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 수집가>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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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수집가
오타 다다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아는 기이한 경험이라면 이런 정도다. 지금 글을 쓰는 내 모습을 과거에 본 듯한 기시감이 들 때. 종종 이럴 때가 있는데 이 정도라면 솔직히 어깨를 으쓱하면 그만이다. 어쩌다가 무턱대고 쫓기다가 옥상에서 떨어지거나, 지진이 나서 사방이 다 무너지거나 하는 꿈이 생생하게 기억이 날 때가 있다. 혹시 이 꿈이 기심감과 겹쳐서 내 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잠이 확 달아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꿈이 정말 현실이 되더라도 그때가 되어서야 알 수 있는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지 싶은 생각에 미치면 이번에도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베개에 머리를 처박고 만다. 공포 영화를 싫어하는 친구는 영화를 볼 때는 무섭지 않은데,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잘 때, 비로소 영화 속 공포가 현실이 되어 덮칠 것만 같아서 밤을 지새우기 일쑤라고 한다. 뭐, 그렇다고 그 친구가 신경쇠약 같지는 않고, 귀신 말고는 두려운 게 없다고 하니 오히려 강심장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다.
기담이란 현실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아니 거의 없는 진기한 이야기를 말한다. 다만 간혹 드물게 아주 미세한 실현 가능성이 기억에 뇌관처럼 박히다 보니, 새록새록 반복되어서 자꾸만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래저래 바쁘게 살다보면 다 잊기 마련이라, 살면서 망각이 굳이 나쁜 증세만은 아니지 싶다.
사실, 닥치는 매 순간순간이 전혀 예기치 못한 미래의 연속이고 보면 기이한 이야기 따위야 머지않아 머릿속에서 휘발하기 마련이다. 교통사고만 해도 누군들 자신이 그 장본인이 될 줄 누가 알았던가 말이다.
흔치도 않고, 지어낸 가짜가 대부분이며, 게다가 개인적인 경험이라 밝히기도 꺼려하는 특이한 경험담인 기담을 수집하는 남자가 있다.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술집 ‘딸기 언덕(strawberry hill)’에서 고급 시가릴로 담배를 피우며, 기담만큼 희귀한 고급 위스키를 즐기는 까다로운 신사 에비스 하지메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야릇한 분위기를 풍기는 조수 히사카는 그 자체로 기담이나 다름없는 존재들, <기담 수집가>의 주인공들이다.
기담 수집 광고를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골동품 감정하듯 평가해서 진짜일 경우 사례를 하는 게 이들의 일이다. 하지만 정작 일곱 명 중 여섯 명의 얘기는 기담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조수 히사카의 냉정한 판단에 의해 그들의 이야기 이면에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범죄의 흔적이 파헤쳐진다.
증거도 물증도 공소시효도 지나 지금은 누구도 진실을 밝혀 낼 수 없지만 히사카가 유추한 추리는 꽤 그럴듯해서 기담에 취해 살았던 이들의 이면을 일깨운다.
예를 들어 자신의 그림자에게 습격을 받았다는 공무원 니토 하루키의 사건은 이 남자의 과대망상을 파고든 후배의 짓이었고, 소년 탐정단 시절에 겪은 신출귀몰한 유괴살인범 물빛 망토의 정체가 궁금해서 찾아온 구사마 쓰토무의 기담은 친구들의 장난에 우연까지 겹친 음모였던 걸로 판명이 난다.
어이없고 허탈하게 풀리는 기담 수수께끼의 진실은 다른 데에 있지 않다. 그림자에 빠져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는 니토 하루키는 남의 감정에 둔감해서 일이 서툰 후배에게 불평을 하고 화를 내는 내내, 후배가 자신을 원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현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구사마 쓰토무도 마찬가지, 어린 시절, 소년 탐정단의 멤버였던 닷지를 뚱뚱하고 느리다고 우습게 봤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 일은 오히려 마음에 한이 맺힌 닷지가 구사마를 엿 먹이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 기담에 약간의 반전을 둔 <기담 수집가>는 가볍게 읽을 만한 장르 소설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우연치 않게 겪은 기이한 경험이 알고 보니, 그 원인이 바로 내 자신이었다는 나름의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한다.
매순간, 한 가지 일에 몰두해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이 의미가 없지는 않겠으나 한 가지에 몰두한 나머지 나 때문에 혹은 나를 둘러싸고 주위에서 다른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는지 세심하게 관찰하고 볼 일이다. 내가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혹은 가족이 누구보다 나를 원망하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면 세상에! 그 보다 더 끔찍한 기담이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