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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제의 나라 ㅣ 푸른도서관 1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3년 7월
평점 :
몇 년 전,통도사에 답사를 갔다가 그 곳 성보 박물관에 계신 문화해설사로부터 ‘천상 세계’와 ‘지하 세계’에 대해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박물관 안에 불교에서 말하는 죽음의 세계 즉 ‘명부세계’를 그린 ‘시왕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꽤 많은 그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엄경대’라는 거울에 자신이 살아생전 지은 죄가 하나하나 그대로 비쳐져 염라대왕과 판관들이 그 죄에 따라 혼을 지옥으로 보내기도 하고 천상세계로 인도하기도 하는 그림도 있고, 지옥 세계에 간 중생들이 어떤 형벌을 받고 있는 지 알 수 있는 그림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 참 묘한 기분이 들었었다. '정말 죽음의 세계가 있을까? 그렇다면 하루하루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겠다.' 뭐 이런 생각을 잠깐 하다가 끝냈다. 그런데 강숙인 씨는 천상세계에 대한 옛 사람들의 환상이 담겨 있는 ‘옥추보경(玉樞寶鏡)’ 강의를 듣고 그 생각을 다듬고 키워 이런 기막힌 책을 써 냈다.천상세계를 어쩌면 이렇게 생동감있게 상상했을까? ‘뢰제’의 나라가 궁금해서 잠시 훑어보려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가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문화재 도굴꾼들에게 쫓기다가 교통사고로 천상 세계로 얼떨결에 가게 된 다함이가 다시 이승으로 살아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이 이 동화의 줄거리다. 그런데 그 속에는 이승에서 벌어지는 온갖 아귀다툼, ‘환경문제’,‘유전자 조작 식물의 문제’, ‘복제’와 같은 심각한 사회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 환타지 속에 세상의 질서를 깨뜨리지 말라는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자들이 보람을 느낄 때는 한 세상을 올바르게 산, 아름다운 혼을 거두어 올 때야. 미숙하고 엉망진창인 혼을 거둘 때는 괴롭지. 그런데 요즘 좋은 혼을 거두는 일이 드물어진거야.’ 와 같이 천상 세계의 신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살다가야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케 한다.
이 책에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는 이야기도 군데군데 나온다. 내가 ‘사이에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무당’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듯이 미신이라고 믿고 있던 ‘부적’에 대한 고정관념도 깼다. 작가는 다함이 할머니의 말을 빌어 부적이 ‘하늘의 글자’라고 했다. 부적에 적힌 글자는 ‘제 뜻을 하늘에 전해 그것을 지닌 사람의 마음을 하늘에 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다함이는 할아버지가 써 주신 부적을 지니고 있어 이 부적에 적힌 마음이 뢰제 나라 사람들에게 까지 전해져 결국 온갖 어려움을 견뎌내고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작가가 왜 부적을 이렇게 풀어썼나를 곱씹어 보았다. 그러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 할머니께서 살아계셨을 때 정초 토정비결을 보고 운수가 나쁜 손자, 손녀들에게 부적을 지니게 했었다. 그 때는 그냥 ‘미신’으로 치부해버리고 그 부적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할머니도 작가와 같은 마음이 아니을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치인지 느끼게 한다. 믿음은 희망을 잃지않게 하는 힘이 되어 결국 소망을 이루게 한다.
천상세계에서는 다함이의 무조건적인 믿음이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도 '천랑'을 끝가지 살아남을 수 있게 했고 , 손자가 반드시 의식을 되찾을 것이라는 할아버지의 믿음이 다함이를 이승으로 다시 살아돌오게 했다. 할아버지는 다함이가 의식을 잃은 이후 병원에 올 때마다 다함이의 셔츠 호주머니에서 부적 주머니를 꺼내들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그 기도가 기적을 불렀다.
작가는 동양적 환타지로 천상세계를 그려냈다.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 정도면 신비로운 세계를 여행하듯 재미있게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승의 내 삶이 다해 저승으로 갔을 때 인간의 혼을 판결하는 영부가 있다는 것, 죄를 많이 짓고 덜 짓고에 따라 죽음 이후의 삶이 달라진 다는 것등을 통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