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답사 마지막 날이다. 아침을 일찍 먹고 햇살이 덜 내리쬘 때 고구려의 박작성으로 추정되는 호산장성을 올랐다.
*호산장성
단동시내에서 압록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30여㎞를 가면 고구려가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에 대비해 쌓은 박작성을 만날 수 있다. 이 성을 ‘박작성’이라 추정하며 천리장성의 마지막 보루로 보는 것은 우리 생각이고 지금은 호산장성(虎山長城)으로 불린다. 중국은 이곳이 만리장성의 시작점이라고 주장한다.과연 올라보니 고구려적인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아래서 위를 본 모습)

(성 꼭대기에 올라 아래를 본 모습)
중국 정부는 지난 1990년 전후로 이 박작성 터에 중국식 호산장성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명나라 때 세워진 천리장성의 일부분이라고 공언했다. 중앙 정부에서 직접 나서 자금을 지원하고 건축과 관련한 세세한 사항까지 챙겼다고 한다. 그래서 '박작성'을 구성하고 있던 돌들은 마을에 있는 집 담이나 밭 경계를 구분하는데 쓰이고 있다


호산장성을 내려와 마을에 있는 박작성 우물터를 보러갔다. 올 초까지 있었다는 우물조차 막아버리고 없다. 답사 기간 내내 어쩌구니 없는 일들을하도 겪어 이젠 쓴 웃음만 나온다.
그런데 호산장성 아래 있는 마을 앞에 북한 땅이 손내밀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있다.

(중국에서 북한을 건너가는데 한발자국이면 될 정도로 가깝다는 표지석)
* 압록강변에서
중국에 있는 고구려 유적지 답사를 가게된 이유중의 하나가 ‘압록강’을 보기 위함이었다. 경제 사정이 나빠진 북한에서 더 이상 생활하기 힘든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밤을 이용해 건넌다는 그 강. 예상했던 대로 ‘압록강’을 바라보니 마음이 착찹했다.중국쪽에서는 자유로이 수영을 즐기며 왁자지껄한데 북한 쪽은 조용하다. 쇠퇴하고 있는 느낌이다.

(맞은편 단동에서 본 북한쪽 모습)

(압록강가의 단동모습)

(중조우의교, 북한을 오가는 기차가 다니는 다리, 그런데 밤이 되자 단동쪽에만 다리 불빛이 보여 북한쪽 다리는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

(6,25때 폭격으로 끊어진 채 단동쪽만 남아있는 압록강대교)
단동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 활기찬 모습의 단동 사람들과 아주 대조적이다. 단동거리에는 오가는 차량들로 분주하고 압록강변 주위에는 높은 건물들이 연방 건설되고 있는데 북한은 낮에도 회색 건물 몇채만 드문드문 보이고 사람들도 활기가 없어보인다. 더구나 밤엔 불빛 조차 보이지 않는다. 중조우의교도 단동쪽의 반만 불빛이 번쩍거리고 북한쪽 반은 불빛이 보이지 않아 다리가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6.25때 끊어진 철교도 북한쪽의 반은 끊어진채 그대로 방채되어 있다.
환인에서 답사를 마치고 단동으로 들어올 때 일행 중 한 분이 피리를 연주해 주셨다. 압록강 너머 북한 마을을 바라보며 올 때였는데 괜히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눈에 물기가 고였다. 집안의 태왕릉 앞에서 본 북한의 산야와 환인에서 바라다본 북한 만포 마을 앞에서 고기잡던 빼빼마른 북한 아이들도 눈에 자꾸 밟힌다.마음이 무겁다.

(환인에서 본 북한 만포마을, 산등성이 위까지 개간했다)
호산장성에 갔을 때는 열발짝만 성큼성큼 걸어가면 건너 갈 수 있을 만큼 얕고 작은 개울 너머가 북한 빙산 마을이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잡힐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통일 전망대를 갔을 때 북한땅과 경계지역에 겹겹이 둘러친 위압적인 철조망과는 비교도 안되는 낮은 담 같은 철조망이 경계를 구분하는 표시였다. 북한이 남한과는 웬수처럼 담을 쌓고 지내지만 옆 나라 중국과는 이렇듯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서운하다 못해 화가 났다.

(건너편이 북한땅이다. 옥수수밭에서 일하는 아낙들의 얼굴 표정까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 답사 마무리
이번 답사는 둥북아 공정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 지역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는 일정이라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답사를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박물관에 공사 중이어서 발굴한 유적들을 보지 못한 점, 하고성자촌 같이 그나마 남아있는 유적조차도 깡그리 사라지는 현장도 목격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지던 고구려가 이번 답사로 인해 조금은 구체적으로 다가왔지만 남아 있는 유적들의 훼손이 심하고 고구려 유적지에서 발굴한 유적들은 해당지역 박물관에 전시하지 않고 엉뚱한 요녕성 박물관에 전시를 해서 현장과 연계해서 보는 것 조차 방해하는 것을 보면서 고구려 역사는 우리 교과서상에서만 남아있도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남아 있는 고구려 유적들이나마 조작되고 사라지기 전에 정부에서 적극적인 대책을 모색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