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동안 천천히 읽은 <모비딕>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피쿼드호를 타고 있다. 멜빌은 이토록 방대한 이야기를 어떤 상황 속에서 썼을까, 에이해브, 모비딕, 피쿼드호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질문이 꼬리를 문다. 미국의 논픽션 작가 너새니얼 필브릭은 바다에 관한 여러 편의 글을 써왔다. <모비딕>이 쓰이기 전까지의 과정에 관심이 많은 저자. 그는 <사악한 책, 모비딕>에서 28개의 소제목을 달아 허먼 멜빌이 <모비딕> 쓰면서 겪었던 고투, 참고했던 책, 그리고 소설 속 인물과 미국의 시대사적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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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을 쓰는 동안 멜빌은 <주홍 글자>의 작가 호손과 편지 왕래를 하고 만나서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둘의 만남은 멜빌이 <모비딕>초고를 완성했을 때였다. 초고에는 에이헤브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멜빌은 호손의 작품에서 "어둠의 위대한 힘"을 발견하고 에히헤브를 구상한다. 1849년 2월에 큰 활자판 셰익스피어의 작품집을 손에 넣은 멜빌은 <오셀로>, <햄릿>, <리어왕>에 등장하는 악인을 모델로 삼아 에이해브 선장을 완성해 나간다.
저자는 <모비딕>을 미국의 유전자 코드가 담긴 책이라 말한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재건 시기였던 미국.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탄 피쿼드호는 자본주의 시장의 축소판이었다. 실제 포경선을 탔던 멜빌은 육체노동의 현장의 증언자였다.정치가들이 아무리 자유를 외치더라도 인간을 짓눌리는 반복된 노동은 멜빌에게 신체적 형벌과도 같았다. 고래를 잡으면 이를 해체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잠시 숨을 돌릴까 하다가도 이내 눈앞에 고래가 잡혀온다.
"이건 사람잡는 일이다...우리 인간들은 한참을 노역하여 이 세상처럼 거대한 덩치에서 적지만 소중한 고래 기름을 얻어내고, 녹초가 된 채로 참을성 있게 더러운 오물을 몸에서 닦아내고 영혼의 깨끗한 성소에서 사는 법을 익힌다. 그러자마자 고래가 물을 뿜는다."
인종과 살아온 배경이 아닌 노동을 할 수 있느냐가 포경선에 탈 인부를 뽑는 요건였다. 그러기에 멜빌은 피부색을 떠나 사람들을 평등한 눈으로 묘사하기가 가능했으리라. 삼등 항해사 플래스크가 고래를 더 잘 보려고 거구의 흑인 작살잡이 다구의 어깨 위로 올라간다. “당당한 흑인이 차분하고 무심하고 느긋한 뜻밖의 야만적 위엄을 지나고 버티고 있었고, 그의 탁월한 육체는 바다의 흔들림에 어우러져 자연스레 흔들렸다...올라탄 사람보다 떠받치는 사람이 더 고귀해 보였다.” 저자는 멜빌이 노예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인류의 ‘신성한 평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모비딕>이 ‘사악한’ 작품인 이유는 멜빌이 온 정신을 소모하고 갉아먹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머리에서 책을 뜯어내는 과정은 오래된 그림을 패널에서 떼어내는 일처럼 까다롭고 위험스러운 일이다. 안전하게 떼어내려면 뇌 전체를 긁어야 했다.” 이는 일 년 내내 <모비딕>번역에 고투했던 황유원 시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번역을 다시 하느니, 원양어선을 타겠다.” 멜빌과 번역가에게도 사악했던 소설.
농담을 하다가 웅변조로 말하다가 아름다운 문장으로 넘실대는 <모비딕>의 서사. 허먼 멜빌이 포경선에서의 겪은 실제 경험을 담아서 그런지 포경선에서 벌어지는 일화들은 날 것 그대로다. “백과사전적이고 세밀한 이 책을 외계인이 19세기 중반 지구에 존재했던 포경업을 재구성해 낼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다음 번에 <모비딕>을 깊게 읽고 싶다면 바다 속 아래에 잠겨있는 성서, 신화, 서사시, 철학, 호손의 소설을 우선 손에 들어야 하지 않을까. 내 독서목록에 향유고래 한 마리의 무게가 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