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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말해줘
버네사 디펜보 지음, 이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네 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각 장마다 꽃 이름이 달려 있습니다. 각 꽃이 담고 있는 꽃말이 이야기를 끌어나갑니다. 꽃말은 하나의 상징을 넘어 등장인물들의 삶 전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세상에 대한 불신을 쌓아가는 빅토리아, 어머니의 애정을 받지 못했던 엘리자베스, 자신이 선택한 사랑 때문에 고통받는 캐서린, 어머니의 고통을 지켜봐야 했던 그랜트. 꽃말을 통해 이들은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 상처를 치유해 나갑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빅토리아는 태어나면서부터 버려진 아이입니다. 위탁시설과 입양가정을 오가면서 빅토리아의 세상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깊어집니다.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있는 빅토리아에게 손을 내민 엘리자베스 역시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경증을 앓는 어머니는 엘리자베스를 방치했습니다. 엘리자베스의 언니 캐서린이나 그의 아들 그랜트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해체된 가족, 애정 결핍, 그리고 불신. 이들이 처한 현실은 세상과의 단절로 이어집니다.
페쇄적이고 폭력적인 빅토리아는 엘리자베스의 사랑 속에서 마음의 문을 열어갑니다. 상처와 갈등을 안고 있는 엘리자베스 역시 빅토리아를 통해 화해의 길을 모색해 나갑니다. 두 사람을 이어준 것은 꽃말이었습니다. 꽃말은 빅토리아 시대의 은밀한 감정 표현 수단이었습니다. 다의적이고 직접적인 글말이나 입말에 비해 꽃말은 단 하나의 의미만을 가지는 절대적인 언어입니다. 꽃말을 통해 빅토리아와 주변인물들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다른 이의 감정에 공감하게 됩니다. 하나의 꽃에 담긴 특성을 파악하고 거기 담긴 꽃말을 헤아리는 과정은 소통을 위한 노력과 다르지 않습니다. 꽃말은 상처를 지닌 등장인물들 간의 소통을 돕는 한편 각 개인의 본성과 욕구를 일깨우는 역할도 합니다.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한 초콜릿(chocolat,2000)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작품에서 초콜릿은 사람들의 메마른 마음을 변화시키는 마력을 발휘합니다. 꽃말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인물들을 보면서 이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초콜릿이나 꽃말이 마력을 지니고 있을까요? 초콜릿이나 꽃말의 마력은 인간의 절실함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요.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욕구,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 같은 절실한 마음에 희망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꽃말로써 전하고 있습니다.
빅토리아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이어지는 이 작품은 탄탄한 구성을 자랑합니다. 대립되는 듯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인물들의 개성이 다양한 꽃말과 잘 어우러집니다. 중심인물은 물론 주변인물들에 대한 성격 묘사도 뚜렷합니다. 현재와 회상을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는 읽는 이의 궁금증과 기대감을 고조시킵니다. 이야기는 독자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빅토리아와 엘리자베스를 둘러싼 인물과 사건의 베일이 서서히 걷혀가면서 그들의 마음과 현실적 상황도 변화를 거듭합니다. 변화의 끝에서 빅토리아와 주변인물들 간의 화해가 이루어지면 독자는 안도감과 만족감으로 책장을 덮게 됩니다. 인간의 상처와 치유 과정을 꽃말의 상징성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호소력 짙은 향기로 닫힌 마음을 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