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고니 위버의 '진실'을 보고
감독: 로만 폴란스키
출연: 벤 킹슬리 , 시고니 위버 , 스튜어트 윌슨
이 영화의 원작은 아르헨티나 작가 아리엘 도프만이 쓴 ‘죽음과 소녀'라는 제목의 희곡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폴리나가 미란다의 차를 끌고가서 절벽에 밀어버리는 장면과 미란다를 죽이기 위해 절벽으로 끌고가는 장면 외는 집안에서 거의 모든 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등장인물이 세 사람밖에 되지 않는 다는 점,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연극 같은 느낌이 강하다. 공간 설정이 자유로운 영화에서 공간 변화가 거의 없고, 등장인물 세명이 극을 이끌어 가다보니 솔직히 중간중간 졸음이 쏟아져 참을 수가 없었다.겨우겨우 정신을 수습하며 끝까지 봤던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영화 막바지에 이르러 미란다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장면이다. 폴리나가 미란다부터 자백을 받아낸 후 그 어떠한 행위도(하다 못해 발길질 한 번 안하고)하지 않고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뚜벅뚜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던 장면.
폴리나는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던 동료의 이름을 대지 않는 다는 이유로 심문을 하던 미린다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후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대인 공포증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런데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자신의 남편에게 스페어 타이어를 갖다 주러 온 친절한 이웃집 남자의 음성을 듣는 순간 그 남자가 자신을 성폭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집을 나가는 것 처럼 위장하고 집 앞에 세워 놓은 미란다의 차를 끌고 나가 언덕 아래 굴러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술에 취해 헤매는 미란다를 자신이 만든 법정에 세우고 심문한다. 그런데 미란다는 자신의 죄를 부정한다. 마란다의 차 속에 그가 폴리나를 폭행할 때마다 들려 주었던 '죽음과 소녀'라는 음악 테이프가 있었음에도. 미란다가 그냥 부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알리바이마저 완벽하게 갖추고 시종일관 완강하게 범행을 부인할 때 나는 폴리나가 극심한 공포에 시달린 나머니 생 사람 잡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미란다는 폴리나를 성폭행한 진짜 범인이었다. 위선을 떨던 미란다가 진실을 고백했을 때 나는 미란다의 얼굴을 짓밟아 주고 싶었다. 그런데 폴리나는 미린다에게 어떠한 폭력도 가하지 않았다. 다만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듯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란다를 언덕위에 앉혀두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묘한 여운을 남기고서.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보니 폴리나가 남편과 함께 음악 연주회장에서 자신이 성폭행을 당할 때 항상 듣던 음악 ‘죽음과 소녀’라는 음악을 듣고 있다. ‘죽음과 소녀’라는 음악만 들어도 몸서리 치던 폴리나가 음악회 장에서 괴로운 얼굴빛을 하지 않은 채 음악을 듣고 있다는 것은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87년 민주화 투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귄인숙 성고문 사건. 민주화 운동을 하던 동료들의 이름을 대지 않자 형사가 무자비한 성폭력을 가했다는 그 사건. 그런데 권인숙은 폴리나처럼 혼자 상처를 부둥켜 안고 살기보다 언론과 여성단체에 성폭력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가해자가 끝내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성폭력은 한 사람의 삶을 황페화 시킨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를 했던, 자백을 받아내든 ,가해자를 처벌하든 성폭력을 당한 본인은 그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지도 모른다. 지구상에 이런 반인륜적인 행위들이 다시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