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기억 속 보물창고 문을 열어보니-
7월달 KTX 매거진을 읽어보니 통영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 실려 있었다.
세병관,해저터널, 용화사, 한산도...
낯익은 지명들을 보는 순간 소중한 기억들이 잡리잡고 있는 보물창고 문이 열리고 낡은 필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통영은 지금은 폐교된 내가 다닌 초등학교(내가 다닐 때는 국민학교였다)에서 수학여행을 갔던 곳이다. 전교생 다 합해야 120명이 될까말까한, 한 학년마다 반은 한 개고 한 반에 2,3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던 작은 학교라 5,6학년을 모아 2년에 한번 수학 여행을 갔다. 장날마다 삼천포로 다니던 장선(4일과 9일에 섰던 5일장에 마을 사람들을 싣고 삼천포를 오가던 배)을 타고 우리 마을에서 통영으로 가는데 배를 처음 탄 아이들은 배가 파도를 타고 기우뚱거릴 때마다 멀미를 했다. 그래서 그 때 찍은 단체 사진을 보면 핼쓱한 얼굴로 앉아 있는 아이들이 더러 보인다. 그래도 얼마나 가슴이 설레고 즐거웠던지!
처음 보는 해저터널과 말로만 듣던 이순신 한산대첩 격전지, 남망산 공원에 올라 아래를 보니 한 눈에 들어오던 충무시내, 하루 종일 걸어서 충무 시내 유적지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힘들다고 느낀 기억은 없다. 다만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던 작은 시골마을에 살던 아이들이 처음으로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보며 신기해 했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물론 장날 부모따라 가끔 삼천포 시내를 나가기도 했지만 그건 여행이 아니라 어디까지 볼일을 보러 간거였으니까.
충렬사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보면 나는 손에 작은 보통이 같은 것을 들고 있다. 기념품이지 싶다. 그 당시 기념품 가게에는 가족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용돈이 넉넉지 않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던 아이들도 많았던 ,산호나 조개 같은 것들로 만든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보퉁이 속에 뭐가 들어있을까?’ 그 당시 우리 집엔 배가 있어서 다른 아이들보다는 사는 형편이 조금 나아 군것질 할까 기념품 살까 갈등하다 기념품 한 개를 사서 행여나 깨어질까 손수건에 싸서 보퉁이처럼 들고 다녔던 건 아닐까 싶다.
사진 속에는 명희, 현숙이.덕자....그리운 이들 모습도 보인다. 일년에 한 번쯤 고향 친구들을 만나지만 이 친구들 모습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 후 본적이 없다. 식구들이 모두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떠나간 이후 고향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통영의 낯익은 지명들이 기억 저편 아스라한 추억 속을 한 없이 거닐게 한다
올 여름 가족들과 통영을 다녀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