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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게 될 거야 - 사진작가 고빈의 아름다운 시간으로의 초대
고빈 글.사진 / 담소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류시화가 쓴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 인도라는 나라에 매혹되었던 적 있습니다. 타향살이하는 이방인이 멀리 두고 온 고향을 그리듯 그 나라를 꿈꾸었지요. 맨발로 페달을 밟는 늙은 릭샤꾼의 검은 등허리를 찌르는 뜨거운 태양볕과 기울어진 오두막의 벽에 붙어 바싹바싹 말라가는 소똥, 그 옆에서 차파티를 굽는 여인들의 붉은 정수리 같은 것들을 애타게 그리던 시간들. 힌디어를 배우겠다고 회화집을 사기도 했습니다. 미로처럼 구불거리는 이상한 글자들을 따라 그리고 있으면 적이 향수가 달래지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사느라니 비워진 오래된 방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그 시간들을 생각합니다. 참, 오래되기도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그렸고, 떠났고, 무성한 소문들 속에서 인도는 빛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고향을 빼앗긴 심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하나의 고향을 잃어갔던 것 같습니다.
무섭도록 책이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이따금 쓸쓸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비행기와 인터넷의 속도가 안타깝게 여겨질 때도 있고요. 사람들은 더 이상 인도를 꿈꾸지 않습니다. 손만 뻗치면 인도를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제 나는 여행책도 잘 보지 않습니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공산품 같은 인도는 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그해 여름, 나는 사막에서 우연히 파란소와 마주쳤다. 그는 커다란 눈망울을 껌벅이며 무심한 듯 타박타박 내게로 왔다. 나는 두려움과 경외심에 차 단박에 매료되고 말았다. 닐가이! 그것은 운명 같은 끌림이었다. (본문 중에서)
지금 내 옆에는 다 읽은 여행책 한 권이 놓여 있습니다. 잃어버린 나의 고향을 되찾아 준 고마운 책입니다. 사진작가 고빈이 인도와 티베트를 여행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여타 여행책들과는 다른 특별한 정서가 마음을 물들입니다. 그의 여정에는 항상 짐승들이 동행하고 있습니다. 고집센 당나귀와 해변의 떠돌이개, 사막의 파란소와의 정답고 신비한 유대가 그려지지요. 그가 찍은 사진들에서도 짐승에 대한 애정은 여실히 드러납니다. '아픈 발이 어서 낫는 게 좋을까, 아니면 자유롭게 놀 수 있게 발이 계속 아픈 게 좋을까?' 발을 다친 당나귀의 사진에는 혹독한 당나귀의 생을 연민하는 고빈의 마음이 담겨 있고요. 천진하게 웃는 테러리스트(^ ^)의 품에 안긴 비둘기는 그대로 평화의 상징이고요. 인도의 뒷골목을 지키는 갱스터 개들의 모습에는 떠돌이개의 애환이 서려 있습니다.
숱한 계절이 바뀌어도 망고를 볼 때면 숲에서 헤어진 파란소가 생각났다. 그러고 나면 그때 내가 불었던 피리소리 가락을 타고 그가 껑충껑충 뛰어올 것만 같다. (본문 중에서)
짐승을 좋아하는 고빈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만남들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는 짐승의 순수함이 좋다고 썼습니다. 주인의 무자비한 매질에도 고집을 꺾지 않던 당나귀와 사막의 야생동물을 한순간에 길들인 것은 달콤한 비스킷이 아니라 순수에 대한 동경이었습니다. 이 책에 담긴 여정은 순수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읽힙니다. 순수를 따라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후자 쪽이 더 가까운 것 같네요. 자기 안에 없는 것을 만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의 순수를 따라가는 그 여정에는 순수한 만남과 헤어짐이 있습니다. 그리움이 있고요.
자아드 풍크는 치유를 위한 일종의 마술적인 의식이었다. 동물이 병들면 주인은 개울가에 가서 눈을 감고 손에 잡히는 돌멩이 하나를 집는다. 그 돌멩이를 집으로 가지고와서 쌀독 속에 넣어둔다. 그리고 매일 병이 치유되게 해달라고 쌀독에 대고 기도를 한다. 만약 동물의 병이 나으면 쌀독에 들어있는 쌀로 신성한 음식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본문 중에서)
사기꾼인지 성자인지 분간하기 애매한 사두들과 껌처럼 들러붙는 구걸하는 아이들. 소와 원숭이와 버스와 오토바이와 릭샤로 분잡한 거리. 여행자를 봉으로 아는 탐욕스러운 장사치들. 언제부터인가 인도를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나에게 또 다른 인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말하는 '인도'는 오래 전 우리가 잃어버렸던 그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떠돌이개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짐처럼 짊어지고 기꺼이 감수하는 여행자, 멀미하는 개를 위해 버스의 좌석을 양보하는 청년, 당나귀의 콧등이 쓸리지 않게 하려고 고삐에 헝겊을 대어주는 어린 소녀(책표지 사진), 개와 닭과 염소와 당나귀를 위한 방을 따로 내어주는 구자르족 사람들에게서 자아드 풍크의 숭고한 정신을 봅니다. 순수한 짐승의 눈을 닮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은 느릿느릿 흘러갑니다. 테러리스트(^ ^)의 적의와 고약한 당나귀 주인의 탐욕은 너무 빤하여 위험하지 않고요.
나는 사막 한 편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쪽으로 가면 뭐가 나오나요?"
"사막이요."
"그럼 이쪽은요?"
"역시 사막이요."
"그럼, 그 사막에 사람은 사나요?"
"밀레가!"
"그럼 찻집도 있나요?"
"밀레가!"
"그럼, 걸어서 사막을 여행해도 별 문제가 없겠네요?"
"삽 쿠치 밀레가!"
'삽 쿠치 밀레가'는 인도어로 '모든 것을 만날 것이다'라는 뜻이다.
나는 계속 물었다.
"그래도 이 땡볕에 물을 못 만나면 쓰러져버리지 않겠어요? 그리고 사막엔 독사가 많다고 하던데 뱀한테 물릴 수도 있잖아요?"
"물론이죠. 하지만 그것이 당신 운명에 예정되어 있다면 당신은 결국 그 운명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운명은 거창한 것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걷다 마주치는 파란소 같은 것 아닐까요. 해변가나 뒷골목에서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오는 떠돌이개일지도 모르고요.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마니차와 같이 지구도 돌고 나도 돌고 너도 돌고, 돌고 돌다 보면 다시 만나지는 것이 삶이라는 소박한 진리를 이 책은 매우 정다운 방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