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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ㅣ 일공일삼 6
페터 헤르틀링 지음, 페터 크노르 그림, 박양규 옮김 / 비룡소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아이들 눈에 비친 어른들 행동은 모순 덩어리다. 어른들 눈에 비친 아이들 행동이 마뜩잖듯이. 하물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강산이 6번 변할만큼의 세월이 차이나는 할머니의 삶을 손자가 어떻게 다 이해를 하겠는가. 갈등을 빚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하지.
표지를 보니 손자는 할머니와 등을 지고 골이 잔뜩 나 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고 할머니는 먼 곳을 응시하는 같기도 하고 근심이 쌓인 것 같기도 하다. 건널 수 없는 세월의 강이 할머니와 손자 사이에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옛날 애정 영화나 좋아하는 구식인데다가 농담이나 욕을 잘하고, 게다가 목소리까지 크고, 다른 사람들한테 결코 지는 법이 없는 할머니가 불만인 손자, 낡은 집에 몇 푼 안되는 연금과 광고지 나르는 일을 하면서 언제나 씩씩하고 당당한 할머니지만 자신이 아프면 칼레는 어떻게 해야할지, 칼레가 사고를 치진 않을지, 집세를 올려달라고 하면 어찌 해야할지 현실적인 걱정 앞에 근심이 쌓여 있는 할머니. 함께 살아가려면 할머니도 손자도 적잖게 힘이 들 것 같다.
그러나 진심은 아무리 긴 세월의 강도 훌쩍 뛰어 넘는 법. 할머니와의 생활이 길어질수록 칼레는 할머니의 삶을 조금씩 이해해 간다. 그리고 할머니가 친구들과 다툼이 생겼을 때 고래고래 소지를 지르며 칼레를 두둔하는 것도, 몇 십년 만에 처음으로 촌스런 모습으로 휴가 여행을 간 것도 할머니 나름의 손자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결국 양로원에서 할머니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칼레가 ‘할머니는 늙으셨지만 그 사람들과는 아주 다르다’는 말을 한다. 뭔가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자기 할머니는 그 할머니와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러자 칼레 할머니는 ‘나도 그 노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데 단지 양로원에서 살지 않고 내 집에서 손자와 함께 산다는 것 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나이든 것도 달라 보이는 거‘라고 말 한다.
아닌게 아니라 칼레 할머니는 여느 할머니들과 다른 뭔가가 있다. 자신이 무언가 하지 않으면 먹기 살기조차 힘들 만큼 가난하게 살지만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과 자신의 삶을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면 혼자 남겨질 칼레 걱정에 할머니 마음이 편치 않지만 칼레를 키우는 것을 힘들긴 하지만 보약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아는 칼레는 할머니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셔도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살아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