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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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8월의 밤을 기억하네 

땀이 밴 속옷을 훌렁 벗어던졌는데도, 선풍기 바람이 좀처럼 시원하게 와 닿질 않는다. 작은 창문을 다 열었지만 꽉 막힌 듯이 오래된 선풍기의 모터 열기는 좁은 방을 꽉 채웠다. 1979년 여름은 지독한 폭염이었다, 고 신경숙은 『외딴방』에서 말한다. 8월의 어느 토요일 밤, 큰오빠는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방학을 맞아 막 서울로 올라온 외사촌을 깨운다.  

“재규야, 너 내일 가거라.” 자고 있던 외사촌오빠 재규가 깜짝 놀라 일어난다. 벽 쪽을 향해 돌아누워 있던 외사촌도 일어난다. “제발 좀 가거라, 응?” (182쪽) 

선풍기 하나 없는 서울 가리봉동 공단지역 쪽방, 어른 넷이 뭉쳐서 여름밤을 나기란 무리가 따랐다. 큰오빠와 여동생인 ‘나’, 외사촌 언니와 외사촌 오빠는 지금의 나처럼 편하게 옷을 훌훌 벗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더워도 큰오빠는 그런 말을 쉬이 할 사람이 아니다. 17살 여동생과 20살 외사촌 누이가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부터, 공장에 다니면서 산업체특별학급 학생으로 공부를 하는 지금까지 그녀들의 힘든 여정 뒤에는 큰오빠의 도움과 희생이 꼭 필요했다. 

신경숙의 자전소설 『외딴방』에서 너덧 살 터울의 누이들을 격려하고 혼내고 뒷바라지하는 스물 대여섯의 큰오빠는 세 식구 중에서 일에 쫓겨 외딴방을 가장 오래 비우지만 그의 부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방위병 신분으로 학원 강사를 하기 위해 산 엉성한 가발이 방 안 높은 자리, 다락문에 걸려서 내려다보듯 그의 시선은 늘 외딴방의 여동생에게 향해 있다. 

어린 새를 보듬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어미새처럼 보금자리를 지키는 큰오빠는 엄격한 아버지이자 자상한 어머니이다. 때론 따뜻하고 때론 시원한 날개 밑이다. 하지만 이방인에게는 뜨겁고 한편으로 서늘했다.  

이번이 꼭 그랬다. 한밤중이라 안보였지만 외사촌 남매는 부끄럽고 분이 나서 귀가 새빨개졌을 것이다. 하지만 외딴방은 분명 큰오빠의 그늘이었으므로 외사촌 남매는 군말 없이 새벽에 집을 나섰다.  

소설에서 큰오빠가 데리고 사는 동생들이 아닌 이에게 대놓고 타박을 하는 대목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여동생과 친하게 지내는 게 영 마뜩치 않은 희재 언니를 두고 웬 남자가 ‘그애 방에서 나가는 걸 봤다’고 행실을 타박을 하면서도 안 할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동생인가?’하고는 입을 다무는 그이다.  

앞뒤 맥락 없이 삽화처럼 등장한 한여름 밤의 일화는 내가 무더위에 잠을 설치지 않았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대목이다. 큰오빠의 머릿속에서 외사촌남동생 때문에 잠자리가 더욱 불편했을 숫기 없는 여동생이 불면의 밤 내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토요일 밤을 그냥 보낸다면 여동생은 일요일도 이대로 쉬지 못하고 고단한 월요일 아침을 을 맞을 것이기에. 

그런 큰오빠가 곁에 있는 외딴방에서의 여름은 화자이자 작가인 여동생에게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 덩어리로만’ 보는 뜨거운 지옥의 한철이 아니라 작은 온실에서 감내해야 할 일상이다. 공장과 학교를 오가며 피곤에 지쳐 잠을 자는 사이사이에 설핏 잠에서 깨어 열 덩어리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어린 소녀는 70년대와 80년대를 견디어 냈다. 1979년 8월의 YH무역 농성사건과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의 시대 아픔을 통과하는 내내, 외딴방은 화자가 작가의 꿈을 키우는 외부와 격리된 아늑한 온실 속 모판 같은 곳이었다. 

 

희재 언니의 흘러가는 방, 미끄러지는 방 

서른일곱 개의 방, 그 방 하나에 한 사람씩만 산다 해도 서른일곱 명일 텐데 봄이 되도록 내가 얼굴을 부딪친 사람은 서넛도 안 되었다, 고 (…) 대문을 들어서면 밖으로 난 문에 자물쇠들이 먼저 눈에 보였다, 고. 가끔 문을 따고 있는 사람의 뒷등을 보면서 나는 삼층으로 올라가곤 했다, 고 (145쪽)  

작가가 견디어냈으나, 희재 언니가 끝내 떠나지 못한 서른일곱 개의 방은 오르려고 섰으나 다시 한 계단을 내리 딛어야 하는 이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70년대 말, 전태일 열사의 죽음으로 기억되는 공장노동자의 열악한 근로조건은, 게다가 시골에서 상경한 어린 여공들의 품삯은 실로 보잘 것 없었다.  

돈을 벌어 고향 부모를 모시고,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고, 적금을 들어 시집을 가고 싶다는 소박한 꿈은 항상 쪽방 안에서만 머물 뿐, ‘밖으로 난 문에 자물쇠’에 갇혀 좀처럼 나오지 못했다.  

“이 집은 좋아…… 누가 죽어도 모를 거야.”(148쪽)  

희재 언니가 무심코 한 혼잣말처럼 그녀는 남이 알지 못하도록 밖에서 열쇠통을 잠그고 자살을 한다. 희재 언니의 방을 포함한 서른일곱 개의 방에 사는 적어도 서른일곱 명은 하나의 대문을 사용하고 한 곳의 수돗가를 사용하지만 누가 이사 가고 가는지, 누가 사는지 서로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외딴방』은 다르다. 명랑한 외사촌 언니가 있고, 조금만 늦어도 불 같이 화를 내는 큰오빠가 있다. 집으로 오는 길, 손에 삼치 한 마리 참외 몇 개를 사들고 오게 하는 나를 기다리고, 내가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는 왜 희재 언니가 열쇠통을 잠그는 역할을, 평생의 천형으로 남을 그 일을 자신에게 부탁했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열아홉 살에 생긴 상처는 서른셋에 소설로 풀어낼 때까지 『외딴방』과 주변의 공장과 학교와 지하철역을, 서울시지도에서 그 동네를 가위로 오리듯 공간을 아예 부정해버리는 상처가 되었다. 어쩌면 그 일로부터 작가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책에 파고들었고, 사람들과 친해지길 두려워했다, 고 고백한다. 

그럼, 그럼, 그럼. 가능하지 않은 일이 전혀 없는 우리들의 짧은 그 시간, 어렴풋이 예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희재 언니는 물었고 나는 그럼, 대답했다. (149쪽) 

희재 언니는 소설 속 가공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아니, 가공의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희재 언니가 아니어도 자물쇠로 잠긴 서른일곱 개의 방들 중에는 비슷한 사연을 한두 가지쯤 품고 있었을 것이다.  

어린 작가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놀이를 통해 ‘그럼’이라고 대답을 해주는 정도다. 희재 언니는 고향 살림과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다. 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일찍 퇴근해서는 학교 대신 또 다른 직장인 의상실로 발길을 옮긴다.  

손바닥으로 그녀의 눈을 가린다. 손바닥을 적시는 물기. 울고 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니?” 열아홉의 나, 베개를 끌어안고 가만있다. “나만 그런 걸까? 다른 사람들도 그러는 걸까?” (377쪽) 

통근에 결려 새벽에서야 아무도 없는 빈방으로 돌아왔다가 교복을 입은 채로 잠이 들고 교복을 입은 채로 공장으로 나서는 내내, 교복은 더 이상 전화교환원이 되기 위한 희망이 될 수 없었다. 공장 밖까지 따라와 몸에 달라붙은 또 다른 작업복일 뿐이다. 

 

밖에서 잠근 열쇠통, 기억의 봉인 

서른일곱 개의 방에서는 어쩌다 서로 기척만 겨우 느낄 뿐 그림자나 다를 바 없었으므로 희재 언니는 큰 집에서 혼자 사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방은 한여름에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희재 언니의 빈 방에 자기 그림자가 아닌 남자가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좁은 방은 북적였고, 둘은 행복했으나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재봉틀을 돌리는 연인은 동시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쌍둥이 같은 것이어서 둘의 운명은 늘 아슬아슬했다. 나란히 일하고 나란히 잠을 자는 동안 아이가 생겼다. 전에 동거를 했다가 가족이 되길 포기한 희재 언니는 뱃속의 아이를 통해서 비로소 용기를 내 가족을 이루려고 한다. 복작복작 싸우고 달래면서 서로의 상처를 핥는 끈끈하고 질긴 화자의 외딴방을 닮으려 애쓰는 것이다.  

아이를 떼라 했지요. 헤어지자는 게 아니라 아직은… 아직은… (384쪽)  

왜 희재 언니는 문을 잠갔을까. 남자의 말은 야속하지만 그게 어거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싸우고 나간 남자가 머지않아 쑥스럽게 귤이라도 한 봉지 사들고 돌아오리라는 걸 알면서도 왜 그렇게 처절하게 저항을 했을까.  

그녀는 쪽방이 되길 거부했다. 사람들이 흘러왔다가 잠깐 머물고는 그림자와 뒷모습, 잠근 자물쇠로 남아 떠나는 모습, 얼굴이 없고 실체가 없는 이들이 잠시 들어왔다가 흔적도 없이 떠나는 방. 자신의 자궁이 자신의 아이에게 그런 곳이 되는 걸 온몸으로 거부했다. 

작업장 번호로 불리면서 공장을 전전하며 살아온 엄마처럼 뱃속의 아기도 이름도 없이 내쫓아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자신도 자신의 자궁처럼 자신도 자궁이 없는 미숙아처럼 세상에 내던져지리라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낙태수술 자국으로부터 도망을 친다고 해도 결국 쪽방이라는 불안한 자궁에서 자라다가 녹슨 자물쇠로 남을지도 모를 나의 아이. 이번 아이를 지워도 쪽방에 새로운 누군가가 세를 들어오고 나가듯이 두 번째 아이, 세 번째 아이도 지워야 할지도 모르는 인생. 

희재 언니는 아이를 방(자궁)에서 쫓아내는 대신, 운명을 거스르고 스스로 외딴방이 되기로 결심한다. 화자의 식구들이 저녁이면 모여서 밥을 먹고, 뒤엉켜 잠을 자며 하나가 되듯, 뱃속의 아기와 둘이면서 한 몸인 지금 이대로 외딴방으로 영원히 남기로 한다. 

밖에서 잠근 열쇠통은 방해를 받고 싶지 않은 희재 언니와 아기에게 눈물겨운 공간을 내어주었다. 실수로라도 누군가 문을 벌컥 열거나 문을 두드리지 않도록 열쇠통은 문 앞을 지키는 충직한 개처럼 든든하다. 그래봐야 두어 번 발길질에 힘없이 무너져 내리겠지만 적어도 희재 언니가 세상이 머무는 잠시나마 안락하게 지켜주었던 방어막. 

 

자, 이제 외딴방의 문을 열고 나와 

자, 이제 다시 작가의 아물지 않는 상처로 돌아가면 이렇다. 작가란 이렇게 자신의 상처마저도 딱지가 안기 전에 다시 헤집고 소금을 뿌려 고통을 다시 일깨우는 자신에게조차 영원한 관찰자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다.  

……내 아무리 집착해도 소설은 삶의 자취를 따라갈 뿐이라는, 글쓰기로서는 삶을 앞서나갈 수도, 아니 삶과 나란히 걸어갈 수조차 없다는 내 빠른 체념을 (243쪽)  

허구와 실제를 오가는 ‘ 그 중간쯤의 글’ 『외딴방』에서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작가가 되고프다 고한들 이제 열아홉 소녀를 두고 희재 언니가 자신의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줄 거라 기대했다고는 보기는 어렵다. 부러 죄의식이나 짐을 지우려고 했을까? 질투 때문에? 든든한 가족을 둔 화자를 두고 그런 감정을 품지 않았을 리는 없지만 설마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서른일곱 개의 방 가운데 화자가 사는 외딴방을 세상으로부터의 낙태가 아닌 잉태가 가능한 건강한 자궁으로 봤다는 게 맞을 것이다.  

작자의 큰오빠와 셋째오빠를 비롯한 가족사를 보면 80년대 저임금 노동의 굴레로부터의 땀의 소금기가 잔뜩 밴 탈주기라고 봐도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희재 언니가 살았을 당시에는 화자의 가족이 외딴방을 벗어나는 건 이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몫은 온전히 큰오빠에게 달린 문제지, 어린 화자에게는 선택권이 달리 없었다. 

화자가 열쇠통을 잠그고 난 뒤, 희재 언니가 언제 자살을 옮겼는지는 알 수 없다. 죽음을 선택한 순간은 찰나일 것이다. 다만 그녀는 죽어서라도 그 방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었나 싶다. 구더기밥이 되더라도 그 방에서 나가고 나면 이제 다른 쪽방 사람들처럼 그녀와 뱃속의 아이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므로. 그래서 화자에게 부탁을 했을 것이다. 화자는 그 방을 꼭 잠근 열쇠통을 지키는 부적이었다. 다시 돌아온 남자가 희재 언니를 찾을 때마다 화자는 “희재 언니는 시골로 휴가를 떠났다”는 얘기를 꼬박꼬박 전한다.  

훗날 화자가 버스차창 너머로 화자가 번화한 명동 밤거리에서 우연히 본 희재 언니의 남자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희재 언니를 기억할까.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의 잘못을 탓할 수는 없다. 남자 스스로도 지워지고 미끄러지는 현실에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면. 

희재 언니를 기억하는 건 이제 화자뿐이다. 외딴방을 꽉 막은 열쇠통을 열면 먼지가 되어 휙 날아갔으면 하는 기억이다. 하지만 희재 언니의 선택은 옳았다. 작가가 된 화자는 외딴방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서른셋이 되어서야 희재 언니의 외딴방을 열어보니 외딴방 안에 있는 건 희재 언니가 아니라 화자 자신이다. 

 

다시 만난 희재 언니 혹은 그녀의 아이 

외딴방 시절을 소설로 옮기는 과정이 외딴방 시절의 회고와 엇비슷하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엇비슷한 비중을 차지한다. 외딴방 시절의 산업체특별학급 급우 하계숙의 “왜 우리들의 얘기를 왜 쓰지 않느냐”는 가벼운 투정이 화두처럼 묵직하게 얹힌 이유도 그녀가 작가가 된 이후 내내 방 안에서 나오려고 노력했다는 증거이다.  

희재 언니 혹은 희재 언니와 한 몸으로 남은 아기의 모습이 외딴방을 쓰는 과정에서 종종 오버랩이 된다. 어린 조카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세밀한 묘사도 그렇지만, 삼풍백화점 붕괴 뒤에 13일 만에 극적으로 살아남은 소녀를 내보내는 뉴스 화면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두드러진다. 

저 얼굴, 내가 사랑했던 얼굴. 그녀다. 어둠 속에서 칠흑 속에서 살아 돌아온 얼굴 (358쪽) 

얼추 희재 언니의 아이가 자랐으면 비슷한 나이였을 소녀에게 일순간 벌어진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희재 언니 뱃속의 아이에게 닥친 역경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아이는 기적적으로 살아나서는 “희망을 잃지 말라는 엄마의 말씀”을 떠올렸다고 천진난만한 희망을 전한다. 사랑했던 희재 언니 혹은 그녀의 아이. 

조선족 작가와의 만남에서도 희재 언니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진다. 조선족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뽑힌 중국정부 선정 56명 중국 소년별 출신인 그녀는 중국에서 작가로 인정을 받은 뒤에 지금은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화자와 만난 그녀는 나라가 없는 조선족의 정체성 혼란을 토로하면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화자를 부러워한다. 그럼에 꿋꿋한 모습은 백화점 붕괴로 가족을 잃었으나 꿋꿋하게 살아남은 아이가 자랐다면 딱 이랬을 모습이다.  

조선족 작가와의 대화에서 작가가 이제 비로소 외딴방을 열고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몇 가지 조짐을 보았다. 작가에게 가족의 범주는 남달리 두텁고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다는 건 소설 전반에 걸쳐 충분히 드러난다. 작년에 출간된 『엄마를 부탁해』에서 가족에 대한 애착은 최고조에 오른 듯하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외딴방』에서도 따로 덜어내면 단편 한 편이 충분히 나올 만큼 자주 언급된다.  

그래서 그녀가 『외딴방』 앞에 마주서서 열쇠통을 열기 위해, 일상에서 떠나 외딴방으로 거슬러 올라가듯 찾은 곳이라 봐야 제주도다. 자다가도 엄마를 찾고, 엄마가 대답을 해야 도로 잠이 들 정도로 본능으로 엄마의 기척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어린 조카처럼 그녀는 제주도에서 아열대식물로 가득한 공원이나 특이한 용암동굴 등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곳을 찾아다니면서도 가족과의 언제든지 접촉할 수 있는 일정한 거리, 굳이 말하자면 한국 땅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조선적 작가가 가질 수 없는 끈이고, 닿을 수 없는 거리이다. 이젠 희재 언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그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박정희 대통령 암살로부터 광주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강렬한 사건으로 기억되는 시기는 소설에서도 학생운동에 참여한 셋째오빠나 광주를 다녀온 친구를 통해 몇 가지 단상이 드러나지만 외딴방에서의 삶은 시대를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았다. 당장 희재 언니의 방문조차 열어보지 못하지 않았는가. 

1995년, 화자의 가족은 이제 행복하다. 아버지는 새로 집을 올릴 계획에 부풀어 있고, 어머니는 여전히 건강하며, 큰오빠와 셋째오빠는 직장을 다니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여동생은 약사에 남동생은 대학생이고 무엇보다 화자부터 작가가 되어 외딴방의 꿈을 현실로 이루어냈다. 그 시절에서 온전히 빠져나온 단란한 가정이다.  

희재 언니를 자살에서 구했다고 한들, 누가 그녀를 책임질 수 있었을까. 그 몫이 온전히 화자에게 돌아온 지금, 작가라는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작가가 그 시절을 그다지 과장을 하거나 왜곡한 듯이 보이지는 않는다. 이념이나 구호가 아닌 서민들의 지난하고 솔직한 삶이 이 안에 있다.  

하지 못한 말과 행동들이 소설화되지 않고 미래로 남아 있었을 때로 되돌아가고 싶다. 수정과 보탬과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때로…… 1995년 8월 8일에. (410쪽)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니, 시대도 암울했거니와 작가 자신에게도 결코 만만치 않았던 그 외딴방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믿어야 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그녀가 소설 출간 이후 예컨대 영등포여고 야간반 친구들과 동창회를 비롯해 글 안팎에서 행보를 보면  그 시절과 너나들이 하며 스스럼없이 지낸다고 믿게 될 지도 모르겠다.  

우연인지 뭔지, 지금 2009년 8월 8일 밤이다. 나도 혹시 내가 닫아놓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을 방문을 찾아보기에 딱 좋은 열대야, 불면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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