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쐬러 장안사 가다-
웬수(?) 같은 녀석들이 늦~게 오는 바람에 수업이 예정보다 30분이나 늦게 끝났다. 수업하고 나니 거의 4시가 다 돼 간다. 정희랑 3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못살아 정말.
몇 년 전, 막내 동생이 결혼하기 전에 온 가족이 장안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 하도 오래돼서 가물가물 하지만 대웅전 쪽에서 바라봤던 앞산 풍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바람 쏘이고 싶다는 정희를 데리고 장안사를 다녀왔다.
장안사는 제법 유서 깊은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인데 임진왜란 때 불타서 임진 이후에 다시 지었단다. 절 경내를 돌아보고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님께 문안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정희가 법당 안에 조금 앉았다가 가잖다. 대웅전 정면의 문과 양 옆에 문이 열려 있어서 그런지 가만히 앉아 있으니 참 시원하고 좋다. 누가 툭 치길래 보니 정희가 돌아 앉아 앞산을 바라보란다. 몸을 돌려 대웅전 정면으로 열린 문을 향해 앞산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절벽 아래 초록 잎새들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다. 가만히 보고 앉아 있으려니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청량한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마음이 차분해 진다. 그런데 퍼뜩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 언젠가 누구에게 들었던 ‘부처님께 등을 보이면 안된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 얼른 돌아앉는다. 정희보고 “야, 부처님께 등보이는 거 아니래.” 했더니 정희도 얼른 돌아앉는다.
법당을 나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본다. 극락전에는 와불이 모셔져 있다. 약간 태국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장안사에는 불기 2535년 부처님 진신사리 7과를 봉정받아 3층 석탑에 봉안하고 태국에서 불기 2543년 부처님 진신사리 3가를 봉정받아 극락전 와불 부처님 복장에 봉안하였다. 정희가 왓포에서 봤던 40m와불 생각나느냐고 묻는다. 처음 그 와불을 봤을 때 규모에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와불을 따라 한참을 가니 부처님 발바닥 두 개가 보였는데 그 발바닥에는 삼라만상이 새겨져 있었다. 이곳에 모셔진 와불은 아담하고 소담스럽다.
마당을 기웃거리며 보니 한켠에 가마솥이 세 개나 있다. 굴뚝에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다. 해거름이라 연기가 낮게 깔리면서 매캐한 냄새가 난다.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향수가 일렁인다. 약수 한 바가지를 받아 마시고 작은 연못이랑 찻집도 돌아본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많지 않고 고즈넉하고 좋다. 지금쯤 척판암과 백련암도 올라가면 볼만할 텐데 시간이 늦어 안돼겠다.
장안사 앞에서 할머니가 팔고 있는 쑥떡을 사서 계곡이 보이는 곳에 앉아 나눠 먹었다. 계곡을 따라 내려 오는 길, 기분 좋은 바람이 내 몸을 휘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