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살 것 같다 -
가을이 깊어 간다.
온 산에 단풍이 절정이란다.
올 가을, 단풍 다운 단풍은 구경도 못하고 지나 갈 줄 알았는데 범어사 계명암의 아름다운 단풍을 보고 올 가을을 보낸다.
온갖 잡념과 소리에 시달리는 내 머리를 좀 쉬게 하고 싶어 8월달에 범어사 템플 스테이를 신청했다. 그런데 그 날 일이 생겨 못가는 바람에 10월 29-30일에 했다. 금정산 단풍이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던 날이었다.
오후 1시부터 1시 30분까지 휴휴정사를 입실해야 하는 데 나는 늦어서 2시 즈음에 갔다. 가니 학인 스님 한 분이 사찰 예절에 대한 강의를 하고 계셨다. 사찰이 가진 고즈넉한 분위기와 불교적인 색채를 좋아할 뿐 불교 신자는 아니어서 성인에 대한 예를 갖추려면 절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대웅전에서 최소한 몇 번의 절을 하는 것이 부처님에 대한 예의인지 알 수 없어 늘 대웅전 밖에서 가벼운 목례만 했는데 오늘 제대로 배웠다. 절은 최소한 3번은 해야 예의란다. 부처님께, 불법에, 승려께.
공양을 하고 참선을 했다. ‘이 뭣고?’ ‘이 뭣고? 하는 이 놈이 뭣꼬?’ 화두를 잡아 늘어져 보지만 머릿속은 망상만 가득하다
새벽 3시 대웅전에 예불을 드리러 가야한다고 깨웠다. 눈이 안 떠진다. 옷을 챙겨 입고 세수를 하고 대웅전으로 향했다. 가을 바람에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비오는 것 처럼 들린다. 산사의 새벽 바람이 멍한 정신을 깨운다.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을 드리고 돌아와 참선을 하고 108 염주를 만들며 108배를 했다. 할만 하다. 그런데 염주에 구멍이 재대로 뚫히지 않아 끼우다가 다른 사람보다 늦어졌다. 그래서 죽비 소리에 상관 없이 혼자 절을 하며 염주를 끼웠는데 글쎄? 나중에 보니 다른 사람들 보다 2개나 빨리 끼웠다. 마지막 2번은 그냥 절만 했다.
아침 공양을 하러 가는 길, 그믐달이 참 이쁘다. 검은 구름 사이로 보이는 그믐달이 어찌나 선명하고어여쁜지 한참 동안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서 있었다. 아침 공양을 하고 나오니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있었다. 계명암을 향해 올라가는 길,금정산을 올라갈 때 맞은 편 산 중턱에 보이는 자그마한 암자를 보고 언제 저길 한 번 가봐야지, 가봐야지 했는데 오늘 아침 산행이 그 곳 계명암이다.
게명암 올라가는 길은 단풍이 절정이다.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올라가는데 다들 아름다운 산길이라고, 멀리서 보면 길이 보이지도 않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산길이 숨어있었다고 감탄을 한다. 계명암에 올라 범어사와 금정산을 보니 범어사가 금정산 발치에 누워있다. 한가롭게 여기저기를 둘러 보고 내려오는 길 , 두어명은 금정산을 오르고 나는 서너명의 도반들과 함께 걸어서 범어사를 내려왔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머릿속에 맑은 바람을 쏘이고 왔더니 이제 좀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