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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강자 - 이외수의 인생 정면 대결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1년 11월
평점 :
천하는 모두 열려 있으되 사람의 마음만 굳게 닫혀 있구나.
- 본문 중에서
이외수 작가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가 대략 10년 전이었습니다. <말더듬이의 겨울수첩>이라는 에세이집이었습니다. 묘했습니다. 뭐랄까. 차갑고 건조한 겨울날의 감성이랄까요. 역설적이게도 저는 위로받았습니다. 공감이었겠지요. 이후 그의 소설 몇 편을 찾아 읽었는데, 에세이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제 취향은 아니었던 거죠. 공감이 어려웠습니다. 그 시절 군대에 막 입대한 연인에게 쓴 여러 통의 편지에는 이외수 작품에 대한 감상도 끼어 있었던가 봅니다. 이외수의 모든 책이 군대에서는 금서라는 얘기를 그가 전해주었습니다. 불온 도서라는 것이 이유라고 했습니다. 불온 도서? 대체 뭔소린지 납득이 안 되어서 물음표를 띄웠더니 자기도 역시 모르겠다면서 웃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불온 도서 딱지 뗐는지 아시는 분 있으면 제보 주세요.
어쨌든 그때나 지금이나 이외수 작가는 화제의 인물인 것 같습니다. 인간극장에도 나오시고 CF도 찍으시고, 요즘은 웬만한 연예인 못지 않은 관심과 인기를 받으시는 것 같아요. 방송도 하시고 트위터도 하시면서 글도 꾸준히 쓰시는 거 보면 놀랍습니다. 이제 막 삼십대를 접어든 저보다도 활동적이고, 진정 즐기시는 것 같아서 존경스럽습니다.
언젠가부터 방송에서,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그의 얼굴과 이름이 자주 등장하더군요. 10년 전만 해도 저는 이외수 작가가 이렇게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의 작품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10년만에 집어든 책이 <글쓰기의 공중부양>이었습니다. 10년 전의 그 기발하고 독특한 감성에 부드러움과 여유가 더해진 인상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재미있더군요. 이외수 작가가 변한 건지 내가 변한 건지 둘 다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즐겁게 읽었습니다.
<하악하악>, <청춘불패>, <아불류 시불류> 등 그의 전작들이 특히 젊은 층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그가 내놓은 새 책이 <절대강자>입니다. 에세이집이지요.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대는 절대 강자'라는 부제는 이제 막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사실 저는 그 부제에 마음을 뺏기고 단번에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그 한 문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벽오금학도> 이후 그의 작품을 일부러 찾아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렀군요. 10년 전 이외수 작가의 글에서 받은 인상이 삭막하고 다소 폐쇄적이었다면 <절대 강자>는 포근하게 포용하는 봄의 감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이외수 작가 님의 문장에는 그런 봄의 감성이 녹아 있군요.
달마가 짚세기 한 짝을 걸머지고 히말라야로 들어간 뜻을 아십니까. 믿지는 않으시겠지만, 한마디로 말씀드리지요. 그대 한번 안아드리고 싶어서입니다. (164쪽)
문장 곳곳에 삶에 대한 넉넉한 시선이 스며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적인 작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도인 같은 초연함이 묻어나는 문장도 있습니다만 대부분 보통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에피소드나 사색이 주를 이룹니다. 읽으면서 약간 껄끄러웠던 점도 없지 않았지만 가식 없고 젠체하지 않는 점이 좋았습니다. 껄끄러웠던 점이라면 속속 등장하는 신조어나 속어였는데요. 잠깐동안은 당혹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외수 작가 안티들이 물고 늘어지는 문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가 봅니다. 이번 책에서 작가는 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합니다.
저는 이따금 문장의 생기와 탄력을 목적으로 신조어나 속어 따위를 사용하곤 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러한 문장구사를 언어의 파괴 행위로 단정 짓기도 하지요. 하지만 푸헐, 저는 생기도 없고 탄력도 없는 문장 구사가 언어의 박제 행위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111쪽)
얼마 전 이외수 작가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모교인 춘천교대에 갔을 때 거기 학생들이 아무도 자기를 못 알아보더랍니다. 그때 이외수 작가는 10대 20대를 대상으로 글을 쓰자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신조어나 속어 사용은 젊은 층과의 친밀한 소통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가 님, 저는 몇몇 단어에 대한 인터넷 검색을 해야 했습니다.)
아무래도 연예인 못잖은 관심과 화제의 중심에 있다 보니 사랑을 받는 만큼 공격의 목소리도 없지 않겠지요. 도인 같은 외모라 모든 일에 초연하리라는 착각은 말아야겠습니다. 의외로 상처 많이 받으시나 봅니다. 책 곳곳에서 상처와 분노, 경고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글쎄, 어쩌면 공인을 대하는 부당한 태도에 대한 분노와 경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놓고 보니 후자 쪽이 더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최근 에세이를 제가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 책들에도 신조어와 속어, 넉넉한 유머가 등장하는가요. <절대강자>를 읽으면서 혼자 킥킥거리다 강아지의 시선을 받고 흡, 약간 무안해지기도 했습니다. 다소 엉뚱하고 가볍고 때로는 허탈한 웃음 속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절대강자'의 얼굴이지요.
이 책은 입체적인 질감으로 자잘한 즐거움을 줍니다. 표지 그림으로 실린 백자사발의 오돌토돌한 손맛부터가 인상적입니다. 책 곳곳에는 우리의 옛 유물 그림 서른여덟 점이 실려 있습니다. 입체적인 손맛은 물론 우리 옛 유물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즐겁습니다. (문화재평론가 김대환 님의 유물 해설이 부록으로 실렸습니다.)
오천 년을 제 모습 온전히 지켜온 이 나라의 유물들처럼 험난하고 어두운 세상을 굳세게 견디면서 살아가는 그대, 절대강자여. 사랑합니다. 내내 강녕하소서.
응원과 격려의 문장으로 책은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 문장을 한 단어로 줄인다면, 존버! 이외수 작가의 팬이라면 다들 아시죠? 다른 말은 모르겠는데, 이 말만은 마음에 콱 하고 박혀버렸습니다. 올 한해도 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