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여행기(5)-다시 마닐라로-
2시 15분 비행기라 오전 투어하고 점심을 먹고 나와도 되는데 밤새 바람이 불고 비가 와서 서둘러 나가야 될 것 같다. 보라카이에서 카티끌란까지 가는 배가 뜰까 걱정이 된다. 옆에 있는 ‘씨월드’에 가서 물어보니 가게 앉아있던 한국인 아저씨가 그런다.
“걱정 마세요. 배 뜹니다.우기에는 이런 날씨가 흔해요. 그런데 (손으로 웨이브를 그리며)쪼금 재미있을 거예요.”
보라카이 해변-나무가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불고, 파도도 높았다
보라카이에서 아침은 잉글리쉬 베이커리에 가서 먹었다. 영국인 주인장이 빵을 맛있게 굽는다고 해서 우리가 머물고 있던 곳에서 스테이션 1쪽으로 제법 걸어가야 되는 데도 불구하고 산책하듯 걸어서 가서 먹었다. 스페살이 140페소 정도. 홍차는 3잔까지 우려 먹을 수 있다. 맛있다. 탈리파파 가게에 있는 물건들을 구경하고 오는 길에 보니 태풍이 불어 떠밀려온 쓰레기들을 치우며 젊은 남자랑 아이들 몇이 선을 긋고 있다. 가만히 보니 메인로드 쪽에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체육을 하러 온 모양이다. 편을 갈라 푸대 안에 두 발을 넣고 콩콩 뛰어서 반환점을 돌아오는 경기다.
-보라카이 해변에서 체육하는 아이들-
정희는 걷는 걸 싫어해서 주변에서 대충 먹었는데 오늘은 내가 밥을 먹고 올 때까지 자고 있다. 비행기도 배도 뜬다니 다행인데 쪼금 재미있는 정도는 어느 정돈지..... 늦잠을 자고 있는 정희를 깨웠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하니 지금 나간잔다. 아쉽다. 오늘 오전에 앞 바다에서 수영을 해 보고 싶었는데 맑은 날은 발 밑으로 물고기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도 보인다는데.
아침 먹으러 가는 길에 찍은 사진-이른 아침이라 거리가 한산하다. 도로도 하얀 모래밭이다
트라이시클을 타러 디몰 쪽 골목을 빠져나갔다. 원주민들이 즐겨 찾는 시장이 메인로드로 이어지는 곳 끄트머리에 있다. 풍성한 과일과 싱싱한 해물들이 쌓여있다. 일찍 알았더라면 람부탄이랑 망고 실컷 사 먹었을 텐데. 비가 많이 와서 물이 흥건하게 고여있는 곳을 지나면 메인로드다. 원주민들은 잘도 건너는데 우리는 너무 더러워 도저히 건널 엄두가 안난다. 머뭇거리고 있으니 오토바이 탄 아저씨가 건너 주겠단다. 여기는 ‘뻑’하면 팁을 요구해서 멀뚱거리고 있는데 정희는 훌쩍 올라탄다. 그리고 나도 타란다. 오토바이를 타고 건넌 거리가 30초정도 걸리는 거리. 그런데 사단이 났다. 정희가 오토바이 연통에 장단지를 데였다.
트라이시클을 타고 뒷바다로 넘어오니 앞바다는 코코넛 나무가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불었는데 뒷바다는 잠잠하다. 대기하고 있다가 타야될 줄 알았는데 바로바로 출발을 한다. 바다 가운데로 나오니 조금 배가 기우뚱거린다.
탈없이 카티클란 선착장에 도착해 내리면서 보니 해안가에 예쁜 조개 껍데기 제법 많이 눈이 띈다. 비행기 탈 시간도 4시간 정도 남았고 해서 정희보고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조개 껍데기를 주웠다. 그런데 그곳에서 마른 해산물을 팔고 있던 아주머니께서 비닐 봉지를 건네 주신다. 아이구 고마워라. 내가 조개 껍데기를 줍는 것을 보고 주변에 있던 선원들도 조개 껍데기를 주워준다. 예쁘고 모양이 특이한 조개 껍데기를 제법 많이 주웠다. 보라카이에서는 관광 기념품 만드느라고 다 주워가고 눈에 띄지도 않았는데.
트라이시클을 타고 10여분을 달려 카티끌란 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나는 카티끌란 재래시장 구경을 갔다 오겠다고 했더니 지금 가는 비행기 탈 수 있는 지 알아보고 그냥 마닐라로 가잖다. 11시 30분에 뜨는 비행기 물어보니 자리가 없단다. 그래서 공항에서 얼쩡거리고 있는데 한국인 여행객이 너무 많아 임시로 비행기 한 대가 운행이 된단다. 그 비행기에 남는 좌석이 2개, 그래서 그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로 왔다. 아무리 경비행기 이지만 승무원 하나도 없다. 기상이 좋지 않아 기우뚱 거리는데 솔직히 겁이 난다.
점심무렵 마닐라 국내선 공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탔다. 정희가 함께 비행기에 탔던 현지 가이드에게 싸게 호텔에 투숙할 수 있게 소개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바쁘다고 그냥 가버려서 에르미타로 가서 우리가 구해 보기로 했다.안내 책자를 보고 처음 간 곳은 체리 블로섬즈, 로빈슨 백화점 바로 옆에 있다. 하룻박 숙박비가 2000페소 우리돈으로 4만원정도. 일단 한군데를 더 알아보기로 하고 나왔다. 다음 들런 곳이 로터스 가든 호텔, 싼 방은 없고 하룻밤에 2100페소짜리 방이 있다. 그런데 아침밥이 포함된 가격이고 팁이 없단다. 3일밤을 자기로 했다. 주변에 유흥업소가 없어서 일단 시끄럽지 않고 잠자리가 참 편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4일째 밤을 마닐라에서 자야 되는데 계산을 잘못해서 마지막 밤은 마비니펜션으로 옮겨 그 시끄러운 방에서 뚠눈으로 자고 나왔다.
호텔에 짐을 풀고 로빈슨 백화점 1층에 프라이즈 대이 음식이 괜찮다고 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썩 먹고 싶은 것이 없다. 그래서 한국 음식 먹으러 오다가 눈에 띈 한국 식당 ‘가야’에 가서 순부부 찌개를 먹었다. 그런데 귀에 익은 음악이 울러퍼진다. ‘파리의 연인’ 주제곡이다. 보라카이 어느 기념품 가게 아가씨도 우리 보고 자기는 ‘파리의 연인’에 나온 이동건 팬이라고 했는데 이곳 백화점에서 까지 ‘파리의 연인’ 음악이 나온다. 기분 괜찮다. 점심을 먹고 쉬다가 서점에 가서 동화책을 살펴보고 2권을 샀다. 저녁도 ‘불고기’라는 한국 식당에서 두부 찌개를 먹었다. 점심 때 먹은 곳은 김치 따로 밥 따로 국 따로 사서 먹었는데 양도 진짜 적었다. 그런데 이곳 반찬 참 푸짐하게 나온다. 그리고 비싸지 않고 찌개가 참 맛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9일정도 여행을 하면 한 번 정도 한국식을 먹었었는데 한번 얹혀 혼이 나서 그런지 필리핀 음식은 영 못먹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