 눈에 들어와 박혀서 한참을 깜박거리면서 머물렀다. 

그렇대도 산문집에서 맑고 소박하게 풀어놓은 시인의 삶은 잔치국수처럼 평범하고 무난하다. 그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이 산다. 시골에는 명절 때 찾아뵙는  부모님이 계신다. 

시인이라고 왜 남들처럼 수상하게 돌아가는 세상 꼴에 타박하고 싶지 않고, 거들고 싶지 않겠냐만 그는 밖에서 온 것들의 나팔수로 떠들고 풀어버리지는 않는다. 다만 내면의 우물에 비치는 자신을 들여다본다. 깊은 우물물에 비치는 풍경은 눈이 익을 때까지 한참을 바라봐야 하지만, 한 번 보이면 거울처럼 좀처럼 흔들리는 법이 없다. 그 안에는 따뜻한 화로 같은 고향, 풀을 뜯는 소의 느긋한 담담함이 있다. 

‘사실 가장 감동적인 말씀은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말씀’으로 ‘순하고 무던한 말씀들 앞에서는 머리를 깊숙이 조아리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소박한 말씀은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는 당부, “집안은 모두 편안하지?”라는 안부 인사, ‘이제 오느냐?’처럼 ‘입안에 넣고 굴리면, 첫맛은 쓰고 나중에는 단맛이 입안에’ 도는 말들이라는 데, 내 입에서도 굴려보니 참말이다. 

나도 쓰지 않는 말은 아니지만 입치레로만 여기고 쉬이 흘러버리고 말아 쓴맛도 채 보기 전에 뱉어버렸구나 싶다. 느리게 산다는 것, 그것은 귀와 눈과 혀와 코로 이 우주를 만나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 오래 내 안에 남길 바란다. 평범하다는 게 감당도 못할 욕망에 치어 신기루를 눈으로 쫓는 삶과는 좀 다른 것이라고, 꾸짖지 않고 좋은 말을 고르고 골라 머리를 쓰다듬듯이 조근조근 나누는 말에, 애초 다른 건 뭐든 반발부터 하고 나섰을 마음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말복이 지났다. 이 여름을 윙윙 기계 도는 찬바람 밑에서 코를 훌쩍일 게 아니라 왕성하게 몸피를 늘리는 나무 그늘이라도 찾아가 생명을 불어넣는 순하고 느릿느릿한 바람에 몸을 맡겨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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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를 리뷰해주세요.
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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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노서아 가비>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새벽 2시가 좀 안 된 시각이었다. 난 커피를 두고 까탈스럽게 구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찬장에 있는 일회용 믹스 커피나 편의점 캔 커피로 채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주인공 따냐가 가장 아끼는 사이폰 커피포트로 내린 커피를 아주 뜨겁게 한 잔 마시고 싶었다. 

그러고 나면 잠들지 않는 열대야의 뜨거운 숨이 뻬쩨르부르그의 백야처럼 잦아들 것 같았다. 커피 얼룩이 남은 메마른 잔에서 올라오는 커피향을 타고 에스프레소 커피처럼 검은 잠이 찾아오길 바랐다. 

커피포트의 알코올램프에 성냥불을 댕긴 듯 열기가 치받쳐 올라오는 밤, 3시간가량 꼬박 <노서아 가비>에 홀렸으니 목이 메마른 게 당연하다. 하지만 정말이지, 이 갈증을 차가움으로 해결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에 서른 잔의 커피를 마시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커피중독자 발자크의 심정은 몰라도 암울한 조선의 현실을 고통스런 불면의 밤으로 지새우기 위해 일부러 노서아 가비차(러시안 커피)를 사약 마시듯이 가까이했다는 고종의 타는 갈증이 알 듯도 모를 듯도 했다.  

제길, 냉장고에서 물병째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책에서 커피향이나 정말 나나 싶어 코를 킁킁대는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를 방금 내가 하디니! 제길! 불면증 때문에 머리가 몽롱해진 탓이다. 김탁환을 시류를 타고 역사 인물을 끄집어내는 몇몇 통속 팩션(faction) 작가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신윤복이 여자라는 식으로 교과서 속 인물들의 이름을 따와서는 그 이름에 기대어 책임지지 못할 짓을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김탁환의 소설은 이전까지 읽어보지 않은 채였다.  

<노서아 가비>는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이자 희대의 사기꾼인 따냐를 가공으로 빚어서 고종, 민영환, 이완용, 베베르 등 실제 역사 속 인물들과 절묘하게 뒤섞은, 비유하자면 김탁환이라는 이름을 내걸은 블랜딩 커피이다. 길지 않은 소설인 탓에 역사적 사건들은 무리 없이 묘사되었고, 시기가 다른 부분은 작가의 말에서 밝혔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청나라와 러시아를 돌아 다시 조선 황실을 거쳐 미국 뉴욕에 이르는 굴곡진 여정을 후일담으로 따냐가 썼다는 식이어서, 애초에 피했다. 후일담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면 되는데다 손꼽이는 사기꾼이 한 얘기이니 부담 없이 재밌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 

시대 배경이 조선 후기이고, 커피를 소재로 했다는 특이점을 걷어내면, 미워할 수 없는 사기꾼들의 속고속이는 모험담은 익히 영화로 익숙한 패턴이다. 세밀한 묘사나 자세한 설명 대신 대화와 사건으로 빠르게 푼 소설은 영화와도 잘 맞는다. 출간하고 바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노서아 가비>의 장점은 맛깔스러운 문장에서 나온다. 읽으면 읽을수록, 혀에 올리고 굴리면 굴릴수록 오미(五味)가 돌았다.  

똘스또이의 소설에서 따온 이반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선인, 그는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서 단연 살아 꿈틀거리는 최고의 옴므파탈이다. 관노비의 아들, 정도령, 갈범 사기단 두목, 러시아 통역관, 한성부 판윤 김종식, 떠돌이 중… 그러나 그에게 매혹된 이유가 다채로운 이력 때문은 아니었다. 고종을 암상하려다가 잡혀서도 당당한 그의 혀, 일류 사기꾼 따냐의 마음마저 흔들어 놓은 세치 혀에 덩달아 뻔히 거짓말을 하는 줄 알면서도 스르륵 끌리게 된다.  

의사소통에서 대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7% 정도이고, 억양, 표정, 몸짓, 자세가 나머지라던데, 짧게 주고받는 대화에 이반은 홀연히 살아난다. 이 역할을 영화에서 어떻게 보여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내 인생에서 단 하나뿐인 남자, 이런 식으로 거창하게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확실히 그는 내 삶을 흔들고 찢고 흩어놓았다. 그가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할 까닭도 없다. (232쪽) 

고종을 염려하는 마음이나, 이반을 두고 갈팡질팡 하는 애증을 보면 ‘따나’의 마음 한구석 온기가 있음이 분명하나, “아이는 아이고 사기는 사기죠”라고 말할 때는 정이 뚝 떨어진다. 이반에게 매료된 바, 좀 더 신파여도 좋겠다는 들뜬 바람 탓일 것이다. 어쩌면 땨나가 스스로 쓴 글이니, 고종이나 이반을 향한 마음을 내비칠 때는 과장과 상상을  덧붙였는지도, 또 이 대사가 유일한 진실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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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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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8월의 밤을 기억하네 

땀이 밴 속옷을 훌렁 벗어던졌는데도, 선풍기 바람이 좀처럼 시원하게 와 닿질 않는다. 작은 창문을 다 열었지만 꽉 막힌 듯이 오래된 선풍기의 모터 열기는 좁은 방을 꽉 채웠다. 1979년 여름은 지독한 폭염이었다, 고 신경숙은 『외딴방』에서 말한다. 8월의 어느 토요일 밤, 큰오빠는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방학을 맞아 막 서울로 올라온 외사촌을 깨운다.  

“재규야, 너 내일 가거라.” 자고 있던 외사촌오빠 재규가 깜짝 놀라 일어난다. 벽 쪽을 향해 돌아누워 있던 외사촌도 일어난다. “제발 좀 가거라, 응?” (182쪽) 

선풍기 하나 없는 서울 가리봉동 공단지역 쪽방, 어른 넷이 뭉쳐서 여름밤을 나기란 무리가 따랐다. 큰오빠와 여동생인 ‘나’, 외사촌 언니와 외사촌 오빠는 지금의 나처럼 편하게 옷을 훌훌 벗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더워도 큰오빠는 그런 말을 쉬이 할 사람이 아니다. 17살 여동생과 20살 외사촌 누이가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부터, 공장에 다니면서 산업체특별학급 학생으로 공부를 하는 지금까지 그녀들의 힘든 여정 뒤에는 큰오빠의 도움과 희생이 꼭 필요했다. 

신경숙의 자전소설 『외딴방』에서 너덧 살 터울의 누이들을 격려하고 혼내고 뒷바라지하는 스물 대여섯의 큰오빠는 세 식구 중에서 일에 쫓겨 외딴방을 가장 오래 비우지만 그의 부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방위병 신분으로 학원 강사를 하기 위해 산 엉성한 가발이 방 안 높은 자리, 다락문에 걸려서 내려다보듯 그의 시선은 늘 외딴방의 여동생에게 향해 있다. 

어린 새를 보듬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어미새처럼 보금자리를 지키는 큰오빠는 엄격한 아버지이자 자상한 어머니이다. 때론 따뜻하고 때론 시원한 날개 밑이다. 하지만 이방인에게는 뜨겁고 한편으로 서늘했다.  

이번이 꼭 그랬다. 한밤중이라 안보였지만 외사촌 남매는 부끄럽고 분이 나서 귀가 새빨개졌을 것이다. 하지만 외딴방은 분명 큰오빠의 그늘이었으므로 외사촌 남매는 군말 없이 새벽에 집을 나섰다.  

소설에서 큰오빠가 데리고 사는 동생들이 아닌 이에게 대놓고 타박을 하는 대목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여동생과 친하게 지내는 게 영 마뜩치 않은 희재 언니를 두고 웬 남자가 ‘그애 방에서 나가는 걸 봤다’고 행실을 타박을 하면서도 안 할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동생인가?’하고는 입을 다무는 그이다.  

앞뒤 맥락 없이 삽화처럼 등장한 한여름 밤의 일화는 내가 무더위에 잠을 설치지 않았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대목이다. 큰오빠의 머릿속에서 외사촌남동생 때문에 잠자리가 더욱 불편했을 숫기 없는 여동생이 불면의 밤 내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토요일 밤을 그냥 보낸다면 여동생은 일요일도 이대로 쉬지 못하고 고단한 월요일 아침을 을 맞을 것이기에. 

그런 큰오빠가 곁에 있는 외딴방에서의 여름은 화자이자 작가인 여동생에게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 덩어리로만’ 보는 뜨거운 지옥의 한철이 아니라 작은 온실에서 감내해야 할 일상이다. 공장과 학교를 오가며 피곤에 지쳐 잠을 자는 사이사이에 설핏 잠에서 깨어 열 덩어리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어린 소녀는 70년대와 80년대를 견디어 냈다. 1979년 8월의 YH무역 농성사건과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의 시대 아픔을 통과하는 내내, 외딴방은 화자가 작가의 꿈을 키우는 외부와 격리된 아늑한 온실 속 모판 같은 곳이었다. 

 

희재 언니의 흘러가는 방, 미끄러지는 방 

서른일곱 개의 방, 그 방 하나에 한 사람씩만 산다 해도 서른일곱 명일 텐데 봄이 되도록 내가 얼굴을 부딪친 사람은 서넛도 안 되었다, 고 (…) 대문을 들어서면 밖으로 난 문에 자물쇠들이 먼저 눈에 보였다, 고. 가끔 문을 따고 있는 사람의 뒷등을 보면서 나는 삼층으로 올라가곤 했다, 고 (145쪽)  

작가가 견디어냈으나, 희재 언니가 끝내 떠나지 못한 서른일곱 개의 방은 오르려고 섰으나 다시 한 계단을 내리 딛어야 하는 이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70년대 말, 전태일 열사의 죽음으로 기억되는 공장노동자의 열악한 근로조건은, 게다가 시골에서 상경한 어린 여공들의 품삯은 실로 보잘 것 없었다.  

돈을 벌어 고향 부모를 모시고,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고, 적금을 들어 시집을 가고 싶다는 소박한 꿈은 항상 쪽방 안에서만 머물 뿐, ‘밖으로 난 문에 자물쇠’에 갇혀 좀처럼 나오지 못했다.  

“이 집은 좋아…… 누가 죽어도 모를 거야.”(148쪽)  

희재 언니가 무심코 한 혼잣말처럼 그녀는 남이 알지 못하도록 밖에서 열쇠통을 잠그고 자살을 한다. 희재 언니의 방을 포함한 서른일곱 개의 방에 사는 적어도 서른일곱 명은 하나의 대문을 사용하고 한 곳의 수돗가를 사용하지만 누가 이사 가고 가는지, 누가 사는지 서로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외딴방』은 다르다. 명랑한 외사촌 언니가 있고, 조금만 늦어도 불 같이 화를 내는 큰오빠가 있다. 집으로 오는 길, 손에 삼치 한 마리 참외 몇 개를 사들고 오게 하는 나를 기다리고, 내가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는 왜 희재 언니가 열쇠통을 잠그는 역할을, 평생의 천형으로 남을 그 일을 자신에게 부탁했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열아홉 살에 생긴 상처는 서른셋에 소설로 풀어낼 때까지 『외딴방』과 주변의 공장과 학교와 지하철역을, 서울시지도에서 그 동네를 가위로 오리듯 공간을 아예 부정해버리는 상처가 되었다. 어쩌면 그 일로부터 작가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책에 파고들었고, 사람들과 친해지길 두려워했다, 고 고백한다. 

그럼, 그럼, 그럼. 가능하지 않은 일이 전혀 없는 우리들의 짧은 그 시간, 어렴풋이 예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희재 언니는 물었고 나는 그럼, 대답했다. (149쪽) 

희재 언니는 소설 속 가공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아니, 가공의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희재 언니가 아니어도 자물쇠로 잠긴 서른일곱 개의 방들 중에는 비슷한 사연을 한두 가지쯤 품고 있었을 것이다.  

어린 작가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놀이를 통해 ‘그럼’이라고 대답을 해주는 정도다. 희재 언니는 고향 살림과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다. 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일찍 퇴근해서는 학교 대신 또 다른 직장인 의상실로 발길을 옮긴다.  

손바닥으로 그녀의 눈을 가린다. 손바닥을 적시는 물기. 울고 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니?” 열아홉의 나, 베개를 끌어안고 가만있다. “나만 그런 걸까? 다른 사람들도 그러는 걸까?” (377쪽) 

통근에 결려 새벽에서야 아무도 없는 빈방으로 돌아왔다가 교복을 입은 채로 잠이 들고 교복을 입은 채로 공장으로 나서는 내내, 교복은 더 이상 전화교환원이 되기 위한 희망이 될 수 없었다. 공장 밖까지 따라와 몸에 달라붙은 또 다른 작업복일 뿐이다. 

 

밖에서 잠근 열쇠통, 기억의 봉인 

서른일곱 개의 방에서는 어쩌다 서로 기척만 겨우 느낄 뿐 그림자나 다를 바 없었으므로 희재 언니는 큰 집에서 혼자 사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방은 한여름에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희재 언니의 빈 방에 자기 그림자가 아닌 남자가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좁은 방은 북적였고, 둘은 행복했으나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재봉틀을 돌리는 연인은 동시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쌍둥이 같은 것이어서 둘의 운명은 늘 아슬아슬했다. 나란히 일하고 나란히 잠을 자는 동안 아이가 생겼다. 전에 동거를 했다가 가족이 되길 포기한 희재 언니는 뱃속의 아이를 통해서 비로소 용기를 내 가족을 이루려고 한다. 복작복작 싸우고 달래면서 서로의 상처를 핥는 끈끈하고 질긴 화자의 외딴방을 닮으려 애쓰는 것이다.  

아이를 떼라 했지요. 헤어지자는 게 아니라 아직은… 아직은… (384쪽)  

왜 희재 언니는 문을 잠갔을까. 남자의 말은 야속하지만 그게 어거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싸우고 나간 남자가 머지않아 쑥스럽게 귤이라도 한 봉지 사들고 돌아오리라는 걸 알면서도 왜 그렇게 처절하게 저항을 했을까.  

그녀는 쪽방이 되길 거부했다. 사람들이 흘러왔다가 잠깐 머물고는 그림자와 뒷모습, 잠근 자물쇠로 남아 떠나는 모습, 얼굴이 없고 실체가 없는 이들이 잠시 들어왔다가 흔적도 없이 떠나는 방. 자신의 자궁이 자신의 아이에게 그런 곳이 되는 걸 온몸으로 거부했다. 

작업장 번호로 불리면서 공장을 전전하며 살아온 엄마처럼 뱃속의 아기도 이름도 없이 내쫓아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자신도 자신의 자궁처럼 자신도 자궁이 없는 미숙아처럼 세상에 내던져지리라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낙태수술 자국으로부터 도망을 친다고 해도 결국 쪽방이라는 불안한 자궁에서 자라다가 녹슨 자물쇠로 남을지도 모를 나의 아이. 이번 아이를 지워도 쪽방에 새로운 누군가가 세를 들어오고 나가듯이 두 번째 아이, 세 번째 아이도 지워야 할지도 모르는 인생. 

희재 언니는 아이를 방(자궁)에서 쫓아내는 대신, 운명을 거스르고 스스로 외딴방이 되기로 결심한다. 화자의 식구들이 저녁이면 모여서 밥을 먹고, 뒤엉켜 잠을 자며 하나가 되듯, 뱃속의 아기와 둘이면서 한 몸인 지금 이대로 외딴방으로 영원히 남기로 한다. 

밖에서 잠근 열쇠통은 방해를 받고 싶지 않은 희재 언니와 아기에게 눈물겨운 공간을 내어주었다. 실수로라도 누군가 문을 벌컥 열거나 문을 두드리지 않도록 열쇠통은 문 앞을 지키는 충직한 개처럼 든든하다. 그래봐야 두어 번 발길질에 힘없이 무너져 내리겠지만 적어도 희재 언니가 세상이 머무는 잠시나마 안락하게 지켜주었던 방어막. 

 

자, 이제 외딴방의 문을 열고 나와 

자, 이제 다시 작가의 아물지 않는 상처로 돌아가면 이렇다. 작가란 이렇게 자신의 상처마저도 딱지가 안기 전에 다시 헤집고 소금을 뿌려 고통을 다시 일깨우는 자신에게조차 영원한 관찰자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다.  

……내 아무리 집착해도 소설은 삶의 자취를 따라갈 뿐이라는, 글쓰기로서는 삶을 앞서나갈 수도, 아니 삶과 나란히 걸어갈 수조차 없다는 내 빠른 체념을 (243쪽)  

허구와 실제를 오가는 ‘ 그 중간쯤의 글’ 『외딴방』에서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작가가 되고프다 고한들 이제 열아홉 소녀를 두고 희재 언니가 자신의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줄 거라 기대했다고는 보기는 어렵다. 부러 죄의식이나 짐을 지우려고 했을까? 질투 때문에? 든든한 가족을 둔 화자를 두고 그런 감정을 품지 않았을 리는 없지만 설마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서른일곱 개의 방 가운데 화자가 사는 외딴방을 세상으로부터의 낙태가 아닌 잉태가 가능한 건강한 자궁으로 봤다는 게 맞을 것이다.  

작자의 큰오빠와 셋째오빠를 비롯한 가족사를 보면 80년대 저임금 노동의 굴레로부터의 땀의 소금기가 잔뜩 밴 탈주기라고 봐도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희재 언니가 살았을 당시에는 화자의 가족이 외딴방을 벗어나는 건 이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몫은 온전히 큰오빠에게 달린 문제지, 어린 화자에게는 선택권이 달리 없었다. 

화자가 열쇠통을 잠그고 난 뒤, 희재 언니가 언제 자살을 옮겼는지는 알 수 없다. 죽음을 선택한 순간은 찰나일 것이다. 다만 그녀는 죽어서라도 그 방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었나 싶다. 구더기밥이 되더라도 그 방에서 나가고 나면 이제 다른 쪽방 사람들처럼 그녀와 뱃속의 아이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므로. 그래서 화자에게 부탁을 했을 것이다. 화자는 그 방을 꼭 잠근 열쇠통을 지키는 부적이었다. 다시 돌아온 남자가 희재 언니를 찾을 때마다 화자는 “희재 언니는 시골로 휴가를 떠났다”는 얘기를 꼬박꼬박 전한다.  

훗날 화자가 버스차창 너머로 화자가 번화한 명동 밤거리에서 우연히 본 희재 언니의 남자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희재 언니를 기억할까.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의 잘못을 탓할 수는 없다. 남자 스스로도 지워지고 미끄러지는 현실에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면. 

희재 언니를 기억하는 건 이제 화자뿐이다. 외딴방을 꽉 막은 열쇠통을 열면 먼지가 되어 휙 날아갔으면 하는 기억이다. 하지만 희재 언니의 선택은 옳았다. 작가가 된 화자는 외딴방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서른셋이 되어서야 희재 언니의 외딴방을 열어보니 외딴방 안에 있는 건 희재 언니가 아니라 화자 자신이다. 

 

다시 만난 희재 언니 혹은 그녀의 아이 

외딴방 시절을 소설로 옮기는 과정이 외딴방 시절의 회고와 엇비슷하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엇비슷한 비중을 차지한다. 외딴방 시절의 산업체특별학급 급우 하계숙의 “왜 우리들의 얘기를 왜 쓰지 않느냐”는 가벼운 투정이 화두처럼 묵직하게 얹힌 이유도 그녀가 작가가 된 이후 내내 방 안에서 나오려고 노력했다는 증거이다.  

희재 언니 혹은 희재 언니와 한 몸으로 남은 아기의 모습이 외딴방을 쓰는 과정에서 종종 오버랩이 된다. 어린 조카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세밀한 묘사도 그렇지만, 삼풍백화점 붕괴 뒤에 13일 만에 극적으로 살아남은 소녀를 내보내는 뉴스 화면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두드러진다. 

저 얼굴, 내가 사랑했던 얼굴. 그녀다. 어둠 속에서 칠흑 속에서 살아 돌아온 얼굴 (358쪽) 

얼추 희재 언니의 아이가 자랐으면 비슷한 나이였을 소녀에게 일순간 벌어진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희재 언니 뱃속의 아이에게 닥친 역경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아이는 기적적으로 살아나서는 “희망을 잃지 말라는 엄마의 말씀”을 떠올렸다고 천진난만한 희망을 전한다. 사랑했던 희재 언니 혹은 그녀의 아이. 

조선족 작가와의 만남에서도 희재 언니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진다. 조선족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뽑힌 중국정부 선정 56명 중국 소년별 출신인 그녀는 중국에서 작가로 인정을 받은 뒤에 지금은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화자와 만난 그녀는 나라가 없는 조선족의 정체성 혼란을 토로하면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화자를 부러워한다. 그럼에 꿋꿋한 모습은 백화점 붕괴로 가족을 잃었으나 꿋꿋하게 살아남은 아이가 자랐다면 딱 이랬을 모습이다.  

조선족 작가와의 대화에서 작가가 이제 비로소 외딴방을 열고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몇 가지 조짐을 보았다. 작가에게 가족의 범주는 남달리 두텁고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다는 건 소설 전반에 걸쳐 충분히 드러난다. 작년에 출간된 『엄마를 부탁해』에서 가족에 대한 애착은 최고조에 오른 듯하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외딴방』에서도 따로 덜어내면 단편 한 편이 충분히 나올 만큼 자주 언급된다.  

그래서 그녀가 『외딴방』 앞에 마주서서 열쇠통을 열기 위해, 일상에서 떠나 외딴방으로 거슬러 올라가듯 찾은 곳이라 봐야 제주도다. 자다가도 엄마를 찾고, 엄마가 대답을 해야 도로 잠이 들 정도로 본능으로 엄마의 기척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어린 조카처럼 그녀는 제주도에서 아열대식물로 가득한 공원이나 특이한 용암동굴 등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곳을 찾아다니면서도 가족과의 언제든지 접촉할 수 있는 일정한 거리, 굳이 말하자면 한국 땅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조선적 작가가 가질 수 없는 끈이고, 닿을 수 없는 거리이다. 이젠 희재 언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그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박정희 대통령 암살로부터 광주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강렬한 사건으로 기억되는 시기는 소설에서도 학생운동에 참여한 셋째오빠나 광주를 다녀온 친구를 통해 몇 가지 단상이 드러나지만 외딴방에서의 삶은 시대를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았다. 당장 희재 언니의 방문조차 열어보지 못하지 않았는가. 

1995년, 화자의 가족은 이제 행복하다. 아버지는 새로 집을 올릴 계획에 부풀어 있고, 어머니는 여전히 건강하며, 큰오빠와 셋째오빠는 직장을 다니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여동생은 약사에 남동생은 대학생이고 무엇보다 화자부터 작가가 되어 외딴방의 꿈을 현실로 이루어냈다. 그 시절에서 온전히 빠져나온 단란한 가정이다.  

희재 언니를 자살에서 구했다고 한들, 누가 그녀를 책임질 수 있었을까. 그 몫이 온전히 화자에게 돌아온 지금, 작가라는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작가가 그 시절을 그다지 과장을 하거나 왜곡한 듯이 보이지는 않는다. 이념이나 구호가 아닌 서민들의 지난하고 솔직한 삶이 이 안에 있다.  

하지 못한 말과 행동들이 소설화되지 않고 미래로 남아 있었을 때로 되돌아가고 싶다. 수정과 보탬과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때로…… 1995년 8월 8일에. (410쪽)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니, 시대도 암울했거니와 작가 자신에게도 결코 만만치 않았던 그 외딴방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믿어야 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그녀가 소설 출간 이후 예컨대 영등포여고 야간반 친구들과 동창회를 비롯해 글 안팎에서 행보를 보면  그 시절과 너나들이 하며 스스럼없이 지낸다고 믿게 될 지도 모르겠다.  

우연인지 뭔지, 지금 2009년 8월 8일 밤이다. 나도 혹시 내가 닫아놓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을 방문을 찾아보기에 딱 좋은 열대야, 불면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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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를 리뷰해주세요.
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 - 티베트에서 보낸 평범한 삶, 그 낯설고도 특별한 일 년
쑨수윈 지음, 이순주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작년 3월, 시짱 티베트 자치구 수도 라싸에서 자주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중국의 유혈 진압으로 200여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한 비극(3·14 사태)이었다. 올해 신장 위구르 자치구 위구르족에서도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역시 유혈 참사가 벌어지면서 티베트 사태와 비슷한 양상이 반복되었다. 한족과 소수민족 간의 갈등은 중국이 안고 있는 가장 불안한 화약고로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티베트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작년 4월 즈음, EBS에서 영국 BBC가 제작한 5부작 다큐 '영혼의 땅, 티베트'(A Year In Tibet)를 방영했다. 티베트 사태가 벌어지기 1년 전, 2006년 7월부터 1년 동안 티베트에 머물면서 간체 현 팔코르 사원과 탕마이 시골마을을 중심으로 무당, 마을 의사, 청년 당원, 승려, 농부, 호텔 사장, 인력거꾼, 건축업자, 임산부 등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티베트 유혈 사태 이후 세계는 중국의 인권 유린을 문제 삼았고,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와 인도의 사주라면서 언론 통제로 맞섰다. 티베트 내 공안 비율은 인구 20명 당 1명으로, 인구 1000명 당 1명인 중국 본토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위구르 사태로 더욱 높아진 정치적인 긴장 고조와 티베트인들 내면의 불안을 고려하면 짐짓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을 담은 ‘영혼의 땅, 티베트’는 어쩌면 앞으로 두 번 다시 촬영하기 힘든 의미 있는 자료일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는 ‘영혼의 땅, 티베트’의 다큐멘터리 감독 쑨수원이 영상으로 담지 못한 뒷이야기를 써내려간 르포이다. 영국인 남편과 영국에서 살고 있지만 중국인인 그녀의 눈에 비치는 티베트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책을 읽고 나서 본 다큐멘터리는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1년의 긴 촬영 여정치고는 짧은 5부작인 점도 아쉽지만 전반적으로 어디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지 헤매는 듯 했다. 각 부마다 각기 다른 인물과 소재를 삼았으나 40분 남짓한 영상에 담을 수 있는 한계란 뚜렷했다. 카메라는 무엇을 찍어야 할지, 아니 찍지 말아야 할지를 몰라 전전긍긍했다.  

장례식이나 조장(鳥葬) 등 외부인의 발길이 부정을 탈 수도 있다는 민간신앙을 고려해 촬영을 접은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애써 정치적인 문제를 비켜가려다 보니 한계를 보인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티베트 인과 중국인 사이의 50년 넘게 응어리진 갈등은 다큐멘터리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드러나듯이 삶 전반을 움켜쥐고 있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또 방영을 앞두고 점차 고조되는 중국 내 긴장감을 고려해 더 신중하게 편집을 하느라 수많은 러시 필름을 창고에 묵혔을 것이다.  

EBS는 ‘영혼의 땅, 티베트’를 방영하고 한 달 뒤인 2008년 5월에 ‘시사다큐멘터리 티베트를 가다 - 인권을 빼앗긴 사람들’(Undercover in Tibet)를 방영했다. 2008년 티베트 사태 이후의 상황과, 오래 전부터 중국의 인권 탄압과 박해를 박은 티베트인들을 긴박하게 취재한 내용이다. 이 역시 영국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인데, 개인적인 착각인지 모르지만 엇비슷한 제목을 통해 마치 ‘A Year In Tibet’이 진실에 눈 갚았다고 힐난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큐멘터리는 티베트인들의 삶을 농밀하게 풀어낸 책 속 등장인물을 화면에서 확인하는 정도였다면 심한 얘기일까. 아무려나 다큐는 그녀가 하고픈 얘기를 채 반도 담지 못했다. 그렇다고 책에서 그녀가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입장을 밝혔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국과 중국을 오가는 삶을 사는 그녀에게 정치적인 논란은 꽤나 고심했을 부분일 것이다. 허나 적어도 티베트에 있는 내내 그녀의 속에 새로운 변화가 인 것만은 분명하다. 

대륙의 동쪽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장학생으로 옥스퍼드 대학을 다닌 엘리트 중국인 쑨수원과 대륙의 서쪽 티베트 시골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아버지를 통해 무당직을 이어받은 체텐의 만남. 정치적인 거리만큼이나 살아온 문화가 전혀 다른 두 사람을 ‘중국’이라는 국가 개념으로 묶기가 힘들어 보인다. 

이 둘의 만남과 우정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이승에서 만족스럽게 한껏 살아온 쑨수원은 양의마저도 자신의 병을 고치려고 무당을 찾는 영혼 치료, 다수의 형제가 한 명의 아내를 공유하는 일부다처제, 당사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들이 결정하는 혼례 등 티베트의 시골 풍습은 현대인의 눈에는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다. 부엌이고 천정이고 마당이고 화장실이고 사방팔방 수많은 영혼으로 둘러싸인 채로 산다는 티베트 무당이라니! 

“나는 그들의 믿음과 내 자신의 믿음 간의 격차를 좁혀보려 애쓴다. 저기 어딘가에 영혼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이런 의식을 올리겠는가?”(76쪽) 어려서부터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공산주의 교육을 받은 신지식인 쑨수원은 체텐이 행하는 의식을 정중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애쓴다. 

반면, 가을 수확을 앞두고 율라 신을 달래는 ‘우박 방지사’인 체텐에게 구름에 포를 쏘아 우박을 예방하는 당의 고사포 도입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고사포로 우박을 예방한다? 체텐의 제사만큼이나 부질없어 보이지만 티베트 내 중국인의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지배와 변화와 갈등을 한눈에 보여주는 사례이다. 

점점 좁아지는 체텐의 입지만큼이나 시골마을의 가난한 무당의 삶은 팍팍하다. 그렇다고 체텐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부질없는 이승보다 더 나은 삶, 환생에 대한 믿음이 충만하다. 

“체텐은 내가 전생에 분명히 티베트인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는 내가 고산병에 걸리지 않고, 티베트어를 상당히 잘 알아듣고, 중국인치고는 생고기를 잘 먹고, 불교와 친숙하다는 것 등을 증거로 들었다.”(113쪽) 

쑨수원이 체텐의 신앙과 역할을 미개하다고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듯이 체텐도 쑨수원을 티베트를 억압하는 중국인 전체와 혼동하지 않는다. 체텐 추구하는 샹그릴라(유토피아)는 이승에 있지 않다. 전생과 후생에 대한 확실한 믿음은 이생에 대한 집착을 덜어주고 보다 높은 정신의 경지로 이끈다. 오체투지로 널리 알려진 티베트인들의 높은 신앙심은 티베트인들의 팍팍한 삶을 견디는 힘이자, 카메라를 들이대는 낯선 이방인, 더욱이 중국인 여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넉넉함이 된다. 

사실, 티베트나 위구르 등 서남공정 뿐 아니라 고구려 역사 왜곡 논란을 빚은 동북공정 등 중국 내 소수민족 갈등에서 보듯 우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티베트 사태나 위구르 사태를 조용히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적어도 이 책에는 체텐을 비롯해 티베트인들을 만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지배자의 입장에 선 쑨수원 개인의 정치적인 갈등과 고뇌, 그리고 영적인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복잡한 심정이 녹아 있다.  

고도 3900m 고도, 영하 20도의 날씨, 산소 농도 50% 이하의 환경에서 오체투지로 사원을 찾는다면 원통의 마니차를 손으로 한 바퀴 돌릴 때마다 불경을 한 번씩 읽는 공적이 쌓인다는 믿음이 이해가지 못할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척박한 만큼 역으로 삶이 충만해지는 신의 땅, 티베트 고원에서 나온 책이다. 1년 고행이라지만 그녀 역시 외부자이고 이질자이며 관찰자일 뿐이나 자신 내부의 변화에 주목한 책이다. 그래서 객관적인 시각과는 무관하다. 다시 말해 정치적인 상황을 외면했다는 지적을 비껴갈 수 있다.  그저 황량한 티베트 고원의 겨울을 배경으로 두었으나 쑨수원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변화를 짚어볼 수 있을 뿐이다.  

그녀에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경험이자 기회, 성찰의 1년을 담은 좋은 책이다. 하지만 그래서라도 티베트 사태를 정치적인 ‘올바름’으로 봐야 하는 ‘인권을 빼앗긴 사람들’의 급박한 현실을 자칫 외면하게될 우려가 없지 않다. 그 2~3년 사이 그 신실한 사람들이 더 이상 달라이 라마의 평화적인 시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할 지경에 왔으니 말이다.  

참고로 프리 티베트(www.freetibet.org)나 티베트 인권 독립 회의(www.tibet.or.kr)는 티베트 현실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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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조 가족>을 리뷰해주세요.
2인조 가족 카르페디엠 17
샤일라 오흐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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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그랬다던가. 운명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두었다고. 그러니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행운들과 기꺼이 대면할 수 있는 배짱과 호기, 다만 그것뿐이다. 고미숙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중에서

2인조 가족이라니, 2인조 절도단, 2인조 복식팀, 2인조 혼성듀엣은 들어봤어도 2인조 가족은 왠지 좀 낯설다. 가족이라는 게 둘이건 스물이건 피로 묶인 끊을 수 없는 띠라는 인식이 워낙 강해서 그렇지 싶다. 그에 반해 2인조 조합은 이해타산에 따라 얼마든지 나뉠 수 있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긴다. 게다가 달랑 둘이라니 해체하면 말 그대로 끝! 뒷마무리가 너무 깔끔하다.

결합과 해체가 자유로운 ‘2인조’와 결속력이 단단한 ‘가족’의 이질적이면서도 특이한 조합 <2인조 가족>의 구성원은 서로 대략 60년 정도 나이 차를 자랑하는 할아버지와 손녀이다. 그 사이를 메워줄 세대들은 당최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런 젠장! 그들이야말로 늙은 아버지와 어린 딸의 ‘2인조’를 ‘가족’으로 돌봐야할 중심축이 아닌가. 경제력을 상실했을 때 그 끈끈했던 ‘가족’이란 연대가 얼마나 빨리 알량해지는지 모르지 않다.

독거노인과 어린 손녀딸이라는 2인조 조합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OECD 국가 중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비정규직 비율이 전체 50%가 넘는 나라이다보니 노동력을 갖춘 세대들마저도 비정규직 대란이니 어쩌니 하는 괴소문에 시달리다가 떠밀리는 판이다. 그러니 노동경쟁력이 거의 전무한 노인과 미성년자가 맨 뒤에 떨거지로 남는 현상이 당연할 수밖에. 참고로 우리나라 얘기다. 

<2인조 가족>의 조합과 비주얼은 불우이웃돕기 방송에서 보던 모습과 엇비슷하다.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지하 임대주택에 바넥 할아버지는 폐지와 고물을 줍고 손녀딸 아냐는 신문을 돌린다. 주 수입원은 국가에서 나오는 얼마 안 되는 고아보조금, 연금, 장학금 등 사회복지연금이다(이마저도 사회복지가 우리보다 한결 나은 독일이니 가능한 얘기일지도). 

그런데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 보면 뭔가가 확실히 다르다. 2인조가 숨은 부자라거나 알고 보니 천재라는 뜻은 아니다. 사춘기 소녀 아냐가 가족의 중심을 잡아주어야 할 부모에 대해 왜 궁금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바넥 할아버지는 아냐가 연꽃에서 솟아났다거나 교회 정문에 버려졌다거나 영국여왕의 혼외 자손이라는 식으로 엉뚱한 얘기만 늘어놓는다. 영감이 가난에 치여 절망에 빠졌다가 결국 미쳤구나,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단지 ‘그리스인 조르바’를 꼭 빼다 박은 엉뚱한 괴짜일 뿐이다.  

그런데 하는 행동이나 말이 워낙 자유분방한 프리스타일이시다 보니 아냐의 속마음이 썩어 난다. 한창 이성에 눈을 뜬 16살 사춘기인데, 옷이라고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입던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운 낡은 셔츠에 “온갖 접착제 제품을 모아 놓은, 걸어 다니는 접착제 종합세트”인 신발을 신고 학교를 가려니 고역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라는 위인이 고작 한다는 말이 “너니까 수제화를 신고 다니면서, 투덜거리는 거야”라니! 

할아버지에게 가난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돈이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물건”이란다. 하지만 태어나서부터 할아버지와 둘이 살면서 한 번도 부자였던 적이 없는 아냐에게는 그야말로 해괴한 헛소리이다.  

하지만 아냐도 모르지 않다. 할아버지의 말이 아주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쯤. 폐지 더미에서 주은 신문과 철학 책들을 두루 섭렵한 할아버지는 나름 뚜렷한 삶의 기준이 있다. 체계가 잡이지 않아서 탈이긴 하지만 할아버지는 자본으로부터, 소비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를 일찍이 깨우치고 실천하는 인물이다. 넝마주이는 남들이 외면하는 일이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직업이자 교육이자 놀이였다. 그러니 즐겁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백수는 시간의 노예로 사는 게 아니라 시간을 ‘부리며’ 살아야 한다. 그러자면 자기 존재에 해로운 일일랑은(예컨대 쇼핑, 게임, 채팅, 하릴없는 수다, 기타 산만한 행동들) 줄이고 (…) ‘자유시간’은 신체적 능력을 확장하는 정밀한 훈련에 쓰여야 한다”는 고전문학박사이자 누구보다 현실비평가인 고미숙의 진단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다. 

할아버지의 천상천하유아독존 경지(?)까지는 이르지는 못해서 옷차림부터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러운 아냐지만, 명장 밑에 약졸 없다고, 내공이 장난 아니다. 수학실력으로는 반에서 따를 친구가 없는데다 체스실력도 수준급이다. 아기였을 때부터 철없는 할아버지와 살다보니 상대적으로 철이 제대로 들었다. 문학적인 감수성은 괴테를 읊을 정도이다. 

호적상 서열로 보면 하늘과 땅 차이지만 이들 2인조는 말 그대로 친구이자 죽이 잘 맞는 짝꿍이다. 여기에 아냐에게 첫눈에 반한 전학생 이르카가 등장해서 아냐를 사이에 놓고 할아버지와 늘 티격태격 다툼으 벌인다.  

이들이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삶을 풍요롭게 가꾼다고 해도 세상의 기준으로는 별종에 낙오자일 뿐이다. (이르카는 안짱다리에 오른다리를 저는 장애인이다.) 결국 할아버지는 양로원으로, 그리고 아냐는 국가위탁 기숙사로 끌려갈 판이다. 할아버지 없이 혼자가 된 아냐에게는 이제 의지할 사람이 없다. 이르카는 착하고 잘생겼지만 아직 어리고 순진하기만 한 소년이다. 한때 좋아했던 체스 선생 파벨은 아냐를 성추행한다.  

할아버지는 양로원에서 풀이 죽기는커녕, 허생이 죽자고 7년 쌓은 공부로 한양을 활개치고 다녔듯이, 그동안 쌓은 내공으로 양로원을 주름잡으며 유쾌하게 잘만 지낸다. (소설에서는 양로원과 청소년 쉼터격인 기숙사를 열악하거나 강압적인 시설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양 섭취 등은 할아버지가 살이 3㎏이 찔 정도로 낫다는 식이다. 요양시설을 박차고 나와 ‘차라리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2인조의 심정은 알겠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 볼 때는 이런 사회 안정망이 꽤나 절실하고 부럽기만 하다.) 

자신이 없이도 양로원에서 너무 잘 지내는 할아버지를 본 아냐는 기가 막히다! 아냐도 기숙사로 들어간다. 이대로 끝일까. 물론 아니다. 할아버지의 거침없는 행동을 견디다 못한 양로원 원장의 사정사정으로 할아버지는 스스로 ‘강퇴’하고(정신병원은 아니지만 나올 권리가 시설에 없고 오로지 개인 선택이라니 이 역시 부러운 일이다), 마치 첩보영화를 보듯이 황당무계한 방법으로 아냐를 기숙사에서 빼낸다. 

아냐는 기숙사에서 자신이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고 보니 2인조였을 뿐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었던 것이다! 꽤나 충격적인 일이지만 아냐는 마음을 고쳐먹는다. 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 할아버지의 양육권은 박탈당할 참이다. 이제 자기가 할아버지를 챙기리라.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기숙사에서 나온 아냐는 아무래도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1년 후면 성인이 된다. 이르카는 그때 결혼을 해서 아냐를 책임지겠다고 하지만 치기어린 얘기일 뿐이다. 아냐에게 대책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게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둔 운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고 만끽하는 삶을 배웠듯이 앞으로 그렇게 2인조 혹은 3인조로 살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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