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우체국 post office>은 찰스 부코스키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책표지 보이시죠? 저 구김살 많은 얼굴의 주인공이 바로 부코스키입니다.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얼굴은 아니네요. 너무 적나라하잖아요. 칼끝으로 깊게 그어놓은 것 같은 주름과 조소를 머금은 듯한 표정이 그의 굴곡진 삶과 작품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쓰기까지 부코스키는 매우 고된 생활을 이어왔습니다. 도살장이나 개 사료 공장 같은 데를 전전하면서 공원 벤치에서 잠들었지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우체국에 취직합니다. 거기서 12년 동안 일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씐 작품이 바로 <우체국>입니다. 자전적인 소설이지요. 등장인물들도 실제 인물을 모사했다고 합니다.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는 작가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런데, 소설적인 요소는 결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6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소설적 짜임이 무시된 채 낱낱의 에피소드를 나열하고 있을 뿐이지요. 단순하고 투박한 언어로 옮겨진 하급 노동자의 일기 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툭하면 '니미럴','씹할' 같은 표현이 등장하고요. 씹하는 장면도 자주 묘사됩니다.

 

 

    세상에, 집배원들은 편지를 넣고 다니면서 여자들하고 같이 눕기도 하는구나. 이거 나한테 딱 맞는 일인데. 오, 이거야, 이거. 이거라고. (본문 중에서)

 

 

    주인공 헨리는 마초적인 기질이 다분한 한량입니다. 그가 우체국에 근무하게 된 것도 순전히 여자와의 성적 해프닝에서 출발합니다. 성탄절 임시 집배원 일을 하던 도중 여자랑 눈 맞아서 한바탕 질펀하게 놀고 보니 집배원처럼 좋은 직업도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그런데 실상은 아주 다릅니다. 그보다 빡센 직업도 없었지요. 읽는 입장에도 한숨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 작품이 출간된 것이 1971년입니다. 옮긴이에 따르면, 이 작품은 19세기 전후 미국사회에 팽배한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가 지배하는 노동 환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고 합니다. "노동 감독과 엄격한 노동자 훈련, 노동 강도를 강화하고 생산 양식의 표준화를 도입하여 자유 공간을 제거하는 방식의 경영 방식을 통해 제한된 시간 내에 노동 생산성을 극대화하는"것이 이들 목표였지요. 작품에 묘사된 우체국 하급 직원의 업무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60센티미터 트레이에 담긴 우편물을 23분 안에, 정확히 23분이어야 하지요, 분류해야 하고요. 단 1분이라도 어긋나면 현장 감독에게 불려가 경고를 받습니다. 열두 시간 일하는 동안 단 두 번, 정확히 10분씩만 휴식할 수 있지요. 직원에게는 엄격한 업무 규칙을 강요하는 우체국은 정작 임의대로 연장 근무를 명령합니다. 퇴근해도 업무는 끝나지 않습니다. 복잡한 구역 구분표를 암기해야 하니까요. 헨리는 한마디로 물먹은 거지요.

 

 

     이봐, 자기. 미안하지만, 이 일 때문에 내가 미쳐 가고 있다는 거 모르겠어? 저기, 그냥 포기하자. 그저 빈둥빈둥 누워서 섹스나 하고 산책이나 하고 얘기는 조금만 하자. 동물원에 가는 거야. 동물을 구경하자. 차를 타고 내려가서 바다를 구경하는 거야. 45분밖에 안 걸려. 오락실에 가서 게임도 하고. 경마장이나 미술관, 권투 경기에 가자. 친구도 사귀고. 웃자고. 이렇게 살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거야. 이러다 죽는다고. (본문 중에서)

 

 

    우체국 업무를 제외한 헨리의 일상은 여자, 술, 경마가 전부입니다. 술에 취해 여자랑 뒹굴고 도박이나 하는 이 사내에게서 좋게 보아줄 만한 구석이라고는 없습니다. 헨리의 삶에는 도덕이나 예의가 결핍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그런 것 모릅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겁니다. 여자는 성욕을 해소할 구멍에 불과하고요. 그저 흐르는 대로 살아요. 우체국의 빡빡한 업무와 부당한 처우가 그에게 얼마나 지옥 같았을지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일이 년도 아니고 십이 년을 버텼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습니다. 십이 년을 버티고 난 헨리는 마침내 사직합니다.

 

 

     아침이 되자 아침이었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마 소설을 쓸 것 같군, 생각했다. 그래서 소설을 썼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부코스키, 그에게 소설은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작품을 수식하는 반(反)노동이니 반(反)소설이니 하는 것들은 지나치게 고상한 표현이고, 어쩌면 "똥구멍" 같은 것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똥구멍이 뭐가 나쁘냐고! 당신한테도 똥구멍은 있잖아. 나도 똥구멍이 있다고! 가게에 가서 큼지막한 쇠고기 스테이크를 하나 사봐. 거기도 똥구멍은 달렸어! 지구상에는 똥구멍이 널렸단 말이야! 어떤 면에서는 나무들도 똥구멍이 달렸는데 못 찾는 것뿐이야. 나무들도 이파리를 싸잖아. 당신 똥구멍, 내 똥구멍, 세상에는 수십억 개의 똥구멍으로 가득 찼어. (본문 중에서)

 

 

     주류 문단이 외면한 그의 작품을 전 세계 독자들이 열광하며 읽고 있습니다. 그의 책은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이 도난 당한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합니다. 여기서 '도난'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네요. 부코스키의 책은 몰래, 훔쳐 읽어야 할 것 같은, 그러니까 좀 떳떳하지 못한 기분을 안겨주지요. 너무 적나라하니까요. 상스럽고 저속하니까요. 똥구멍 같으니까요. 사람들은 굳이 똥구멍의 존재를 의식하거나 발설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것이 우리한테 속해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불편하니까요. 부코스키는 우리 앞에 똥구멍을 들이대고 있어요. 수치심과 모욕감으로 욕지기하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외치면서요. 똥구멍이 뭐가 나쁘냐고! 당신한테도 똥구멍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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