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첫번째 도성,환인
환인은 집안 답사를 마치고 고구려의 첫번째 도성, 오녀산성과 하고성자를 보기위해 묵었던 도시다. 혼강이 시내를 감싸듯 흘러가고 있어 아침에는 강가에 환인 시내 사람들이 나와 운동을 한다. 모닝콜을 한 것처럼 어제와 같은 시간 5시에 눈이 떠져 대로를 따라 혼강가로 산책을 갔더니 사람들이 리더도 없는데 집단으로 줄을 지어 음악에 맞춰 에어로빅과 쿵후가 섞힌 듯한 춤인지 운동인지를 하고 있다.동작이 단순해서 나도 삼각스텝을 밟으며 몸을 풀고 돌아와 아침식사를 했다

(오녀산성이 있는 오녀산에 오르면 환인 시가지와 혼강(졸본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

(오녀산성에서 바라본 비류수,삼국유사 '기이'편에 주몽이 미처 궁궐을 세울 겨를이 없어서 비류수라는 물가에 초막을 짓고 살면서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고 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리고 고(高)를 성으로 삼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어디쯤이었을까?)
오녀산성은 오녀산의 험준한 지형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우리가 식사하러 갔던 '고려성' 입구에서 본 오녀산성, 동쪽만 경사가 완만하고 서,북,남쪽은 절벽이다)

서. 남. 북쪽은 천연 절벽을 활용하고 성벽을 쌓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경사가 완만한 동쪽과 동남쪽에 돌로 성벽을 쌓았다.

(오녀산성 내 남쪽 성벽)
산성을 드나드는 3개의 성문, 동문,남문.서문이 있다.

(오녀 산성 내 동문지, 바깥에서 보면 통로가 보이지 않는 문으로, 전시 연락병이 드나드는 문이었단다)

(오녀산성 서문터, 주차장에서 천여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이곳에 닿는다)
산성안에는 집단 거주지, 장대와 저수시설 같은 것이 있었다는 유적지가 있었는데 집단 거주지 같은 곳은 발굴당시 유물들의 거의 싹 쓸어가고 유리판 몇 개로 지붕을 만들어 덮어놓고 표지석만 세워놓았다.발굴 된 유적들을 싹쓸어 갔으면 오녀산성아래 이곳에서 발굴된 수많은 유적들을 전시하는 공간이라도 만들어 놓았으면 좋았을텐데...주몽신화를 읽으며 달떴던 마음이 민망할 지경이다.
버스에서 내려 오녀산성을 오를 때 가파른 계단을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밑에서 보니 하도 까마득해 보여 경상도 처자들이 농담으로 이랬다. 적이 이곳을 치러 왔다가 지레 지쳐 대장한테 맞아죽을 각오하고 “마~(한숨한번 쉬고)가입시더.”이래서 전쟁도 못해보고 돌아갔을 것 같다고. 그런데 산성에 올라서니 성안은 산책로 같다. 평평한 평지거나 약간 비탈진 길인데다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더운 여름 한낮에도 걷기엔 그만이다.그래서 오녀산성 멀리서 가슴설레이며 봐야 제격이라고들 했다.
*하고성자 평원성
집안의 환도산성과 국내성을 설명할 때 말했던것처럼 고구려는 평상시에는 평지성에 거주하다가 외적이 침입하면 산성으로 들어가 방어하는 도성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고성자성은 오녀산성을 산성으로 하는 고구려 초기의 평지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그런데 성벽이 혼강과 접하고 있어 일찍이 홍수에 의해 유실이 되었다는데 그나마 남아 있는 성벽도 거의 훼손 되고 흔적조차 희미했다.

(우리가 답사를 갔을 때는 다리를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행중 한분이 고구려 사 연구하시는 분들과 올 4월에 왔을 때 약간의 성벽이 남아있었다던 그 흔적조차 볼 수 없었다.그 분의 당혹스러워 하던 그 표정이 지금이 눈에 선하다.)
*상고성자고분군
이곳은 하고성자유적지에서 동쪽으로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지리적인 위치로 보아 하고성자 지역에 살았던 고구려 귀족들의 공동묘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960년대까지만해도 이곳에 200여개의 고분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고분들을 파헤쳐 평지로 개간하는 바람에 거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지금은 겨우 20여기만 남아있다는데 20여기 조차도 대부분 옥수숫대에 가려 보이지 않고 잡초가 무성한 풀숲에 돌무더기들 몇개만 군데군데 보였다.


‘삼국의 형성’부분에 나오는 고구려사는 참 막연했다. 신라와 백제는 그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친근했지만 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고구려 유적지는 늘 내 나라 조상들이 아니라 딴 나라 사람들 이야기를 배우고 있는 듯한 생경함이 들곤 했다. 그래서 고구려 유적지 답사에 참가했다. 중국식으로 왜곡되어진 것들도 있고, 훼손이 심해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것도 있어 아쉬움이 많았지만 답사전에 가졌던 그 막연함은 많이 가셨다.고구려 사람들은 용맹스럽고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는 것, 그들이 내달리던 땅은 지금은 남의 땅이 되어 있지만 그들이 가졌던 기상은 우리가 이어받아 되살려야 되지 않을까,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등등의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갔다.
환인 지역을 답사하고 내일 우리 나라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다시 버스를 타고 네댓시간을 달려 단동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왼쪽에 압록강을 끼고 간다. 강 너머 북한 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런데 일행 중 누군가가 피리를 분다. 눈에 물기가 어린다. 기분이 참 묘하다.