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와 울산 근처의 문화 유적들을 보러 가다-

1월 15일 통도사와 울산 근처에 있는 유적지 답사를 갔다.

첫 답사지는 통도사,이곳은 내가 몇 년 전 여름 휴가 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사찰 문화를 체험해 보게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곳이다. 그 때 마지막 날 섭의사 스님 안내를 받으며 사찰을 둘러 보았는데 오늘 길눈이의 설명을 들으며 보니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곳곳에 보물이 숨어 있다.


  성보박물관. 이 곳에 특별 전시 행사 중 하나로 우리 나라 사찰에 있는 괘불들을 한달에 하나씩 전시를 하고 있었다. 괘불은 야외에서 야단법석 같은 행사를 할 때 걸쳐놓고 의식을 행하던 대형 부처님 걸개 그림으로 1월달에는 청도 적천사 괘불을 전시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 해 가을 범어사 산사 축제 프로그램 중 범패 한마당 공연할 때 보제루 앞 마당에 내 걸렸던 괘불이 생각난다. 괘불 양쪽으로 어릴 적 시골에서 봤던 상여 앞에 마을 사람들이 줄줄이 들고 가던 깃발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는데 괘불과 깃발들이 어우러져 약한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기억. 내부 전시물들은 문화재를 해설해 주시는 법사 한분이 설명해 주셨다. 지난 번에 왔을 때 제법 꼼꼼하게 둘러 봤는데도 기억에 남은 것이 없는데  해설을 들으면서 보니 불교사상에 담긴 의미가 오묘하다. 감로탱에 그려진 그림들은 그냥 쓰윽 보고 지나치면 잘 모르겠는데 동 서 남 북으로 나눠 한 화면에 네 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입체주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에 다양한 시점이 담겨 있는 것처럼.부처가 보리수 나무 밑에서 수행하는 장면, 부모가 보낸 사람들이 석가모니를 데려가기 위해 설득하는 장면, 해탈을 한 석가모니에게 녹야원에서 5제자가 처음으로 설법을 듣는 장면, 들을 수록 신기하다. 그리고 사람이 죽어서 저승에 갔을 때 만나는 분들을 그려놓은 그림도 있다. 사람이 죽으면 35일째 되는 날에 염라대왕을 만나 재판을 받는데 자신이 그동안 죄지은 것을 파노라마처럼 비춰주는 거울이 있단다.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긴데도 새삼스레 그동안의 내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참 이기적으로 살았다. ‘덕을 쌓으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49제를 지내고 절에 올리는 까닭도 알았다. 49일째 되는 날 태산 대왕이  환생할 생물을 결정하신단다. 극진히 제를 지내면 살아 잘못했더라도 좀 봐주신단다. 저승에 가 보지 않을 사람들이 상상한 일이긴 하지만 암튼 죄 짓지 않고 잘 살아야겠다.


  극락전 벽에 반야용선이 그려져 있다.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 가는 장면. 벽화가 아주 많이 낡았다. 낡은 벽화가 지금 우리가 보기엔 좋지만 더 훼손이 되면 후대의 사람들은 보기 힘들 것 같다. 그런데 손을 보면 은은한 맛이 없고 너무 조잡해 보인다. 훼손을 막기 위해 손을 보긴 봐야할 것 같은데 조잡 스럽제 않게 볼 순 없을까?


                극락전 벽에 그려진 반야용선

 

그리고 새로이 알게 된 사실, 부처님이 있고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부처님 제자 중 한 분이 탑으로 환생했다는 석가탑이 영산전 안에 탱화로 그려져 있다. 잠겨 있는 문을 누군가가 열어주어 일행들이 안으로 들어가 봤다. 왼쪽 벽에 탱화가 있다. 밖에서 한 번 쓰윽 보고 지나쳤던 건물 속에 이런 보물이 숨어있다니! 그 뒤에는 통도사 봉밀탑이 있다. 석가모니 발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석조물로 56억 몇천년 후에 나타날 부처를 맞이하기 위함이란다.


                     부처님 발우 모양의 탑
 오전 답사를 끝내고 경기식당에서 밥을 먹고 간 곳이 언양 간월사지, 이 곳은 가람의 배치나 탑의 위치로 보아 경주 장항리 폐사지와 아주 비숫하다. 큰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곳이 아니라 언덕빼기 같은 곳에 있다. 이곳도 교통의 요지였단다. 밀양, 청도 방면으로 가는 사람들과 양산, 부산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이길을 지나 이 앞에서 갈라졌단다. 다만 장항리사지에 있는 탑이 5층석탑인데 반해 이 곳은 3층 석탑이 양쪽에 있다. 하나는 바위 위에 하나는 평지에.그리고 간월사지 밖에 있던 연꽃좌대에 앉아 계신 부처님이 작은 절간 안에 모셔져 있다. 목이 부러졌던지 기부스 한 것 처럼 부자연스럽게 복원을 해 놓았다. 무릎에 얹힌 손 모양도 시멘트를 발라 엉성하기 이를 데 없고, 후대까지 남겨질 문화유산을 복원하면서 .... 그리고 절 간 앞 마당 양쪽에 있는 노스님 모습의 돌부처, 부처님이 아니라 미륵 같다.아주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간월암 앞 마당에 계신 노승을 닮은 돌부처
 

그 다음 간 곳이 영축사지, 그런데 차를 댈 곳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길인데 양 옆에 차를 빽빽하게 주차해 놓아 마주오는 차를 비키려니 아슬아슬하다. 결국 답사를 포기하고 망해사지 석조부도를 보러 갔다. 망해사 뒤편에 있는 이 부도는 ‘부도다 탑이다’를 놓고 논란 중이란다. 그러고 보니 부도가 아니라 탑 같은 느낌도 든다.부도 맨 밑에는 커다란 연꽃 8장을 새겼고, 그 위에는 16장을, 맨 위에는 24장을 새겼다. 이 부도는 신라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양쪽에 있는 두 부도의 모양이 약간 다르다. 그냥 봐선 잘 모르겠는데 보물찾기 하듯 꼼꼼하게 살펴보면 두어군데가 보인다.   망해사는 가까운 개운포에 사는 용왕을 위해 세운절이라고 한다. 헌강왕이 용왕을 위해 절을 세운 이후 용왕이 너무 기쁜 나머지 일곱번째 자식 처용을 헌강왕에게 주었단다.절 뒤 부도가 있는 곳에서 바라보니 멀리 개운포가 보인다. 개운포 앞 바다에는 처용이 걸어나왔다는 처용암이 있단다. 삼국유사의 처용 설화가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들런 곳이 오늘 일정에 없었던 청송사지 3층석탑, 구불구불한 논길을 한참 들어가니 작은 마을 입구에 탑 1기가 서 있다. 모습은 감은사지 탑과 비슷하다. 통일신라 시대 석탑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청송사지 옆에서 왼쪽으로 논 밭을 지나 야트마한 산을 오르면 조선 시대 돌종 모양의 부도가 3기 있는 부도밭이 있다. 한 기는 바위 위에 그대로 얹혀 있고, 한 기는 좌대에, 한 기는 받침대 위에 좌대가 있고 그 위에 부도가 얹혀 있다. 좌대 밑에 받침대가 있는 부도는 처음 봤다.그런데 좌대도 없이 바위를 그대로 깔고 앉은 부도는 세월의 흔적이 아름다워 자꾸 눈길이 간다


                            -청송사지 아름다운 부도

  통도사와 울산 근교의 문화 유적들을 둘러보고 받은 느낌은 알려지지 않는 우리 나라의 유물들이 아주 많다는 것, 그리고 비슷한 듯 보이는 유물들도 나름의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유물들은 볼수록 새록새록 사람의 눈길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