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 파이 전문점을 하는 지인이 놀러왔다. 때마침 부산 박물관에서 ‘유리건판 궁궐 사진전’을 하고 있어 보러 갔다. 5월의 부산 박물관 바깥 풍경은 바라만 봐도 상쾌하다. 박물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물오른 나무들이 가지 가득 푸른 잎새를 매달고 너울너울 춤추고 있다.

  일반 전시실에 있는 유물들을 대충보고, 유리건판 사진전을 열고 있는 기획전시실에 갔다. 이 사진들은 일제가 우리 나라를 보다 효율적으로 지배 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찍은 것이라는데 일제 시대 우리 나라의 궁궐 모습을 적나라(?)게 볼 수 있다. 현재는 국립 중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단다. 전시된 사진을 보는 내내 울화통이 치밀었지만 궁궐을 옛모습으로 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니....

  ‘유리건판’이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팜플렛을 읽어보니 디지털 카메라가 익숙한 세대들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필름 카메라가 나오 전 사진사가 검은 보자기를 둘러 쓰고 사진을 찍던, 사진 한 장을 찍을 때,마다 유리로 된 네모난 판을 갈아끼우던 '그것'이었다. 유리건판 사진기는 한 장을 찍을 때 마다 ‘펑’, ‘펑’ 소리가 난다. 필름 카메라가 나온 후에도 중고등학교 다닐 때 라라 사진관에서 증명 사진을 찍을 때, 어릴 적 마을에서 전통 혼례를 치룰 때도 이 사진기가 사용이 됐었다. 

  유리건판에 담긴 일제시대 궁궐 모습은 ‘궁궐’이라는 낱말을 쓰기가 무색할 정도로 폐허에 가까웠다. 궁궐 마당엔 잡초가 무성하고, 왕이 집무를 보던 본전 건물 창호지 바른 문은 구멍이 슝슝 뚫려 괴기스런 느낌마저 들고, 궁궐 담은 허물어지고, 궁궐 건물 둘레에 뉘 집 과수원 울타린냥 철조망을 쳐 출입을 막아놓아 마당에도 건물 주춧돌에도 무성한 풀들이 자라고 있고. 거기다가 궁궐 건물을 헐고 궁궐이 있던 자리에 총독부 박물관을 건립하고 있고, 궁궐 건물 중 무엇을 헐었는지 서양 건축물을 짓느라 공사가 한창이고....

  왕를 비롯한 그 가족들, 수많은 신하들과  궁중 나인들이 무시로 드나들었을 궁궐이 황량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런데다 땅 기운을 누르기 위해 옛날에는 무덤에나 심었다는 잔디를 궁궐 마당 곳곳에 심어놓고 명당 터엔 궁궐 건물을 헐고 자신들이 필요한 건물을 짓다 보니 기품은 간데 없고 처량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러나 광화문의 옛모습이나 덕수궁 뒤편에 있던 두 기의 삼층석탑, 앙부일구, 물시계 같은 과학 기구들이 제 자리에 놓여 있는 모습 등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 사진들은 근대 우리 나라 역사를 담고 있는 근대 한국문화사의 중요한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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