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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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는 책, 한 시대의 통념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한 책, 마주칠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책 등등. 그런 책들을 우리는 ‘고전’이라고 부른다. (…) 쉽고 재미있는 책, 읽어서 몽땅 이해되는 책은 당장 덮어야 한다. 생각보라. 그건 저자의 수준이 나랑 똑같다는 뜻인데. 그런 책에서 대체 뭘 배울 수 있단 말인가?  

고미숙의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Homo Kungfus)』 중에서


사고를 하도 많이 쳐서 “걱정아. 걱정아.” 부르다가 이름이 꺽정이가 된 막돼먹은 종자, 시대의 왕따 계층, 백정으로 태어난 가축 도살의 달인, 허나 가축보다는 주로 가축만도 못한 인간 종자들에게 제삿밥을 자시게 한 남자, 2009년 대한민국에서는 당최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조선 후기의 진정한 쾌남, 조선의 거칠 것 없는 자유인 조르바, 임꺽정!

‘배우서 남 주자!’를 삶의 지표로 삼은 자칭 박사 백수이자 자유로운 지식인들의 코뮌 <수유 + 너머> 맏언니 고미숙이 이 문제의 인물에게 완전히 반하고 말았다. 둘 사이 생일 차가 100년이 넘게 나다보니 안타깝게도 몸과 몸으로 만나 찐득하게 회포를 푸는 일은 영 불가능하다. 

허나 천재 소설가라 불린 벽초 홍명희의 신들린 솜씨로 생생하게 살아난 임꺽정을 포함한 청석골 패거리와 고미숙은 부부 인연 못지않게 서로 손발이 쿵하면 짝하고 딱딱 잘도 맞아 떨어진다. 이 두 걸물이 후생에서 만난다면 그때 벽초도 같이 환생하사 주례를 보면 딱 맞을 일이다.

이 두 남녀가 이처럼 죽이 맞아 돌아가는 이유라면, 고미숙이 일방적으로 연모의 정을 밝힌 데에 있겠다. 그리고 그녀가 사십 줄을 넘긴 나이에 대놓고 쓴 연서를 볼작시면 임꺽정의 파란만장한 삶이 고미숙의 화두인 ‘호모 쿵푸스’와 딱 맞아 떨어지는 탓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고미숙은 연암 박지원에게 홀딱 반해 사스 열풍에도 아랑곳없이 열하행궁까지 그의 발자취를 찾아 중국 땅을 헤매면서 한참을 서성이더니만 이번에는 수컷내를 제대로 풀풀 풍기는 임꺽정에게 또 홀랑 넘어갔다. 연애의 자유분방함이랄까.

그렇다.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은 고전문학박사 고미숙의 소설 『임꺽정(林巨正)』 비평서가 아니다. 말 그대로 청석골 패거리를 향한 열렬한 응원이자 뜨거운 연서이다. 고미숙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말, 마치 쿵푸를 하듯이 앎에 대한 열정으로 몸을 단련하고 일상을 바뀌 나간 대상으로서 임꺽정을 필두로 한 청석골 삶에 대한 합일치에서 나오는 찰떡궁합 환의의 신음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닳도록 운우지정을 나눌 것도 아니고 고미숙이 청석골 초입에서 임꺽정 패거리를 VIP로 둔 주막집 주모마냥 호들갑을 온몸을 다해서 떨어대는 이유가 뭘까. 

고미숙의 저서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 혁명)』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가 대한민국 마이너리거, 아웃사이더들의 팍팍한 인생살이에 성(性)과 속(俗)을 아우르는 특효처방전이라면, 뒤따라 나온 이 책은 그 처방전의 실제 사용례인 셈이다. 그러니까 약장수가 설을 풀어 동네 사람들을 모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약발 제대로 받아 차력 시범을 보이는 격이다. 

그녀의 책에 감초처럼 이름 석 자를 꼭 올리는 연암 박지원도 임꺽정 못지않게 매우 쓸 만하고 볼 만하다. 다만 서자 출신에다 29살에 과거에 낙방한 박지원의 젊었을 적 처지가 공무원 시험에서 덜컥 떨어진 우리네 88만원 세대와 다를 바 없다고는 하나,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손꼽이는 박지원이고보니 왠지 모르게 기를 죽이는 게 사실이란 말이다.  

그에 반해 평생을 집짐승과 들짐승과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을 요절을 낸 두루두루 백정으로 문자와는 평생 원수로 지냈으며, 부인 네 명에 따로 기생 소홍이라는 연예인을 연인을 둔 파토스의 상징 임꺽정은, 이른바 가상의 온라인 게임에서도 보기 힘든 진짜 걸출한 캐릭터인지라 변변치 않은 인생들에게는 우상이 되고도 남음직한 인물이란 말이다.

임꺽정만 그러한가. 청석골 우두머리라는 작자들의 신상명세서를 보면 유복자, 갖바치, 소금장수, 임노동자(알바생), 떠돌이 룸펜, 더부살이를 했던 이력의 소유자들이 마이너 중에서도 최하위리그 소속이다. 

그러니 평소 주위의 마이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자랑하는 고미숙과, 더불어 이 책을 읽는 마이너리거들이 마이너의 대표 주자격인 임꺽정 패거리의 향연에 홀딱 빠져 공부를 하지 않고 배길 수 있겠냔 말이다. 다만 여?? 애들이 공부의 달인들이구나”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

고미숙이 말하는 공부는 돈과 출세에 평생을 옥죄어 사는 머리만 굴리는 지질한 공부가 아닌, 일상의 모든 순간을 앎의 자원으로 삼는, 삶을 통틀어 관통하는 공부이다. 쿵푸(功夫)를 하듯 온몸으로 부딪혀서 익히는 바로 그 공부이다.  

청석골 일곱 두령들은 우선 자신의 신분, 위치, 나이, 처지와 상관없이 평소 익히고 싶었던 비기를 오랜 세월을 걸쳐 인내의 쓴 맛을 충분히 맛보고 익힌 달인들이다. 다만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이들이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놀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비기라는 게 시대가 요구하는 이른 바, 일류대와 대기업 정규직으로 이어지는 사회의 ‘공식’ 코스와는 한참 거리가 먼, ‘공자 왈 맹자 왈’과는 거리가 한참 먼 돌팔매질, 댓가지창 던지기, 장기, 축지법 등이다.  

여기서 더더욱 착각하지 말아야 할 건, 임꺽정 패거리의 강력반 비상이 걸릴만한 사건만 보고는 깍두기과나 개망나니과로 나서라는 전언으로 알아먹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조직 폭력배들이나 학교 양아치들처럼 아류 권력으로 또 하나의 수직체제를 세우고는 뒤에서 거드름이나 피웠던 게 아니었다.  

달인들은 싸울 때는 앞장서고 물러날 때는 맨 뒤를 지키는 두령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렇기에 농부, 목수, 의사, 점쟁이 등등의 민초들이 졸개로 따른 것이다. 청석골은 수직이 아닌 수평체제의 코뮌이었다. 

그들의 느슨한 연대는 곧 그들의 생명줄과도 깊은 연관을 맺는다. 청석골이 정주를 위한 권력의 집결지였다면 관군들이 제대로 열 받고 몰려왔을 때, 그들이 일반 양아치 패거리였다면 그 많은 재물을 어찌 버리고 떠날 수 있었겠나.  

허나 늘 축제의 현장으로 두령과 졸개가 뒤엉키고 심지어 인근 마을 주민들까지 와서 거들어서는 서로 먹고 놀며 나누는 일상이 생활이 된 바, 늘 몸이 가벼운 청석골 패밀리들에게 청석골은 그저 집결지의 한 곳일 뿐이었다. 

자, 그렇다. 소설 <임꺽정>은 고미숙이 책을 통해 혹은 강연을 통해 목이 쉬도록 말하는 탈 중심주의로의 사유의 전환, 즉 수직 체계에서 벗어난 각자 자신이 가진 사유의 지도를 펼치라고 당부한다. 비정규직은 물론이요, 정규직 역시 쌍용차 사태에서 보듯이 잠정적인 백수로 몰리는 시대이고 보면 백수로 살기 위한 당부를 꼭 새겨들어볼 일이다. 

“백수는 시간의 노예로 사는 게 아니라 시간을 ‘부리며’ 살아야 한다. 그러자면 자기 존재에 해로운 일일랑은(예컨대 쇼핑, 게임, 채팅, 하릴없는 수다, 기타 산만한 행동들) 줄이고 (……) ‘자유 시간’은 신체적 능력을 확장하는 정밀한 훈련에 쓰여야 한다.”

고미숙이 보기에 각자 전공이 제각각인 지식인 백수들이 꼬인 <수유 + 너머>는 청석골 또 하나의 환생이고, 스스로도 일곱 두령들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청석골 원년 멤버인 오가에 가깝다.) 적어도 말로만 떠들지 않고, 공동으로 밥 지어 먹고 더불어 공부하며 글 쓰면서 산다. 자신은 그렇게 살기로 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너도 해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역시 가장 새겨들어야 할 첫 번째 지침은  “태도다. 백수가 달인 되는 건 백수 신분에서 탈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백수로서 떳떳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다”라는 전언이다. 자! 이제 약장수의 감언이설과 눈을 획 돌게 하는 차력쇼에 홀딱 반해서 천하제일 명약을 사들고 으스대며 오듯이, 이 책을 가슴팍에 꼭 안고, 여기 백수 한 명 공부(功夫)하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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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를 리뷰해주세요
피드 feed
M. T. 앤더슨 지음, 조현업 옮김 / 지양어린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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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d : 1 <동물 등에> 먹이[모이]를 주다; <어린이·환자 등에게> 음식을 먹이다; <아기에게> 젖을 주다; 양육하다, 2 <연료를> 공급하다(supply); <램프에> 기름을 넣다; <연료·원료를> 보급하다; <보일러에> 급수하다; 3 <귀나 눈 등을> 즐겁게 하다, <허영심 등을> 만족시키다(gratify) 《with》;<화 등을> 돋우다 《with》[영어사전]

 

feed : 인간의 뇌 속에 직접 이식한 컴퓨터 시스템. 텔레파시 형태로 채팅이 가능하고, 온갖 지식과 정보를 피드넷을 통해 직접 공급받는다. 교육, 소비, 문화 등 모든 사회생활을 피드로 수행한다. 또한 신체의 기본적인 조절 능력인 뇌기능을 대행하는 피드에 이상이 생길 경우, 기억 상실, 근육 마비 증세가 올 수 있으며, 싱크로율이 제로에 이르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M.T. 앤더슨의 소설 <피드feed>]  


M.T. 앤더슨의 소설 <피드feed>의 의미는 피드의 사전적 의미를 사회정치인 코드로 재해석한 단어이다. 1. ‘먹이를 주다’는 주인공 타일러스의 어린 ‘냄새쟁이’ 동생이 하루 종일 어린이 방송 채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대목을, 2. ‘(연료를) 공급하다’는 개인 의사 선택과 상관없이 스펨 메일처럼 폭주하는 배너 광고를, 3. ‘<귀나 눈 등을> 즐겁게 하다’는 환각제와 유사한 효과를 내는 가상 체험 ‘멜’과 의미가 상통한다. 

 

한마디로 피드는 ‘욕망의 충족’이다. 소설 속에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 상태(허기, 더위)나 보는 시선(쇼핑, 게임장)에 따라 정보가 피드를 타고 머릿속으로 직접 들어온다. 자본주의의 극단이라는 설정이니만큼 경쟁업체의 각종 정보가 물밀 듯이 들어온다. 그러나 정보의 통제권은 ‘개인’에게 있지 않다. 다만 무시를 할 뿐이다. 선택권 또한 마찬가지다. 그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선별된 정보를 두고 선택을 한다고 착각을 할 뿐이다.  

 

작가는 <피드>가 미래소설이 아니고, 지금 직면한 문제를 논하기 위해 가상의 미래 이미지를 비유적으로 차용했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아도 미디어 통제와 장악 문제는 당장 우리에게도 꽤 익숙하다. 지난 7월 22일, 언론법 개정을 두고 “언론법 날치기, 민주주의 파괴 폭거”라는 과격한 말들이 오간다.  

 

“우리 생활을, 영화와 노래와 광고에서 온 이미지들을 빼 버리고선 생각할 수 없어요. 그 이미지들이 모두 우리에게 요구하는 건 더 나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더 나은 소비자가 되라는 거예요” 329쪽 ‘작가와의 대화’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 피드로 모든 생활이 편리해진 ‘접속’의 시대,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달 합병 문제로 미국과 지구 동맹(주로 제3제국이 소속)의 갈등이 있고, 끔찍한 환경 파괴와 이에 따른 부작용이 있다.   

 

 

사회 제도의 적응 산실이라고들 하는 학교대신 재택교육을 받는 바이올렛, 아버지는 내부 칩 형태가 아닌 몸에 짊어 매는 구형 피드 등짐을 사용하면서 한물간 ‘문자’에 매달리는 가난한 대학교수이고, 이혼한 어머니는 피드 시스템 자체를 혐오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바이올렛은 사회가 요구하는 ‘더 나은 소비자’의 요건과 맞지 않는다. 남자친구인 타일러스가 보기에는 오락, 드라마, 쇼, 쇼핑, 유행을 따라가기에도 바쁜 친구들과 달리 ‘골치 아픈 남의 일일뿐’인 정치, 사회,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는 바이올렛이 별종으로 분류된다.   

 

 

타일러스 일행이 피드에 대항하는 급진적 해커의 습격으로 피드가 망가졌을 때, 부유한 집 아이들과 달리 가난(하다기보다는 시스템을 거부하는)한 바이올렛은 피드 수리에 곤혹을 겪는다. 그리고 기업의 치료 지원 요청도 바이올렛이 ‘더 나은 소비자’의 행태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를 당한다.  

 

 

타일러스는 자신과 전혀 다른 시선을 가진, 다시 말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바이올렛에게 점점 흥미를 잃는다. 심지어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바이올렛의 채팅을 무시하거나, 뇌 기능을 잃기 전에 애써 전송한 그녀의 소중한 기억을 바탕 화면 휴지통 비우듯 지워버린다.   

 

 

하지만 타일러스도 점점 깨닫고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시스템이라는 게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이식 받은 피드의 세계를 무시할 수 있을까. 바이올렛의 주검을 앞에 두고도 피드에서는 “울적한가요? 그럼 청바지를 입어요!”라는 광고를 보낸다. 싱크로율 0%, 피드에서 밀려나 비참하게 죽은 바이올렛 앞에서 타일러스는 이야기한다. 


“이건 피드에 대한 거야. 이건 아주 보통 아이에 대한 거야. 아무것도 생각할 줄 모르던 아이가 어느 이상스러운 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여자애를 만났지. (…) 그 마지막 날에 미국의 배경에 다연 저항하게 되는데, 그건 아주 정신적인 그들의 사랑 이야기야.”

피드가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 타일러스 안에서 발현된 사고 능력이 피드의 광고 장막을 뚫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죽은 바이올렛이라는 존재는 피드 시스템에서는 그저 삭제한 프로그램 뒤에 남은 불필요한 ‘레지스트리’ 정도의 존재일 뿐이다.  

 

 

허나 타일러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바이올렛은 이제 피드에 저항한 소녀,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찾아 떠난 선도자가 된다. 어쩌면 ‘새로운 세상을 여는 신화 속 주인공’으로 등극할 지도 모른다.   

 

 

바이올렛을 통해 싹을 틔운 타일러스의 사고가 소설 <피드>로 폭발하기 시작했을 때(그의 후일담이 소설<피드>라고 유추할 수 있다) 창문 너머로 바이올렛의 아버지는 묵묵히 정원에 엎드려 풀을 뽑는 모습이 보인다. 피드 클릭을 통해 쇼핑으로 대리 노등을 하는 피드인에게는 볼 수 없는 직접 노동이다. 피드에 저항하는 ‘생각’과 ‘실천’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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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수집가>를 리뷰해주세요
기담 수집가
오타 다다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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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기이한 경험이라면 이런 정도다. 지금 글을 쓰는 내 모습을 과거에 본 듯한 기시감이 들 때. 종종 이럴 때가 있는데 이 정도라면 솔직히 어깨를 으쓱하면 그만이다. 어쩌다가 무턱대고 쫓기다가 옥상에서 떨어지거나, 지진이 나서 사방이 다 무너지거나 하는 꿈이 생생하게 기억이 날 때가 있다. 혹시 이 꿈이 기심감과 겹쳐서 내 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잠이 확 달아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꿈이 정말 현실이 되더라도 그때가 되어서야 알 수 있는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지 싶은 생각에 미치면 이번에도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베개에 머리를 처박고 만다. 공포 영화를 싫어하는 친구는 영화를 볼 때는 무섭지 않은데,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잘 때, 비로소 영화 속 공포가 현실이 되어 덮칠 것만 같아서 밤을 지새우기 일쑤라고 한다. 뭐, 그렇다고 그 친구가 신경쇠약 같지는 않고, 귀신 말고는 두려운 게 없다고 하니 오히려 강심장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다.   

기담이란 현실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아니 거의 없는 진기한 이야기를 말한다. 다만 간혹 드물게 아주 미세한 실현 가능성이 기억에 뇌관처럼 박히다 보니, 새록새록 반복되어서 자꾸만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래저래 바쁘게 살다보면 다 잊기 마련이라, 살면서 망각이 굳이 나쁜 증세만은 아니지 싶다.  

사실, 닥치는 매 순간순간이 전혀 예기치 못한 미래의 연속이고 보면 기이한 이야기 따위야 머지않아 머릿속에서 휘발하기 마련이다. 교통사고만 해도 누군들 자신이 그 장본인이 될 줄 누가 알았던가 말이다.  

흔치도 않고, 지어낸 가짜가 대부분이며, 게다가 개인적인 경험이라 밝히기도 꺼려하는 특이한 경험담인 기담을 수집하는 남자가 있다.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술집 ‘딸기 언덕(strawberry hill)’에서 고급 시가릴로 담배를 피우며, 기담만큼 희귀한 고급 위스키를 즐기는 까다로운 신사 에비스 하지메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야릇한 분위기를 풍기는 조수 히사카는 그 자체로 기담이나 다름없는 존재들, <기담 수집가>의 주인공들이다. 

기담 수집 광고를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골동품 감정하듯 평가해서 진짜일 경우 사례를 하는 게 이들의 일이다. 하지만 정작 일곱 명 중 여섯 명의 얘기는 기담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조수 히사카의 냉정한 판단에 의해 그들의 이야기 이면에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범죄의 흔적이 파헤쳐진다. 

증거도 물증도 공소시효도 지나 지금은 누구도 진실을 밝혀 낼 수 없지만 히사카가 유추한 추리는 꽤 그럴듯해서 기담에 취해 살았던 이들의 이면을 일깨운다. 

예를 들어 자신의 그림자에게 습격을 받았다는 공무원 니토 하루키의 사건은 이 남자의 과대망상을 파고든 후배의 짓이었고, 소년 탐정단 시절에 겪은 신출귀몰한 유괴살인범 물빛 망토의 정체가 궁금해서 찾아온 구사마 쓰토무의 기담은 친구들의 장난에 우연까지 겹친 음모였던 걸로 판명이 난다. 

어이없고 허탈하게 풀리는 기담 수수께끼의 진실은 다른 데에 있지 않다. 그림자에 빠져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는 니토 하루키는 남의 감정에 둔감해서 일이 서툰 후배에게 불평을 하고 화를 내는 내내, 후배가 자신을 원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현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구사마 쓰토무도 마찬가지, 어린 시절, 소년 탐정단의 멤버였던 닷지를 뚱뚱하고 느리다고 우습게 봤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 일은 오히려 마음에 한이 맺힌 닷지가 구사마를 엿 먹이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 기담에 약간의 반전을 둔 <기담 수집가>는 가볍게 읽을 만한 장르 소설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우연치 않게 겪은 기이한 경험이 알고 보니, 그 원인이 바로 내 자신이었다는 나름의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한다. 

매순간, 한 가지 일에 몰두해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이 의미가 없지는 않겠으나 한 가지에 몰두한 나머지 나 때문에 혹은 나를 둘러싸고 주위에서 다른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는지 세심하게 관찰하고 볼 일이다. 내가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혹은 가족이 누구보다 나를 원망하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면 세상에! 그 보다 더 끔찍한 기담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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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3 - 상, 하>을 리뷰해주세요
밀레니엄 3 - 상 -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 밀레니엄 (아르테)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박현용 옮김 / 아르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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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고인이 된 현실이 안타까운 소설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가의 마지막 작품. 50세, 작가가 세상에서 살다간 세월,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나는 과연 뭘 해낼 수 있을까? 그리 멀지 않은 강박의 나이. 

스웨던의 작가 故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를 읽기 전, 수첩에 적어 놓은 짤막한 메모이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진즉에 버렸지만, 50세의 나이에 늦깎이 나이에 소설가로 이 정도의 파장을 불러온 작가를 보면 불현듯 욕심이 나다가도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은 제풀에 꺾이고 말았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읽힌 책(2008년)이이면서, 1부가 영화화 되어 유럽 북구에서 흥행 신기록을 달리고 있는 작품으로 적어도 앞으로 영화를 통해서라도 작가가 계획했던 10부작 중에서 유작으로 남은 3부작에 대한 반응은 갈수록 커질 것임에는 분명하다.  

스웨덴의 대기업, 언론사, 병원, 비밀첩보기관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조의 안팎으로 엮인 거대한 ‘빅 브러더’들의 살인, 협박, 사기, 갈취 등 기득권 유지를 위한 추악한 이면을 딱딱한 사회인문서적이 아닌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숨 막히는 스릴러 소설, 차라리 마약”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로 풀어냈다.  

주인공 이름도 그렇지만 예오리 뉘스트림 등 곱씹어 읽어 봐도 당최 입에 붙지 않는 스웨덴 식 등장인물 이름을 비롯해 각종 냉전 시대의 북유럽 내 갈등, 스웨덴 정치사, 기업 스캔들 등은 밀레니엄 소설이 아니었다면, 고작 뮤지션 아바(ABBA)나 자동차 기업 볼보(Volvo) 정도나 겨우 아는 내가 평생 가야(!) 관심을 가질 사안이 아니다.  

“언론 보도의 진실 판단 여부“는 부차적 문제가 된 지 오래, “누가 어떻게 전할 것인가”하는 언론 포장과 유통 문제가 언론 관련 최대 쟁점이라는 건 미디어법을 놓고 직권상정을 강행하는 한국만 봐도 뻔한 일이다. (민생문제와 관련이 없는 이 문제를 두고 직권상정 강행, 의원직 사퇴 등의 초강수가 나오는 이유는, 다 아는 얘기지만, 언론 장악이 정권 창출의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역시 다 아는 얘기인데, 장악한 언론의 방향성을 사회가 따라간다는 것이다.)  

스티그 라르손의 작품은 워낙 복선이 치밀하고 흥미진진한 추리소설 구조를 따와서 그렇지, 실제 사건과 인물 이름을 거론하는(이 역시 내 눈에는 낯설기만 하지만) 소재와 다루는 내용은 꽤 무겁다. 이 소설 한 편으로 사회의 이면과 권력의 속성을 보는 시각을 뒤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정치, 사회에 별 관심이 없는 세대와 계층의 눈길을 돌리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문화 컨텐츠의 기본인 텍스트의 높은 완성도는 비슷한 소재와 주제를 두룬 소설 출간뿐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으로 이어지면서 더 큰 파장을 낳을 것이다.  

사회의 비리를 파헤치는 문제를 다룬 스릴러물이나 첩보영화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의 실질적 주인공은 잡지사 ‘밀레니엄’ 주변 인물들로 이들은 직원이 열 명도 되지 않는 소규모 잡지사의 일개 직원들이다.  

사회를 보는 일차적인 눈 역할을 하는 이들의 역할은 3부 마지막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백미! 법정에서 제대로 드러난다. 보통의 비슷한 정치, 군사, 기업을 다룬 소설과 영화가 스릴 넘치는 대결 구도 이후 악당의 물리적 패배 이후 경찰 수갑으로 마무리를 했다면, <밀레니엄>은 잡지사 ‘밀레니엄’을 중심으로 합법적인 재판 과정에서 빠져나갈 여지를 완벽하게 틀어막기 위한 증인 모색, 증거의 수집, 더불어 언론 공조와 사건 관련 책 출간을 통한 여론 형성 등 법정 대결을 위한 수순이었다고 봐야 한다.  

‘빅 브러더’들을 절망으로 몰아붙인 종목은 죽음이 아니다. 자신들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검찰, 법정, 언론이라는 세 가지 경기에서 완패를 당했을 떼라야 비로소 고개를 떨군다.  

이 책의 가치는 “신데렐라는 왕자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며 키스로 마무리하는 방식을 뛰어 넘어 “신데렐라와 왕자는 평민과 왕족 간의 계급 차를 극복하기 최선을 다 했습니다”라는 식으로 현실 적용 가능한 무대로 대중 소설의 패러다임을 확정했다는 데에 있다. 상투적으로 말하면 재미와 작품성을 고루 갖춘 건 물론이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단점이라면 작가가 장르소설 독자들의 눈높이를 한껏 높여놓고는 그만 고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앞으로 이만한 작품이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절망감을 벗어나게 해줄 작품을 찾기 위해 고심해야 할 것 같다. 또, 워낙 빠르게 읽히는 바람에 눈에 덜 띠기는 하지만 3부 한국 초판본에는 이름이 뒤바뀌거나 오자와 띄어쓰기 등 맞춤법 오류가 간간히 눈에 띤다는 점도 살짝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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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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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 한두 방울씩 빗물이 맺혀 흘렀다. 아침부터 하늘이 흐리더니 장맛비가 내리는구나 싶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속에는 늘 한 그루 정자나무가 서 있다. 나무 아래 벤치에 할머니 두 분 부채질을 하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아름드리 정자나무 아래는 늘 할머니들의 쉼터이다. 

창을 타고 길게 긋는 빗방울이 점점 길어지자 할머니 옆에 같이 앉아 있던 청년이 우산을 펴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정자나무 아래에서 이 정도 비가 들이치는 정도는 당연하다는 듯 여유만만이시다. 빗방울이 점점 거세지니 할머니들도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정자나무가 우거졌다고 한들 잎사귀 하나하나가 어른 손바닥 크기 이상이라고 한들, 거세게 내리는 비를 막아줄 수는 없을 것이다. 따가운 햇살도 틈틈이 새를 비집고 파고들 것이다. 그래도 오랜 세월 가슴 먹먹할 때마다, 쉬고 싶을 때마다, 정자나무가 늘 같은 자리에 있으니 할머니들은 하루에 한 번씩은 모인다. 관절염을 앓는 할머니에게 집 근처 정자나무는 자식같은 존재이다.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인 한비야는 꼭 정자나무 같다. 그녀의 일곱 번째 저서인 <그건, 사랑이었네>에서 그녀는 꿈을 이야기한다. “굶주리는 아이가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한 기회를 갖는 세상.” 하지만 가능할까? 자신도 “청춘과 인생을 바치고 목숨까지 바친다고 한들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허나 그녀가 지금까지 펴낸 7권의 책이 그녀의 행보를 잘 말해주듯이, 국제홍보회사 직원에서 오지여행가로, 이어서 국제구호기구인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으로 그녀는 꿈꾸는 세상을 위해 한발 한발 내딛는 내내, 매순간 나이테가 굵어져서 어느새 벤치가 놓일 정도로 그늘을 드리운 저 정자나무 같은 사람이 되었다. 불가능한 꿈? 그러나 그래서 더욱 찬란한 꿈, 그리고 한걸음씩 다가갈 수 있는 꿈이다. 마치 뻗은 가지에서 잎사귀가 한 잎 더 돋듯이.  

바람이 거세게 분다.  

벤치는 흠뻑 젖었고, 정자나무 주변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구호팀으로 갔던 한비야가 재해 현장에서의 한 일이란 게 어쩌면 한계가 분명한 일일 것이다. 그녀는 저 나무처럼 재해 현장에서 혹독하게 외로웠을 것이다.  

“자기처럼 에이즈에 걸린 두 살짜리 딸을 꼭 껴안고 정성껏 밥을 먹여주는 모습이 짠했는데, 이틀 후 다시 찾았을 때는 그 엄마를 볼 수 없었다. (…) 돌보던 사람을 눈앞에서 허무하게 떠나보내는 일, 이런 일은 아무리 여러 번 겪어도 가슴 아프고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불가능한 꿈을 꾸고 늘 절망의 순간을 맞이하는 내내, 그녀는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소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 자신의 종교적 신앙을 기반으로 한 이 고백은 자칫 보는 이로 하여금 힘이 빠지는 말일 수도, 피상적, 심지어 상투적 수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한비야는, 이 책에서 스스로에게 고백하길, 멈추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지금 막 9년 동안 몸담았던 월드비전 구호팀장 직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참이다.

2009년 7월, 책 출간으로부터 두 달 후인 오는 9월부터 보스턴에 있는 대학에서 인도적 지원 석사 과정을 밟는다. 공부 이후의 계획은 없단다. “‘가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라’고 하셨으니 앞으로 10년간은 어떤 형태로든 인도적 지원 분야에서 일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상태이다.

<그건, 사랑이었네>의 절반 즈음은 40대의 소소한 일상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채웠다. 그 이야기들이 구호 현장과 대비가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역시 눈여겨서 읽게 된다. 그녀가 아름드리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들이기 때문이다.

비를 막아주지 못해 원망스러운 게 아니라 어깨를 감싸듯이 같이 비를 맞아주어서 고마운 정자나무 소중함도 같이 배운다.*** 

<밑줄긋기>  

당신은 끝까지 두드렸는가? 일단 벽이 아니라 문이라는 것만 확인하면 끝까지 두드려야 뭐가 되어도 되는 것이다. 문이라면 열리게 되어 있다. (…) 단언컨대 나도 끝까지 두드린 문만 열 수 있었다. 내가 두드렸던 모든 문이 다 열리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열렸던 문 중에 끝까지 두드리지 않았던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105쪽 

기억은 지나고 나면 사건의 골자, 즉 뼈대만 남기지만 기록은 감정까지 고스란히 남긴다. 통통한 살도 붙어 있고 향기와 온기도 남아 있는 거다. 111쪽 

뭘 할 때 제일 재미있나? 무슨 얘길 들을 때 귀가 솔깃한가? 뭘 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지막 힘까지 쏟아 부을 수 있나? 어떨 때 자신이 자랑스러웠나? 148쪽
 

나는 여행이란 길 위의 학교라고 굳게 믿는다. 그 학교에서는 다른 과목들도 그렇지만 단순하게 사는 삶, 돈이 없어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삶에 대한 과목을 최고로 잘 가르친다.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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