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차의 맛’에 이어 두 번째로 본 일본 인디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일본 영화를 보며 새삼 놀란것은 영화 소재가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이다. 돌에다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숫자로 타인과 소통하는 기억장애를 가진 수학자...
이 영화는 딱딱한 숫자들 속에 아름다운 의미가 담겼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영화다. 대부분의 인디 영화들이 그렇듯이 이 영화도 강렬하게 뭔가 와 닿는 것은 없어도 가슴에 소리없이 파고 들어 문득문득 일상을 일깨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수학자인 ‘박사’는 10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을 유지하지 못한다.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80분이다. 천재 수학자 답게 박사는 타인과 숫자로 소통을 한다. 이런 박사를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정부들은 오기가 바쁘게 그만두지만 9번째로 온 가정부는 다르다. 미혼모인 이 가정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어떠한 일을 맡기더라도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참 사려 깊다. 박사가 속상할 까봐 아침마다 같은 질문 반복해도 짜증내지 않고 늘 처음 듣는 것처럼 대답하고, 아들에게도 박사가 반복해서 물어도 늘 처음 묻는 것처럼 대답하라고 일러준다.
가정부가 처음 박사 집에 간 날, 박사는 가정부의 신발 사이즈를 묻는다.가정부가 24라고 말하자 ‘24’라는 숫자는 깨끗한 숫자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1부터 4가지 연속해서 곱했을 때 나오는 숫자이기 때문이란다. 박사가 사랑하는 숫자는 솟수, 타협하지 않고 고고한 숫자이기 때문이란다.
어느 날 생일을 묻는 박사에게 가정부가 2월20일이라고 말하자 자신이 차고 있던 시계를 보여주며 시계에 새겨진 284와 220은 우애수라고 한다. 우애수는 서로 좋아하는 수다, 220의 약수의 합은 284이고,284의 약수의 합은 220이기 때문이다. (이 수 외에 1184와 1210도 우애수란다) 가정부는 순수하게 숫자를 사랑하는 박사로 인해 숫자에 담긴 아름다운 의미를 깨달아간다. 그리고 가정부의 아들 ‘루트’(이 아이의 머리가 루트처럼 납작하다고 박사가 붙여준 별명이다. 루트는 어떤 수도 마다하지 않고 품어준다고 루트 보고 ‘너는 마음이 참 넒은 아이’라고 말한다)또한 박사를 통해 수학의 아름다움에 눈을 뜬다.
세월이 흘러 루트는 수학교사가 되어 아이들 앞에 박사가 자신에 해줬던 수학에 담긴 아름다운 의미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루트에게 수학을 배우는 아이들은 수학에 흥미가 절로 생길 것 같다.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대부분은 수학보다 어문학 계열을 좋아한다. 이 아이들조차도 루트의 수학 시간은 따분하지 않고 재미있겠다. 숫자에 담긴 의미들이 아이들이 아름다운 수의 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니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한단다’
‘하나 속에 전체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아름답다’
고 했던 박사의 말도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음악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