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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 - 차별과 편견을 허무는 평등한 언어 사용 설명서
오승현 지음 / 살림Friends / 2011년 11월
평점 :
내 언어 능력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
ㅡ 비트겐슈타인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소통 수단이 '말'입니다. 말에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담깁니다. 말은 그 사람의 얼굴이지요. 그런데 현 언어생활의 실태를 들여다보면 얼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뜻조차 헤아릴 수 없는 각종 은어와 비속어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경우도 태반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말은 독백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에 대한 신중한 태도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옛말도 있죠. 우리의 말에 상대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담길 때 비로소 우리도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은어도 비속어도 사용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말도 않고요. 바른 우리말을 사용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국어사전에 명확히 표기되었거나 사회적으로 널리 공인된 말 중에도 편견과 차별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들이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있는 것이죠. 이 책은 바로 그런 불온한 말의 실태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세상이 달라지기는 했습니다. 성소수자들의 잇단 커밍아웃이나 국제결혼의 급증 등 개방적인 사회 현상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현상, 즉 표면적인 모습일 뿐 우리의 인식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은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동성애가 변태적이라는 편견은 몇 년 전의 국어사전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혼혈인에 대한 호칭이나 태도에는 우리의 이중적 잣대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군대 가야 사람 된다'는 병영사회의 편견, '바깥양반'과 '집사람'이라는 남녀 차별의 언어 등 현재 사용되고 있는 말들에는 우리의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이 숨어 있습니다. 저자 오승현 씨는 이러한 차별과 편견의 언어와 태도를 논리적으로 꼬집는 한편 그에 따른 설문조사 결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각 설문조사 결과는 책의 설득력을 더해줍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도 그 말의 부당성을 생각지 못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 안에 뿌리 박힌 차별과 편견을 이 책은 깨우칩니다. 말이 바뀐다고 해서 우리의 인식이나 감정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죠. 그러나 말만큼 힘 있는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지적하는 말 중에는 우리가 자주 듣고 사용하면서 익숙해져버린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말은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말은 특히 그렇습니다. 이 책은 그 심각성을 경고하고 우리의 각성을 요구합니다. 차별과 편견의 언어가 사라지지 않는 한 평등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이 우리 안팎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별과 편견의 장벽을 허무는 데 보탬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