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나온 소설의 특징 중 하나가 일상성을 다룬 소설들이 현저하게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 소설도 이러한 특징을 지닌 소설의 하나로 불임여성과 그 남편이 주인공이다.

  첫장에 ‘아내의 상자’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그려져 있다.

  ‘아내는 상자를 많이 갖고 있다. 아내의 상자에는 지난 시간 동안 그녀를 스쳐 지나간 상처들이 담겨 있다.그녀는 흉터를 지니듯이 방 귀퉁이에 상자를 쌓아간다’

  ‘규격화된 상자에 정리정돈을 잘한다.’ 웬지 박제화된 느낌이 든다. 아내가 상자에 뭔가를 쉬임없이 채워넣는 것은 자신의 가슴이 그만큼 공허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은데 ‘나’가 바라보는 ‘아내의 상자’는 대단히 피상적이다. 아내의 가슴 속에 켜켜히 쌓인 상자는 여전히 보지 못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나’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일상의 평온을 즐기고, 짜여진 생활에 별다른 거부감을 갖고 있지도 않는, 증권 시세 같은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현대인 도시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나’의 눈에 아내는 정리정돈을 잘하고 음식을 잘 만들고,외출을 잘 하지 않고 잠이 많다는 것과 같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시시하다고 할 만큼 평범한 사람’이라고 평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그러면서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아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이 부부의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아내를 잘 모른다. ‘나’가 알고 있는 것은 아내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아내의 내면을 조금만 들여다보려고 했다면 이 부부가 이렇게 공허하게 살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외출을 하지 않고 집 안에서만 맴돈다는 것, 친구가 두 명 밖에 없다는 것은 자기 만의 성을 쌓고 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스트레스가 많다. 그래서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것을 풀기보다는 깊은 잠에 빠져들며 순간적으로 그 감정을 모면하기도 한다.

아내도 잠을 통해 이상징후를 남편에게 알린다. 그러나 몸이 아플 때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 심지어는 화가 났을 때 조차 잠을 자고 화를 내고 나간 뒤 문을 잠그고 깊은 잠에 빠져들어 열쇠공을 부르고 문을 부순 다음에 집으로 들어갔을 때도 잠을 자고 있었는데도 그것을 그렇게 심각징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는 모든 게 말라 버려요. 시멘트 벽이 수분을 다 빨아들이나봐요. 이러다가 나   도 말라비틀어질 거예요. 자고 나면 내 몸에서 수분이 빠져 나가 몸이 삐거덕거리는 것 같다    구요.’

라고 소리치는데도 ‘나’는 실내 환기를 안해서 습도가 낮아진 거라고 가볍게 아내를 나무라며 안심시킨후 가습기를 사 들고 들어간다. 아내와 ‘나’가 얼마나 괴리된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들 부부가 모습은 현대인의 두 얼굴을 닮아있다. ‘늘씬한 포장 도로’를 보고 안도감을 느끼는, 규격화된 일상에 순응하면서도 그 곳으로부터 탈출하고 픈 욕망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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